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수원뉴스 김우영 주간 제공
수원문학인의 집 아카데미 원장 임병호 시인과 수강생들이 시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도심 속을 물들이고 있는 은행잎 황금지폐와 코스모스 핀 거리의 가을빛 서정이 시심을 불러온 것이다. "이 좋은 날 우리 밖에 나가서 수업해요, 선생님!" 마치 그 옛날의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졸라 대는 가을 여인들을 무슨 수로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 그렇다면 다음 주에는 야외수업으로 하겠습니다." 임병호 원장의 선언에 모두들 환한 미소가 번지며 설레는 마음들을 어찌 감출수가 있었을까.
그렇다! 설레는 마음들이 곧 글이 되고, 시가 되어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찾아간 곳은 바로 근처의 주막집과 화서문을 지나, 공원 언덕의 잔디밭이었다. 억새꽃이 만발한 가운데 서북각루의 고풍스러운 모습이 얼마나 절경인가. 세상만사가 이렇듯 찰떡궁합을 이루며 조화롭게 살 수 만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평화이고 화합이 아닐까싶었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하며 부부가 함께 저토록 한 생을 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보기 좋은 일인가.
억새꽃 길목에서 부르는 중년의 노래 _2
우리는 저마다 가슴이 저며 오는 가운데 그 억새밭 아래에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마치 어릴 적 수건돌리기 놀이를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동심인 것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리일 것만 같았다. 굳이 이런 자리에 나이를 따질 것도 없겠다만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나뿐만 이었을까. 마침내 자리가 정리되고 원장 선생님의 개회사와도 같은 인사말씀 한마디, "자~여러분들 어떠세요! 날씨도 상쾌하고 억새꽃도 좋고, 모두들 기분이 새롭지요?" "예..."영락없는 어릴 때 소녀들의 마음이었다. "지난 주에 숙제 낸 것 있죠?" 세월을 주제로 한 시 써오기였다. 그렇게 자기가 써온 시를 낭독하고 첨삭의 지도를 받는다.
억새꽃 길목에서 부르는 중년의 노래 _3
희미한 기억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가끔씩은 그렇게 꺼내어 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지난 밤 꾼 꿈처럼 선명하다는 한모 수강생. 박수로 잘했다며 격려를 한다. 수많은 단어의 흐느낌이 녹아있는 따뜻한 날 보다도 추운 날이 더 많았던, 지름길도 정답도 없었던 잘못 된 선택의 때늦은 후회, 이제는 몽당연필만큼 남았을 세월! 지나온 길 되돌아가지 않게 해줄 다정한 내비게이션 은 어디에 있는가. "박수~" 또 쏟아진다. 세월! 황금을 쫓던, 명예를 쫓던, 사랑을 쫓던 허공 속에 바람이 분다. 역시 박수다. 그런가 하면 즉흥시도 나온다.
화서문 앞 그 주막집 오늘도 나는 걸었다네! 울타리 너머로 들려오는 주모의 웃음소리, 홀연히 나비 한 마리 내 가슴에 날아와 앉았다네. 서포루 여기 성길 따라 오르면 저 억새꽃 노래 겨울로 가는 북망산천이던가. 배꽃은 떨어져가고 이제는 개망초만 남았는가. 들린다! 저기 주막집 주모의 흰 고쟁이 엽전소리가!
이렇듯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원장 선생님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 회원! 잘 나가다가 북망산천은 뭐고, 왜 거기서 고쟁이는 또 뭐고, 엽전소리는 왜 나오는 거요! 다른 말로 고쳐요." 우리는 그저 웃는 소리 하나마저도 시가 되어 바람 속에 흘러갔다. 시란 그렇게 고치고 고치는 것이라고 했다.
억새꽃 길목에서 부르는 중년의 노래 _4
수원문학인의 집 아카데미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임병호 원장의 지도로 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수원이 고향이며 일찍이 소년 시절부터 시인이 되었다는 임병호 시인은 고향문학의 발전을 위해 하나의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수강료는 '영(0)원'이며 '열심히 강의에 참여하고, 시심을 쌓아 시인이 되어 준다면 그보다 더 큰 보답이 없다'고 늘 말한다.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늙지 않고 항상 젊게 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아마 시인이 되는 길이 아닐까. 언제나 웃음 진 얼굴로 중년을 모르고 사는 만년 소녀들을 나는 보고 있다. 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소년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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