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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은혜의 세 단계.2부.
이 시간에는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구체화 시켜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참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부분에서 “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4생물중 하나인 독수리의 기름부음을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독수리는 보다 높이 올라가서 멀리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지금은 하늘에 속한 독수리의 시대이며,
계시록10장7절에 예언된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하도록 보내진 일곱 번째 사자에 의해서 하나님 안에 비밀로
쌓여 있었던 천사들에게도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그분의 신비가 표명되고 있고, 건축자들에게 쓸모없다고
버려진 머릿돌 계시가 표명되는 성경의 역사 중 가장 영광스런 시대이며 절정(하이라이트)의 시대입니다.
말라기4장5~6절에 예언된 선지 엘리야의 사역을 통해 자녀들인 이방인 마지막 신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인 초대 사도들의 믿음으로 회복시켜서 이방인들의 첫 번째 교회 시대 사자였던
사도 바울이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동일한 계시를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 창세전에 하나님 안에 가지고 계셨던 그분의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그분의 신비(비밀)를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글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선지자적인 통찰력이 요구됩니다.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었던 사도 요한은 성령 안에서 하늘에 있는 문을 보았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올라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보았습니다.
구약의 에스겔도 에스겔3장14절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네 생물에 이끌려 옮겨졌습니다.
마태복음24장40~41절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한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한 사람은 남겨지리라.
두 여인이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사람은 남게 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한사람(한 여인)만이 독수리의 영에 이끌려 계시 가운데 들어가 마태복음24장28절의 어디든지
시체(그 시대 입증된 말씀)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 말씀들이 우리 시대에 우리들이 눈에 볼 수 형태로 표명되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소개하는 글들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세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무식한 사람입니다. 사도요한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의 비밀을
보았고, 에스겔이 네 생물에 이끌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먹었던 두루마리 안에 있는 말씀을 전했듯이,
들에 있던 한 사람이 이 시대 보내진 독수리의 영에 붙들려서 그 시대 독수리들이 먹는 시체로 이끌려져
계시록10장8~11절에 있는 말씀처럼 힘센 천사(예수님)의 손에 있는 펴져 있는 책을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것은 제가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리아심에 의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그분의 풍성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쓰여 진 편지일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눈의 시대” 다음은 머리의 시대로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 돌 되신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해서 함께 연합하여
역사하는 시대입니다.
요한복음2:18.이에 유대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느냐? 하매
19.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20.이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 육년이 걸렸거늘 네가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느냐?
하더라.
21.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22.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셨음을 기억하고 성경 기록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고린도전서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로마서8:11.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게 빚지지 아니하였느니라.
13.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15.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18.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19.창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
20.창조물이 헛된 것에 복종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된 것이 아니요,
소망 중에 그것을 복종하게 하신 분으로 인한 것이니
21.이는 창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22.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23.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
25.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
26.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양처럼 만드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인도하지 못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양은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든지, 사탄의 영이든지 둘 중 하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이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받기를 거절하면 사탄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완충 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성전 삼아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통해서 으뜸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으뜸 됨을 표명하신 것처럼 인간 안에서 참된 경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8장15절에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노예)의 영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옥 가는 것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심판 받을까?
무서워서 마지못해서 말씀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두려워하는 속박의 영에 따라 행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의 성령”을 받든지, “속박의 두려워하는 영”을 받든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둘 중 어떤 영을 받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2장 말씀에서 그때에 너희도 이 세상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이 세상의 풍조 가운데 행하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5.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7.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 아무런 소망과 희망 없이 두려워하는 속박의 영에 노예로 사로 잡혀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지극히 크신 풍성하신 은혜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그 두려워하는 속박의 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늘의 처소들에 앉히셨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 안에서 그분을 기쁨으로 경배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4장10절에 사탄이 자신에게 경배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고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은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그분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하늘의 처소들에 앉히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들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해를 본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처럼 인간 안에서 경배 받기를 원합니다.
그는 두려움을 통해 속박시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시험한 것처럼,
사탄은 사람들을 이 세상에 있는 온갖 것들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서8장24~25절 말씀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마음(혼)에 계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소망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 지켜보았습니다.
더 이상 의문이 없을 정도로 다 알려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퍼즐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퍼즐을 맞추어 비유가 아닌 구체화 시켜 보겠습니다.
* 성경에서는 세 가지 필수 사항이 있습니다.
첫 째는 말씀을 오역(誤譯, misinterpret)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오 배치(誤配置, misplace)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로 말씀을 무질서하게 만들어서도(dislocate) 안 됩니다.
우리가 그 중 하나라도 하게 되면, 성경 전체를 혼란과 혼동 속에 빠뜨리게 됩니다.
인간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3장16절에 하나님은 사람의 혼(마음)을 성전삼아 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시내산 위에서 보여주신 그대로 자신이 거하실 성막을 지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깥뜰이 있고,
해달가죽으로 덮여진 성소와 지성소로 하나님의 영은 지성소 안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은 솔로몬 왕을 통해서 성전으로 지워졌습니다.
그 성전은 성전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었던 예표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은 사람의 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세에게 계시되었던 성막을 가지고 사람과 교회 시대를 구체화 시켜보겠습니다
먼저 성막을 사람으로 비교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이 그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의 첫 부분 바깥뜰은 사람의 육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안식하시지 않습니다.
성막의 두 번째 부분은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진 성소로 사람의 영의 부분에 해당합니다.
그 안에는 일곱 촛대와 진설병이 놓인 떡상이 있었고 지성소 있는 쪽으로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세상 빛이 차단되었고 일곱 촛대로부터 나온 빛이 진설병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곳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아닙니다.
세 번째 부분은 지성소로 사람의 혼의 부분에 해당합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놓여 있었고, 법궤 안에는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구약과 신약)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속죄소가 있었고 일 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속죄소에 뿌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속죄소 위에 네 생물을 정금으로 쳐서 만든 그룹 둘을 양쪽 날개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곳은 지성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은 변함이 없으시며, 야고보서1장17절에서 말씀하듯 하나님은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완전한 지혜를 갖고 계심을 받아들여야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그분의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에 의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사탄의 속임수와 미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시기 위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 한 부분을 잘못 해석하여 불순종함으로 사망을 불러들였습니다.
사탄이 노리는 부분이 그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의 말씀의 사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가장 강한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무리 강한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어느 한부분에서 사슬은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독수리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곱 교회 시대의 견지에서 이 주제를 구체화 시켜야할 때입니다.
저는 어느 교회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저는 전혀 그런 뜻이 없음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교회에 다니시는 개개인을 존경합니다. 그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들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그분을 만나야만 채워질 수 있는 갈망의 씨를 넣어 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로, 또는 종교적인 생활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그것을 경험했고, 하나님을 말씀으로 만나지 않으면 그 갈증은 채워질 수 없음을 아십니다.
우리 사람은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도록 창조된 영적 존재들입니다.
조직이라는 교파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섬기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속박 시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에도 없는 말을 합니다.
저는 그 조직의 영을 비판하는 것이지 그 안에 계신 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에도 없는 것들로 교리로 만들어 놓고는 외우게 만듭니다.
성경에도 없는 부활절날 계란을 나누어주고, 교회 안에 트리를 설치하고 산타크르스를 가져다 놓습니다.
말씀에도 없는 예배 순서들을 정해 놓고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로운 인도하심을 배제합니다.
그것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들의 지적인 머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 그분 안에 있었던 생명이 오순절 날 많은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 안에 임했던 생명은 예수 안에 살았던 그 동일한 생명이었습니다.
한 사람 안에 계셨던 분은 약속대로 모든 믿는 자들 안에 자신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주셨습니다.
머리였던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열매들을 산출하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서 죽었던 것처럼
그분의 몸인 교회도 그분처럼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당하며, 수많은 성도들이 사자 밥이 되고 그렇게 순교당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모든 씨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에 심겨져 장사되어야 하듯이
심겨진 그 씨는 암흑시대를 거쳐서 드디어 생명의 싹을 트였습니다.
요엘2:25.내가 너희 가운데 보냈던 나의 큰 군대인 메뚜기와 자벌레와 풀쇄기와 모충이 먹었던 연수를 내가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너희는 풍족히 먹고 만족할 것이며 너희를 경이롭게 다루셨던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내 백성이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1.구속의 은혜의 첫 단계 ~ 의로움(Justification)입니다.
지난 시간에 알아봤던 애굽의 고센 땅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어린양을 잡아 피를 그들의 집 좌우 기둥에 뿌렸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들은 피를 뿌렸습니다. 다른 어떤 것들도 절대 안되었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속박 받고(종살이) 있었던 참된 신자들은 독일의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그의 메시지 안으로 모였습니다.
그것은 애굽 땅 안에 있었던 고센 땅과 같이 하나님께서 루터의 시대에 빛을 주신 장소였습니다.
그 시대 모든 곳은 암흑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말씀 안에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루터를 통해 그 참된 신자들은 카톨릭 교파 교회로부터 불러져 나와서 홍해에서 물 침례를 받고 사흘 길을 거쳐 광야에 이르게 했습니다. 루터의 메시지는 그들을 광야 앞까지 인도했습니다.
의로움(칭의)은 먼저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입니다.
회개란, 그 동안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생활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되다는 증거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루터의 메시지는 우리를 거기까지 밖에 이끌어 주지 않습니다.
성막에서 바깥뜰까지 이르도록 합니다.
바깥뜰에는 희생제물을 불사르는 놋쇠로 만든 제단이 있었고,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을 수 있는 놋쇠로
만든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바깥뜰은 여전히 세상 빛이 비추이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그는 여전히 회개를 반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해서 희생제물을 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본성이 여전히 그의 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담배를 버리지 못하고, 술을 끊지 못하고, 화를 내고, 여전히 세상 것들의 유혹을 받아 그 유혹에 넘어갑니다.
2.구속의 은혜의 두 번째 단계는 “성화(Sanctifcation)”입니다.
경건이며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영국의 웨슬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성화”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화의 메시지”는 루터가 할 수 없었던, 담배와 술과 세상적인 것들을 집어 던지게 했습니다.
성화의 메시지는 이미 조직화되어 카톨릭 교회를 닮아가고 있었던 루터교 안에 있었던 그 시대의 참된 성도들을 불러내어 광야 안으로 이끌어 드렸습니다.
구약의 성막에 비유한다면 그의 메시지는 해달 가죽으로 덮여있는 성소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성소는 세상 빛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해달가죽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일곱 촛대로부터 빛을 내고 있는 곳입니다.
촛대로부터 나온 빛은 하나님의 불에 의해서 제단에서 가져와서 붙여진 불로써 상위에 있는 진설병을 비추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나타내는 12개의 진설병은 매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교체했으며 교체된 진설병은 거룩한 곳에서 제사장들이 먹도록 했습니다.
그곳에는 성도들의 기도를 나타내는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빛 대신 일곱 촛대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빛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의 시대 빛을 받은 진설병을 양식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보다는 상당히 성장했지만 아직 하나님은 이곳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관심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으나,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구속의 은혜의 세 번째 단계인 “성령 침례”입니다.
성령 침례는 말 그대로 계시록3:20절에 말씀처럼 하나님 자신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가서 그와 교제를 나누고
그와 함께 만찬(저녁)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는 말씀이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이 이루어지는 때는 일곱 번째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입니다.
스가랴서에서 예언된 낯도 아니요, 밤도 아닌 저물녘의 빛을 통해서
가장 강력한 빛으로 알곡을 익게 할 것입니다.
성막에서 지성소에 해당되며 사람으로 본다면 “혼”입니다.
혼은 하나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자유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혼”을 성전 삼기를 원하십니다.
지성소 안에는 금으로 만든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그 안에는 두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이 들어 있고, 부활의 상징인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해
보존하신 감추어 둔 만나를 넣어둔 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 만나를 통해 그 동안 닫혀 있었던 하나님의 비밀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금으로 만든 속죄소가 있으며 그 위에 그룹천사가 양쪽에 날개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그곳에 임하셨습니다.
요엘2:23.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그때에 즐거워하며 주 너희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셨으며 또 너희를 위해 비를 내려주시되 이른 비와 첫째 달의 늦은 비를 내려 주시리니
24.그런즉 타작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즙과 기름이 넘쳐나리로다.
1906년 하나님의 영이 미국을 강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과 방언 통력과 예언들과 병 고침들과 마귀들이 쫓겨나고, 수많은 기적들과 표적들이 성경에서 예언된 대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그 부흥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듯이 그 빛이 참 빛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동쪽의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그 빛이 독일의 루터에게 이르렀고, 그 빛은 영국의 웨슬리에게 이르고, 그 빛이 미국에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 빛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마지막 저물녘의 빛이 미국을 지나 여기 한국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그를 신격화 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독일의 루터가 카톨릭 교파에서 참된 교회를 불러냈듯이, 영국의 웨슬리가 루터교파로부터 참된 교회를
불러냈듯이.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교파 교회들에서 참된 교회를 불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시대를 위해 택하신 그분의 손에 들린 일곱별 가운데 한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지면을 통해서 그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월리엄 매리언 브래넘입니다.
방언과 방언 통역과 예언들과 병 고치는 은사 등, 온갖 기적과 표적들을 나타내는 것들이 성령 침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은사의 회복”이며 요엘2장23절에서 말씀되어진 마지막 때에 오기로 한 “이른 비”입니다.
그것은 씨를 심기 위한 이른 비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이 시대를 위한 계시된 말씀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의 기간은 대충 삼년 반 정도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의 대부분의 사역의 일부는 아픈자들을 위한 기도였으며, 많은 환상들과 예언들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각들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이 시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요엘2장23~24절에서 말씀되어진 “늦 은비”입니다.
성령을 모시는 늦은 비 성령입니다.
24.그런즉 타작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즙과 기름이 넘쳐나리로다.
포도즙은 말씀에 대한 계시로 인한 흥분을 나타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계시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 우리를 위해 감추어진 만나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혼을 자극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첫 사랑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주님이 먹여주실 밀이 가득하며, 우리의 혼(독) 안에는 포도즙(계시된 말씀)과 기름(그분의 성령)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독수리들인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흘려 넘쳐나시기를 바랍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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