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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 -
"아, 배고파."
"육분의 일이고 나누기니까..."
"아, 배고프다~"
"......"
"이러다 배고파 돌아가시겠네."
"... 잠깐만, 민재야."
난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내 책상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는 그를 잡아끌었다. 방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그에게 쏘아붙였다.
"자꾸 이럴래? 30분만 기다리라고 했잖아! 남 일하는데 찾아와가지고는!"
"너네집이잖아. 그리고 싫어."
"왜 이렇게 어린애 같애! 아니, 어린 애도 저렇게 얌전한데!"
"뭐가 어려, 다 컸더만."
"...으휴, 집착이 심한 줄은 알았지만 이젠 하다하다 애한테까지..."
"애면 남자 아니야?"
"애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네 옆에 있는 애라면 얘기가 다르지."
"...하아..."
내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사이, 그가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민재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형이 용돈 줄테니까, 오늘은 삼십분만 일찍 가서 놀다가 들어가지 않을래?"
"......"
"자, 이거 받아도 돼."
"애한테 무슨 짓이야!"
"왜, 얘는 이쪽을 더 좋아할 걸?"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난 쿵쾅거리며 다가와서 손에 들려있던 만원 짜리를 낚아챘다.
"이건 압수야."
"...쳇."
"민재야. 오늘 어려웠지? 민재 열심히 했으니까 선생님이랑 이돈으로 맛있는 거 먹을까?"
"(끄덕)"
"자, 민재 책이랑 가방 챙기자."
"뭐?!"
"네 벌이야."
"그럼 나도 따라갈 거야."
"오든지 말든지. 민재야, 다 챙겼어?"
"네."
"먼저 신발신고 있어~"
민재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동안, 민재의 겉옷과 목도리를 챙겨서 나왔다.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선생님이 목도리 매줄게."
"...선생님 좋아."
"윽."
오싹해지는 등골 탓에 뒤를 돌아보니 팔짱을 낀 채 우리 둘을 내려보는 그가 보였다.
"쟤 빨리 용돈줘서 보내."
- 백현 -
"어디를 간다고?"
"동아리 회식~"
"아 오늘은 나랑 놀기로 했잖아~"
"나 만날 빠져서 눈치 보인단 말야. 이번엔 자기가 좀 이해해주라, 응?"
"...거기 누구누구 오는데?"
"음... 뭐 자기도 다 알만한 사람들이야."
"거기 남자들도 가?"
"(웃으며) 당연하지."
"뭐야! 그럼 나도 데려가!"
"자긴 우리 동아리 아니잖아..."
"안 돼! 데려가야 돼!"
평소에도 애 같지만 오늘은 아주 4살배기 애기 수준으로 떼를 쓰는 그다. 귀엽긴 하지만 데려가도 될런지 모르겠네.
"거기 내가 아는 선배들도 많을 거 아냐."
"뭐... 그렇긴 하지."
"그럼 됐잖아~ 아 빨리 데려간다고 해, 빨랑."
"으이그... 물어볼게, 잠깐만."
"히히."
선배들은 뭐 어떻냐고 했다. 그치만 난 언제 CC인 게 들통날지 모르니, 불안했다. 그리고, 회식 장소 근처에 왔다.
"따로 들어가자."
"...조심하자는 건 알겠는데, 전화까지해서 물어본 마당에 같이 들어가는 건 뭐 어때. 나 좀 서운해지려 그런다."
"그래도 안 친한 사람들 눈도 있고... 아무튼."
"......"
"야, 니들 왔냐."
"어, 선배."
"추운데 입구에서 뭐하냐, 빨리 들어가자."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리해 있었다. 선배가 같이 들어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눈총 받을 뻔 했네.
"변백현 너는 만-날 얘한테 빌 붙을 생각만 하냐?"
"아이, 선배.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하죠! 저 오늘 회비 낼 거예요."
"웬일이야."
"얘도 사람인데요."
"야."
어딜가나 분위기를 이끄는 그라서, 마치 내가 그의 동아리에 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이구, 우리 후배 잔이 비었네."
"아, 선배. 얘 많이 마셨어요."
"야, 얼마나 지났다고 많이 마셔? 윗사람이 권하는 건 일단 받는 거야."
"그럼 저 주세요, 저."
"남자 후배는 형 술 안 준다."
"아~ 너무 하시네."
기어코 술을 따르는 선배 탓에, 난 이걸 마셔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안 보는 틈에 버릴까 했지만,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덕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때,
"야! 그걸 니가 왜 마셔!"
"크으, 술 맛 쥑이네!"
"니 얘 남친이냐?!"
뜨끔.
"아, 선배. 좀 봐줘요. 얘 술 취해서 떡 되면 제가 날라야 하는데...!"
"(웃으며) 맞네. 좀 봐줘라, 야."
"안돼안돼, 딱 한 잔 마신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선배는 술이 꽤나 들어가셨는지, 꺾이질 않았다. 새 잔에다가 술을 따라서 내게 건내주려던 선배의 손이, 그에게 붙들렸다.
"선배."
"...뭐, 뭐야..."
"괜찮다니까요."
- 찬열 -
"뭐야...?"
"응? 뭐가?"
"......"
그는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내게 고갯짓을 했다.
난 그의 눈쌀이 찌푸려지는 시점을 쫓아서 내려봤다.
아마 새로 산 치마가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안 예뻐? 나 이거 5만원이나 주고 산 건데...?"
"그런 손 한 뼘짜리 치마가 5만원이나 한다고?"
"나도 진짜 큰 맘먹고 산 거야."
"왜."
"...어?"
"왜 이런 걸 큰 맘먹고 샀냐고."
"예쁘잖아."
"......"
그는 앞머리를 헝클이며 '이걸 어쩌지' 하는 눈으로 나를 내려봤다.
내가 그를 갸우뚱해하며 쳐다볼 즈음, 날 붙잡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가...!"
"바꿔 입고 와."
"뭐?! 이미 다 와가는데 어떻게 다시 가!"
"일 생겨서 늦는다고 하면 되지."
"귀찮잖아!"
"......"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뒤를 돌아서 나를 성큼성큼 끌고 갔다.
"그럼 하나 사줄게. 갈아입어."
"무슨 그렇게까지 해...!"
"싫어, 그렇게 짧은 거 입고 남들한테 보여줄라고?"
"거의 커플 모임인데 뭐 어때."
"난 싫어. 그리고 아닌 애도 있고."
"자기만 신경쓰지, 남들은 나 신경 안 써."
"......"
그는 걸음을 우뚝 세웠다. 이 날은 그의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 날이었다. 대부분 커플이었고 그 중엔 물론 아닌 친구들도 있었다.
"왜 신경을 안 써? 이렇게 예쁜데."
방금까지는 단속반이더니. 완전히 조련하고 있군.
"...어후, 됐어."
"내가 보기에 예쁜 건 남들 보기에도 예쁜 거야."
"......"
"갈꺼지?"
"...어딜."
"옷 사러."
- 첸 -
"네, 주문 받았습니다. 한우 스테이크 미디움 웰던, 쉬림프 로제 파스타, 음료는 레몬에이드 한 잔 맞으신가요?"
"네."
"네, 감사합니다."
허리를 살짝 숙이며 주문을 경청하던 웨이터가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가지고 있던 메뉴판을 수거해주었다. 난 그 미소가 친절하고 상냥하게 느껴져서 들뜬 마음에 그에게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저 사람, 웃는 거 예쁘다. 봤어?"
"...야."
"...어?"
"너 그말 그렇게 쉽게 하는 말이었어?"
"...무슨 말?"
"...하아..."
내 말에 놀란 눈을 하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그다.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너 혹시 웃는 얼굴에 페티쉬가 있다던가 하는 건 아니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 기분 나쁘게."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그가 화난 포인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던 그때,
"너 내가 예전에 고백했을 때 한 말 기억 안 나?"
"...내가 한 말...?"
"역시 그냥 한 말이네..."
"아니야 아니야, 잠깐만..."
"......"
"그때 분명히 전화로 얘기하고 있었는데..."
때는 벌써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원래 친구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전화로 얘기를 하다가... 뭐 때문에 이상형 얘기가 나왔고... 그리고 뜬금없이 그의 이상형이 나라고 했다. 그리고... 내 대답이...
"네가 나한테 내 웃는 얼굴이 좋다고 했잖아!"
"...아."
"...으휴."
"...아! 저 사람 웃는 얼굴 칭찬했다고 이러는 거야?"
"난 그게 여태까지 너도 날 좋아했다 말하는 줄 알았는데... 하, 아녔어..."
"...풉. 그럼 자기는 tv에 나오는... 그래, 김태희나 전지현 같은 연예인 보고 예쁘다고 생각 안 해?"
"내 스타일 아니야."
"...아무튼 그런 생각 안 하냐고."
"아 몰라! 관심 없어!"
"......"
완전히 삐졌구만.
"어떻게 예쁘다 생각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 같아."
"난 같아."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
"지나가는 강아지나 인형들이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생각해도 그걸 막 사랑하고 그러진 않잖아."
"난 그런 거 몰라."
"...그럼 나 말고는 관심도 없어?"
"당연하지."
"...?"
"말했잖아, 이상형이라고. 다른 곳엔 관심 없어."
턱을 괸 채 애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둣 대답하는 그에게, 난 완전히 말려들고 말았다.
"......"
"왜, 더 변명해 봐."
- 레이 -
입사한 지 약 3개월된 신입사원. 우리 회사는 영화를 개봉하게 하는 배급사이다. 그리고 나는 이 회사의 영업부이다. 그러니까 즉, 가장 굴림을 당하는 위치에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도 회사를 다닌다고는 하지만, 연차가 오래돼서인지 그는 거의 프리랜서 수준이라 나와는 비교가 안된다.
"오늘 저녁에 김 감독님 영화 배급 회의할텐데, 시간 있지?"
"네...? 아... 오늘은 그..."
"...설마 빠지려고? 영업팁 같은 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야. 신입사원이면 당연히 들어야지."
"...네..."
"근무 끝나고 바로 회의실로 와."
이래선 연애도 못하겠다. 그래, 대기업에서 이런 학벌도, 커리어도 없는 애를 뽑아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여기 서류 빨리 정리해!"
"아, 네!"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네?"
"이번에 한중 합작 중에 유명한 중국 배우들이 쏟아지는 대작이 있는데, 그게 우리 배급사 쪽으로 됐어."
"아... 근데 그게 왜..."
"희한하게도 그 영화 투자사 측에서 우리 회사에 배급을 맡기겠다고 방금 전에 전화가 와서, 오늘 저녁 회의 파토야. 너 약속이나 가."
"에? 진짜요?! 아싸!"
"너무 좋아하지마라. 다 본다."
"아..."
이 기쁜 소식을 애인에게 알리려,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답장. 도대체 어딜 가고 있다는 건지. 남자친구가 한국말이 서툰 경우, 이런 상황은 무지 답답하다.
...
"어이쿠, 오셨습니까!"
"......"
"투자사 이사장인데 부자여서 그런가, 때깔 좋네."
"......"
"너 뭐야, 설마 저 남자한테 반했냐?"
"네?... 아..."
"뭐야, 얘 진짠가보네. (웃음)"
내사를 한다던 투자사 이사장이란 인물은 다름 아닌 그였다. 난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굳어버렸고, 부장님 옆에 멍하니 서있던 나를 발견한 그는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왔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나는 눈이 커져서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你好. (안녕하세요.)"
"...니하오..."
난 그의 웃는 얼굴을 노려보듯하며 손을 잡았다. 부자인 줄은 알았지만 이사장이라니. 그리고 바로 옆 부장님에게 넘어가며 표정이 그치는 그였다.
"허, 이사장님이 기막히게 막내부터 훑어주시네."
그는 갑자기 동행한 남자에게 무어라 속삭이더니, 그의 말을 들은 남자가 대신 입을 열었다. 통역사까지 대동하셨구만.
"여직원님에게 근처에 맛집이 있냐고 물어보시는데요."
"저... 저요...?"
"네."
"...아아! 제가 잘 아는 데가 있어요."
"임마, 너 어딜 쫓아가."
"네?"
"(작게) 많은 사람 놔두고 너한테 물었잖아. 이유를 모르겠어?"
"....!!!"
그는 내 등을 살짝 돌려놓은 부장님의 팔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싸움판이 되는 건가 싶었지만 그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가 공기를 녹였다. 그리곤 다시 통역사의 입을 통해 그의 말이 전달됐다.
"이상한 의도로 물은 게 아니랍니다. 여직원 님 소매 끝에 뭔가 묻어서 맛집을 알고 계신 게 아닌가 싶어서 물어보신 거랍니다."
"...아."
좀 전 점심때 먹다가 묻은 토마토 소스였다. 그의 재치에 사람들이 웃었고, 부장님은 쩝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하라며 보내주셨다. 그리하야 그는 자연스레 나와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조 사람이 부장?"
"...나 진짜 화났어."
"나도 화나쏘."
"왜 화가 나."
"...파토 먼저 아려조."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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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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