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기초 교리 24ㅡ팔정도
(5) 팔정도(八正道) : 괴로움을 소멸(滅)하기 위한 8가지의 바른 길.
팔정도는 불교의 종합수행법이며, 불교수행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유구한 세월을 통해 많은 수행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계승된 불교의 각종 수행법의 토대가 된다. 팔정도의 수행 덕목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수행의 핵심 사항들이 종합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팔정도의 각 덕목들은 정견을 얼마나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수행 결과가 달라진다. 또한 팔정도 수행의 출발점은 정념이고 그 노력이 정정진이며 이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집중에너지가 형성되면 정정, 행동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정어, 정업, 정명이다.
① 정견(正見) : 편견 없이 바로 보는 것.불교수행의 시작이며 끝이다
비구들이여, 정견은 (8정도 수행의) 시작이다. 왜 정견이 시작인가? 잘못된 견해는 잘못된 견해라고 이해하고 바른 견해는 바른 견해라고 이해한다.
<잡아함경> 제28권 「사견정견경」
② 정사유(正思惟) : 바른 생각. 정견의 바탕 위에서 자기 생각의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여 그릇된 생각을 지양하고 올바른 생각을 지니도록 노력하는 것.
③ 정어(正語) : 바른 말. 정견과 정사유에 따라 항상 깨어있는 마음[正念]으로 올바른 언어생활을 하는 것.
④ 정업(正業) : 바른 행동. 정어와 정업은 바른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바른 행위를 뜻함.
⑤ 정명(正命) : 바른 생활. 올바른 가정생활 및 정당한 경제생활과 올바르게 생업을 이어가는 것.
⑥ 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 탐ㆍ진ㆍ치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고, 이미 일어났으면 이를 극복하고, 반야지혜를 개발하여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난관을 이겨내면서 궁극의 경지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정정진이라 함.
⑦ 정념(正念) : 바른 마음의 수행. 모든 현상은 항상 변하며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늘 새기며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괴로움의 실상을 파악하여 찰나찰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잘 관찰하는 것.
⑧ 정정(正定) : 바른 집중. 마음을 바르게 한 곳에 집중하여 삼매(三昧)를 유지하는 것.
- 팔정도를 계정혜 삼학으로 분류하면 계(정어, 정업, 정명), 정(정정진, 정념, 정정), 혜(정견, 정사유)로 나눈다.
- 정명(正命)을 바른 생명이라고 잘못 아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확한 뜻을 이해한다.
아래는 BBS 불교방송 상무, 불교신문 주필, 편집국장인 홍사성 상무의 글입니다.
왜 팔정도를 닦지 않는가?
- 홍사성 -
부처님이 마가다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들과 강가에 나갔던 부처님은 강 가운데로 큰 나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쳤다.
“만일 저 나무가 바다에 이르고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쪽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아야 하며, 중간에 가라앉거나 언덕위로 오르지도 않으며, 사람이나 또는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물길을 거스르지도 썩지도 않는 여덟 가지 장애가 없어야 무사히 바다에 이른다.
수행자들이 수행을 하여 열반의 바다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다. 이쪽저쪽 언던에도 닿지 말아야 하며, 중간에 가라앉거나 언덕위로 오르지도 않아야 하며, 사람이나 또는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물길을 거스르지도 썩지도 않아야 열반의 바다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열반이란 바른 소견[정견], 바른 사유[정사유], 바른 말[정어], 바른 업[정업], 바른 생활[정명], 바른 노력[정정진], 바른 사념[정념], 바른 선정[정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난다라는 소치는 목동이 이 말을 듣고 자기도 출가하여 열반의 바다에 이르고 싶다고 했다. 부처님은 출가하고 싶다면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고 오라고 했다. 그는 소를 돌려주고 와서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되었다.
이를 지켜본 어느 수행자가 부처님이 비유로 말씀한 ‘이쪽저쪽 언덕’과 ‘여덟 가지 장애’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이쪽 언덕이란 이 몸이요, 저쪽 언덕이란 이 몸이 없어진 것을 말한다. 중간에 가라앉음이란 욕망과 애착이요, 언덕 위에 오른다는 것은 욕심을 말한다.
사람에게 붙잡힘이란 그 공덕으로 국왕이나 대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힘이란 그 공덕으로 천상락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길을 거슬러 되돌아온다는 것은 의심을 말하는 것이며, 썩는 다는 것은 여덟 가지 바른 길[팔정도]을 닦지 않고 그 반대의 삿된 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난다비구처럼 갓 출가했음에도 스스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여덟 가지 장애를 물리치고 수행을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게 되리라.“
<증일아함경 36권 마혈천자품 제3경>
불교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무고안온(無苦安穩)한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열반은 불교도가 추구하는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이 최고의 행복, 최후의 행복에 도달하려면 보다 진지한 노력과 수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겉으로만 수행자 흉내를 내거나, 말로만 수행을 한다고 해서는 결코 열반에 이를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진지하게 팔정도를 닦아나가는 사람이 드물다. 머리만 깎고 승복만 걸치고 있으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출가자나, 이절 저절 왔다 갔다 하면서 남의 흉이나 보고 잘난 척하는 재가불자가 너무 많다. 모두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입으로만 수행을 햐러고 한다.
그렇게 하면 열반의 길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수행은 절반은 놀고 절반은 쉬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물질을 보면 욕심을 못 버리고, 화나는 일을 만나면 참지 못하고, 지혜로운 충고를 받고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심지어는 “내가 지옥에 가더라고 너는 용서 못한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부처님은 이 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조용하게 타이르고 있다. 그렇게 하다가는 욕망과 애착에 붙들려 윤회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시 나는 지금 열반으로 향하는 거룩한 물결[예류(豫流)]을 역류시키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의 발밑을 살펴볼 일이다.
옮겨온글
동하합장()()()♡
꽃사진ㅡ최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