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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徐廷柱)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시어, 시구 풀이] 추천(鞦韆) : ‘그네’ 또는 ‘그네 타기’ 베갯모 : 베개의 양쪽 마구리에 대는 꾸밈새 뇌이듯한 : 수놓아진 듯한 향단(香丹)아, : 호격의 시어를 사용하여 이 시의 표면적 청자(聽者)를 드러냄과 동시에 시의 화자가 ‘춘향’이라는 허구화된 인물임을 알려 주는 말이다.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 꾀꼬리들로부터, : 현실 세계의 사소한 인연과 애증을 대신하는 사물로부터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 :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한 곳 밀어 올려다오. : ‘그네’의 속성상 아무리 높이 솟아도 결국은 한 곳에 묶여 있기 때문에 현실을 초월하지는 못하지만 그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서(西)으로 가는 달 : ‘달’은 거리낌없이 가는 행운 유수(行雲流水) 같은 존재를 의미하며, ‘서(西)’는 불교적 차원의 세계, 즉 초월적 공간을 나타낸다.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 현실을 떠나 욕망대로만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나타나 있다. [핵심 정리] 지은이 :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 호는 미당(未堂).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 김광균,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하였는데 흔히 그들을 생명파라 불렀음.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을 갖기도 했으나 후기에는 동양의 정신을 추구하는 시를 많이 써 그 시적 깊이가 심화되었다. 시집에 <화사집(花蛇集)>, <귀촉도(歸蜀道)>,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冬天)>, <질마재 신화> 등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낭만적. 전통적 어조 : 간절한 호소 및 갈망의 어조 특징 : 고전적 소재의 현대적 의미 부여. 현실과 이상의 대립과 갈등을 운율, 이미지, 어조 등과 유기적으로 조화시켜 치밀한 구조를 형상함.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한 리듬의 형성 구성 : 1연 이상 세계의 추구(현실 초극의 의지) 2연 현실 삶의 인식 3연 초월적 세계에의 갈망 4연 삶의 한계성 자각 5연 지향하는 세계에의 자각 제재 : 그네 뛰는 춘향 주제 : 현실 초월에의 갈망 출전 : <서정주 시선>(1955) ▶ 작품 해설 시의 화자가 특정인의 목소리를 빌려 온 가상의 존재로 나타날 경우 시인은 그 인물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대신 표현할 때가 많다. 이 작품은 ‘춘향전’이라는 고대 소설에서 모티프를 빌려 온 것이기는 하지만 시 속에 담긴 이야기는 반드시 춘향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춘향의 그네 타는 모습과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심정은 곧 허망한 현실적 세계로부터 영원한 초월적 세계로 향하려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대변한다. 이것은 드높이 날 수는 있지만 지상에 묶여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그네’의 속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대화의 형식과 명령법의 문체를 구사하여, 설화적인 심상과 소망의 간절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보여 준다. 아울러 ‘수양버들나무’, ‘풀꽃데미’, ‘나비 새끼’ 등 지상 세계를 상징하는 심상과 ‘하늘’, ‘구름’, ‘달’로 대변되는 천상 세계의 심상이 대립되어 화자의 내적 갈등을 극대화시켜 준다.
1연은 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화자의 심정이 표현되었다. ‘머언 바다’는 화자가 지향하는 초월적 세계이다.
2연은 쉬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인연과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아주 내어 밀듯이’는 뒤로 돌아보면 유혹당하여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구이다.
3연은 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바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밀어 올려다오’의 반복은 화자의 감정이 상승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특히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에서는 초월적 세계를 지향하는 춘향의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4연은 인간의 운명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그네를 통해 초월 세계를 꿈꾼 화자는 그넷줄에 매인 몸이 되어 좌절과 한계를 맛볼 수밖에 없다.
5연은 초월 세계로의 지향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운명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나 그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심정이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를 통해 잘 드러난다.
<참고> ‘추천사’의 형식과 의미 이 작품은 ‘춘향전’이라는 널리 알려진 고전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여, 소설의 주인공인 ‘춘향’의 목소리를 통해 시의 내용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시의 화자는 일종의 가면(탈)을 쓴 시적 화자로, 시인에 의하여 새로운 시적 해석을 부여 받은 창조적 인물이다. 원래 ‘춘향’의 소설적, 고전적 의미는 봉건 사회의 질곡 속에서 자신의 불행한 삶을 벗어나려는 고뇌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 부여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의식과 이해의 지평이 작용한다. 시인은 이러한 ‘춘향’의 인간적, 내면적 고뇌로부터 인간의 숙명과 초월에의 의지라는 보편적 인식의 주제를 이끌어 내고 있다. 따라서 통속적으로 흐르기 쉬운 제재를 시인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독창적인 주제로 승화한 것은 이 시가 최대의 강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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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천사 시 감상 잘하고 갑니다
감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