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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감사결과, 인사운영 및 예산회계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특히 회의비 32억, 교육훈련비 34억 중 업무추진비, 회의비 등을 단란주점, 호텔, 노래방, 해외출장 등에 공단 법인카드로 지불한 것이 알려지며 공단이 국회와 언론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러자 공단 사측은 ‘카드로 지출된 유흥비는 노사협력적 체제구축을 위해 노조 간부들의 회식비 등에 사용한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로 이사장이 공단 내 자신의 세력형성과 노조 길들이기 내지 어용화를 위해 실제로 상당 액수를 사용하였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이런 와중에도 사보노조 집행부는 자체조사는 커녕 성명서 하나 제대로 못 내고 속으로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사례는 그 동안 파행적이고 퇴행적으로 운영된 노조의 부패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보노조는 지난 10여 년 간 자연발생적 노조활동과 투쟁을 통하여 성과를 거두어 왔다. 그런데 이 과정을 겪으며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노조를 단지 임금인상과 승진을 요구하면 자동적으로 가져다주는 자판기처럼 여기는 도구주의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IMF이후 큰 투쟁의 성과가 미미하자 조합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고, 조합 내에서도 투쟁보다 보건복지부나 국회의원에게 로비를 하며 ‘효율적’으로 노조 운영을 주장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게다가 노조집행부는 1년 내의 짧은 임기동안 가시적 성과를 내서 조합원의 신임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결국, 조합원의 실리적 요구와 노조집행부의 단기실적주의적 행태가 맞물려 노동조합 내에 실리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리주의는 처음은 몇 차례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있으나, 결국 그 덫에 걸려 파멸하게 되는 마약 같은 존재다.
사측은 겉으로 ‘노사상생’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조치들을 준비하고 있다. 공단 이사장은 정부의 외압을 막아줄 자기 세력을 만들기 위해, 특1급 6명을 내부기용하고, 1,2급 인사에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배치하고 있다. 동시에 민주적인 노조활동을 하는 조합원들은 원거리전보, 해고, 중징계 등으로 탄압하는 한편, 협력적인 노동조합간부들을 사측공청회 등의 행사로 끌어들이는 등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자기 세력기반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반면 현 노조 집행부의 소위 실리주의적 대응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리주의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승진과 임금인상을 위한 협상에 매달리며, 노조의 기본운영 수단이자 향후 구조조정에 대비할 무기들을 모두 사측에 내주었다. 노동조합 사무실과 노동조합활동 시간을 축소시키고,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시켰고, 노동강도를 더욱 강화하면서 주 5일제를 수용했다. 한술 더 떠 노조는 노사공동체육대회, 노사화합해외여행, 사회공헌활동, 유답교육, 공청회 노사공동참가 등의 사안에 적극 협조함으로서 완전히 사측의 하위파트너, 사실상 노사협력부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 결과 현장은 밀리고 있다. 이미 실적제가 지사별로 시행되고 있고,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가 예고되었다. 그리고 고객센터에 채용된 400명의 비정규직은 공단 구조조정 과정에서 앞으로 확산될 비정규직화와 아웃소싱의 성공한 모델로 널리 홍보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의 후퇴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리문제가 불거지며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공단의 인력과 관리운영비를 줄이고 건보재정효율화를 위해 외부조직진단과 함께 감사원 감사청구와 6월 임시국회에서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요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미 작년 초 감사원은 유사한 연금공단이 전국 80여개의 지사로 운영된다며 건강보험공단의 지사축소를 요구한 바 있다. 게다가 정부차원으로 민간의보도입이 추진되고 있고, 한미 FTA협상 결과는 건강보험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사보노조는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당장의 현안에만 매달리면서, 조합에게 독화살이 되어 돌아올 단기실적주의에 집착해 지금의 화를 불렀다. 따라서 앞으로 사보노조는 자본이동의 자유화, 정부의 규제철폐,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큰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부와 사측의 노동자들에 대한 전술을 철저히 분석해 총체적인 대응방향을 세워야 한다.
그와 함께 각 정파와 집행부는 그 동안의 투쟁과 활동을 철저히 평가함으로써 향후 투쟁방향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무책임하게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조합 활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풍토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