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묘역 조성 윤달이 있는 해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있다. 살아계신 부모님의 수의를 장만해 놓으며 돌아가신 분들의 산소를 돌보는 일을 하는 게 상례이다. 2009년 올해가 윤달이 있으며 바로 윤5월이다. 이때를 맞이하여 가족 묘역을 다시 조성하였으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본다.
1. 발상 07년 집안 묘사 시에 하루 만에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묘사에 참여한 사람은 환갑을 넘긴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참여치 않았으며 자연적 먼 뒷날이 걱정되어 이장 문제가 자연스레 대두 되고 기왕지사 이장을 하려면 집안 의 산소를 모두 한자리에 모시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태동했다. 2. 선진 묘역 견학 08년 겨울이 끝 날 무렵 2월 25일 전일 눈이 내려 하얀 산야인데 영천호국 묘역 (국립묘지)을 찾았다. 묘비와 묘비 사이의 거리가 2m 조금 안되었으며 비석은 세워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경산 남천에 있는 공원묘지의 분묘와 각 가지 비석과 상석 등을 자로 재고 사진을 찍으면서 자료를 수집 했다. 3. 회의 우리 집안(고조할아버지 이하 모든 집)각 집의 대표 1명씩 작은댁에 모였다.(회의 장소 선정 이유 : 생존해 계신 분 중에 문장 어른이기에)각자의 의견 개진과 토론 끝에 이장을 하기로 합의 하고 시기는 09년 윤 5월로 잠정 결의 했다. 4. 이장 경비 1가정 당 200만원으로 정하고 자기가 형편 되는대로 집안 통장으로 입금을 하되 08년 12월까지 납부하기로 하였다. 5. 2차 회의 매장 방법과 비석 모양을 정하기 위한 회의 가) 매장 방법 - 화장 후 평장 나) 비석 - 검은색 와비로 한다.(61.5× 12<6.5>× 42.5cm) 다) 하반석 - 와비의 밑에 두는 돌(61× 80× 6.5 cm) (와비와 하 반석 포함 = 30만원) 마) 상석 - 90× 60× 20cm (모두 포함 50만원) 6. 비석에 쓰는 글씨 한자와 한글 병용으로 하며 자손의 이름은 쓰지 않는다. 이때 글자의 크기와 글자체를 정하여야 하며 몇 차례 교정을 보았음. 애로점은 한자만 쓰자는 의견과 한글로 쓰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으나 혼용하기로 최종 결정을 하였음.
7. 돌 공장(석재공장) 물색 가) 성주 돌 공장 2곳. 나) 왜관 돌 공장 1곳 다) 대구 칠곡 공장 1곳 라) 달성군청 부근의 돌 공장 1곳 마) 달성군 다사면 다산 석재단지 가야석재사. 위와 같이 여러 곳을 다녔는데 가격의 차이가 많았으며 국산 돌을 취급하는 곳은 인건비 관계로 한곳도 없으며 기본이 되는 돌 가격은 비슷했으나 글자를 색이는 데(각 하는데) 큰(大)글자는 얼마, 소(小)자는 얼마로 각 업소마다 달랐다. 돌만 취급하는 석재 단지의 가격이 제일 저렴하였다. 8. 묘지의 조감도 작성 묘지의 터는 고조부 산소 밑으로 1000여평의 부지가 있었음. 묘지는 가로세로 2m로 하며 위로부터 1단 - 고조부 2단 - 증조부 2분 3단 - 조부 6 분 4단 - 아버지 항렬 7분 5단 - 무순으로 돌아가시는 순서임. 9. 이장 날짜 정하기 2009년 6월 24일 시작 2009년 6월 23일 합숙하여 익일 새벽 참여 10. 견적 받기 가) 돌 공장 견적 나) 장의사 견적 받기 (최종 2곳의 견적을 받았음) (1기당 이장 가격, 일의 순서와 장비관계, 잔디의 생산지와 양?, 산신제는? 인부의식사와 간식(참) 준비는 어떻게? 등등 자세하게) 다) 개장신고 - 미리 해야 하며 동, 면사무소에 신고하며 신고 시에 묘지 사진을 첨부하여야 함. (개장 시 술과 안주, 축문, 산신 축 등을 미리 생각해야 됨) 11. 이 장 가) 터 고루기 - (포크레인) 나) 터파기- 크기를 정하여 사람이 파도록 하였음. 다) 매장 - 밑에 소금과 숯 깔기 그 위에 유골 함. 라) 비석 옮기기 12. 고유제 가) 담당부서 정하기 홀. 축관, 집사. 분 집사 나) 제물 준비 다) 초대 손님 범위 와 거마비 라) 식사준비 -이동식 식당예약 마) 천막, 돗자리, 식수, 음료수 준비 바) 유인물 준비
13. 맺는말 이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2년여 동안 고심을 하였다. 제일 힘드는게 집안의 뜻을 한곳에 모우는 일이며 특히 말조심이 문제로 대두 되어 힘이 들었으며 경비를 모우는데는 그 어려운 imf 때보다 더 어려운 세계적인 불황이지만 잘 협조해 주었다. 실제 작업 현장 즉 개장을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산소의 조경에만 신경을 써서 남들이 보면 후손이 있는 묘라고 인정받으면 되는 줄 알아 묘역 관리에 힘을 썼다. 분명한 것은 묘지를 쓸 때 지관(풍수)의 입회하에 매장을 하였는데 의문이 안 갈수 없었으며 새로운 곳에 안장을 하니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행여 비라도 오면 작업을 어떻게 할까? 마음 조린 적이 어디 한 두 번이 아니였는데 고유제를 마칠 때 까지 날씨가 크게 도와주었으며 그 뒤에 비가 내려 잔디가 살기에 안성맞춤 이였다. 분명 하느님과 신령님이 계시다면 바로 내 편이 틀림없다고 자부 하며 그 동안 도와준 모든 이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終
마무리 직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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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발 그 내 < 발그내 : 이 근 철 >-- 원문보기 글쓴이: 발 그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