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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두 종류의 삼겹 삶>의 줄거리:
두 종류의 삼겹 삶
(롬8:1~1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두 종류의 삼겹 삶>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삼겹살에서 조금 말을 바꿔서 삼겹 삶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눕니다.
여러분, 여름철에 삼겹살 많이들 드셨지요?
돼지갈비에 붙어있는 살입니다,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있어서 삼겹살이라고 부르는데,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온 삼겹살을 관찰해보면 하얀 비계 층이 있고, 그 바로 아래 연분홍 살이 있고 맨 아래에 빨간색의 살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삼겹살의 모습이에요, 하얀 비계, 연분홍 살, 빨간 살.
삼겹살이 대중적이다 보니까 굉장히 고급스러운 고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스타 쉐프인 강 레오, 두바이에 있는 고든램지의 헤드 쉐프를 지내시다가 한국으로 오셔서 ‘화수목 by 강레오’라고 하는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인데 이분이 대단한가 봐요.
이 고든램지라고 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고급 식당 체인 아닙니까?
사람 이름으로 고든램지도 쉐프입니다.
두바이와 영국에 있는 고든램지에서 수석쉐프를 하던 분이십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최고의 쉐프께서 하신 말씀 중에, 아마 TV프로그램에 나와서 하신 건가 봐요.
사회자가 묻기를 ‘최고의 쉐프인 당신은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십니까?’ 했더니 대답이 기가 막혀요.
삼겹살에 소금하고 후추를 잘 뿌려서 구워먹는 것이 자기는 제일 맛있다는 겁니다.
저는 삼겹살이 그런 건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여러분, 사람의 삶도 삼겹 삶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가 삼겹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늘 말씀드렸어요, 그러나 사도바울이 쓰신 서신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의 존재가 삼겹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삼겹이라고 하면, 하늘의 겹이 있습니다.
하늘 층이 있고, 하늘에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군천사들을 거느리시면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공중이 있습니다.
그리고 땅이 있습니다.
이 하늘은 말씀드린 대로 영의 세계로 하나님과 성령께서 거하시고 부활해서 승천하신 우리 주님이 계신 곳이고, 그리고 공중은 우리의 마음이 거하는 처소입니다.
그래서 공중권세 잡은 마귀라고 함은 그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어디 있느뇨?
불교에서 스님들이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지요, 선문.
우리 마음이 어디 있느뇨? 육체 안에 있느뇨? 마음이 없는 거다, 없는 마음을 깨우치는 게 불이다, 이렇지만 아니에요, 마음은 있어요.
마음은 있고 그것이 바로 공중에 있는 겁니다.
공중이라는 개념을 모르니까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 마음은 있습니다.
그리고 땅, 맨 마지막 층인 땅에 속한 것이 우리의 육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지 이렇게 삼겹으로 이루어진 존재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힌두교를 믿고 우리가 도저히 납득이 안 가고 수용이 불가한 그런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삼겹으로 되어있습니다.
박 근혜 대통령께서도 삼겹으로 돼있고, 이 더위에 노숙하시는 분들도 삼겹으로 된 존재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성경적으로 볼 때 삼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도 여러분과 저는 하늘 층, 공중 층, 땅 층이 있는 삼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채로 지금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모두 삼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의 삶이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한 종류는 영 삼겹 삶이 있고, 또 한 종류는 육 삼겹 삶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나누어지는가 하면, 영이신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땅에 있는 우리의 육체 사이에 우리의 마음이 있는데, 마음이 어디로 가서 달라붙어서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영 삼겹 삶이 있고, 육 삼겹 삶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타락 전의 아담은 어떤 상태였느냐 하면, 공중에 있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붙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오늘 본문에도 나오듯이 영을 따라 사는 삶, 육을 따라 사는 삶, 그리고 육에 있는 사람, 즉 마음이 육에 붙어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타락 전의 아담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 붙어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에덴에서 살다가 아담의 몸이 짐승 하나를 만나게 되고,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고, 하와를 만나게 되는 이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 아담이 자기 몸이 만나고 있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있는 상태,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몸이 만나고 있는 대상들에 대해서 갖고 계신 당신의 뜻과 판단을 아담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면 아담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여서 자기 몸이 만나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던 겁니다.
이게 바로 타락 전의 아담의 상태였어요.
그런데 타락 후에 어떤 상태가 되느냐?
공중에 있는 마음이 육체에 가 달라붙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쪽이 새까맣게 돼버렸어요, 하나님과 아담의 마음 사이에 새까만 층이 형성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내려와서 육신과 조합을 이룬 마음은 아담의 육신이 만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상황들에 대해서 아담이 직접 판단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얘깁니다.
이게 바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행동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하늘과 땅 사이에 끼어있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가서 조합을 이루지 못하고 땅에 있는 육체로 내려와서 조합을 이루어서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 그 조합 자체가 죄라는 겁니다.
믿음이 행동 이전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마음 심장을 꺼내서 어디다 주느냐, 그 이야기가 또 반복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믿음이 행위 이전에 결정되는 것처럼 죄도 행위 이전에 결정되는 거예요.
내가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이런 모든 행위적인 죄악 이전에 이미 마음이 어디에 가 달라붙어 조합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죄악의 뿌리가 형성이 돼버렸다는 겁니다.
이렇게 현재 우리의 모습이 바로 공중에 있는 마음이 위로 영의 세계에 계시는 하나님께 가 붙지 않고, 아래로 땅에 있는 육체에 가 붙어있는 상태, 이 상태로 우리가 지금 다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 층으로 되어있는 존재의 구조는 바뀌지 않는 거예요, 단지 하나님과 공중에 있는 마음 사이에 까만 막이 형성이 되어서 단절이 돼있을 뿐, 하나님을 모르는 어느 누구라도 다 삼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겁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람인 한, 삼겹의 구조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는 거예요, 지금 나에게는 하늘의 층과 공중의 층, 육체의 층이 겹쳐져 있는 겁니다.
자, 이걸 알고 오늘 본문을 들어가면 이해하기가 쉬운데, 오늘 본문에서도 대칭적으로 육신과 영이 대치하고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육신을 따름과 성령을 따름, 이렇게 대칭적으로 나타나죠.
그리고 육신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육신과 성령이 또 대칭적으로 대치하고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삶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공중에 있는 내 마음이 어디로 가서 붙느냐 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얘깁니다.
자, 그러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사도바울이 문자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우리를 향해 지금 인생의 스펙 쌓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인간사회가 만들어놓은 성공의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성취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늘과 공중과 땅으로 이루어져있는 나의 존재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 존재의 구조만 바로 잡으면 인생은 다 하나님에 의해서 저절로 풀려가게 돼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대학 들어가려고 애쓰기 전에, 어떤 스펙을 쌓겠다고 애쓰기 전에 그 모든 것 다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시골에서 태어나서 시골에서 자라도 상관없어요, 대도시에 올라와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스펙 같은 것 없어도 대통령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성공의 조건 같은 것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에요.
그러면 무엇이 중요하냐?
지금 우리 존재구조의 조합을 바로잡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이겁니다.
존재의 구조가 아담 이후에 뒤틀려져 있던 상태에서 바로잡힌 상태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오늘 본문이 이야기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이 이 땅으로 내려오셨어요,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가 공중에 있는 우리 마음이 아래로 땅에 있는 육체에 가 달라붙어있기 때문에 도저히 위를 바라볼 줄 모릅니다.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얘기하고 종교를 얘기하고 신을 얘기해도 그 이유는 전부 이 땅에서 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삶을 잘살아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을 향해 얘기하고 있어도 하늘을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이 땅에서 먼 미래에 잘살게 될 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요.
전부 시선이 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을 보내셔서 이 땅에 내려오십니다, 왜냐하면 그 시선에 들려고.
그 시선의 사정거리 안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분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시게 되었고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육체에 죄를 정하사’라는 말이 바로 그렇게 죄 없는 분을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그 육신에 우리의 모든 죄를 거기다 다 정하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게 하신 겁니다.
자,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얘기는 인격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연합한다는 의미가 있고 그 이상의 의미라는 건 뭐냐 하면, 인간들의 마음이 있는 공중과 하늘 사이에 까만 막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심으로써 그 하늘과 공중에 있는 막에 구멍이 뻥 난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길을 내신 거예요, 우리 마음이 공중과 하늘 사이에서 머물 수 있도록 영역을 만드신 겁니다.
그게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이루신 일이에요.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얘기는 우리 마음이 공중과 하늘 사이에 예수님에 의해서 놓여 진 그 길, 그 통로, 그 터널 안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말합니다.
즉, 내 몸이 이 땅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이 땅에 내려오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함께 내가 같이 죽었음을 고백하면서 마음이 몸을 떠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몸으로 만난 이 세상에 대해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는 겁니다.
그렇게 죽을 때 마음이 주님께서 공중과 하늘 사이에 만들어놓은 터널, 그 영역 안에 우리 마음이 거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거하게 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 계획과 생각과 판단들을 넣어주시고 가르쳐주신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령을 따르는 삶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거죠, 왜냐하면 죄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음이 육신에 붙어 조합을 이룸으로써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얘기할 때 자꾸 오해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라고 함을 금욕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육체 경시적인 그런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육신의 생각은 마음이 몸에 붙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공중에 있는 마음이 위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연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남에게 유익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살았습니다.
이게 바로 육신의 생각이라는 거예요.
꼭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이런 것만 육신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을 모른 채 마음이 위로 영의 세계에 계시는 하나님과 조합을 이루지 못한 채로, 육체에 조합을 이루고 사는 모든 삶이 다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또, 공중에 있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십자가에서 육체로 만나는 이 세상에 대해 죽고 그때 부활 승천하신 주님 따라서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뿐입니다’를 고백하는 거예요.
하늘로부터만 내 마음에 기쁨이 올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하늘을 바라보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각을 넣어주셨을 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습니다,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도 있습니다, 금욕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육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결정짓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생각이면 하나님의 생각이고, 육신과 마음이 조합된 상태에서 나오는 생각이면 육신의 생각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인류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지라도 육신의 생각이 되는 것이고, 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으면서 성령을 따를 때 결혼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예요,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육체로 인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맛있는 것 먹고, 멋진 옷 입을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단, 정말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에서 주어지는 생각이냐 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거예요.
아무리 거룩해 보이고 아무리 이웃을 위한 충정어린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해도 육체에 마음이 연합하고 조합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생각이면 다 육을 따르는 생각이라는 겁니다.
며칠 쉬는 동안에 한 사흘 아이의 외가가 있는 부산에 갔다 왔어요.
가있는 동안에 거가대교라고 아실 겁니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가덕도라는 섬을 지나서 거제도로 이어지는 그런 다리입니다.
그런데 부산 끄트머리에서 출발하자마자 곧바로 바다 밑으로 들어갑니다, 수심 48미터까지 내려가는 터널이 만들어져 있어요, 터널을 통과해서 가덕도에 이르고 가덕도에서 거제도로 들어가는 다리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거가대교에 들어서게 되면 어디로 빠져나갈 데도 없습니다.
그냥 거제도까지 가야 돼요.
바다 밑으로 터널을 만들어놓았어요, 신기하더라고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우리의 마음이 이 육체에 조합돼가지고 땅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야가 미칠 수 있도록.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예요, 우리 마음이 지금 몸과 연합해서 몸이 만나고 있는 이 세상에 다 빠져들어 가있는데,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순간마다 내가 몸으로 만나는 이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성령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을 따른다고 하니까 너무 구체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근데 구체적으로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거예요.
내 몸으로 만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십자가주님을 생각하면서 죽는 겁니다.
그렇게 죽게 될 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따라서 주님이 만들어놓으신 거가대교와 같은 바다 밑의 터널과도 같은 영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 마음이 속한 공중과 하늘 사이에 막혔던 까만 막을 뚫으시고 주님께서 만들어놓으신 공중과 하늘을 잇는 공하터널이에요, 공하터널.
그 공하터널 안에 우리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이 만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판단을 가르쳐주시고, 당신의 생각을 가르쳐주시게 돼있습니다.
그럴 때 영을 따르는 삶을 산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시니까.
이럴 때 또 나타나는 특징이 뭐냐 하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그전에 마음이 육체와 조합을 이루고 있을 때는 그 조합 바깥에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셔도 이룰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마음과 육체의 조합이 깨어지고, 마음이 하나님과 조합을 이루게 될 때는 그냥 내 마음에서 우러날 수 있도록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각을 넣어주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 이룰 수 있게 된다는 얘깁니다.
두 종류의 삼겹 삶, 영 삼겹 삶이 있고 육 삼겹 삶이 있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대해 죽으므로 영 삼겹 삶을 이루어내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 하루 이 무더운 여름 가운데서도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또 하루를 주셨습니다.
오늘 이 하루는 정말 영 삼겹 삶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