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1-07
으 뜸 과 버 금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어릴 적 할머니께서 종종 꺼내어 쓰시던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모양을 띤 입체적인 것이 아닌 바닥에 펼쳐서 사용하는 버선본이라는 것이었다. 누런 포댓종이를 이용하여 발에 신는 버선 모양을 발을 대고 그리신 것인지, 지금껏 생각되어지는, 누가 보아도 제 모양대로 어엿하게 만든 것이었다. 버선을 지을 때에는 맨 천 위에 그 버선본을 올려놓고 그 모양을 둘러가면서 똑같이 그림을 그리신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가위질을 하신다. 버선을 지어 신을 때에는 버선의 기본(基本)이 되는 그 버선본부터 꺼내신다. 으뜸은 맨 앞이며, 기본이다. 밑바탕이며, 다른 것이 다시 만들어지게 될 때 그것을 빗대는 모본(模本)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으뜸은 위로 솟지를 않고 펼쳐져 있다. 으뜸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습자지(習字紙)에 의해 덮여 가려진 곧은 글씨와 같다. 으뜸은 습득물(拾得物) 같이 습득(拾得)하는 것이 아니고, 배우고 익혀서 얻는 부여받다 시피 하는 습득(習得)되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려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너희 종이 되어야하리라”(마태복음 20:25-27)고 얘기 하셨다. 으뜸이 되려는 것은, 권세를 부리는 이방인의 집권자들 같이 찬탈(簒奪)하듯 하지 아니해야 하며, 세상 다수의 사람들과 같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거들며 배우는 시종(侍從)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또 가르침을 주셨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上座)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書記官)들을 삼가라(마가복음 12:38-39)”. 으뜸은 솟아 보이는 상좌(上座.VIP席-very important person)가 아니고, 솟지 않고 펼쳐져 있는 곳이며, 밑인 기본(基本.base)을 말한다.
도올이라는 분이 테레비에서 논어(論語) 강연을 했다. 그 분이 여러 해 전에 자신이 쓴 어느 책에서 자기는 KS가 못되었다고 이야기 한 것을 읽어보았다. KS(Korean Standards)마크를 말하는 줄 알고 읽었으나, 그것이 아니라 그 분의 형제들은 그 예전에 선망하였다는 K고등학교와 또한 S대학을 모두 졸업을 하였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하였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유교에서,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사람이라고 하여 맹자(孟子)를 ‘버금아(亞)’자를 써서 아성(亞聖)이라 말한다. 생각되어지기는 음악에서 노래를 이루기 위해서는 으뜸화음만 있어서는 안되고 딸림화음과 버금딸림화음이 있어야 된다. 둘째가라면 서럽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이제껏 으뜸이 아니라 둘째간다는 버금도 못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다른 것을 포함해서까지도 받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사람이나 혹은 다른 것으로부터 눌림을 당할 때처럼 참기 힘든 때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섯 여섯 해 전의 서울의 백화점이 무너진 일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 밑에 있었더라면? 어둠 속의 힘든 지경[地莖.지하경(地下莖.땅속줄기)]을 파가며 나아갈 길을 찾아 댔을 것이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에 대한 믿음과 힘이 있다면 그 백화점처럼 덩그런 어떤 것들도 받들고싶다.
으뜸과 버금, 앞사람들을 보며 가고 싶다.
공동체 이야기
말
듣지를 못하면 말도 하지를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썼다(야고보서 1:19). 어느날인가에는, 한여름을 향해서 가는데도 이제껏 들리지 않던 매미 소리를 새삼 다 들었다. 곤충들은 내 주변에서 소리내기를 계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내가 무심(無心)했기에 그 소리를 듣지를 못했을 것이다. 그 소리는 푸른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갇힌 방안인데도, 밖의 그 소리결에서 울창한 청록의 나무들을 시원스럽게 눈에 들게 하는 것 같았다. 소리가 들리는 것은 깨달음이다. 무심결이나 딴 생각을 갖고 있으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도 있듯이 예사로 살 때에는 들을 귀를 갖고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촉각을 곤두세운다면 울려오는 소리를 아니 들을 수는 없다. 아니 남이 듣지 못하는 범상(凡常)한 소리를 넘은, 그 무슨 소리까지도 듣게될 것이다. 그렇기에 역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다.
나는 말주변머리가 없다. 요새는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을 좋아라하는 시대라는데, 그렇게 보면 나는 퍽 이나 재미없는 사람 측에 든다. 공(公)의 자리에서 함구령(緘口令)을 하다가 겨우 견주다시피 말을 꺼내게 되면, 속에서 잘 짜내서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말도 앞서 꺼내지 못하고, 정리도 못한 채 노골(露骨)에 가까운 말을 쫓기듯이 황급히 해 간다. 그래서 모여있는 자리에서는 당초부터 부담 없이, 혹은 내 일이 아니라 여기다시피 하며 듣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속보이는 말을 안하고 있지 만도 않는다. 말은 그 사람의 속을 주위에 들어내게 한다. “그 말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였어”라고 뒷 얘기들까지 돌기도 한다. 공동체 가운데 나의 바램은 작은 목소리를 내며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소리를 작게 합시다”라고 말하였던 때도 있다. 무엇을 고치거나 짜 맞추게 될 때에 사람들 사이에 공동의 말소리가 아니라, 이것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등의 자기 경험이나 생각 속의 구구분분(區區紛紛)의 각색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가운데 상충(相衝)의 큰 목소리들이 나기도 하면서 시간이 가며 일은 반듯하게 마무리되어간다. 우리는 말많은 시대를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결심(決心)을 하면지키기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딴 사람에 관한 얘기를 그 사람이 없는 자리 가운데에서 하지 말아야 되는데 아직도 변변치가 못해서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 같다. 우리들은 제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남 얘기하기들을 좋아라 한다. 나는 그간 마음에 정하여 가는 것이 있다. 둘러앉은 자리에서 어느 없는 사람의 흉(凶)이나 험담이 재미 삼아 얘기 될 때에, “그 사람은 그렇지 않고 다른 부분도 있다”하고 말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같이 묵묵히 있을 마음을 가져본다. 그러면서 이 후에 그를 종종 만나면 앞에서 들은 그 사람들의 산산(散散)한 말이 아닌, 내 생각 어린 말이나 그가 귀에 담을 수 있는 바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뭐 좋은 얘기라고”하는 말도 있듯이 공동체의 다른 사람의 흉(凶)되는 것에 관한 말이나, 일은 처(妻)와 이부자리 속에서라도 얘기를 아니 하려고 힘쓴다. 좋은 길(吉)한 것에 관한 것일지라도....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아주 주의를 요구하는 말들이 있다. 외부 분들이 우리에게 들렸을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식구들에 관하여 묻게된다. 우리부부는 생각 없이 말할 때가 있다. 다시 한번 위의 내가 했던 말을 나에게 되내이고싶다. “제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자꾸들 남 얘기하기들을 좋아라 한다”
. 말하기는 주춤주춤 더디 하고 귀담아듣기는 속히 하자.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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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김귀숙
문창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나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영운교회.성남교회안수집사회.대전베데스다선교회(이장훈외5인).이정애.김영창한두용.왕지교회.일양교회.어귀녀.박종만.성남교회청년부.영광교회(단필호.박상용외여러분).향림원.김영창.금산군자원봉사센타.이원교회.박정도.예수마을대덕교회.대전서노회.옥천동부교회.이광승(김미경).판암제일교회.유상현(김권순).사슬회.대석교회.그리스도의집.반석교회.무명.이종국.유인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