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성 장 (BC 37 - AD 668) : 700여 년 | 성장 | 기원전 37년 부여 계통의 이주민(지배 세력)과 토착민이 연합하여 동가강 유역(졸본)에 건국 → 국내성 천도(遷都. 통구, 유리왕) → 주변 지역 정복 → 평야 지대로 진출 → 중국 세력과의 대립, 격퇴 → 발전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 함) |
태조왕 (53~146) | * 옥저와 동예 정복, 계루부 출신(고씨)의 왕위 세습 등으로 * 중앙 집권 국가의 모습 갖춤(기틀 마련 : 1세기 후반) * 요동 진출을 꾀함 |
고국천왕 (2세기 후) | * 5부족은 수도와 그 주변의 행정 단위를 의미하는 5부 (동, 서, 남, 북, 중부)로 개편됨 (5부족 → 5부로 개편) (부족적 성격의 5부족에서 행정적 성격의 5부로 개편함) (5부의 족장은 중앙귀족으로 편입 = 왕권의 강화). = 중앙집권화 * 진대법 실시(을파소 건의. 농민의 노비화 막고자. 왕권강화 목적) * 왕위계승(형제세습 → 부자세습) |
동천왕 (3세기 중) | * 서안평 공격(중국과 낙랑군을 연결하는 교통요지) → 위나라 장수 관구검의 침입 받음(수도 함락) |
미천왕 (4세기 초) | * 서안평 점령. * 낙랑, 대방군 점령(고조선의 옛 땅 회복. 313) |
고국원왕 (4세기 중) | * 전연(선비족)의 침입 받음. * 백제 근초고왕의 침입으로 국왕 전사(371) → 국가적 위기 상황 |
소수림왕 (4세기 말) | * 중앙집권국가 완성. * 불교 수용, 태학 설립, 율령 반포 → 중앙집권체제 강화 → 개혁을 통한, 국가 체제의 재정비로 웅비(雄飛)의 발판 마련함. |
백제의 건국과 성 장 (BC 18 - AD 660) : 700여 년 | 건국 | * 북쪽의 부여계(고구려계) 유이민(온조 등)들이 마한의 한 군장 사회(54개의 소국 중에 하나)로 한강유역의 위례성에 자리 잡음 (十濟) → 발달된 철기 문화와 한강 유역의 농경문화를 바탕 으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함 → 기원 전후(前後) 시기에 초기국가(연맹왕국)로 발전함 * 백제 건국 주도(主導) 세력이 고구려계통 유이민(流移民)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 = 고구려 계통이 백제의 지배층이 됨 왕족의 성씨(부여씨) +서울 석촌동고분 (돌무지무덤) |
성장 | * 한(漢) 군현(郡縣. 낙랑, 대방 등)의 견제 받으며 성장 * 한 군현과 맞서 싸우면서 성장함 |
고이왕 (3세기 중) | *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토대) 마련. * 관제 정비 : 6좌평 ․ 16관등(官等制), 율령반포, 관복(官服) 제정, 마한의 중심세력인 목지국 병합 : 한강유역 지배권 확보 * 한강 유역 완전 장악 |
근초고왕의 정복활동과 해상 진출 | 근초고왕 (4세기 중) | * 백제의 전성기 * 중앙집권 국가의 완성(4세기 후반) : 왕권의 전제화(專制化) * 왕위 계승 부자세습 확립 * 북으로 고구려 공격 <고국원왕 전사시킴> 황해도 일대 장악. * 남으로 마한 합병하여 전라남도 남해안까지 세력 확장 * 가야에 대한 지배권 행사 * 탐라 정벌. * 중국의 산둥 ․ 요서 지방 및 일본의 규슈까지 세력 확장하여 국제적 상업 국가로 발전. * 중국의 동진· 가야· 왜를 연결하는 외교 라인 구축 → |
침류왕 | * 불교 수용 384, 동진으로부터. → 불교 공인 * 중앙 집권 체제의 사상적 토대 마련 *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국민을 사상적으로 통합할 목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