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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21일 부활주일 메시지 (설교안)
제목: 하나님의 경륜에서 본 부활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5:31-32,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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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
부활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도들은 자신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여겼다. 부활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다. 그것은 자연과 성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사는 사람은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는다. 세상은 오늘도 그 소망과 사랑으로 지탱되고 마침내 부활의 생명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처럼 부활을 하나님의 경륜의 빛 가운데서 조명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이 설교의 목적이다.
설교 개요
1. 부활은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이다.
2. 하나님을 보여주는 네 권의 책이 있다
3. 네 권의 책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경륜
4. 생명을 보존하는 모든 일에는 수고가 따른다
5. 나의 자랑 그대를 위하여 나는 날마다 죽노라
1. 부활은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이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성경에서 부활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예수님의 탄생이 아니라 부활을 증언할 사람들로 여겼습니다(행 1:22).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소식으로 압축하여 전파되기도 했습니다(행 4:2, 10). 이처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이 무슨 의미이길래 사도들은 부활을 온 세상에 증거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까요? 부활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초기교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방에 선언하셨다고 확신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잡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심으로 그를 의롭다고 하셨고 하늘로 올리사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으므로 이제 나사렛 예수는 단지 목수의 아들이거나 선지자가 아니라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 왕의 왕이신데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 왕의 왕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초두에서 바울은 이를 명확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1:3~4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이 있기 전에 십자가라는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부활(復活)은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부활은 죽음 다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뒤에 오는 일입니다.
오늘은 십자가 뒤에 오는 부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을 보여주는 네 권의 책이 있다
부활이 사도들의 복음증거에서 핵심주제였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에 담긴 의미는 결국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을 계시(啓示, revelation)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 권의 책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네 권의 책을 살펴봄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부활과 성경의 각종 진리를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는 책은 창조물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살펴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20
자연 속에서 자연만물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연 만물 속에 자신의 능력과 신성과 보이지 않는 특성을 새겨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연 속에서 묵상을 통해 깨달은 바를 쓴 글은 사람들에게 지혜가 되고 위로와 치유가 되기도 합니다. 자연이 하나님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드러내어 알려주는 책은 신구약 성경책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와 성품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또 무엇을 계획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하나님의 품 속에 계시던 외아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다’(요 1:18)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요한복음은 소개하기를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합니다(요 1:14).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걸어 다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 번째 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는 네 번째 책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이시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들도 결국 하나님을 나타내는 책이 아닐까요? 그래서 신자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합니다(고후 3:3). 바울이 쓴 편지를 모은 것이 신약의 서신서라는 책이듯이 편지가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나타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연을 통하여,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를 통하여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고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이 책들을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 네 권의 책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경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모든 생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숨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에 충만하십니다(렘 23:24).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것을 보존하시며 그것을 완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자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생명을 창조하심이요, 하나님의 영은 생명의 숨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 권의 책에서 생명을 살리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라는 책은 생명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어미는 새끼를 돌보고 자기를 희생합니다. 어떤 어미는 새끼들을 위해 자기의 살을 먹이로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생명이 죽고 다른 생명이 살아나게 하는 것은 자연 속에 있는 신비입니다. 누가 까마귀에게 새끼를 돌보는 법을 가르쳤습니까? 자기를 희생하여 새끼를 돌보고 다음 세대가 자라게 하는 지혜를 하나님은 만물 속에 새겨두셨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죽으나 그 부모의 희생을 힘입은 자녀의 삶 속에서 부모의 생명은 다시 살아납니다.
성경은 세상을 회복하시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세상에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것을 관리할 대리인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세우셨습니다. 그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죄로 말미암아 세상을 망가뜨릴 때 하나님은 다시 노아의 가족을 물에서 건져내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이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여 탑을 쌓다가 흩어졌을 때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과 그 민족을 부르셔서 온 세상을 다시 회복하시고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끝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고 했습니다(엡 3:2). 성경은 온통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깨닫고 자기를 희생하여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에 주역들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선명한 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려주셨습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아담은 생령이라면 예수님은 살리는 영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45).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 몸을 한 알의 밀처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살려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을 통하여 영광에 들어가신다는 말입니다(눅 24:26). 자녀가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다시 살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히 12:2).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이해하고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의 순종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헛되지 않음을 기적을 통하여 보여주신 신비한 사건입니다. 이러므로 창조 이후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생명의 이어달리기가 마침내 부활의 영광을 통해서 완성될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썩어질 육신은 이 땅에 심어지고 마침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일어날 것을 보여주는 예표(豫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러므로 부활의 첫 열매요 우리는 그 다음에 맺힐 열매들입니다(고전 15:20).
그러면 하나님을 보여주는 네 번째 책인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4. 생명을 보존하는 모든 일에는 수고가 따른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목격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자연을 들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글을 마치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8
부활의 소망이 있으니 든든하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를 견디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살리고 보존하는 일입니다. 한 영혼을 돌보는 일입니다. 가정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한 교회를 섬기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무슨 일이나 다 하나님의 일이며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세 권의 책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신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제 네 번째 책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맡았으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였다고 하여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라고 우리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처럼 생명을 보존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 데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수고(受苦, 헬. kopos, 코포스)라는 말은 잘라낸다(헬. kopto:, 코프토:)는 의미에서 온 단어입니다. 부모는 자신의 것을 잘라서 자식에게 줍니다. 자식을 양육하면서 가슴 아파 보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가정을 보존하는 일은 아픔을 참는 수고를 동반합니다. 예수님을 양육하는 마리아도 자신의 아들이 반대자들의 표적이 될 때 그의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눅 2:24~35).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님도 그처럼 수고의 십자가를 견디셨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한 가정을 회복하는 일도 마찬가지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사랑과 인내로 고생하여 양육한 자식은 성장하여 마침내 효자가 될 것입니다. 눈물 쏟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운 가정은 반드시 화목한 천국이 될 것입니다. 서로 존중하며 인내하며 세운 교회도 마침내 언덕 위에 우뚝 선 빛나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위해서 하는 모든 수고는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주의 일입니다.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그 일에 힘써 행하는 우리가 됩시다.
5. 나의 자랑 그대를 위하여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교회를 위한 수고를 잘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였습니다(고전 9:1~5). 고린도교회를 위한 섬김이라는 수고를 바울이 잘 감당할 수 있었던 마음가짐을 그의 편지에서 찾아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설혹 에페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위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일이라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31~32, 공동번역
바울은 자신을 비판하는 고린도교회를 자기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자기의 자랑으로 여길지언정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어떻게 자기의 자랑으로 여길 수 있습니까? 아마 바울의 심정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사랑을 쏟고 돌보는 것은 주님의 명령과 내게 주신 사명 때문이니 그것을 잘 감당하면 주님 앞에서 그들은 나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이 아니겠는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주님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비록 연약하여도 부족하여도 그들은 주님 앞에서 나의 자랑이며 면류관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으면 그만이라고 쉽게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다시 살고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기에 그 영혼은 나의 자랑입니다. 그는 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자랑인 여러분을 위해서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협을 받아도 기쁨으로 감당한다’고 합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네 권의 책을 통하여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자연의 생명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가 드러납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생명을 위한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극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나타낼 네 번째 책인 우리들,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들도 부활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 영혼에게 나타나게 합시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 절기에 우리가 주 앞에서 자랑으로 여기는 그 영혼을 위해 기쁨으로 수고를 감당해 봅시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정을 더욱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어 봅시다. 우리의 교회를 그처럼 사랑하고 세워갑시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모든 일에 그처럼 임해 봅시다. 주님의 날에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끝>.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09. 하나님의 경륜에서 본 부활(설교안) (1).doc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