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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부채
경기수리고등학교
3학년 한수현
따스한 금빛 햇살이 회색 셔터에 부딪힌다. 오월의 햇살에 달궈진 셔터에서 제법 뜨끈뜨끈한 열기가 피어오른다. 아빠가 셔터 밑에 숨겨놓은 쇠막대기를 꺼내 셔터 사이에 끼웠다. 끝이 구부러진 쇠막대기가 지렛대 역할을 하며 셔터를 올렸다. 셔터 너머에 있는 투명한 유리문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아빠가 허리를 숙여 유리문의 자물쇠를 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빠 뒤에 있던 나와 엄마도 아빠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신선한 해산물 비린내가 코끝에서 데롱거린다. 오셨어요? 신발장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련호 아줌마가 고개를 돌려 인사를 한다. 오늘 예쁘게 입었네요. 엄마의 칭찬에 아줌마의 양뺨이 붉은 빛깔로 젖어들었다. 뭐, 첫 휴가니까. 아줌마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이 틈에 나는 얼른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지수도 왔네. 어쩐 일이야? 오늘은 학교 안 가? 쉴 새 없이 나오는 질문에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 토요휴업일이거든요. 그래서 아줌마 대신 일일알바 하러 왔어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아줌마의 주름진 볼에 더 짙은 미소가 차올랐다. 그래. 그럼 아줌마 대신 일 열심히 하렴. 그런데 련호씨 오늘 어디 가요? 엄마가 물었다. 아줌마는 생긋 웃으며 비밀이라고 대답한 뒤, 가게를 나섰다. 잘 다녀와요. 엄마가 소리쳤다. 활짝 웃은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의 다 풀린 파마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지난 달부터 아빠의 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련호 아줌마는 중국 산둥에서 온 조선족이었다. 돈 한 푼 없이 한국에 왔다는 아줌마는 일을 시작한 첫 날, 아빠에게 가게에서 자고 싶다고 말했다. 해물탕 가게라 냄새 배고 밤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에도 아줌마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아줌마는 주방에 딸린 쪽방에서 묵게 되었다.
나는 가게에서 일하는 다른 아줌마들보다 련호 아줌마가 좋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중국어 숙제를 도와주거나 내게 중국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줌마는 내게 참 잘해주었다. 가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멍쯔’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는 때때로 아줌마에게 가족 등의 아줌마 얘기를 물었지만 아줌마는 생긋 웃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점심손님이 지나간 자리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엉망이었다. 더운 날씨에 해물탕을 찾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아빠의 말은 거짓이었다. 나는 테이블의 그릇들을 냄비 안에 차곡차곡 포갰다.
문쪽에서 딸랑거리는 벨소리가 들렸다. 손님의 출입을 알리는 벨이었다. 점심 때도 다 지났는데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문가에는 뜻밖의 손님이 서 있었다. 련호 아줌마였다.
아줌마! 내 부름에 아줌마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줌마의 손에는 못보던 부채 하나가 들려 있었다. ‘고양이 미술학원’이라고 쓰여진 글귀로 보아 학원 판촉물이 분명했다. 아줌마 왜 벌써 와요? 내 물음에 아줌마는 신발을 벗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대기석에 앉아 부채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아이고, 무릎이야. 오랜만에 바깥에 나가니까 이 무릎이 다 쑤시네. 나는 아줌마 옆에 앉아 다시 물었다. 아줌마 지금 점심 조금 지났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아줌마가 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갈 곳이 없어서. 저 멀리에서 다가오던 엄마가 다시 물었다. 갈 곳이 없어요? 오늘 어디 간다고, 비밀이라고 갔잖아요. 아줌마의 올라간 입가에 어색한 웃음이 올라왔다.
사실은 한국 놀이공원이나 가보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그럼 다른 곳은 생각 안 해 봤어요? 가려고 하는 곳마다 다 오육 천원이 넘어서. 교통비도 아깝고, 나중에 이 돈 모아서 멍쯔나 보내주려고. 멍쯔요? 엄마의 물음에 아줌마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떼었다.
중국에 있는 딸이에요. 지수보다 한 살 어린데. 아줌마의 눈에 그리움이 차올랐다. 나중에 중국에서 사진 오면 보여줄게요. 점점 아줌마의 눈이 젖어들어갔다.
아이, 그러면 저한테 물어보시지. 괜히 휴가 날렸잖아요. 엄마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갑자기 뒤바뀐 분위기에 아줌마의 눈에 고였던 눈물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줌마가 생긋 웃었다.
아이, 날리긴 뭘요. 그래도 이거 하나는 건졌잖아요. 아줌마가 오른손에 들려 있던 부채를 내밀었다. 엄마는 지금 막 부채를 보았는지 신기하다는 듯 부채를 들여다 보았다. 고양이 미술학원? 이거 학원 판촉물이지요? 판촉물? 엄마의 말에 아줌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니까 학원 홍보물 말이예요.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받아서 기분 좋은 거예요? 엄마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줌마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아줌마와 엄마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지금부터는 뭐할 거에요? 딱히 갈 곳도 없는데, 그냥 일 해도 돼요? 정말요? 네. 뭐, 하루 일급은 못 받겠지만 잘하면 반일급은 주시려나. 엄마가 까르르 웃었다.
아줌마가 놓고 간 부채가 대기석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가만히 부채를 들어 살펴보았다. 광고 글귀만 쓰여진 부채에서 오후의 열기가 느껴졌다. 얼마나 오래 밖에 있었으면 아직도 열기가 사그러들지 않을까. 머릿속에 혼자 햇살 아래에서 부채를 든 련호 아줌마가 떠올랐다. 이깟 부채. 부채를 들고 신나게 웃던 아줌마도 떠올랐다. 나는 부채를 내려 놓았다. 아줌마의 휴가를 증명해주던 부채가 다시 대기석 위에 내려앉았다.
<차상>
비난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최민지
여자는 손톱을 물어 뜯었다. 그녀의 손톱은 손톱 안의 붉은 살이 드러날 정도로 짧았지만 여자는 남은 손톱들까지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거실은 매우 조용했고 이따금씩 자동차 경적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여자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경적소리는 그녀에게 시어머니의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고 남편의 눈빛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여자는 그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사 결과가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배는 볼록하게 튀어 나와 있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뱃 속 아기가 없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을만큼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가야, 잘 있지? 아직 이렇게 둥그런데 없을리가 없지. 여자는 윗 옷을 올렸다. 동그랗게 솟은 흰 배가 드러났다. 여자는 풍선을 떠올렸다. 그 동그란 모양새는 그녀에게 아기의 존재에 대한 어떤 확신을 주는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여자는 병원에서 의사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는 무테의 안경을 위로 올리며 잔뜩 터서 하얗게 일어난 입술을 열었다. 아기가 그만 죽었다고 말하며 갖가지 이유를 분석해 주었다. 여자는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자책감을 느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기가 아직 살아 있다고 다시 믿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태교 음악을 틀어 놓았고 뱃 속의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남편은 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시어머니였다.
“니 슬마 아직도 애기에 집착하나?”
여자는 어젯밤에 남편과 했던 말다툼을 떠올렸다. 남편은 아기에게 말을 거는 그녀를 비난했고 여자가 미쳤다며 웃기까지 했다. 시어머니는 애를 죽인 것도 모잘라서 남편도 속 타 죽일려냐며 언성을 높였다. 여자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배를 보았다.
아가야, 왜 말이 없니? 너무 조용한 성격이라 그렇구나. 맞지? 다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배를 긁기 시작했다. 하얀 살색이 분홍색으로 변했다. 그녀는 광신도처럼 중얼거렸다. 아가야, 아가야.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애를 죽인 것도 모잘라서…….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귀에 대고 시어머니가 말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남편의 목소리까지 겹쳐졌다. 여자는 더욱 빠르게 배를 긁었다. 배가 얼얼했다. 아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제서야 여자는 자신이 아기를 그녀의 배 안에서 죽였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싸늘하게 굳어진 살색 물체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나를 왜 죽였어? 여자는 귀를 막았다 뗐다. 처음으로 그녀는 아기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그것은 원망의 목소리였고 비난의 목소리였다. 여자는 아기를 잃고 처음으로 울기 시작했다. 거실 가득 여자의 울음소리와 함께 남편과 시어머니, 아기의 비난하는 목소리가 서로 엉킨 듯이 울려 펴졌다.
<차상>
비난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항로
봄만 되면 엄마는 아랫배에 남아있는 제왕절개 자국이 간지럽다며 연신 긁어댔다. 그것은 엄마의 뱃속에 있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친, 일종의 흔적이었다. 살갗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 까지 아랫배를 긁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내가 내뱉은 말은 단 한마디였다. 피부과에나 가 봐.
세상 사람들은 엄마와 나를 바라볼 때면 비난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에도, 엄마와 함께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에도, 친구네 엄마들과 식당 아주머니들은 엄마의 나이 어린 얼굴에 몇 살이냐고 묻고는, 엄마의 대답 도중, 한 단어인 ‘미혼모’라는 말을 듣고는 순식간에 얼굴을 굳혔다. 엄마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볼 때면, 옆에 서있던 나를 아무런 말없이 돌아보고는 찬찬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좀처럼 이해가지 않았다. 아버지 없는 자식, 남편 없는 아내, 라는 꼬리표를 거들먹거리며 엄마와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내게 있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 싶지 않게 만들고 싶으셨는지, 나와 함께 축구공을 차주기도 하고, 만화 속 주인공이었던 파워레인저 역할 놀이도 해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처럼 친구와 다투어 엄마의 속을 썩이지도, 학교를 종종 빠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때의 나는 학교생활을 원만하게 하며 반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할 정도였다. 여느 때와 같이 새학기가 시작된 날이었고, 반장 선거를 하는 날이었다.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이 나를 뽑아주었고, 나는 반장이 되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부반장으로 선출된 아이가 많은 아이들이 들으라는 듯한 큰 목소리로 독 같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쟤네 집, 아빠 없잖아.”
부반장 아이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교실 안에 있던 수많은 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로 꽂혔다. 부반장 아이는 픽, 헛웃음을 터뜨리곤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가 말해줬는데, 쟤네 집 아빠 없대.”
나는 그 아이에게로 뛰어들었다. 그 뒤의 일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학교에 불려와 그 아이의 엄마에게 애교육을 잘못 시켰다며 연신 고개를 수그린 장면을 빼고는 말이다. 그날의 일 이후로, 나는 엄마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에 대해 지니고 있던 부끄러움을 잊게 만들어준 하나의 사건이 저번 겨울방학 때 일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무렵이었다. 엄마가 며칠 전부터 계속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에 장난스런 대답을 해주었다. 변비라서 그래. 그렇게 나는 배가 아프다던 엄마의 말을 깡그리 잊은 채 매일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았다.
친구들과 함께 동네 공원에서 농구 한 게임을 하는 도중이었다.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지잉, 하고 진동을 냈다. 액정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이명숙씨 아들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여기 병원인데요. 어머니께서 쓰러지셨어요.”
“엄마가요?”
“네. 담석증을 오랫 동안 참고 계셨던 게 이제야 터졌네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며칠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 가득 울려 퍼졌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담석증이란 것이 맹장이 터질 때의 고통과 비슷하다고 했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평온한 표정을 한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엄마의 담낭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상처를 만들었을 1cm 크기의 돌조각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환자 보호자용 침대에 누웠다. 잠시 동안만 눈을 감고 있자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깊은 잠으로 빠져 들고 말았다.
미역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을 떠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엄마가 편의점에서 사온 듯한 인스턴트 미역국으로 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 일어났어?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미역국을 먹는 동안, 나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가 배를 가른 이유는 모두 나 때문이었다. 한 번은 엄마의 뱃속에 거꾸로 자리잡고 있던 나를 구하기 위해 제왕 절개를 했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지금 이렇게 담석증 수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가 담석증이 생긴 이유는 아마도, 미혼모라는 꼬리표를 달며,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비난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런 병을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병실에 있던 창문 안으로 환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유난히 짜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