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0 장 : 예레미야 애가, 오바댜(바벨론 강가에서) 2 -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시 137편은 포로들이 낯선 이국땅에서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1-3). 그들은 예루살렘을 애타게 그리워하며(4-6), 예루살렘의 멸망을 도운 에돔(7)과 멸망시킨 바벨론(8)의 파멸을 위해 간구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후손들은 두 차례에 걸친(주전 596,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지중해 연안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들에게 임했던 모든 재난들은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를 부분적으로 끝맺게 하였지만, 이로 말미암아 또 다시 새로운 역사가 싹트게 되었다.
1. 주전 586년 이후의 유다의 지리적 상황
1] 국가 조직의 해체
유다는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국가 조직이 완전히 해체되고,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전 지역을 완전 파괴시켰기 때문에 재건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유다의 요새지 성읍들은 포로 기간 동안 줄곧 황폐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고고학의 발굴들).
2] 유다 지역이 둘로 분단됨
이때 유다의 영토는 둘로 나뉘어졌다. 일부분은 북쪽 사마리아에 편입되고 나머지 영토는 에돔 족속(사해 남동쪽에서 헤브론으로 옮김. 이두메아인이라 불림)에 의해 점유되었다.
2. 각 지역으로 흩어짐
유다에 남은 사람들은 경제적, 정치적인 고역을 견디다 못해 새 삶을 꿈꾸면서 이민을 가기 시작했으며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예루살렘 안팎에서 근근이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1] 애굽
국수주의자로 다윗의 혈통인 이스마엘을 중심한 군부 지도자들은 이 지역의 총독 그달리야(그다랴)를 살해했다. 그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애굽은 유다 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고, 100년 후에는 유다 후손들이 나일강 어귀에 있는 엘레판틴섬(현재 아스완 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아낫 여신에게 함께 예배를 드리는 혼합 종교 의식이 생겨났다. 애굽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예루살렘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후에 유대인들은 알렉산드리아와 그 외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고 헬라 시대에는(주전 333년 이후) 애굽이 사실상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2]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
수많은 유대인들은 애굽과 지중해 연안에 있는 여러 나라로 이민을 가서 나라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나라 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보다 더욱 많아졌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인 공동체를 조직했으며,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3] 바벨론
1)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얼마나 되는가?
일반적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감옥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사실은 많지 않았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4,600명 정도로(렘 52:28-30) 남자들만 말하는 것이라 해도 전체 포로의 수는 15,000명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2) 자유로운 생활
바벨론의 포로들은 그 곳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일정한 거처를 정하여(겔 8:1-) 공동체 생활을 하거나 현지 주민들과 합류하여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당시 반 유대인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데에 큰 불이익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들이 접촉하고 있는 바벨론 문명이 고국에서 경험한 문명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은 목축과 농사에 의존한 생활에서 벗어나서 고도로 발달된 농업 기술과 산업 시설들을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회당의 발생
특히 바벨론 포로 시대에는 상당수에 달하는 유다 백성들이 예배와 연구를 위한 모임들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 시기에 회당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회당이란 말은 "함께 모인다."는 뜻을 가진 헬라어 "쉬나고게"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던 많은 지역에 회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4] 포로 기간 중의 신학적 활동
1) 새로운 환경에 맞는 신학의 필요성
수세기 동안 이스라엘 영토는 일정한 지역에만 국한되었다. 족장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고, 예루살렘의 성전에 계신다고 굳게 믿었다. 주전 597년과 586년에 일어난 바벨론 포로 사건들은 그들의 통속적인 생각에 큰 변화를 주었다. 바벨론이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 땅을 점령했으며,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어 버렸다. 택함 받은 백성들은 낯선 이국땅으로 끌려갔으며, 그 곳에서 약속의 땅보다 더 좋아 보이는 문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벨론의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자랑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보잘 것 없는 건물임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신 인가?에 대하여 혼란을 느끼며, 바벨론의 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크고 위대하게 생각되었다.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신앙을 포기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력을 느끼며, 급기야는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런 환경이 신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된 것인가?", "과연 그 약속은 지켜질 것이며, 지켜진다면 어떤 방법으로 지켜질 것인가?", "하나님은 약속의 땅이 아닌 바벨론에 있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실 수는 없는가?",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바벨론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가?"
그들에게 많은 의문점들이 발생하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자신들의 환경이 확장됨에 따라 가나안을 벗어난 세계적 안목을 가져야 했으며, 새로운 상황을 극복해야했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세계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나님께서는 역경을 통하여 택한 백성들의 신앙을 넓고 풍부하게 확장시켜 보다 성숙된 신앙관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들은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하여 조상들의 신앙을 연구하였고,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어 그것을 보존하였다. 이런 기초 공사는 주전 597년과 586년의 대 재난이 있기 전에 다져졌다. 선지자들은 오래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지 않으며, 참된 예배는 특별한 장소나 어떤 의식을 행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지역적인 문제나 건물, 제사 의식과 같은 외적 요소보다 공의와 자비, 사랑,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이 바벨론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능케 하고,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통하여 형식과 외식을 버리고 자비와 공의와 경건을 되찾게 했다.
2) 제사 공동체에서 율법 공동체로
바벨론 포로들은 약속의 땅과 성전을 잃었지만, 역사와 전통은 고수하였다. 자신들과 후손들이 왜 포로가 되었는지를 율법을 통해 발견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통하여 자신들이 포로가 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불성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율법을 연구하여 실생활에 적용시켜 실천하려고 하였다. 후손들이 자신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러한 내용들을 정리하여 후세에 남기려 하였다. 이런 운동으로 바벨론에서 여러 권의 책들이 편집, 완성되었다(왕하 25:27-30).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에 있을 때보다 포로 기간 동안에 율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결과를 문서화하여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 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민족과 다른 점을 율법들을 지키는데서 찾으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가능한 길이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출 19:6-).
그들의 생각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지속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게 되고, 성전을 중심한 제사 공동체에서 율법 공동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배후에는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단하여 정결케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율법을 버리고 죄악으로 물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여 포로 생활을 통해 그들의 죄를 씻고 자원하여 율법을 지키는 백성으로 만들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과 율법을 잊어버린 백성들은 이러한 연단 과정을 통하여 찌끼를 제하고 자원하여 율법을 지키는 정결한 백성들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전해졌다.
3. 포로 기간 중의 문서 활동
포로 기간 중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예레미야 애가서와 오바댜서를 통하여 그들이 포로 된 이유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소망을 찾았고, 그들의 멸망을 동조하며 기뻐한 에돔 족속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살펴보자.
A. 예레미야 애가
애가는 주전 597년과 586년에 일어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유대인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1장에서는 주전 597년의 예루살렘 점령 사건을 묘사하고, 2·4장에서는 예루살렘 멸망을 바라보는 기자의 슬픔이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또 다시 주전 586년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3·5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포로 이송이 끝난 후에 백성들이 직접 체험한 혼란과 기근, 정치적 압박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다. 그들을 심판하신 여호와께 호소하고 바벨론을 보복해 주실 것을 구하고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어떤 사상들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가? 유다는 실제로 엄청난 죄를 범하여 북 왕국이 당했던 것과 같은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그 직전에 요시야왕은 여러 부분에 걸쳐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성전을 정화하고 수리하였으며 지방 산당들을 철폐시킴과 동시에 각종 이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국가 생활의 중심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애굽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틈에 끼어 그들의 노리개 감이 되고 말았다.
바벨론으로부터 나라를 독립시켜 보려고 했던 유대인들의 노력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3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공을 불러오게 하여 나라를 멸망에 빠지게 하였다. 그렇다면 요시야의 개혁은 아무런 효험이 없었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바벨론의 신보다 힘이 없으신 분이란 말인가? 왜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약해지고 큰 고난을 당해야만 했는가? 애가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애가는 애도의 노래를 부르지만 죽은 시체를 향해 부르는 장송곡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다는 실제로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은 많은 고난과 슬픔을 당하였지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살아 계셨다! 그는 바벨론의 신에 눌려 힘을 못 쓰는 연약한 분이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을 조종하여 유다를 심판하신 장본인이셨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에게 무관심하시거나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지은 자기 백성을 적극적으로 징계하심으로 그를 더욱 신뢰하고 순종하는 백성들로 만드셨다(1:13-15, 2:1-8,22, 3:1-18,43-45 등). 따라서 애가서는 여호와는 살아 계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유다를 연단하는 기간이 끝나면 여호와의 분노는 자기 백성을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자비로 바꾸어지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1. 예레미야 애가의 배경
1] 저자 : 예레미야
2] 제목 : 애가 "슬프다"
3] 히브리 성경에서의 위치
지혜서에 포함되어 있고, 주전 586년과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일인 7월 중순에 읽는다.
4] 문학양식
각 장이 한편의 시로 구성됨. 5장을 제외한 1-4장은 모두 답관체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각 처음 글자가 히브리어 22개의 알파벳의 순서를 따름) 특히 3장은 한 문자 당 3절씩 기록해서 총 66절이 되었다.
2. 예레미야 애가
예레미야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다면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돌이켜보며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성전이 파괴되고, 성곽이 훼파되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처녀와 소년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고, 기근으로 여인들이 자기 태의 열매를 먹는 암울한 세대에 예레미야는 "슬프다"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며, 이것이 아침마다 새롭기 때문에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노래하였다.
1] 1장 : 예루살렘의 몰락에 대한 슬픔과 중보기도
1) 황폐한 예루살렘(1-11)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성읍은 텅 비었고 수치를 당하고 있다. 그들은 비참하게 낮추어졌고, 바벨론에 예속되었다.(1)
그들이 좋은 친구로 생각했던 자들은 오히려 파괴하는 일에 협조하였다.(2)
유다는 포로로 끌려갔으며 쉴만한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3)
성전은 아직 남아있어 제사장도 임무를 수행하지만 그 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는 없다. 모든 것은 적막하고 예루살렘은 유령의 도성이 되었다.(4)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든 것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다.(5)
정복자들은 그들에게서 고상함을 빼앗고 지도자들은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6)
원수들은 그들을 깨뜨려 재산을 빼앗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7)
그들은 완전히 수치를 당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8)
그들은 생리 중의 여인같이 부정하여 아무도 곁에 가지 않았다.(9)
침략자들은 이방인이 들어갈 수 없는 성전을 더럽히고 그 안의 보물을 탈취했다.(10).
백성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허덕이고, 그 고난 중에 자신들의 비천과 곤고함을 돌아보시도록 여호와께 애타게 부르짖었다(11).
2) 예레미야의 중보기도(12-22)
현 상황은 하나님 때문이었다.(12) 여호와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죄를 범한 그의 백성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그들보다 강한 자에게 붙이셨고, 기자는 슬픔으로 눈물을 물같이 흘렸다(13-16). 예루살렘 성읍을 위로할 자는 아무도 없으며 가까운 이웃까지도 그들을 무시하였다(17). 그러나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연단하신 후에 구원해 주시기 때문이다(18). 그들은 동맹국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에게 사기를 당했으며,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음식을 구하려다 지쳐 쓰러졌다.(19)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는 것이며, 여호와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주실 것을 간구하는 일이었다.
"여호와여 우리의 멸망을 비웃는 저들도 우리가 당한 일을 당하게 하옵소서!"(20-22)
2] 2장 : 멸망의 이유와 간구
1) 예루살렘 멸망의 이유(1-10)
여호와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사건들의 배후에 계셨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먹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던지셨다. 모든 가옥을 삼키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다. 진노하신 모든 성을 무너뜨리고 지도자들이 모욕거리가 되게 하셨다(1-3).
친히 이스라엘의 원수와 대적이 되셔서 궁전과 성을 무너뜨리고 시온을 근심과 애통으로 덮으셨다(4,5). 성전은 천막같이 엎어졌으며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여 모든 제단과 성소를 헐어 원수의 손에 붙이셨다(6,7). 여호와께서 성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원수들의 손에 붙여 왕과 지도자들은 이방으로 끌려갔으며, 선지자들은 묵시를 받지 못하고, 장로들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쓰고 땅에 앉았으며,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다(8-10).
기자는 멸망당한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애곡하였다(11). 어린이들은 음식이 없어 죽고, 상처가 커서 고칠 수 없게 되었다(12,13). 유다가 멸망한 것은 사이비 선지자들이 그들을 인도했기 때문이다(11). 지나가는 자들은 다 예루살렘을 비웃었다. 이 일을 이루신 분은 여호와셨다(12-17). 이 일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분은 그들을 치신 여호와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기자는 시온을 향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간구하도록 독촉하고 있다(18,19).
2) 슬픔과 긍휼을 호소함(11-22)
기자는 여호와께 긍휼을 호소한다. 여인이 자기 아이를 먹으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는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고, 노인과 어린 아기와 처녀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기자는 여호와께 이러한 일들을 돌아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