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채권시장과 여러 가지 채권
채권은 기업, 정부, 공공기관 등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장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무증서이다. 채권은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이자와 원금의 지급을 약속한 증권이므로 확정소득증권(fixed income securities)이라고 불린다. 채권은 발행기관, 만기, 이자율, 원리금 지급방식 등에 따라 여러 종류의 증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채권시장은 수많은 종류의 채권이 발행・유통되는 시장이다. 채권 발행과 유통은 주로 증권회사가 담당한다. 채권투자자는 보험회사, 연기금, 은행 등의 기관투자자, 개인과 외국인 등 다양하다. 개인들도 증권회사를 통해 채권을 주식과 같이 직접 사고 팔 수 있다. 다만 채권은 종류가 많고 거래가 빈번하지 않아 수수료가 주식보다 비싸다. 채권이 발행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면 주식과 같이 가격이 매일 변동한다. 채권가격은 발행기관의 신용상태와 만기, 채권의 표면이자율, 시장이자율 등에 의해 결정된다.
먼저 채권 발행기관의 신용상태가 나빠지면(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채권의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낮아져 채권의 가격도 떨어진다. 만기는 채권가격에 어느 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만기가 길면 불확실성이 커져 금리나 신용상태의 변동에 따라 채권가격은 더 크게 변동한다. 즉 만기가 길면 채권가격이 오를 요인이 생겼으며 가격이 더 많이 오르고 만기가 짧으면 적게 오른다. 채권의 만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남아있는 만기 즉 잔존만기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금리가 채권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좀 복잡하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은 표면금리, 신용상태, 만기 등이 모두 반영되어 가격이 결정되어 있다. 이렇게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으로 채권을 샀을 때 얼마만큼의 수익이 생기느냐가 채권의 시장수익률이다. 채권의 시장수익률에 영향을 주는 금리가 변동했을 때 채권가격은 어떻게 될까?
채권은 보유하고 있으면 주는 이자율 즉 채권의 표면금리가 높을수록 채권의 수익이 커져 채권의 가격도 비싸다. 그러나 채권이 시장에서 거래될 때는 달라진다. 금리가 오르면 과거 금리 기준으로 결정된 수익률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손실을 본다. 높은 금리의 새로운 채권이 과거 금리의 채권보다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가 오르면 기존 채권의 가격은 떨어진다. 반대로 금리가 내리면 기존채권의 가격은 비싸진다. 과거 높은 금리로 이자를 주는 기존채권이 새로운 채권보다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리 변동에 따른 채권가격의 변화는 만기가 길수록 커진다.
금리 하락이 예상될 때는 잔존만기가 장기인 기존채권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채권은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으면 원리금 상환 가능성이 떨어져 위험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국채와 같이 신용위험이 적은 채권도 남아있는 만기가 길면 금리 변동에 따라 채권가격이 크게 변할 수 있는 위험자산이다.
채권투자자는 만기까지 보유할 채권이 아니면 시장금리 변화 등을 반영하여 보유 채권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여야 투자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를 채권시가평가제도라 하며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자는 보유채권의 성격에 따라 이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채권시장은 주식시장에 비해 발전이 더디었다. 1997년 IMF사태 이전까지 한국 정부의 재정 상태는 양호했다. 재정적자가 거의 없어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국채는 국민주택채권 같이 주택의 분양이나 취득 시 강제로 매입하는 소액채권이 대부분이었다. 채권시장의 중심은 신용위험이 낮은 국채이다. 한국은 국채가 정기적으로 충분히 발행되지 못해 채권시장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국채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중앙은행의 중요한 통화정책수단인 공개시장조작을 시행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은행은 한국은행이 채무자인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여 이를 금융기관과 거래하여 공개시장조작의 대체수단으로 사용했다. 또한 민간기업도 기업의 신용상태가 취약하여 금융기관의 보증을 받은 보증 회사채를 주로 발행하였다. 기업의 자체 신용에 의한 회사채시장이 없었던 것이다. 2000년 이전에는 한국채권시장의 대표금리가 3년 만기 보증회사채의 시장수익률이었다.
1997년 IMF사태로 채권시장의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 금융 및 기업구조의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와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 등 여러 채권이 발행되었다. 회계제도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기업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기업의 신용상태도 개선되었다. 기업 자체신용에 의한 회사채 발행이 가능해졌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한국정부도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 국채 발행 규모는 더 증가했다. 한국의 채권시장은 종류가 다양해지고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채권시장에 대한 외국인투자도 주식시장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