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km. 1만 6천보. 5시간.
흐린 날씨인데도 후덥지근했다.
걸음을 멈추면 산모기가 달려들었다.
손 팔과 어깨 다리에 몇 방 쏘였다.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이제는 몸이 변했는지
쏘인 자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지독하게 가렵다.
많이 물린 날은
피부과 신세도 져야 한다.
해발 400m 명봉산 왕복 트레킹에
시골제비님이 길을 열었고,
일홍님. 은재님. 여리히님. 야월님. 은풀잎님. 마일도님.
주이니님. 모과나무님. 산사랑님. 한소가 참석하였다.
경사가 완만하기로 소문난 명봉산이지만
그래도 산이라서 오르막 내리막이 몇 군데 있었다.
제법 빠르게 걸었다.
평탄한 길이지만 평속 3km 라면 급한 편이다.
새벽까지 비가 내려서 조금 질퍽한 곳도 있었다.
대부분은 촉촉했다.
땅이 비에 젖어 있으면
맨발로 걸어도 발바닥이 덜 아프다.
명봉산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라서 맨발 걷기에 적합하다.
돌과 바위가 있는 곳에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 피부가 깎인다.
중장년층이면 대부분 겪고 있는 수면장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성인병 치료와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맨발 걷기는 큰 배낭 메고 무거운 등산화 신고
여러 사람 어울려 산에 올라가 배 부르게 먹고
산을 내려와선 술로 뒤풀이하는 지금까지의
등산문화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산행은 꾸준히 해도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안 되었다.
맨발 걷기는 혼자 조용히 명상하듯이 천천히 걷는다.
맨발로 걸으려면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많은 주의가 필요하여 그 운동강도나 피로도가 두세 배는 된다.
맨발로 걷게 되면 몸이 땅의 기운과 에너지를 받아
병이 낫는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발을 신고 있었으므로
발바닥 근육이 상당히 약해져 있다.
발을 보호하던 양말과 신발 없이 갑자기 많이 걷게 되면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근육이 약한 상태에서 무리하면 족저근막염이 생긴다.
발바닥 근육이 찢어져 생기는 족저근막염 환자 급증은
정형외과 의사에겐 좋은 일이지만
분명히 맨발 걷기 열풍의 부작용이다.
등산로 바닥은 셰일이 우세하다.
댕댕이덩굴.
산에서 흔하게 보는 덩굴나무이지만
식물 박사 산사랑님이 가르쳐주기 전에는
그 이름을 몰랐다.
열매는 검은색인데 하얀 분이 덮여있다.
마치 알이 작은 머루포도 같다.
우리말 ‘댕댕하다’는 ‘속이 옹골차다’는 뜻이 있다.
댕댕이덩굴 줄기는 질기면서도 굵지 않고
자유자재로 구부러져 바구니 같은 집안 도구를 만드는데 쓰인다.
줄기가 질겨서, 속이 옹골차고 팽팽하다는 뜻에서
댕댕이덩굴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댕댕이덩굴의 줄기와 뿌리를 말린 약재를
한방에서는 방기(防己)라고 한다.
'방기'(자기를 지킨다)' 이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약초를 캐는 노인이 살았다.
이 노인은 중풍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약초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약초꾼 노인은 아들을 산에 데리고 다니며
약제 만드는 법과 약초의 효능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가르쳤으나
정작 중요한 약초의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약초의 이름은 왜 가르쳐 주지 않는 겁니까?"
아버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것이다.
이 약초가 네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때
목숨을 구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쁜 사람이 너를 죽이려고 할 때
아무도 모르는 약초를 알려 준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너도 언젠가는 그 뜻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들려준 말의 뜻을 잘 몰랐지만
가슴 깊이 새겨 두었다.
몇 해 뒤에 약초꾼 노인이 늙어 죽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도둑질한 물건을
아들 집에 맡겨 놓으면서
이것 중에 하나라도 없어지면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약초꾼 아들은 강도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도가 관가에 붙잡혔다.
강도는 훔친 물건을 약초꾼 집에
감추어 두었노라 자백하였다.
관리가 약초꾼을 공범으로 알고 감옥에 가두었다.
약초꾼은 억울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강도는 사형에 처해지고
약초꾼도 공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약초꾼은 관리를 붙잡고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저는 강도와 한패가 아닙니다.
저는 강도를 알지 못합니다.
강도가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훔친 물건을 맡았던 것뿐입니다."
"이놈! 증거가 있는데 거짓말을 하느냐?
네가 강도와 한패가 아니면
네 집에서 어찌 강도가 훔친 물건이 나왔느냐?
네 말을 인정할 수 없다."
이때 약초꾼은 아버지가
'약으로 스스로를 구하라'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나으리, 저는 약초꾼으로
약초를 캐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 왔습니다.
제가 죽으면 선조들한테 물려받은 비방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약초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비방을 알려 드릴 것이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관리는 약초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오냐, 너 목숨만은 살려 줄 터이니
네가 알고 있는 그 특별한 약초의 이름을 말하여라!"
"조상 대대로 저희 집안에서만 알고 있는 약초인데
이름은 모릅니다."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저는 그 약초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압니다.
저한테 하루만 시간을 주신다면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약초에 어떤 효능이 있는가?"
"중풍과 관절염을 고치고 방광에 생긴 습열을 없애며
대변과 소변을 잘 나오게 합니다."
"내가 관절이 몹시 아프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데
그 약초로 고칠 수 있겠느냐?"
"고칠 수 있습니다."
"네가 내 병을 고친다면 내가 너를 풀어주겠다."
관리는 약초꾼한테 감시인을 붙여 그 약초를 캐 오게 하였다.
약초꾼이 캐 온 약초를 물로 달여서 보름 동안 복용하였더니
대소변이 잘 나오고 관절의 통증이 사라졌다.
관리는 약초꾼을 풀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지금까지
이름을 모르던 그 약초의 이름을
"방기(防己)"라고 지었다.
방기에는 위급할 때 약초가 스스로를 지켜준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댕댕이’가 ‘멍멍이’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고,
강아지를 뜻하는 용어로 쓰고 있다.
'댕'과 '멍' 모양이 비슷하게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신조어다.
이런 식의 신조어는 온라인에서 '야민정음'이라고 불린다.
야민정음은 한글 자모를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바꾸어
단어를 다르게 표기하는 인터넷 밈(meme)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댕댕이(멍멍이)' '띵작(명작)' '괄도 네넴띤(팔도 비빔면)'
'롬곡옾눞'(폭풍눈물)' '커엽다(귀엽다)'
'머머리(대머리)' '떼이스북(페이스북)' 등이 있다.
댕댕이덩굴...
덩굴도 칡덩굴처럼 개성적이지 못하고
홀로 서지도 못해 남에 기대어 발버둥 치고
화려한 칡꽃처럼 눈길 한번 잡지도 못하고
피는 둥 마는 둥 푸대접받으며 댕댕거리다,
모든 것이 다 떨어져서야 열리는 열매들은
굶주린 겨울새들이 찾아오면 다 내어주고,
마지막까지 변변치 못하게 살아온 줄기는
뿌리와 함께 귀한 한방약재로 대접받고,
할머니의 손으로 댕댕이바구니로 엮이어
세상 온갖 귀한 것들을 전부 품어보니,
살아생전 화려하고 변변하게 사는 것보다
생을 다하고서야 그 아름다움을 베푸는
그대의 생이 최고의 적선인 듯하노라...
정상 500m 앞. 해발 250m 지점.
등산로에서 도토리를 열심히 주웠다.
주이니님이 도토리묵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한티재 부근에 구름이 자욱하다.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용틀임 소나무.
용이 붙은 말 중에 '용트림'과 '용틀임'이 있다.
이 두 말은 발음이 똑같아 쓰는데 자주 혼동을 일으킨다.
'용트림'은 '거드름을 피우느라
일부러 크게 힘들여하는 트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