|
계간 시조문학 1986~1990 까지 등단 작품
1990.
90 *겨울호(65호)
(천료작)
*落日 / 유춘홍
무성한 자맥질이
무게얹어 되감긴다
한여름 들풀들의
가위 눌린 숨결인가.
저 낙일
갚은 곳까지
혼을 불러 지핀다.
목순의 재가되어
묵시이듯 떠매온 세월
산고의 빗장풀어
빈 들에 흩뿌리면
제각기
촉을 돋우며
정적에 가 꽃힌다.
속죄로 잠깬 이승
선혈로 일어 선다.
떠도는 햇살들이
골 깊이 앉은 자리
금이 가
상채기마다
넋들이 뒤어 든다.
*돌의 의미 / 김영홍
머울진 가슴알이
앙금으로 고인 언어
안으로 여문 의지
의연한 너의 표정
숨결도 차오른는 듯
이끼 돋아 푸르더니
비바람 모진 시련
침묵을 머금은 채
제 둘레 메인 사글
무거운 멍에지고
망각의 긴 수렁의 늪
눈 비비며 일어선다.
朱土빛 하늘 이고
절망을 다스리다
버려진 이승 한 끝
등어리 시린 나랄
고독이 영그는 밤을
별로 뜨는 돌이어라.
*侍春 / 이상진
눈 내린 겨울밤엔
白燈 켜듯 어둠 밝혀
바람 찬 산마을에
따슨 정 부여놓아
접어 둔
언약들 모아
하얀 꿈을 새긴다.
또렸한 윤곽으로
수를 놓은 족자속에
호반가 아동들이
뒹굴며 얼음지쳐
불현듯
유년의 회억
매화인 양 피어라.
산까치 노래 듣고
아침을 맞이하던
뒷동안 노송에도
서설(瑞雪) 내려 꽈찬 기쁨
지긋이 눈을 감으면
도란도란 봄이 핀다.
*心淵 / 오기일
천이라 그리메로
바랄수록 서는 깊이
돌아와 거둔대로
말갛게 차오른 듯
물억새
서걱인 밤을
저 쓸쓸한 바람 소리
차마 못 버린 생각
저리어 이는 파문
퍼져도 제자리를
가슴 속 가라앉혀
심연에
달가는 하늘
수련화를 띄운다.
*들국화 / 박태일
먼 세월 표류하다
소를한 이 산 기슭
임 생각 뜻이 깊어
샘물처럼 고이더니
이 석양
향불을 사뤄
소복하고 앉았거니.
설레이는 몸짓으로
별빛을 모아 놓고
막 내린 하늘가에
차 내린 달빛인가
사모의
불씨가 되어
산자람을 태우느나.
맴 돌던 그 언저리
향수는 매어들고
오지랍 스민 연정
옛 정을 되 새기며
다소곳 고개 수그린
피안에의 기도여라.
*자란만 (紫蘭灣)/ 최재섭
신의 물결 머물게한
매밀한 말뜻 있어
싱싱히 푸른 혈백
미소로 피는 물굽이에
별빛이 저절로 녹아
시그리로 일어 선다.
무뉘진 꽃보라가
태고의 숨결 나누면
얼비친 영원의 城
안으로 영글어 가는
한송이
난꽃에서나
어려 있을 서정시
물길따라 숨어드는
꽃뱀의 혀 끝에서
자란은 잎새 속에
숨 죽여 도사리는데
時流가 일으킨 바람
자란자란
조여온다.
*해토끼 /고유자
깨어나라,지면깊이 숨었던 숨결마다
피토하여 힘줄을 늘이거라.
눈 먼 땅 화희의 뜰에 소근대는 몸살이다.
흐르거라, 갇혀 있던 빙벽 가슴 걸어 나와
긴 江河로 풀려오는 무한의 새벽 물소리
잃어진 생명을 키워 솟구치는 함성이다.
피어나라, 계절을 벗어난 바람결에
이곳,저 곳 맥을 짚어 푸른 수액 올린 나무
창조의 아침 햇살에 모두 피어 나가라.
*사월 초파일 素描(소묘) / 허혜숙
-관음사에서-
한 계단 오르면서
손을 모아 마음 접고
또
한 계단
올라가면
관음보살 따스 사랑
크나큰
님의 숨결이
솔 향기에 얹혀 온다.
큰스님 독경 소리
저 숲 속 산새 소리
市井의 더운 골목
무심으로 나래를펴면
저 높은
님의 품에서
나를 다시 챙겨 본다.
90 *가을호(64호)
*산노을 / 이희숙
이저녁
뉘 가슴이
저리 붉게 토고있나
버린 삶의 애환이
숯불로 달구어 올 때
그름산 끓어
낭자한 번뇌를 본다.
눈을 뜨면 所有의 불길
눈 감으면 아득 한 淨土
소돔과 고모라의
불타는 저 성체를 보며
무소유
가난한 말씀을
샘불 처럼 들이킨다.
차마
사랑할 수 없는
사랑마져 사랑한며
버리고 싶은 목숨
허물 벗지 못하는 슬픔
산노을
불기둥 곁에
돌이되고 말 일이다.
*제주에서 / 정강혜
수억 년 하늘 뜻에
큰 섬 되어 남은 여기
밭 일구고 바다 혜며
부초로 산 비바리
전철의
마디들을 업고
방목으로 지켜섰다.
끓다 넙친 분노들이
산을 뜷어 생긴 혈구
태고의 얘기들이
적순으로 돋아나서
스쳐 간
발자취들을
물방울로 헤고 있다.
땅이 울며 토해 낸
저 숱한 돌덩이 속
아직도 뜻 모를 어어가
대를 잇고 사는데
이방인
혜픈 웃음들이
유도화로 피었다.
*거미 / 정광영
빠지면 못 나오는
칠혹의 어느 구석
한 방울 기름까지
목숨을 짜내어서
올올이 환영(幻影)의 그물
허공간에 걸치는 너.
*목탁법 / 서숙희
안으로 쌓인 욕심
저처럼 비우고서
작은 법보로 오는
나직한 깨달음의 소리
먼지 낀 마음의 벽에
이슬로 맺혀오네
비울수록 맑아지는
이 가까운 이치를
무딘 내 육신은
헤아리지 못하는가
합장을 풀고 나면 또
읕어지는 사비여
*창 외 1편/ 김주식
빠안히 보이건만
바라볼수
없는
처
지
장마는 꽃을 꺾고 산을 덮는 폭설 아냐!
널
열어
투명한 건곤(乾坤)
윤을내고빛내 주렴...
회상/ 김주석
조용히 눈을 감아
금진 땅을 다스린면
불 살라도 탄내 없을
향상스런 혼백 있어
박동은
체온 속에 달아 올라
맑게 녹는 옹달샘.
90*여름호(63호)
*먼동 / 하한송
숨 죽인 메아리는 아래로만 깔려 오고
빗장도 녹이 스는 배달의 깊은 밤에
늪 속의 잠긴 그 말을 반딧불은 캐고있다.
나울진 어둠에도 생명의 피가 돌아
가의 눌린 잠자리 남우한 내 육신이
동여 맨 목발을 짚어 먼동을 걸어온다.
*겨울 나무 / 양계향
싸늘한 하늘 아래
바람조차 매서운데
황홀햇던 나날들을
마음 속에 되새기며
가지 끝
까치 집 하나
온 몸으로 감싸준다.
텅 빈 골짝 험한 비알
부등키고 버텨 서서
메마른 가슴에다
부푼 소망 챙겨 안고
허허론
육신 가누며
흰 눈발을 맞는다.
*어촌의 밤 / 서일옥
어둠이 안아 내려
별빛들 소롯하고
흔들리는 불빛 사이
그림자 일렁이면
빈 배는 손을 거두어
하루를 닫아간다.
뒤척이면 누운 바다
해묵은 몸살을 풀고
포말 빈 가슴은
아직도 허기진데
섬 하나 안개에 실려
숨가쁘게 달려온다,
눈 감으면 파아랗게
출렁이는논둑 위에
어머니 환한 얼굴
겹쳐겹쳐 아른대고
청보리 한웅큼 속에
퍼득이는 생선 비늘.
*겨울 억새 / 이처기
실바람 따라 더난 물 어린 겨울 해도
그 숨결 성에되어 내려 앉는 저문 날에
철 아닌
허수아비가
발을 담고 서 있다.
목잘린 그루터기 띄엄이 남아 섰고
하오의 낮달이 낙점으로 떠서오면
산 까치
저녁 연기 끌고
산정을 넘어간다.
한 해에 고인 눈물 그믐 제(祭) 향불에 말리면서
구름이 머물다 간 스스로 지킨 하늘
억새는
목이 치켜진 채
교외선에 머문다.
*마지막 달력 / 김사균
벼랑을 등에 지고
목숨 참참이 여위더니
창백한 이별이 되어
아픔으로 다가와
자정의 갈림목에 서서
회한으로 찢긴다.
제야의 종소리가
백지에 먹물로 번지고
저마치서 새벽이
빛살되어 오는데
하찮은 일상 하나는
발목저려 맴돈다.
*바람 앞에서 / 김태자
순간을 흩어 낸
결이 가는 세월의 매듭
긴여정 투망질
겹쳐 뵈는 손짓 하나
옷 벗어 드러앉는 허공에
홀로 와 앉는다.
눈빛 이즈러진
육신에 빗질하면
황랑한 벌판에
버려도 좋은 굴레들
조용히 익어가는 목소리로
도 한 발짝 내딛는다.
침묵의 물이끼
식어버린 선혈
잡아도 잡히지 않는
미궁 속 고향
깊은 잠 의식의 아픔을
바람에 이깨운다.
90*봄 호(62호)
*한밤의 삼각 굴립 / 홍성란
1
열매이길 기도하며
젖어온 넋이다.
어느 바람 갈피에서
다만 한 번은
열렬히
무너지는 진실로
찬란 꽃술로
2
몇몇 번뇌를 앓는
뱀비늘 돋은 입술
밤마다 비껴 앉은
눈물의 사슬을 끊고
호리병
뜨거운 대좌
결실의 깊은 發源'
*가을의 노래 / 이남식
-낮달 1-
한마당 잔치 끝나
하나,둘씩 떠나가고
고요, 깊은 가슴
속 부신 씨를 벌다.
비우고 차라리 넉넉한
숨결 고른 아 ,바람......
태초 풀린 청명
깃을 사린 생각 끝
서성인던 노을 몇 점
시름으로 끝내 져도
잎잎 그 소중한 꿈은
학이 풀어 지켰느니......
연 피 무너지던
힘줄굵은 팔뚝 앞에
밤으로 밟혀 버린
빛 푸른 심지 하나
우러러 정갈한 땅에
눈망울로 돋누나.
*개화초(開花抄) / 이영선
숨은 빛 목숨 하나
울음 밴
몸짓으로 필
이 한밤 별이 든다
남 몰래 제단을 쌓고
옛 왕조
찬란한 영광
되살리는 눈시울.
에덴의 슬픈 가락
껍질을 벗겨내듯
젓대 끝
초승달 무늬
순결로 피어날 때
볓 천년
상혼을 떨궈 낼
깃이 푸른 네 선율.
*고시생 / 이豪林(호림)
1
피 맺힌
통통머리
가슴 가득 타는 젊음
백지장
글발 따라
책벌레로 숨 돌리고
한 밤에
뒤쫒다 나니
새벽달이 앞장 선다.
2
외로움
달랜 눈물
청춘도 불사르니
그리움
안은 피 땀에
숨통 막혀 오도다
승전고
퍼진 그 함성
천지도 밝아라.
3
어머니
고운 정성
불심으로 이어지고
몽롱한
한가닥 꿈
삼수 사수 맺힌 한은
영광 찬
그 길을 따라
큰 별이 되어 빛나리.
*바느질 시편 / 김가영
한 맺힌 가슴에 호롱불을 밝혀지고
아버님 늦은 귀가를 깁고 계셨던 어머니
화롯불 숨은 불씨들 미명의 문을 여네.
별들은 돌아오고 부조되는 수틀 속엔
그리움의 원앙들이 나래를 활작 펴고
데워낸 인두질마다 퍼지던 가난의 주름살이녀.
유년의 창문턱을 넘나들던 동해 바다
다래의 화음은 베틀속에 잠겨있고
가을밤 다듬이 소리 깨어나던 물소리.
청진항 그리며 밤으 지샌 할머니
빈 게절 바람에 실려가는 민들레 꽃씨
오늘도 한땀씩 고향길을 떠나네.
..........................................................................................
1989.
89*겨울호(61호)
*산사의 밤 / 김선영
저무는 산문 밖
별 하나 몸살 앓고
서ㅔ월의 끝에 서서
돌팔매질 하다 보면
낙엽을 스치는 바람이
금강경을 설(說)한다
계곡의 물소리도
저승에서 들려 오고
억겁을 파 헤치다
돌아 눕는 속세의 정
이끼 낀 천년 세월은
산을 베고 누웠다.
*계단 / 이희란
내가 먼져 밟고 떠난
그 길을 뒤따른다
먼져 간 자 먼져 되고
나중 간 자 나중 되는
비장의 함무리비 법전
먼지 속에 묻힌 말씀
너를 딛고 서야만이
비로소 설 수 있다면
나를 딛고 가는 너를
원망해선 안 된다고
인고로 쌓아 올려진
삼백 육십 오 계단.
*추정 야곡 /서재수
세월의 자투리로
촘촘히 굼을 심고
꽃이 질까 설레인 마음
묻어둔 밤 하늘에
발무리
細窓에 가려
하얀 별이 집니다.
잿빛 하늘 가에
가슴 시린 나목처럼
아픈 思念 새롭게 풀
하늘문이 열리면
달맞이
노란 꽃들이
하얗게 집니다.
*대관 령의 사계절 /김좌기
봄
들레가 초록 바다
층층이 다 연초록
저 멀리 수평선까지
구비 돌아 진달랜데
봄 물결
출렁이어라
영마루에 이슬지네.
여름
경을 외는 말매미랑
온산 짙게 물 들이고
그 깊은 녹음 속에
푹 잠겨 들고 싶은
청운의
부푼 꿈 안고
장도 오른 선비 마음.
가을
귀 밑으로 스친 인정
나그네 시름 접고
옛님이 예든 길엔
낙엽이 살폿 지네
자친을
임영에 두고
돌아보는 그 심사!
겨울
丈雪 쌓인 오솔길엔
신들메가 얼어들고
나 홀로 느티나무 서서
遠景을 바라느니
그립다
님은 어디메?
울렁이는 가슴어리!
*고추 밭에서 / 한병윤
참숯처럼 달아오른
비알밭 잔돌 골라
한 뼘 땅 고추밭을
가꾸시던 어머니
그 정성
곱게 익어서
산자락도 탑니다.
바람이 밀어 올린
청하늘 벌판에서
쏟아져 내린 햇살
열매마다 단물 넣고
잠자리
나래 끝에서
낙엽 한 잎 떨어진다.
*옛집에서/ 제만자
쟁기도 엇간에서
일 없이 누워 있네
추억 서린 남새밭
감자꽃 혼자 피고
지난날 손 때 같은 것
문지으며 보느니.
청보리 필 무렵엔
꿈도 함께 부풀었다
이삭마다 사운덴
바람 따라 그 가락
풀 피리 다시 부노니
뻐꾹새 받아 우네.
아름드리 장독 자리
빈자리도 넉넉한
발길 끊긴 구석 구석
땅은 젖어 이끼 푸르고
앵두꽃 애끓는 정으로
울타리 무너지네.
89 *가을호(60호)
*강 / 윤성효
아가야, 우리 아가야.
이제 잠 자거라
수초랑 물이끼도
슬어 넣는다. 아가야
은하물 비늘 밖에 더
파닥거릴 게 없고나
네 작은 이맛살에
신열이 드러 눕고
강뚝까지 요동하는
기침을 토할 때면
저만치 황토물 고여
흐를 줄 모르더니만......
제 자리 제 목소리로 서는
얼굴 을 닦아
먼 내일도 아가야,
갈숲처럼 맑게 서야제
아기는 그새 잠이 들고
으늘도 오람으로 흐르나
*채사장에서/ 김정태
갈갈이 찢긴 살점 목이 타던 강가에서
흰 살결 자랑삼아 나신으로 누웠다가
천년의 무게를 털고 수렁이며 일어선다.
이리도 모진 생애 허기진 바람들이
이제는 결이 삭은 회색빛 세월로 남아
일상을 저울질 하며 번지수를 찾고 있다.
*부산항/ 강규인
물 젖은 뱃고동이
안개따라 피어나면
오륙도 다섯 섬이
주섬주섬 잠을 깨고
기중기
긴팔 들어서
부산항을 일으킨다.
인정도 파도되어
뱃전에 출렁이고
갈매기 비둘기와
한무리로 어울리면
이역 땅
물양장에서
정을 싣는 외항선.
*정방폭포/문태길
조용히 가고 싶어
일렁이는 저 노을빛
유혹의 길을 건너
벼랑 위에 가 섰네
더 진한
그리움으로
승천하는 폭포여.
*풀잎과 돌 / 김선국
달빛 내린 들막에서
미끄럼 타는 이슬
구슬 퀘어 그를는
아픔마저 씻어 내리고
티 없이
빛나는 삶을
갈구하는 이 순간
밤새 뒤척이전
바람 갈피 잠 재우고
홀로 얻은 깨달음에
절로 고개 숙이고
마른 땅
갈라진 들에
눈물 흘린 잎새여.
*한세월 / 조창환
별빛 글성이는
새벽을 가노라면
더러는 빈 가슴에
머룰러 일던 바람
하얗게 세월 재 너머
억새꽃을 피웠네
청산 깊은 골에
뜻 하나 던져두고
쏟아 논 그 시절이
타도록 아쉬움에
불러도 메아리 없는
혼이 떨군 노래여
한가람 시린 물에
헹구어 올린 넋을
태초의 먹빛 속에
어루어 더듬으며
피멍진 숨자락으로
태워 바랜 한 세월.
*인생 일기/강진형
산 높아 물은 멀어
한숨 쉬는 지평 저 쪽
살아 온 그 날을 돌아
뒷짐 지고 따라 보면
터지는 속살이 부퍼
베샛닛에 피 밴다.
고달픈 짐을 부려
가닥 마다 풀어 보면
샘솟는 그리움은
어머니의 가슴앓이
흘러간 지난 자취가
자국마다 새롭다.
시간으 둑을 돌면
갈대 저 켠 잠든 바다
그 고요 시려 모아
마음 속에 간직하고
푸른 학 하늘을 열 듯
구름결에 떠 본다.
89*여름호(59호)
*일상성 /변영교
눈 드면 어김없이
혈혈관을 흝고 가고
이 악문 작두질로
달빛만 헹궈내는
동화 속 신기루같은
강 하난가 흐른다.
빛부신 하늘 이고
한데 열린 풀꽃의 춤
저마다 환한 얼굴
살을 살라 부벼봐도
界面을 누비며 흐르는
성에 낀 그림자여.
이.저승 넘나드는
가슴 속 새 한 마리
대안을 가로질러
새살 돋는 날개짓을......
아 문득 걸어서 오는
할아버지 잦은 갈증.
* 茶/ 김동일
달이 나직막한 밤
茶器의 맑은 소리
메마른 병실을 똑똑
두드리고 지나가면
思念은
앙금이 되어
찻잔으로 고인다.
뒤안길 돌아보며
꽃그늘도 돌아보며
반생을 사려담은
찻잔의 깊이를 재며
다향은
모락모락
솟아 무지개를 듸운다.
*남태령을 넘으며(외2편)/림혜미
휘적휘적 넘는 고개
남태령에 눈이 내리네.
아슴히 걸어온 자국
나는 지금 4차원인데
표표히
冬天을 날으는
호접들의 저 군무
.接木 / 림헤미
타향이 아니로세
행로는 다 못한 지평
궂은 비 머문 탁류에
무지개로 온 햇빛이네
가 없는 인접의 들에
靑木으로 서린다.
.살아 있으므로 / 림혜미
살아 있으므로
환희를 부르는 거다.
생명이 거듭 날 때
잃은 날들 다시 줍는다.
장롱을 영러서 보는
추억의 소꼽 동산들.
*모과에게/김은주
모과에게 / 김은주
정 많은 사람이야
언제라도 가슴에 남는 거지
하마터면 스쳐갈 뻔 그의 손이
차디차네 이게얼마만이라지 질박한 차림이면 귤 봉다리이면 어던가
어찌 갈건가 못 가겟네 안 가겟네 반가움이 눈가로 먼저 가더이만 물
기에 그만 부연 앞이 어릿하네 그렇지 뭐 거리가 먼 곳도 아닌 것이 어
찌 이리 무릎대기가 어려운지 더딘지 그저 오지 그릇 닦는 그 시간 도
는 것이라네 마다 말고서 이리로 내려오게 윤나는 장판 위로 여간 따
뜻한 게 아니네 보프라기 난 소매 댕기고 댕겨 앉히니
밖에는 석양 설핏 지는가
봉한 果酒
이제는 따야겟네.
*돌의 이야기 /성호
허튼날 뭉그리다
水魔(마)에 행군 얼굴
가물면 강 뜨락서
끊어 앉아 불벌 받는
모질게
살아 닳을수록
안으로만 다지는가...
저 홀로 감춘 사연
달래며 엿들어도
다짐한 운명처럼
함묵으로 버틴 세월
한번 더
그 안를 더듬어
너의 앞에 서 본다.
*길목에서/하순희
박소주 잔을 비워
더욱 쓸쓸해지는 저녘
구르는 나엽도 와서
잠이 깊지 못했다.
한밤을 건너 가는 저
추억의 기차 소리......
참
이상도 하여라
고달픈 마음의 끝,
어느 하늘에도 없는
별 하나 기다리며
갈꽃도 흐드러지게
길목을 지켜섰다.
그 긴긴 언덕받이
서러웠던 청자 하늘
오늘
내 철없는
피리 하나 가지고
절망이 영마루에서나마
아껴 가꾸고만 싶네.
89*봄호(58호)
*고향 엽신 1/ 김복남
고향 하늘 하얗게
섬섬히 꿈을 짠다
들추는 그리움마다
어머니 기침소리
돌처럼
굳우진 향수
마른 가슴 비빈다
달무리 이고 선 채
허수아비 밤을 센다
담벼락 낙서같은
분별 없는 삶의 여운
망향도
응어리진 채
논두렁에 누웠다.
*秋三題/ 배종교
.단풍.
블꽃 더불어 타오를
오색의 불티들이
바위 서리 담쟁이로
욺아 붙은 이 산천
스스로 번뇌를 사뤄
저 불길로 피는가.
.억새.
허허진 언덕배기
산하를 굽어보며
도라지꽃 하늘색을
그 가슴에 간직 한채
학인듯 긴 목을 뽑아
이 길섶을 지킨다.
.고추잠자리.
서릿발 차가울수록
혼은 더욱 뜨거운가.
저무는 꽃대궁에
살푸시 내려 앉아
한평생 지고 온 하늘
그 등짐을 부린다.
*강물 / 정수자
연연히 태운 가슴
한조각의 이야긴데
어디 먼 들길을
발자국이 익어간다
눈 감아 사쁜 접어보는
한줄기의 빛이다.
하많은 세월들은
어쩌면 몸빛. 눈빛
외로움은 하늘에
노을로 잠겨 들고
사연은 마디마디로
노래되어 흐른다.
*초봄 / 문혜관
먼지 낀 담벼락에 허물 벗는 누에고치
담장에 개나리도 노란 옷을 갈아 입는
남풍도 기어넘는 들녘 마애불도 웃는가.
어린 아이 걸음마다 뒤뚱이는 아지랭이
한낮에 노라 빨강 집집마다 부려 놓고
이 봄은 등불을 켜고 가섭처럼 오는가.
*作圖/ 전영배
1.점
백지 위에 두 선 긋고
첫 번재 점 찍어내니
빗발처럼 수련대며
일어서는 저들 함성
무수히 감춰진 실제
굴절하는 짧은 반응.
2.타원
일군 땅에 묻히어서
긴장을 싹 틔워
나이만큼 들어 올린
무서운 시간들
흥건히 달빛에 젖어
타원으로 잉태된다.
3.초점
싱싱한 순금빛 하루
퉁퉁 불은 바람이
가슴 복판 내린 눈물
꽃으로 피워내어
태고의 수심 속으로
너의 마음 묻어둔다.
*목련외 1편/ 홍영숙
그냥은 눈 못 감을
목슴의 떨림 있어
그 숱한 눈 비 바람
다독여 접은 옷주름
오늘은 혼불 켜 들고
학춤 추는 노래여
.산 번지 불꽃 / 홍영숙
저마다의 등대불 켜
어둠을 밀어낸다
발돋음 비탈길에
깜박이는 인간사
사는 건 불 밝히는 일
사랑 심지 돋우는 일.
*나의 뜨락에도/ 황진영
조금만 스치어도
나무는 몸살 앓고
손 닿을 하늘 끝이
쪽빛으로 감기는데
바람이 바람에 업혀
걸어가는 나의 성
누금을 가늠하던
미로의 문을 빠져
물 속을 살펴 가듯
바라보는 거울 앞에
얼룩진 애한의 둥지
상흔처럼 걸린다.
또 다른 몸짓으로
낙엽은 길 떠나고
비가 갠 빈 뜨락에
쏟아지는 은빛 햇살
어디서 번져 오는가
자위 도는 安慰여.
*바람 간주곡/ 윤영옥
유년을 다 따 먹고
잠이 든 사금파리
다순 정 묻을 곳 없는
애로라지 박토 위에
덕태 낀 시간을 들추고
부시시 눈을 뜬다.
마지막 남은 외등
비벼 끄는 아픔이듯
예수도 눈물 닦고
문 밖으로 나앉은 밤
평생의 목숨 다 하도록
지켜 사는 여인아.
저미고 자욱 자욱
흔들리는 눈금 새로
깨금발 휘도록 달려와
빛을 놓는 종소리.
*고향 詩抄/ 임영석
1
세월 앞에 묵묵한 산이
또 한 해를 다보내고
빈 가지에 다쳐든 것을
팽팽한 메아리 뿐.
바람은 구름을 몰고
어진 목숨을 다스린다.
2
알타리 무우 밭에 흐르는
노적 가리 빈 그림자
산염불 하듯 서서
우짓는 세상사에
마실 온 하현 달마저
반백이 되어 빛난다.
3
늦가을 농사 빚에
떠나고 싶은 고향
일년만 더 하던 것이
고추 붉듯 나이 들어
어느덧 저승 문턱에
귀를 기울인 사촌형.
4섬돌 밑 저승 바닥
드나드는 10월 달빛
그 말 없는 말 속에서
쑥꾹새 잠 재워 두고
得音을 이루어 살자
피리불던 사람아.
5
쇠죽가마 아궁이에
발을 구르며 앓던 시절.
잃어버린 세울만큼
남아 있는 불씨 속에
해탈문 걸어 가듯이
가슴을 다 태운 나
6
잡목림 우거진 숲에
구국구 산비둘기
사랑맺는 정이 깊어
불 붙는 가을 단풍
평생에 내 가슴 태울
詩心을 본듯 하고나
7
어버이 저승 가시고
재롱 떠는 아들을 보니
씨감자 눈 트듯이
무거운 죄의 시름만
한 장의 窓紙로 가려 童佛처럼 달여든다.
*어떤 풍경-아파트 소고-/ 송재섭
-아파트 소고-
고향의 흙내음
향수로 묻어두고
스스로 겹창을 닫아
내안 깊이 지른 빗장
비정도 하얗게 분이 나는
시멘트의 높은 빌딩
맵고 찌든 공기속
이기심은 웃자라고
메마른 담소마저
끝내 미이라로 남아
새들의 깃쪽지 소리
저승인듯 먼먼 풍경.
*12월12월은 / 이영주
만장으로 나부끼는
허물어진 가슴들이
저마다 상심의 불
껌벅여 태워 가며
이 겨울
싸락눈으로
들머리에 누웠다.
햇살로 일렁이던
그 아침 소망들이
척박한 지심묻고
휘파람 부는 언덕
못다 푼
꿈의 자락만
포푸라에 걸려운다.
올해도 오지 않고
갈래도 갈수 없는
그립던 사연 꾸리
내일엔 풀어질까
상심의
등불 사르며
논논 두렁을 걷는다.
.......................................................................................................................
1988.
88*겨울호(57호)
*單首三題/ 조일남
.길에서
구둣 속 모래 알 하나
온 몸이 아리네요.
점잖은 걸음이라
누가 본들 알겠어요.
그대의
웃음에 비낀 그늘
나들어디 보입니까.
.삶이
피고 지고 나고 죽어도
아니거니 난 아니거니
때로 와르 무너지다가
봄 눈 트듯 살아가네요.
사는 일
그리 가빠도
언듯 보겐.한 점 구름.
.고향이
정겹고 낙낙한 품이
깔색 좋은 연못일래
새소리 바람 밝혀
나대 끝에 무늬 일고
언제나
남실한 무게로
초록 꿈이 익는 곳.
*돌의 변주곡/ 튜재건
바람에 눈 뜨는 건
살고 싶은 욕망인가.
노역 끝에 부각하는
꿈들이 익어가고
잠기는
석양을 보며
등불 켜는 못 박힌 손.
난파 당한 생각들을
가슴 깊이 재워 두면
튼튼한
이빨을 물고
상처 위를 핧는다.
미지의 새 한 마리
둥지 차고 날아 간다.
물상도 어제의 아픔
털어내며 일어서고
새벽의
빗장을 열고
웃음짓는 초상화.
*출항 준비(2) /송차수
만선의 꿈 희열로 솟는
밤마다 노역의 장
해풍도 깃발을 들고
풍어제를 올리면
그믐달
하얗게 바래
은비늘로 뜹니다.
빈가슴 열기로 데워
황금의 꿈 돛을 단다.
뱃사람 무딘 정을
닻줄 풀듯 풀어놓고
만선 길
뱃고동 소리
울먹이는 가슴이여.
*산 / 염광옥
내 안 내 밖 그대 살아
언제이고 든든한 맘
가던 길도 되돌아 뵈
우러러 천년 산이
치솟아
하늘 둔 머리
거울이듯 비춘다.
아롱거린 아지랑이
피어나는 봉 봉머리
한 붓 휘둘러 그린
번지는 담묵 흔적
배이어
다시 솟아난
이내 어리 산 산 산.
해어스름 헤어져 간
시울 붉은 눈물 방울
덜구고 못 돌아 선
모롱이 설운 임이
목 놓아
다시 바라던
산의 얼굴 그 얼굴,
*육월의 하늘을 보며 / 전현하
하늘이 찟긴 이 땅
한반도는 슬픈 뉴역
이름 모를 골짜기에
피 뿜어 쓰러진 영혼
무엇이
꽃다운 젊음
모두 앗아 갔는가.
먹물같은 역사 속을
살지못해 별로 돋은
핏빛 응건한 광장
이제 다시 날리는 깃발
그들의
아우성 소리
텅 빈 가슴 밟고 간다.
88*가을호(56호)
*바람記 / 박정호
집을 나서면
금새 다시 어둠이었다
백볼트로 감전된 가로등이 일어서고
낮설은 바닥에 이르러 난.
어느세 물결이었다.
주갈들린 가슴팍에
그리움처럼 서리는 달
간망(懇望)의 축대 끝에
맨 몸으로 올라서면.
이제는 나직히 엎드려
갈대숲을 흔들고 있다.
*갯마을 일기 / 김동열
돛대 끝에 졸던 적막
일출로 숨을 트면
후미진 포구 돌아
갯내음 물씬 인다.
밀물은
개벌을 핥다
전설 하나 주워 들고
마파람 도츨 밀면
물간 가득 만선의 꿈
기울인 대풋잔마다
갯마을 정이 넘치고
선술집
기웃대던 파도가
뭍 소리 싣고 온다.
*저문 들녘에 서서/ 김인숙
마른 풀잎이 자리한 들
회색 하늘이 내려오니
저 쯤에 서걱이던
갈대숲도 일어서고
청정한 다복솔들이
놀이마당 펼치네
가지끝에 걸린 바람
고산길에 들어서면
새를 닮은 아이들이
산을 털고 사립연다
뒷마루 비겨간 하루
둑뚝치는 세월 한 자락.
*감정된 일기/ 안영준
한낮을 졸고 있던 도심의 가로등이
줄 지어 걸어나와 젖은 손을 맞잡으면
빌딩은 그림자를 잃고 순간마다 흔들린다.
소음과 아우성의 골목길을 빠져나온
조각난 하늘 향해 형체 없는 새가 날면
혈관 속 흐르는 불길 타오르는 젊음들
집으로 돌아가는 토큰 하나 주십시오
거친 삶 이별을 위한 표도 함께 주십시오
지하철 환한 광장에서 매표기와 나눈 거래.
*강가에 앉아서 / 최달생
초겨울 강변 길 낙엽 밟는 발 밑으로
바시식 바싹바삭 저려오는 아픈 소리
가을 빛 사유의 실타래 아주 멀리 풀려가나.
푸른 하늘 흰구름이 내려앉은 강물 위로
물장구도 가벼이 모이 찾는 물새들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 귀 기울여 바라본다.
잎 떠난 숲 사이로 달려오는 찬바람
노을이 붉게 물드린 강 기슭의 여린 숨소리
하늘 땅 주고 받는 영원 무상 또한 엿보인다.
*돌 소곡 / 밤병섭
.조약돌
홍수에 이리 밀리고
沙汰에 저리 굴리다가
시냇물 여울에 깔려
돌 돌 소리하며
주야로 쉬는 날 없이
몸을 가는 조약돌.
.초석
청자 관을 쓰고
하늘 떠 받친 기둥
부동의 초석되어
땅에 묻힌 굳은 의지
천년의 설한풍에도
되 누운 일 없더라.
.들의 바위
인가 먼 들판에서
밤에는 별과 달
낮에는 바람과
새벽에는 이슬로
세월을 속으로 삭이며
기다리는 인고여!
88*여름호(55호)
*李落祠 /남도영
님 그린 이락사에
향(鄕)살라 뜻 새기어
점점이 두른 섬에
소복히 願을 쌓고
칠년 한
애쓰신 마음
노래로나 불으리
푸른 물 파도소리
露梁에 고인 정성
애쓰신 눈물 바다
가슴에 저어 오고
높은 맘
미치지 못해
아니 잊고 새길래.
*戀主臺에서/문형동
삼보의 밝은 빛
한 선사 심은 얘기
안개 짙은 마음밭에
보석으로 꿰비치어
저 백발 학춤을 지피는
응진전(應眞殿)의 쌍촛대.
볕 뉘 잃은 돞 자락
사직(社稷) 향해 바랜 곡조
산새 소리 주렴 달고
시방 하늘 메워오는
연주대 오르는 바다
일렁이는 추녀 끝,
댓쪽을 닮은 기쁨
천길 솟은 벼랑에는
바람도 숨이 닮아
휘휘한 줄 모르는데
산행길 저무는 산머리가
제 그림잘 끌고 간다.
*白雪譜 /유정련
1
서슬 선 듯, 푸른 능선(稜線)
흰 鳶인 듯 가뭇 멀어
띄우고 그 소년이
어리던 산봉우리
되살아 가버린 그날이
눈송이로 나리네.
2
흐른 세월 바랸 빛깔
무명베 흔 매무새
치맛자락 잘잘 끌며
오시던 어머닌 양
시리신 손을 불면서
사라지는 뒷 모습
3
해묵은 초가 지붕
비껴 선 고목 등걸
포근한 솜방석에
앉히고픈 그리운 맘
손바닥 눈발을 받으며
고향하늘 바라네.
*荀(순) /이익주
여쩌면 너의 슬기
불곷으로 타도 있나
이승의 주름살
낱낱이 기어가고
그 겨울
아린 상처들
한 듬 한 뜸 꿰메는.
다독여 온 불씨 하나
봄을 당겨 앉혀 놓고
푸른 기운이
숨가쁘게 차오은다.
무거운
하늘도 잠시
촉수 끝에 흔들리고.
*남해에서 /이남주
하늘빛 시새움 겨워
바래 저리 더 푸른가?
믈결 기슭 핥아
물에 닿는 숨결 소리.
저만치
가슴 높이로
차오르는 수평선.
별자리 재워 영겁 안고
출렁이는 수평선
별자리 재워 영겁 안고
출렁이는 해원 너머
오는 듯 가는읏한
생을 받든 저 목숨이
섬 사람
돛폭을 가꿔
푸른 꿈을 키운다.
*강변연가 /김광순
강변을 걷다 보면
여백이 흘러 온다
허둥대며 보낸 계절
꽃술도 없음인가
순백의
날개깃 펴서
비어지는 영혼인데
태어나면 한 세상
비어지는 영혼인데
나 이제 두 굽이를
시나브로 뉘었더니
강물결
반짝이는 달빛
음색으로 안긴다.
*봄나들이/김해석
실버들 야드레이 강물을 비질 하고
은비늘 언듯언듯 해저문 강변에 서면
무엔지 다가와 젖는 설레임의 흰 물살.
별 하나 거느리고 미소짓는 초승달
못 이룬 꿈 조각이 등불 들고 님 마중을
그 무슨 테레파시가 동구 밖에 날 세우네.
수목으로 주름진 산 주렴 밖에 잠기는가
잊었던 어느 해안 목선 한척 달빛 싣고
이제는 반 남아 이른 보표 위를 떠난다.
88*봄 호(54호)
*하늘아/서석찬
묵은 구름 몇장이 안개비 자주낳아
삭정이
삭정이 뿐인
양반의 세도 앞에
회멀건
낮달 하나로 그 양심을 회롱 한다.
너를 피해 나를 피해 자꾸만 달아나도
두터운 산 그림자
짓누르는 내 입술
재 너머
사월의 의지
한 페이지를 절고 있다.
아침 무너져서도 하루는 꿈틀 댄다.
요절한 내 누이의 한 맺힌 가락 안은
하늘아
돌아 누운 하늘아
닫힌 새벽 열어다오.
*내 뜨락의 장미는/김 용
불모의 彼岸에서
잉태를 보채다가
멍울 져 터진 혈맥
침묵으로 다독이며
저토록
가슴앓는가
내 드락의 장미는...
죽어도 못다 피울
피울음 겹겹인데
휘 몰아 안은 풍상
가기로 토해내고
붉은 놀
저며 피는가
내 뜨락의 장미는.....
*남산골 전설/ 成和梵
마을엔 흉년이 들어 흉흉한 소문이 들고
겨울 빈 들녘에는 새까맣게 앉은 까마귀떼들
그 해는 한겨울 내내 무동이도 얼불었었다.
이따금 어디서나 날아온 매 한 마리가
창공을 빙빙 돌다병아리를 나꿔채어
종남산 기슭으로 가면 산 그늘이 내렸었다.
어느 페가에서 산발한 여자들이
자지러질듯 자지러질듯이 희게 희게 웃어대어
밤마다 지붕을 넘어 훨훨 날아 갔었다.
또한 밤하늘에 혼불이 지나가면
빈 지개와 헌옷가지들이 널브러진 애장골을
낯없는 삿갓삿갓들이 허위허위 넘어간다.
그때쯤 뭇개들이 달을 보고 젖어댔고
고가며 고목들도 소리내어 울어댔다.
앞 뒷집 휜 마당에는 얼룩덜럭한 산 그림자들.
乙巳(을사) 그 가뭄이며 甲午 그 큰물이며
임진년 역신에도 죽지않고 살았던 후손들
산바람 따라가던 날 밤 당집이 불에 탔었다.
*四季의 산/서재환
봄
아직은 솔빛들이 뜨지못한 萬丈(만장)
그래도 오는 봄을 제일 먼저 맞는 걸까
바위도 하얗게 솟아 목련처럼 떠오른다.
여름
불 번지듯 불 번지듯 진초록이 타오른다
핏줄처럼 불끈불끈 산맥들이 일어선다
뻐꾸기 기름을 붓는 골 흰 구름이 봉(峯)을 돈다.
가을
구룸도 먼 마을도 갈빛으로 익어가고
방황의 끝자리에 돌아앉은 너 산이여
빈 하늘 저녁새 한 마리 영을 넘어가고 있다.
겨울
길손 끊어지고 속살 환했어라
찢어진 나무가지 적막 더욱 팽팽하고
흰 눈발 아득히 내리면 뚝 떨어진 하늘 밖 섬.
*서귀포 귤밭(1) / 김재황
빗장 건 돌담 가에
겨울 밤이 마냥 떨고
달빛이 차 오르며
잎새마다 날을 세워
매정히 하늘을 휩쓸는
말발꿉의 바람 소리.
정갈한 품을 열면
흰 거품의 바다 내음
가지 끝 아린 삭신
암묵(含默)엔 새잎 트고
물소리 스미는 소리
켜로 앉는 청태(靑苔)여.
나무를 흔들고 가는
구름에 든 비 한줄금
저무는 숲과 야산을
신운(神韻)처럼 밟는 소리.....
귀울음 적막에 묻혀
이른 봄을 캐고 있다.
*마라도 / 고정국
1
까맣게 한 세월을
수평 끝만 적시면서
못 이룬 회귀의 꿈에
저 홀로 야위는 섬
하늘도
이 곳에 와선
뭍으로만 기우네.
2
서러운 뭍 소식엔
먀다마져 돌아 눕고
파랑도 가는 뱃길에
묻혀버린 무적(霧笛)소리
마파람
보채는 이 밤도
불을 끄지 못하는가.
3
차라리 오로운 날은
마라도 가 앉으리.
한 점 피붙이로
빈 해역 만 더돌다가
남단 끝
선명히 찍히는
낙관(落款)으로 앉으리.
*감깎기 /이효숙
늦가을 수숫대가 바람을 잘라가고
마당엔 달빛 입고 쭈그러진 양은대야
무채색 낮은 지붕을 들썩이다 잠이 든다.
밤 깊도록 윤기 나던 젊은 날을 돌려 깎던
어머니의 감물 든 손끝마다 감꽃이 피고
묵묵히 굴러온 세상 떫은 맛에 정이 든다.
추풍령 고갯길로 치달아 사십리 길
마른 곡지 떨어지며 풀려나던 그 유년들
거칠은 손금 사이이로 움이 트는 살갗인데.
깎아도 깎아내도 단물든 기억이여
허물 벗는 아픔으로 맨살의 모래밭이
갈수록 무성해지는 사랑채의 바람소리.
오래도록 말라가던 단맛의 말씀들이
이제는 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남겨져
단단한 눈물도 되는 다홍빛 서서정이여.
*횡단 보도에서/ 윤인현
속가슴 틈서리로 닻 하나 내려지면
신호등 그 앞에서 낮과 밤을 마주한다.
물살에 띄워진 생애
더듬어 간 나의 행로
스쳐 닿는 짧은 인연 한묶음이 돼보지만
다가왔다 물러 서는 다시 먼 낯선 이웃
아드한 기다림 송을
등불만 깜박댄다.
긴장 얹혀 팽팽한 공간으로 끌리어서
아슬히 제발치만 눈금 없이 혜쳐갈 때
달려와 뼈 세워 뛰어든
한세상의 기침소리.
*여름연서/ 채수호
내 이른 여름 한 철
사랑으로 다 보내고
꽃을 묻는 연잎의 강
물그늘 이느 아침
발 젖은 소나기 불러
풀잎도 세움이여.
여운의 음률처럼
코를 스친 향기처럼
꽃지는 마음자리
옷소매 붙잡으면
빗줄기 그 참한 둘레나
줄레줄레 다라가리.
세월도 댓잎 들면
묻어 나는 정이 많아
물고기 비늘만한
내일 아닌 금일 아침
우리네 숨은 사연들
무재개로 서는가.
*등꽃 아래 / 전련희
안개비는 면사포
오월 뜰에 내리고
달빛 녹여 더운 입김
마른 줄기 적시면
비로소 삭인 눈물 가득한
하늘을 보는가
어느 시간의 언덕
손마디 저린 숨결
굳은 속살 혜집는
뜨거운 손길 펴
지난 밤 앓던 응어리
소리없이 열리나
매듭 푼 옷섶마다
치렁치렁 드리운 웃음
빈 뒤란 그늘에도
넘쳐나는 은혜 속
깊이 든 잠을 깨우는
한나절 넉넉함이여.
*부부/ 이말라
누구나
굼결 속에
흔들리며 사는구다.
신비랑
현배랑
뒤엉키는 불가사의
이 밤내 억겁을 돌아
건져 낸 이름 하나.
사랑으로 풀으리라
언젠가 감아둔 꿈
허무의 근사치로
귀결되는 삶인 것을
서먹한 두 등줄기조차
하나로 흐르는 맥.
...........................................................................................................................
1987
87*겨울호(53호)
*외양간에서 / 강기주
초가마다 맴을 도는 여울솥에 끓는 한숨
타래진 빚두레로 장홍 속을 감겨돌 때
배물린 외양간 그득 풀려나는 핑굉소리.
기댄 몸 밭이란 길 설우메 낯이 설고
꼴망태 엉킨 그 삶 말목 매인 우시장
촌노의 애절한 절규 애써 감춘 큰 눈아.
핏줄의 고운 눈빛 고삐를 풀어준 너
말없이 고인 여울에 되새김도 잊고섰다
할아범 담뱃대 끝에는 문풍지만 울고 간다.
*겨울연가 / 박철웅
어둠 몇 평 사랑처럼 깔아둔 짚시의 터(宮)
갈대 춤 추들탄에 바람으로 더돌다
이 공간
못다한 얘기
거리에서 눈 맞는다
뼈아픈 일상 둘레 큰 물결로 내리쳐
햇살 뻗은 무인도의 풍경화로 다가와
네 음성
소중한 목숨
가슴 깊게 떨어지는 별.
*겨울바다 / 천병태
불멸의 여린 살을
난자하던 思惟의 끝.
퍼렇게 바부끼던
파도가 무너진다.
절망이
잠시 멈춘 곳
건너야 할 내 노래.
빈 가슴 그윽하게
차오르는 아픔을 딛고
불보라로 부서지는 그리움 재우면서
찬란히
쓰러져야 할 그대는 또 누군가.
시린 목숨 한 폭
돛 끝에 펼 대마다
간절히 손 모두어
내 안에서 목메이는
오, 바다.
겨울 바다여.
미완성의 춤이여.
*숙(1) / 오수환
서걱이는 댓잎 새로
매려 앉은 하늘을 밟고
추녀 끝 반쪽 달이
길을 잃고 서성이면
박넝쿨
담 넘는 소리
감고 도는 한이여.
물소리 산새 소리
머물다 간 길을 따라
창날같은 아픈 비가
왼 종일 쏟아지면
숨 죽여 다독인 日月
몸을 푸는 적(寂)이여.
*고요할 적(寂)
87*가을호(52호)
*목동의 피리/ 박헌오
수즙게 살아가는 솔바람 둥지 달아
갈앉은 생각으로 아품만 다독이고
그때 핀 달맞이 꽃술 함추롱이 젖는 하루.
보리순(筍) 빼어올린 종달새 한가락을
항아리 별을 담아 가만히 지운 세월
누대(累代)의 토막집 귀두라미 외로운만 끄는데....
못다한 이승에 휘어놓은 어머니 願
터진 살 줄기마다 삘릴리 한 세상을
정한수 적셔논 여울 무늬로 지는 앙금.
*여인 삼대/ 고규석
1,옹기
시집살이 매운 삶을
눈물로 가리우며
손때에 절인 행복
이즈러진 꿈이어도
누대(累代)를 지켜온 內堂
윤이이 도는 品石이여.
2.접시
사랑방 달이 뜨면
丹心도 금이 가고
쌓아온 연륜만큼
빛바랜 문양 위에
천상의 슬픈 내력을
지아빈냥 받는가.
2.항아리
뜰 안의 비바람도
속품으로 다둑여서
장맛을 우려내듯
대를 물려온 家風
이씨댁 드문 정절이
선혈처럼 붉어라.
*세밑녘에서/ 고응삼
잎이 지고
순간 순간이 진다
가만히 숨죽인 세상
고요를 사르고서
한 하늘 매운 바람이
세상을 끌고간다.
가쁜 숨 몰아쉬며
서성이는 한 덜기 꽃
먼 바다 창을 열어
고즈넉히 덜구는데
내 마음
시계바늘 되어
찬 노을이 스쳐간다.
*야간출항(2)/손영자.
청사포 나루터에
초승달 드리운 날
파도는 내 맘 알아
저 혼지 서성인다
못다 푼 사나이 한을
밤바다에 실었다
물새들 나래깃에
노을볕이 곱게 일면
반평생 찌든 삶을
빈 그물에 걸어두고
어부들 아픈 마음을
흩고 가는 뱃고동
해도음 파도 속에
퍼득이며 가는 세월
벅찬 가슴 열기를 따라
밤바다로 밀려가면
해들녘 어둠을 터는
바다의 교향시여.
*소망/ 손종례
개나리 꽃망울이
노랗게 피는 한낮
시름도 비껴가는
메마른 마음밭에
그리움
사루는 이 있어
하얗게 떨고 섰다.
꽃비 속 실바람이
서럽게 울던 밤에
촉촉히 젗는 女心
감사고 다독여서
한 소망
펼치는 꿈에
꽃망을로 맺혔다.
87*여름호(51호)
*姑死木 / 김연동
1
무슨 생각이 저리
고운 꽃을 피웠을까
걸음 삭혀 타는 가슴
서슬구름 둘린 가지
지리산 버팀목 되어
별 총총 달았어라.
2
쟁징한 삶의 기적
푸르게 꿰어 들고
매운 바람 뼈끝으로
울먹이는 잿빛 裸像
산어름 날빛도 시린
서리발로 번득인다.
3
길로 자란 억새풀
서걱이는 마디마다
소쩍새 토한 울음
노을로 감겨들면
나이테 잊은 저 속은
하늘빛을 캐고 있다,
*강변 마을/ 도리천
강마을 창문마다
등잔불 등을 달면
논밭에 일하던 농부
하나 둘
돌아오고
마지막 나룻배에서
읍내 소식 듣는다.
갈대밭 서걱 서걱
달빛도 걸어가고
울타리 대숲 속에
바람이 스치우면
댓잎도
푸른 달빛을
한 조각씩 켜든다,
빈 배에 노래 싣고
흘러가는 저 사공아!
은모래 너울 너울
박꽃이 눈을 뜨면
은어떼
물결을 지어
돌아들던 그 하구
*해녀 / 정정회
1소금기에 절인 가슴
해도 잘린 해원에 앉아
선지빛 멍을에 감길
주름진 세월을 헤며
터지는 속살을 기워
한 장 물을 베어 문다.
2
날이선 파도 순에
하얀 금을 그어놓고
전설처럼 살아 온 삶을
방파재에 행궈 널면
은혜는 빛살로 풀려
물무늬를 일궈낸다.
3아픔 터진 흉터마다
등뼈 깎인 곱사등 너머
신천지 닻을 올려
일어서는 종소리여
싱싱한 햇살도 건져서
두 손 가득 꿈을 편다.
*살풀이/ 하문규
사룬 밤 소용돌아
불 꺼진 머언 여명
몸서리 친 갈피마다
옹이 진 업을 물어(問)
초이래 시퍼런 태백살(太白煞)
칼을 물고 일어선댜.
바람살 깁는 명줄
신음만이 뒹굴고
부지깽이 삼킨 가난
부적도 목이 타
가마귀 을음을 물고
황촛불을 야윈다.
이승을 추근대며
노을은 서러지고
애잣는 빈손 모아
밝히는 저승 어귀
한 목슴 무등을 태워
인연 올올 얼레 푼다.
*지연(紙鳶) / 신용직
새 희망을 띄우는가
허공 높이 올라 앉아
뒤뼘 남짓 남은 햇볕
죄었다가 풀어 주면.
저 落照 餘韻에 묻혀
불이 타는 옷자락.
어스름녘 언덕 위에
하얀 세월 짙어오면.
뒤집고 떠난 시름
저마치나 띄어 두고
상현달 여린 그리매
어렴풋이 걸린 연.
가물 가물 더돌다가
발을 떨며 곤두서다
두고 온 천한 땅에
숙명처럼 끌려오면
하늘을 찟는 목멘 소리
흙바닥에 눕힌다.
87*봄 호(50호)
*세월/서주성
거주지 불명인 너는
분명 이승 하늘아래
푸드득 나래도 치고
울음도 몇 떨궈대며
우리와 동거를 하는
매지늬 새 불사조.
밤에는 눈을 뜬다
깃죽지를 푸득인다
잠에 빠진 우리네 이마
발톱으로 할켜대며
먼 훗날 찾아갈 숲의
푸르름을 잣는다.
네 앉았다 떠난 자리
바람만 이는 길섶에는
약속처럼 떨궈놓은
회한의 풀씨 몇 점
오늘도 가슴에 묻어
싹 틔우며 사느니....
빈 가지 위 네 꽁지도
떨고 있을 겨울 쯤엔
네 입김 성에되어
우릴 온통 얼리지만
지금은 너를 보듬고
깃결 낱낱 빗질하며....
*겨울 울릉도/ 황무굉
태고의 몸짓으로
뒤적이는 먼 동녘에
용암 몇 점 묻어 싹튼
굳은 세월 금간 바위
땅 하늘 행간에 서서
시린 내력 쓸고 있다.
어화등 불씨 물고
浮沈 하는 가는 명줄
다 떨친 빈 가지에
물소리도 아득한데
잿빛 밴 생의 숨결이
흰 눈발로 감기느니
전설 속 옛 이야기
눈길 더욱 깊은 밤은
등대불 외진 손짓
누벼가는 땀땀이로
핏자국 雪原에 새겨
동백 붉게 터뜨린다.
*산마을/ 김동식
淸明한 누리 저편
산빛 깨쳐 오는 새벽
노곤한 잠결을 털며
부대끼는 삶을 갈(耕)며
하늘 눈 보얗게 내낀
잿마루 쪽 걸린 달아.
박토 한줌 일군 생애
더부살이 흙을 빚듯
담방을 잔주름 새로
여울져 간 삶의 타령
한평생 외로 선 나날
발갛게 뜬 寒村이여.....
뼈와 살 붉힌 넋도
물무늬 진 액막인걸
산울림 귓볼을 치며
날이 선 솔바람 속에
간밤에 기운 殘月이
꽃망울을 흔든다.
*가을 斷想/ 고성기
1.코스모스
달 보며 뜬 눈으로
옷깃만 여미다가
타는 가슴 가만 열면
노랗게 솟은 그리움
갂므은 채념도 良藥
소복한 사촌 누나.
2.立秋
오동잎 비질하며
여름 한 장 넘겨 놓고
굳은 허리 반쯤 펴면
연륜만큼 높아진 하늘
뒤들에 어머님 심은
고추만 붉게 탄다.
3.바다
흰 파도 멍석 펴듯
옛날이 발 아래 있다.
조개 줍던 순이 얼굴
술잔속에 달로 뜨면
채워도 한 구석운 빈
나는 흰 항아립니다.
*에밀레 종 / 정종수
세굽이 소리결을
창공에 띄워 놓고.
기도로 갈고 딲는
거품집 언져리에
사뙤온
티끝 하나로 또 하나의 잡음이네.
그 어머니 깊은 사랑
鷄林 달도 흐느끼고.
스님의 독경 소리도
목이 쉰듯 무겁더니.
한목숨
바치는 정신 종소리로 울린다.
에밀레 새벽소리
땅 안개 걷히우고.
겨레의 가슴 속으로
은은히 파문치면,
古塔위
푸른 하능로 서라벌이 동 튼다.
*수초의 꿈이 흐르는 강/ 조성국
더가진 것도 없어
덜 가진것도 없는
늦갈 들판을 달려
꽃 다 진 산을 넘어
그대여
아직 얼지 않은 내 창가로 오는 가.
영뤈히 볼 수 없을
바람의 가지마다
달려 있는 오후의 열매
다 익기를 기다려
그대여
그리움 흐르는 내 창가로 오는가.
사랑한단 말 없어도
그냥 젗어 흐르던
그대 자유의 강물
돌아와 흐르는 소리......
먼 그날 나의 창가로 등불 밝혀 오는가.
지금 막 잠이 든
새 한 마리 깨지 않도록
정원의 뒤를 돌아
그대여 아무 말 없이
아직은 다 얼지 않은 내 창가로 다가오라.
*가을 서시/ 여태전
우리들 하늘엔 늘
구름이 흘러간다
그냥 마냥 느껴워
가눌 수 없는 믿음이야 이제
홀홀 털어버릴 때,
가을은 애써 거둬
준 뜻 없이 나누니
빈 손 빈 맘으로
우러러 하늘 보자
다 모아 가질 수 없어
차라리 넉넉해지는 삶.
우리 어디 가슴 펴고
웃어본 적 있으랴
걸어도 또 걸어도
수줍음만 늘어나고
둘레는 언제나 소곳이
고개 숙인 들국화 뿐.
세상사 남길 것도
남는 것도 없다 던 너
정녕 이 가을엔
하늘 한번 같이 보고
시리움 곱게도 삭혀
청다잔 빚을 일이다.
*그물 손질/ 장정애
성글어도 촘촘해도
제 몫 다 못하니
빠뜨린 것 빠뜨린고
붙들 건 붙들도록
어기야,풍어 바래미
얼기대로 엮어라.
하매듭 묶어두면
파도소리 묻어오고
또 한매듭 얽어보면
먼 수평선 잦아들어
그물에 살아온 바다
푸른 비늘 덜구는제
아직은 풍랑 일고
모랫바람 떠돌아도
비늘보다 사뭇 푸른
내 젊은 바다에는
그 어떤 겸허한 갈망으로
실한 그물 던질까.
...........................................................................................
1986.
86*겨울호(49호)
*歸家/ 박석순
살아가는 하룻 길
시내버스에 밀리며
거울 보기 무안 해진
그림자도 갖지 못해
우러러
휘청인 귀로
별빛 찾아 달랜다.
현관에 널려 있는
오색 무늬 신발들아
난. 슬픈 고래되어
햇살 바다 그려도
흔들린 아비의 위엄
허세로나 붙잡나.
*義巖/ 강호인
오욕의 태풍 앞에
사직이 촛불일세
그날의 하늘에서
타다 남은 한 개 운석
역사의 성채를 받친
주춧돌이 되었에.
남강 물 굽이굽이
천만년을 에돌아도
그 의기 서린 얼은
한결로 의연하리
촉석류 굽어보는 곳
아른이는 옛님이여.
새겨진 말 하나 없어도
옷깃 여며 바라보면
대로는 놀에 젖는
우리 가슴 등을 켜고
창창한 푸른 하늘로
물새 날아 오르네.
*독백 2/ 河京旻(민)
1
한밤의 깊은 꿈이
노랗게 피어나고
따사론 저안 남아
가쁜 숨결 몰아쉬면
어느늬
연민의 정이
두견새로 우는가
2
벽에 걸린 설경도가
드겁게 타는 밤에
모성의 정 옮아 서려
삶을 고이 접어보면
하현달
눈섭에 걸려
하얗게 떨고 있다.
*下回에서/ 민병찬.
산은 물을 안고
물은 산을 감아
풀다가 맺히다가
세월 한폭 껴잡고서
멈출 듯 휘능청 돌아
덩실덩실 흐르는 강아
부용대 층층 절벽
물에 잠긴 천길 벼랑
만송 숲 소슬 바람에
솔방울은 뚝뚝 듣고
흰모래 사쁜히 밟으며
산그늘이 걸어오네.
86*가을호(48호)
*코뚜레(3)/ 조성기
눈 감으면 바람 한 철
무성히 우는 年代
署名과 陳述을 위하여
꽃다지를 씹으며
끝끝내 불타는 美學
한반도를 엮는다.
물푸레 촉 늘이는
기억의 부재 공간
나사못 하나. 둘 풀린
생활은 도발이었다.
나지막
法悅을 가는
이가 시린 同行이여--
*돌과의 대화법 / 박명자
네 계곡 말이 없어 네 어둠 그냥 좋다
산중 생각의 깊이 막혀있는 일체음
오히려 간절하며는 겉으로는 묵답답
정일랑 미리부터 끊자고 했던 언약
時空을 뛰어넘는 純金의 言語珠簾(렴)
잊으려 憂愁의 뜨락 이끼 함께 웃는다.
*길 / 송명호
1
상여집 설렁줄에 설음 하나 매달린다
열섬지기 논길마다 삽자루를 꽃아놓고
일흔살 아버님 넋이 쪽다리를 건너간다.
2
눈물이 고여 넘는 개여울 깊이서서
동구밖 미류잎도 輓章(만장)으로 흐르는데
냉냉한 높새바람이 꽃상여를 빌고 간다.
3
산모롱 한 자리에 아픈 터밭 일궈진다
자욱히 피어나는 칠성판 연기 속에
발밑을 도는 물방아가 머릴 풀어 돌아간다.
*빈 가슴 / 신후식
허허로운 가슴팍에
둥지 튼 새집 하나
치렁하고 갸름한 모습
타원 안에 들이노니
비눠도
넘쳐 흐르는
그들막힌 그 하나
빈 마음 스민 바람
은밀하게 익어 가고
빈 하늘 구름 옮겨
그려보는 戀戀雲(연연운)
지워도
다 못 지워본
내 그림자 영(影)이여
*억새꽃 들판에서 / 오영호
봄 햇살 말아쥐고 누리 밝힌 쪽빛 바람
그 예날 靑無 덮던 세월의 날개 위로
오늘은
은빛 말씀이
도란도란 열린다.
낮과 밤 빈손 들고 선 나무들 묵시 속에
흰머리 서걱이는 소리 時空을 짜르더니
푸드득
장끼 한 마리
삶의 매듭 풀고 있나.
*太初의 풍경 / 河五柱
1
옷자락에 스친바람
방패연을 매달아서
저승에서 이승으로
길게도 엮은 것이
한목숨
길이를 재며
소일 하는 얼레질.
2
태고으 울음 마저
달려와서 부서지고
세월의 하늘 귀에
創世紀가 열렸어라
이승을
밟고 간 자리
쓰다듬는 鎭魂曲(진혼곡)
86*여름호(47호)
*외출후의 斷想/ 황인원
시퍼런 칼 끝에 찔려
상처 투성이로 돌아 와
아픔을 뽑아내며
피 흘리고 있다가
미열(微熱)을 집어 던지면
맑은 소리가 난다,
빈 것으로 채워지는 아룸다움의 입자(粒子)
부시게 일어서는 진실의 나무 한 그루
가만한
밤이 불고
사랑이 밀려 왔다.
*바위頌(송) / 류선
저기 저 달리는 바람
부딪치는 아우성에
세월은 이끼 기 청태
침묵으로 피가 돌고
더러는
하나씩.둘씩. 금이 간 대로
내재율을 키우나니-.
내안에서 타는 불꽃
한생 저린 향 사루고
찬 하늘 겨운 목숨
피가 닳는 메아리여
이 산하
응얼진 말씀 빛으로나 돋아라.
*환상 용유도 / 安宣善
생활을 노 저으며 밤의 기슬을 떠나
한아름 탄식을 꿰어 소망으로 던져보면
그물에 걸려 나온 건어둠밖에 없더니라.
돛폭에 찢긴 바람 흩어져 사라진 뒤
파도도 마침표로 가라 앉은 숨결인데
흰 기억 갈패 갈패엔 어스름만 쌓여 온다.
고달픔 가득 채운 만선의 고깃배 한척
헐벗은 일월 마다 별빛 스며 젖었는데
연한 피 잎잎에 감은 해당화만 피어난다.
*강촌 / 金會稷(직)
먼길을 돌아와 보채이는 물살에
발목을 잠그고서 의지를 피우는 숲
그늘에 빛살 모으며 별을 따는 대지여.
초록 물결 일렁이는 농로는 강으로 닫고
지그시 깨어내는 끈적한 감자의 사상
그름은 또 비를 내리고 훌적 떠나 가네나.
대낮에 벌거벗어도 너그러운 하늘일레
한 아름 해를 안아 바람 불러 노래 하면
푸르른 여울이 흘러 산굽이를 돌아라.
발자국 포개이면 살아오는 목소리들
하늘에 어린 얼들 땅 속에 스민 넋들
지금은 고른 숨소리만 내 고동을 때린다.
산자락 치마폭에 모여 앉은 요람이여
놀빛이 봉창에 어려 발그레 한 네 마음
손모아 얼굴을 닦으며 저어가는 새 역사!
86*봄 호(46호)
*말씀 / 김선희
솔잎 휑궈내어
귀 씻우고 오는 바람
천만근 바웃살도
반가슴 저며주는
그 모습
온 눈에 벅차
소리로만 뵙는데.
이저승 맞닿아도
청경한 저 울림은
넋 풀어 스스럽던 강에
방생하는 풋 생명
가엽는 인연의 굴레에
올올 치는 맥이러라.
*山家의 밤 / 박두익
은하(銀河)ㅅ가 서린 꿈이
삼마루에 번지는 밤
태그선 고운 바람
저녁 오을 붉게 타고
골기와
울린 삽사리는
하늘 안고 수선 떤다.
별빛이 몰아오는
은실바람 잇는 추억
몫불 짙은 향취(鄕臭)
매포한 자연(紫煙)끝에
어머님
구수한 정은
산을 타고 다가 온다.
삼태성 기운 삼경
불면(不眠)속 마음 시려
천길 늪에 잠긴 꿈이
밤이슬에 촉촉한데
소쩍은
정에 안달아
잠든 산을 울며 젓네.
*山歌野唱 / 박용찬
1.봄. 素描(소묘)
기재개 켜는 산자락에
매달리는 야윈 들녘
버들개비 실눈에 앉은
바람은 차가운데
한가닥 메마른 思念
동구밖을 서성인다.
2.까치소리
새벽을 길어내는
뜰안의 까치 울음
山蘭 빛 고운 음에
떨려오는 풀잎들이
희여진 귓바퀴마다
산구비로 트입니다.
3,보리 누름
고뿔 앓던 그 겨울을
인내로 떨친 정이
박토에 뿌리 박고
꿈을 켜 온 나날일레.
속조차 익지 못한 시름
하늬로 띄웁니다.
4.思鄕(사향)
사립문 밀 대마다
눈에 닿던 고산길,
돌각담 옆에 끼고
흐르는 실개천에
동강난 뉴년의 꿈이
은비늘로 떠 옵니다.
5.박꽃
달빛 한 점 먹고 피는
늘 겨운 가슴일레
돌담장에 쓸이던 넋
시름으로 접어두고
흰 옷깃 적시는 바람
鄕愁만이 서립니다.
6.저문 들녁에
묵노을 가장자리
燈 하나 밝히거늘
지워져 간 일상 앞에
은비늘로 돋는 풀섶
꽃 지운 하늘가마다
묻어나는 별떨기여.
*가을비 / 윤만수
1
다갈색의 강아지풀
신열 앓는 머언 손짓
오라.
오라.
流浪(유랑)의 발길 거두고
여울저 오라.
창백한 뜨락에 내려
홀로 거닐 여인아!
2.
내려서도
낮추어도.
빗겨가는
애증(愛憎)일레-
수척 해진 빈 가지 긑
반짝이는 눈물이여
빛 바랜 얼룩의 계절
아픔 삭여 가거라.
3.
옷깃 여며 내미는 손
차가운 작별인가!
잊으라-
우리 누님.댕기며리
흰 버선발
다 떠난
빈 자리 밟고
참회 속을 걷는다.
*봉산 그 둘레 / 최중태
바람이 분다 아무도 없는 돌산
뼈만 남은 송전탑 가랭이 사이로
깨어라. 깨어 있으라 잠든 풀을 일깨운다.
물은 흘러 잊는다지만 산은 어쩌란 말안가
돌팍 위 새들은 전자 시계로 찌륵거리고
나무들 바람을 따라 우우우 일어선다.
추억 속 긁힌 화면처럼 뿌옇게 내리는 비
이제야 시시비비 잎 스치는 골을 따라
가만히 봄기운을 깨고 산개울이 터진다.
뜸뜸뜸 산새울음 능선을 호아 가는
오기 그 하나로만 외연히 솟은 산은
쪽박새 씨알만한 울음에도 어스름 물이 든다.
*나목있는 풍경 / 전영순
가녀린 춤사위에
산이 하나 무너지고
멍울 낱낱이 삭힌
무덤도 갈앉더니
舍利가 冠으로 돋네
무리.무리. 사슴떼.
되감은 목숨의 얼레
풀 먹이는 하늘가로
실성한 바람 한판
저희끼리 넘어져도
念珠에 대낀 별자린
그날 그때.그 걸음.
덧입어 가린 허물
홀홀 벗고 다시 서니
산사 공양간의
불빛에도 눈이 젖고
나직한 내 이마를 질러
애기중이 오고 있다.
*부두(埠頭) / 김숙자
떠난다는 못짓은 늘
닻줄에 묵어 있어
소금 낀 集魚燈의
갈증이나 쓸어준다.
짓무른 눈을 닦아가며
시름시름 늙는 부두
만선을 다짐하다
목이 메는 저문 무적(霧笛)
되돌아 올 무릎 앞은
비린내에 노상 젖어
고질(痼疾)된 방랑 앓느라
철새처럼 여위는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