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흥미로운 주제를 들고 왔어요. 성경의 원어, 특히 신약 성경의 헬라어 문법 이야기인데요. ‘문법’이라고 하면 머리부터 아프지만, 이 이론을 이해하면 성경을 읽을 때 ‘아, 저자가 이걸 강조하고 싶었구나!’ 하고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Stanley E. Porter라는 학자인데요. 이 분이 헬라어 동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주제는 바로 ‘동사상(Verbal Aspect) 이론’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질문 하나 던져볼게요.
🎧 1. 전통적인 문법이 실패한 이유: ‘너는 죽었어!’
보통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문법처럼, 우리는 동사의 ‘시제(Tense)’는 곧 ‘시간(Time)’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일, 현재 시제는 지금 일어나는 일, 이렇게요. 헬라어 문법 역시 오랫동안 이런 전통적인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제 = 시간’이라는 공식은 현실 언어에서 늘 깨집니다. 청취자분들과 제가 나눈 대화 속에서 기가 막힌 예시가 나왔는데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강한 경고를 할 때, 뭐라고 하죠? “너, 이렇게 하면 너는 죽었어!” 라고 하죠.
자, 이 말을 할 때 ‘죽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과거 시제’인 “죽었어”를 쓸까요? 미래를 말하면서 과거 시제를 쓰는 이 비논리적인 상황! 전통적인 문법으로는 ‘예외’로 치부하거나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Porter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헬라어 동사 형태 역시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표시한다고 본 겁니다. 그리고 그 ‘다른 무언가’가 바로 ‘상(Aspect)’입니다.
🎧 2. Porter의 핵심: 시제가 아니라 ‘관점(Viewpoint)’이다
Porter가 말하는 ‘상(Aspect)’이란, “화자(저자)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아니라, 사건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과 같다고 생각하면 아주 쉽습니다.
헬라어 동사는 주로 세 가지 앵글(상) 중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여 사용합니다.
① 완결적 상 (Perfective Aspect)
주로 사용되는 형태: 부정 과거 시제 (Aorist Tense)
카메라 앵글:외부 촬영, 전체 그림.
담화 기능:배경층(Background). 서사의 기본 뼈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사실적으로 보고할 때 사용됩니다.
② 비완결적 상 (Imperfective Aspect)
주로 사용되는 형태: 현재 시제, 미완료 시제 (Present, Imperfect Tense)
카메라 앵글:내부 촬영, 슬로우 모션.
담화 기능:전경층(Foreground). 핵심 사건 흐름, 독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진행 과정을 나타냅니다.
③ 상태적 상 (Stative Aspect)
주로 사용되는 형태: 완료 시제 (Perfect Tense)
카메라 앵글:결과만 정지 화면.
담화 기능:최전경층(Frontground). 담화에서 가장 의미적으로 강조되는 부분, 신학적 결론이나 정체성 선언을 할 때 사용됩니다.
🎧 3. 누가복음의 실제 사례: 치유보다 ‘구원’
이 이론을 신약 성경에 적용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나병환자 열 명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있죠. 이 본문을 분석해보면:
1. 치유 사건의 보고: 나병환자들이 깨끗하게 된 것은 부정 과거 (완결적 상)로 서술됩니다. $\rightarrow$ 배경층입니다. (그냥 일어난 일).
2. 구원 선언: 예수님이 마지막에 돌어온 사마리아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구원하였느니라’는 완료 시제 (상태적 상)입니다. $\rightarrow$ 최전경층입니다.
결론: 이 본문의 진정한 의미적 초점은 나병이 나은 것(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결과로 구원이라는 확정된 상태가 이루어졌음(최전경)을 선언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동사상의 선택이 명확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 4. 다음 시간에 미리 보는 핵심 사례 (Quick Preview)
자, 이제 이 동사상 이론이 성경의 다른 중요한 구절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몇 가지 사례를 미리 볼까요? 성경을 읽다가 습관적으로 명령문이 나오면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만, 헬라어 동사상으로 보면 그 ‘하는 방식’까지 지정하고 있습니다.
1) 명령법 (Imperative)의 종류: 한 번 vs. 계속
헬라어 명령법은 두 가지 동사상 중 하나를 사용하며, 이는 명령의 성격을 완전히 바꿉니다.
비완결적 상 (현재 명령법):
완결적 상 (부정 과거 명령법):
2) 요한복음의 ‘믿는다’ (Pisteuō)의 의미 심화
요한복음에서 ‘믿는다’($\pi \iota \sigma \tau \epsilon \acute{u} \omega$)는 동사가 완결적 상(부정 과거)으로 쓰일 때와 비완결적 상(현재 시제)으로 쓰일 때가 다릅니다.
세부적인 의미를 서술형으로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비완결적 상으로 쓰인 ‘믿는다’는 동사는 지속적인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그리스도와의 끊임없는 신뢰와 관계 유지라는 해석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에 완결적 상으로 쓰인 ‘믿는다’는 동사는 특정 순간의 결단에 초점을 둡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시작점, 일회적 사건이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이처럼 동사상 이론은 우리가 한 단어를 획일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저자가 그 순간 어떤 뉘앙스와 강도를 전달하려 했는지 미묘한 신학적 의미까지 파악하게 돕습니다.
🎧 마무리
결국 Stanley E. Porter의 동사상 이론은 우리에게 헬라어 동사를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저자의 관점과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헬라어 동사는 단순히 ‘언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무게와 의미를 담아 그 사건을 봐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동사상 이론이 성경의 다른 중요한 구절, 특히 서신서의 윤리적 명령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