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처| 손상률목사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루어지는 행복을 “큰 비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엡 5:32). 옛날 솔로몬 왕은 왕비가 60이요, 후궁이 80이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녀가 있었지만, 그의 사랑하는 자는 술람미 하나뿐이라고 하였습니다(아 6:8).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하만민 가운데 너희만 알았다고 하시며 우리를 그의 반려자로 삼았습니다(암 3:2). 본문 성경에 나오는 룻과 보아스의 관계도 솔로몬과 술람미처럼 신비로운 행복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1. 은혜를 추구하는 룻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곧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1) 이삭을 줍는 일
19세기 프랑스 화가 밀레(J. F. Millet)의 그림 ‘이삭줍기’는 그의 대표작 ‘만종’과 함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종교미술입니다. 소박한 전원의 풍경과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이 그림은 허리를 숙여 이삭을 줍는 룻을 연상하게 합니다. 본문 성경 2:2에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시어머니의 허락을 청원하는 태도에서 룻의 근면하고 성실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삭을 줍는 것 자체도 자기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노력은 내가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보아스의 밭으로.
베들레헴 들판에 많은 사람의 농장이 있었지만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2:3에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모형이고, 그의 밭은 주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집을 나선 룻이 어디에 누구의 밭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발길 닿는 데로 갔을 것인데, 우연히도 보아스의 밭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6:9).
성령께서 우리의 걸음을 교회로 인도해 주십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처럼 이상적인 교회는 신령한 양식의 공급처가 됩니다.
3) 감동 깊은 은혜
보아스의 밭에는 모든 것이 풍요로웠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갔던 룻은 거기서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 밭에서 일하는 보아스의 권속들은 하나같이 평화스럽고 화목하였습니다(2:4). 식사 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룻과 같이 앉아 볶은 곡식과 떡을 배불리 먹게 하였습니다(2:14). 무엇보다도 주인되는 보아스의 사랑과 은혜가 베어나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밭에서 일꾼을 거느린 사환으로부터 룻을 소개 받았을 때, 대번에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룻이 남편 사후에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며 그를 따라서 고국을 떠나 베들레헴까지 왔다는 것을 높이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2:11-12). 이에 감동한 룻은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2:13).
2. 보아스의 침소로 향하는 룻
룻기 3장은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로맨스의 장면이 소개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주님 사랑의 맛을 알고 더 가까이 나아가는 적극적인 삶을 묘사한 것입니다. 언제나 은혜는 받은 사람이 더 받게 되는 법입니다(요 1:16).
1) 시어머니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본문 말씀 1절에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고국과 가족을 등지고 베들레헴까지 자기를 따라 온 룻을 자기의 딸처럼 아끼며 그의 앞길을 염려해 주었습니다. 여기 안식할 곳을 구하겠다는 것은 마땅한 배필을 만나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로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뜻을 받들어 그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올바른 지도자기 필요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는 세례 요한처럼(요 3:30) 자기는 뒤로 빠지면서 예수님과 연결되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 참 좋은 멘토입니다.
2) 세심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지시한 내용들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성도가 반드시 갖추어야 될 기본적인 소양입니다. 본문 3절에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의 단장을 의미합니다(계 21:2).
목욕을 하는 것은 몸을 씻는 것으로써 회개를 뜻합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 받는 것은 성결케 되는 기본 요소입니다(행 3:19).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케 함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성령을 기름으로 비유하였습니다(출 29:7, 슥 4:14). 기름은 불을 밝히는 것 외에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는 역할을 의미합니다(마 25:7). 또 의복은 성도의 착한 행실을 뜻합니다(계 19:7). 이는 건전한 성도의 삶을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롬 13:14).
3)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룻은 몸단장을 끝낸 다음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보아스에게 접근하였습니다(6절). 보아스는 타작마당에 천막을 치고 침소에 들었습니다. 룻은 예고도 없이 보아스에게 다가가 발치 이불 밑에 누웠습니다.
참으로 무례하고 대담한 행동이었으나 룻의 입장에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압 여인이라는 천한 신분의 룻이 지체 높고 명망 있는 보아스를 정상적으로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적극적인 행동을 감행하여야 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기 때문입니다(마 11:12). 히브리서 4:16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 보아스의 응답
밤중에 침소에서 룻을 만난 보아스는 그의 당돌한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하고 복을 빌었습니다(10절). 그뿐 아니라 룻이 요청한 대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13절).
1) 준비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준비해 주시는 사실을 체험하곤 합니다(창 22:14).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겠다고 고백한 룻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필요에 따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거기 보아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요, 또 유력한 자였습니다(룻 2:1).
‘친족’은 룻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법적 자격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유력하다는 것은 재력과 모든 능력을 갖춘 자라는 뜻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제도를 율법에 명시하게 하였습니다(레 25:25-28).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는 재산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포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보아스가 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4:6).
2)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기까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쉬지 않고 일을 하십니다(요 5:17). 나오미는 룻으로부터 보아스와 침소에서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18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히 11:6). 나오미가 예견한대로 보아스는 지체하지 않고 룻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적법하고 합리적인 수단으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완벽하게 이뤄내었습니다(4:9-12).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동안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자입니다(출 14:13).
3) 크고 은밀한 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내십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크고 비밀한 일입니다(사 7:14). 범죄하여 멸망받을 인간을 예수님의 보혈로 속량하시고 구원 얻게 하신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롬 3:23).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자기 백성들의 삶 속에 개입하시고 꿈같은 일들을 이루어 내십니다. 몰락한 엘리멜렉의 가정이 회복되고, 희망이 없었던 모압 여인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크고 은밀한 일을 행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렘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