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번째 감각 : 맛보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8편 8절)
18
스티브(Steve)는 멋쩍어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마을 커피숍에 있는 저에게 걸어왔습니다.
“저 죄송한데요,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럼, 스티브. 무슨 일이야?” 저는 말했습니다.
“음, 제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요, 제가 아무리 기도를 해봐도, 하나님의 뜻이 뭔지 모르겠어요.”
“어떤 문제인데?” 저는 물어봤습니다.
“제가 애빌린(Abilene), 애머릴로(Amarillo), 댈러스(Dallas), 이 세 지역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어요. 모두 다 너무 좋은 기회인데, 저는 하나님의 최고 선택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고집이 좀 세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제게 어떤 걸 바라시는지 모르는 채로 제 마음대로 선택하고 싶지가 않아요.”
“아, 그렇구나.” 저는 말했습니다. “이건 우리 기독교인들 중 많은 이들이 겪는 문제란다. 특히 너처럼 젊은 사람들과 커다란 결정을 내리기 앞선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단다.”
“맞아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는 제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희망을 안고 제게 물어봤습니다.
“스티브, 내가 지금의 너와 비슷한 나이일 때, 나 역시 너처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여러 차례 고민의 고민을 했단다. 나는 바짝 얼어붙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수도 없이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했어. 그러다가 나는 만일 내가 잘못된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내가 듣지 못해서 생긴 문제일거라고 생각하게 됐단다.”
“맞아요!” 스티브는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 제가 느끼는 거예요.”
“좋아, 스티브. 모든 것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을 말해줄게. 그것은 애머릴로(Amarillo)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란다. 또한 애빌린(Abilene)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 안에 있는 것이란다. 물론 댈러스(Dallas)에 있는 것도 아니란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란다.”
“성경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라던지, 아침에 어떤 시리얼을 먹으라는지 등의 하나님의 비밀 메시지를 기다리라고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단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란다. 그것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놓칠 수 없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분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분과 대화를 하며, 그분의 열매를 맺는 것이란다. 너는 애머릴로, 애빌린, 댈러스에서 그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어. 하나님은 그 세 장소에 모두 계셔. 그분은 단지 우리의 생명이 되고 싶어하시지! 그것이 그분의 뜻이야.”
스티브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를 바라보고, “그렇다면… 고민은 끝난 건가요?”
“그럼.” 저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예수님으로 먹고 마시면, 우리는 절대로 목마름과 굶주림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단다. 우리 안에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의 고민은 끝난 거야.”
이틀 만에, 스티브는 직장을 결정했고 몹시 흥분해서 이사를 위해서 짐을 꾸렸습니다. 마을을 떠나면서, 저에게 쪽지를 남겼습니다. “저의 삶이신 예수님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그게 그렇게 단순한 것인지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믿음의 중심
스티브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놓칠 수 있고 더 하찮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 마음에 두려움으로 자리 잡은 보편적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도전입니다. 희망이 없는 미래(혹은 희망이 적은 미래)로 빠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신 거라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시 34:8)”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몰래 계획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사항”을 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이 대중적인 가르침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 여기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은 과녁의 중심인, 불스 아이(Bull’s-eye)와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관대한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은 불스 아이(Bull’s-eye)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테두리 부분과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벗어난” 영역인, 과녁 판의 검정색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벗어난 영역에 속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과녁의 중심을 명중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신다면, 여러분은 언제나 좋은 집, 좋은 배우자, 좋은 일자리, 좋은 교회 등 좋은 결정만을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잘 따라간다면, 여러분은 인생을 부드럽게 항해해 나갈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분의 뜻을 여러분이 명확하게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러분의 삶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죄를 자백하면, 여러분은 다시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신앙 체계는 위험합니다. 저는 그러한 신앙 체계가 사람들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까지, 자동차 헤드라이트 앞의 사슴처럼 가만히 서서 옴짝달싹 못합니다. 다른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움직였고, 지금은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지? 나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했어!”라며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수년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뜻을 듣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들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내가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나 봐. 그런데 분명히 난 모든 죄를 자백 했는걸? 내가 하나를 빠뜨렸나?” 그리고 그들은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행동들을 연결 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침묵하시게 만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시점에서, 그들은 십자가가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믿기를 그만 두고 기독교적 인과응보 같은 것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복과 같은 것을 믿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진리
왜 이 모든 것들이 틀렸다고 하십니까? 우선,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우리가 들락날락하는 회전문처럼 단 한번도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을 간단히 훑어보기만 해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고(요 15:8);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살전 5:17~18);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엡 1:11~13; 2:11~13); 그 복음은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단순하고 간단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 결정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서신에서, 그는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고전 9:5)”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어떤 결정을 합니까? 아마도 초기 교회의 위험성 때문에, 바울은 독신으로 살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결혼할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선택 안에 자유가 보이십니까?
우리는 여행 계획에서 이와 비슷한 점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그들을 방문할 계획을 여러 번 세웠지만 여태까지 길이 막혔다고 이야기합니다(롬 1:13). 여러분은 정말로 사도 바울이 길이 막힌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수정 구슬이 있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가 실현 불가능한 계획에 정말로 시간을 낭비했습니까? 맞습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많은 부분을 어둠 속에서 지냈습니다.
의를 좇음
우리가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의로움”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의로움은 하나님이 택하신 것들의 비밀 목록을 찾거나 행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다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의로움을 붙잡고 그 의로움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한 없이 깊은 구덩이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틀림 없이, 이 자유는 처음에는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견고한 생각, 책임감 있는 선택, 삶의 모든 문 뒤에 서 계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야기합니다. 그것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깨어나고 주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이것이 천국이 우리가 알기를 바라는 자유입니다.
천국에서 온 메시지
나의 새로운 길이 의미하는 바는, 네가 나의 성령의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이란다. 나는 네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않았으며 내 안에서의 견고한 마음을 주었단다. 이것을 네가 어떻게 해서든 발견해야만 하는 신비로운 계획의 묶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최고의 것을 놓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거라. 아버지의 뜻은 바로 나란다. 아버지의 뜻은 네가 나의 생명을 표현하는 거란다. 그분은 단지 네가 매 순간 나를 선택하고 나의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거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너의 생명을 위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거란다.
나는 네 마음과 생각 속에 나의 바람을 두었고,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너와 함께하리라고 다짐했단다. 너는 내게 속하였고 본능적으로 나를 알고 있단다. 나와 나의 뜻이 너와 멀리 떨어져있는 것처럼 네가 나를 찾을 필요는 없단다. 나의 새로운 길을 통하여, 나는 너를 내 곁에 두었단다. 나는 언제나 네 뒤에 널 도우며, 너보다 앞서서 싸우고 있단다. 난 언제나 너와 합한 영이란다. 이것이 네게 약속한 나의 언약이란다.
나의 성령은 거듭해서 네가 내게로부터 태어났다고 확증한단다. 너는 나의 부활을 통해 태어난 나의 자녀란다. 네가 나를 아는 것이 너의 소중한 소유란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 너의 유일한 사명이란다. 내가 너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길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을 들어보렴. 나와 대화하며 내가 너에게 베푼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거라. 그렇게 할 때, 너는 너의 삶을 향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할거란다.
나의 선함을 맛보고 깨달으렴. 사랑한다.
예수님이
천국을 향해 깨어나기
예수님, 제가 어둠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을 필요 없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은 제게 명확하게 주님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저를 구원하길 원하셨고 정말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저와의 관계 속에서 제게 말씀하시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며, 주님의 모습으로 만들어가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은 제 삶에서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제 안에서 주님이 스며 나오시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지, 주님은 저와 함께 계십니다. 제가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에도, 주님은 저와 함께 하시고 저의 선함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 저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천국은 다음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합니다:
▶고후 3:17; 5:18 ▶갈 2:4 ▶딛후 1:7 ▶요 15:8~9
▶골 1:17, 22 ▶벧전 2:9 ▶시34:8 ▶히 6:5, 13~19, 8:10~11
▶빌 3:8; 4:13 ▶벧후 1:4 ▶롬 8:16 ▶살전 5:17~18
▶고전 2:13; 6:17 ▶눅 20:36 ▶렘 29:13; 31:34
첫댓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이 글은 매우 유용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신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이런 의심 가운데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또는 내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은 믿음의 확신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희수 군의 번역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법 정도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