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4: 7 내 사정을 알려 주리니 - 골 4: 8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
3. 끝 인사 ( 4: 7 - 18 )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 4: 7 내 사정을 알려 주리니 -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
1]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두기고는 아시아 지방 출신으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과 함께 드로아까지 여행하였다.
* 행 20: 4 -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는 에베소 교회에도 천거되었다.
* 엡 6: 21 -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바울 사도의 사자로 파송되기도 하였다.
* 딤후 4: 12 -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 딛 3: 12 -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2]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바울은 두기고에 대해 세 가지 호칭을 부여한다.
(1) 사랑 받는 형제
형제라는 말은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이 된 그리스도인들 간의 실제적인 관계성을 시사한다(O' Brien).
* 롬 15: 14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 고전 15: 58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빌 3: 1 -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신실한 일꾼
신실한 일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특별한 사역을 부여받은 사람을 가리킨다(Lohse).
주님의 일군의 신실은,
첫째, 복음에 신실함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加減)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함이다.
* 고후 2: 17 -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둘째,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다.
* 고후 1: 18-20 -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다가 고통과 난관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진실이다.
* 엡 6: 24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3) 주안에서 함께 된 종
에바브라도 같은 호칭을 듣는다(1: 7).
이것은 두기고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 안에서 자신의 임무를 잘 감당하는 종임을 시사한다. 두기고는 일꾼의 자격으로도 신실하고,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격으로도 신실하다는 의미이다.
신실은 '하나님의 비밀' 곧, 복음을 맡은 사역자의 유일한 자격이다.
그러므로 고전 4: 1-2은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신실)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일꾼'이란 말과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이란 말의 분별은 무엇인가?
전자는 특히 교역자의 사역을 염두에 둔 명칭이고, 후자는 그 교역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언급하는 명칭이다.
일꾼이란 말은 어원적(語源的)으로 보자면 티끌 가운데로 통과 하는 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음질하는 자를 의미한다(Trench),
그것은 노역(勞役)의 정황을 묘사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바울이 두기고를 가리켜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종 된 자라고 한 것은, 두기고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고 절대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였음을 가리킨다.
골 4: 8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 -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
여기에 나오는 특별히란 말이 헬라 원문에는 없는데 한역에는 그것을 보역(補譯)했다.
1]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보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펨프사'(*)는 서간체 부정 과거로 편지의 수신자 입장에서 바라본 시상이다(Lenski, O' Brien).
바울이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낸 목적은 두 가지이다.
(1) 바울 자신과 동역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2) 자신이 투옥된 사실로 인해 상심에 빠져 있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사도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여 상심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2]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이 문구는 어떤 사본들의 사구(砂丘)대로(*) 보아서는 '나로 너희 사정을 알게 하고'이니, 그것은 시내산 사본(*)의 제 삼 교정본을 위시하여 기타 몇 사본들(C, K, L)의 사구(寫句)이다.
그러나 그 보다 권위 있는 사본들(A, B)에 의거한 한역(韓譯)은 이 부분의 문맥에 적합하니,
(1) 두기고가 골로새에 가는 것이
바울의 사정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알려주려는 것이었음을 7절 초두에 밝혀 말한 것과도 일치한다.
(2) 9절 하반 절을 보더라도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Lightfoot, Van Leeuwen).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의 내정과 사생활은 다른 성도들에게 알려질 때에 유익을 끼친다. 그 이유는, 주님의 충성된 종의 이면(裡面)에는, 그 외부에 나타난 것 이상으로 모본할 만한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에 갇힌 생활의 이면은 모든 교회에 큰 감동과 격려(激勵)를 주었다.
3]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사도의 실정을 알고자 갈망하던 골로새 교회가 두기고에게서 그의 모든 정황을 청취(聽取)할 때에, 큰 위로(신앙을 격려하는 위로이고 단지 근심에서의 안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두기고를 통하여 그들을 위하는 바울의 관심이 얼마나 간절한 것임을 알게 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