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브리서 9장 1~10절) - 모세의 수건(고후 3장 12~16절)
레위 제사장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라며
저 첫 언약이 흠이 있어
둘째 것인 새 언약을 맺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언약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새 언약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으로
첫 언약은 낡아지고 없어져 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첫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말하며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을 보내어
마음의 성전을 세워주시고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믿게 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첫 언약으로 세워진 성막이 낡아진 모습과
없어져 가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
본문 1절을 보면 ....
히9:1 <손으로 지은 성소와 온전한 성소>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첫 언약인 세상에 속한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세운 성막을 말하는데
이 성막이 낡아지고 없어져 가는 모습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절부터 보면 ....
히9: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히9: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히9: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히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히9: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성소에 있는 떡상에 진설된 진설병은
예수님의 살과 피인 복음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와 같은 의미입니다.
출16: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며
여호와의 언약궤는 삼 일 길 앞서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쉴 곳을 찾았던 것인데
민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약속의 땅을 소망하는 자들이 쉴 곳은
하나님 나라이며 진리의 길을 걷는 것을 말하는데
복음의 말씀을 상징하는 만나를 먹고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언약궤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모습이 등잔대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있는
향로는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상징하는 것이며
언약궤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복음의 말씀) 말하는데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메시아 언약) 말씀을 다 이루어 주셨다는
의미로 언약궤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상징하는 향로를
성막에(성전) 대하여 말하며 성소에 있지 않고
지성소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첫 언약으로 세워진 성막은 새 언약의 모형으로
낡아지고 없어져 가는 모습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7장 25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땅의 제사장들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직분이 언제나 바뀌어야 했지만
하늘의 제사장은 맹세로 되었으며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온전히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땅의 제사장은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간구한다는 말씀은 기록하고 있지 않는 것은
레위 제사장들이 간구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하늘의 제사장인 예수님을 통해서만
그 간구가 하나님께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의 제사장들이
섬기는 성막을 말하면서 성소에 있는 향로가
지성소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항상 간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7절을 보면 ....
히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는
둘째 장막은 지성소를 말하는데
대속죄일날 아론이 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려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단번에 모든 죄를 속죄해 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모습을 모형으로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11절부터 봅니다.
레16:1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아론이 드리는 속죄제는 예수님이 죄인들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속죄제를 드리는 수송아지의 피를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라 말합니다.
레4:6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휘장을 찢어주시는 모습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고 하늘 문을 열어 주시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열어 주신 휘장을 통하여
제사장이(죄인이)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레16:12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레16: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향 그릇에 담아 향을 피운
향연으로 증거게 위 속죄소를 가리라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중보기도로
죄인인 아론이 죽임을 당하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히7장 25절)
레16:14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레16:15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레16: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오늘 본문에 피 없이는 아니한다는 말씀과 같이
이렇게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림으로
백성의 모든 죄를 속죄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맹세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단번에 모든 죄를 속죄함 받게 되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도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제물의 피를 뿌려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함받게 했다는 것인데
이어지는 본문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성소에 들어가는 길은 지성소에(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에는(구약)
하늘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며
속죄제를 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이 휘장을
열어 주실 것을 모형으로만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사함받지 못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모습을 이사야 59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59:1 <선지자가 백성의 죄악을 규탄하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고 싶어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며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여호와께 상달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해서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죄가 해결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게 되어 구원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대속해 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인데
이 모습을 휘장이 열린 모습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죄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뜻으로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시기 전에 성막에서 드려지는 것은
이것이라고 이어지는 본문 9절은 말합니다.
히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구약의 성막을 통하여 드리는 제물은
모두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모습을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죄를 온전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유대인의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수천 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모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1장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히1:1 <하나님이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옛적에 선지자들은 구약을 말하는데
구약 성경에서는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어떻게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여러 가지 모형으로 말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약속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기록된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뿐만 아니라
모세도 고린도후서 3장 13~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3: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모세의 얼굴에 광체가 난 것은
두 번째 돌판을 받을 때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영광을
봄으로 모세의 얼굴에 광체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광체가 난 얼굴을 가린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가렸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인데
모세의 얼굴에 광체가 난 것을 바라보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광체를 가렸다는 것으로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지 못함을 알게 하려고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가지고 사도바울은
구약 성경은 십자가의 영광인 복음의 말씀이
수건으로 가려져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린 수건 안에는
복음의 광체가(말씀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율법의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 속에는
복음의 말씀이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밝히드러낸 복음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14~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고후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구약 성경을 읽을 때에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십자가의 모형과 그림자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성경에서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보거나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해석하여
성경의 말씀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십자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을 십자가로 풀면 수건이 벗겨져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성경은 십자가를 모형과 그림자로
말씀하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성막의 모습도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어떻게 대속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인지를 모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성막을 통하여 드리는 제사로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개혁할 때까지는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실 때까지
약속하신 메시아 오심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려고
성막을 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내 집은 성전을 말하는데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은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손으로 지은 성소인 성막을 통하여
드리는 제사로는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여
죄를 온전히 사함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에 있는 성소를 섬기는 예수님은
죄인들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대속해
주셨으므로 온전하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교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라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한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오직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말씀을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 주신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만
구원받게 됨을 잊지 마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꼭 붙잡고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