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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易之爲書也 不可遠이오 爲道也 屢遷이라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上下无常하며 剛柔相易하여 不可爲典要오 唯變所適이니
역의 글됨이 가히 멀지 아니하고, 도 됨이 자주 옮기는지라. 변동하여 거처하지 아니하여 육허에 두루 흘러 위하며 아래 하여 항상 함이 없으며, 강과 유가 서로 바뀌어 가히 법도의 요체로 삼지 못하고, 오직 변하여 가는 바이니,
[本義] 遠은 猶忘也라 周流六虛는 謂陰陽이 流行於卦之六位라
[본의] 멂은 잊음과 같으니라. 주류육허는 음양이 괘의 여섯 자리에서 유행함을 이름이라.
其出入以度하여 外內에 使知懼하며 度 헤아릴 탁
그 출입을 헤아려 안팎에 하여금 두려움을 알게 하며,
[本義] 此句는 未詳이니 疑有脫誤라 ○漢上朱氏曰出入者는 以卦內外體言하니 出者는 自內之外徃也요 入者는 自外之內來也라 以是觀消息虚盈之變과 出處進退之理를 使知戒懼當出而入과 當入而出하니 其患一也니라
[본의] 이 구절은 자세하지 못하니 아마도 빠지거나 잘못된 점이 있음이라. ○한상주씨 가로대, 출입이란 것은 괘의 내외체로써 말함이니, 나간다는 것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감이고, 들어온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안으로 옴이라. 이로써 소식영허의 변함과 출처진퇴의 이치를 보고 하여금 나가서 들어옴이 마땅한지, 안에서 나감이 마땅한지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알게 함이니, 그 근심은 한가지니라.
又明於憂患與故라 无有師保나 如臨父母하니
또 후환과 연고를 밝혔는지라. 스승과 보호자가 없으나 부모가 임하신 듯하니,
[本義] 雖无師保而常若父母臨之하니 戒懼之至라
[본의] 비록 스승과 보호자가 없으나 항상 부모가 임하신 것처럼 하니, 경계하고 두려워함의 지극함이라.
初率其辭而揆其方컨댄 旣有典常이어니와 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하나니라
처음에 그 말을 따라서 그 방법을 헤아리건대, 이미 법도의 떳떳함이 있거니와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하지 않느니라.
[本義] 方은 道也라 始由辭以度其理則見其有典常矣니라 然이나 神而明之則存乎其人也니라
[본의] 方은 도라. 처음에 말로 말미암아 써 그 이치를 헤아린다면 그 법도의 떳떳함이 있음을 볼지니라. 그러나 신묘하면서도 밝은 것은 그 사람에게 있느니라.
右은 第八章이라
雙湖胡氏曰此章은 專論玩辭觀變爲學易之事하고 而深有望於其人也라 書者는 卦爻之辭也요 道之屢遷者는 卦爻之變也니 此二句一章은 綱領이라 變動不居以下눈 言其變也요 明於憂患以下는 言其辭也라 自其變觀之면 則九六之爻周流於虛位之間하여 或上或下而无常하니 皆一剛一柔之相易하여 不可爲典要하고 而唯變所適이라 然이나 其剛柔之或上而出於外也엔 旣足爲斯人之法度하여 使知懼於外하고 其剛柔之或下而入於內也엔 亦足爲斯人之法度하여 使知懼於內하니 豈徒變之云乎아 自其辭觀之면 則明於憂患而如父母之臨하여 率辭揆方而有典常之하고 可法而後에 總之以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이라하니 則玩辭觀變之學誠有望於其人也니 聖人之意可見矣니라
쌍호호씨 가로대, 이 장은 오로지 말을 익히고 변함을 봄이 학역의 일이 됨을 논하고 깊이 그 사람을 바람이 있음이라. 書라는 것은 괘효의 말이고, ‘도가 자주 옮긴다.’는 것은 괘효의 변함이니, 이 두 구절의 한 장은 강령이라. ‘變動不居’ 이하는 그 변함을 말하고, ‘明於憂患’ 이하는 그 말을 말함이라. 그 變으로부터 본다면 곧 九六의 효가 빈자리 사이에서 흘러 혹 올라가기도 하고 혹 내려가기도 하여 항상 함이 없으니, 다 하나의 강과 하나의 유가 서로 바뀌어 가히 법도의 요체로 삼지 못하고 오직 변하여 가는 바라. 그러나 그 강유가 혹 올라가 바깥에 나가면 이미 족히 이 사람의 법도가 되어 하여금 바깥에서 두려움을 알게 하고, 그 강유가 혹 내려가 안으로 들어가면 또한 족히 이 사람의 법도가 되어 하여금 안에서 두려움을 알게 하니 어찌 한갓 변함만을 말했겠는가? 그 辭로부터 본다면 우환에 밝아 마치 부모가 임하신 것처럼 말을 따라 방법을 헤아려 법도의 떳떳함을 가히 본받는다고 한 뒤에 총괄하여 써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흐르지 않는다고 했으니, 곧 말을 익히고 변함을 보는 것을 배움에 진실로 그 사람을 바람이 있으니, 성인의 뜻을 볼 수 있느니라.
<제9장>
易之爲書也 原始要終하여 以爲質也코 六爻相雜은 唯其時物也라
역의 글됨이 처음을 근원으로 하고 마침을 요구하여 써 바탕을 삼고, 육효가 서로 섞임은 오직 그 때와 물건이라.
[本義] 質은 謂卦體니 卦必擧其始終而後에 成體하고 爻則唯其時物而已라 ○進齋徐氏曰此는 總言聖人作易이라 所以立卦는 生爻之義니 下文에 又逐爻分說而申明之也라 質은 謂卦體요 時는 謂六位之時요 物은 謂陰陽二物也라 原其事之始하여 要其事之終하여 以爲一卦之體質하고 卦有六爻剛柔錯雜은 隨其時하여 辨其物이니 言卦雖有全體而爻亦无定用也라 ○雲峰胡氏曰卦有定體라 故로 曰質이오 爻无定用라 故로 曰時라 ○錢氏藻曰六爻相雜은 唯其時之不同而其事物亦異하니라 如乾之取龍一物也하되 或潛, 或見, 或躍, 或飛之不同者 時也요 如漸之取鴻一物也하되 而于干, 于磐, 于陸, 于木之不同者 亦時也라
[본의] 質은 괘체를 이르니, 괘는 반드시 그 처음과 마침을 든 뒤에 체를 이루고, 효인즉 오직 그 때와 물건일 뿐이라. ○진재서씨 가로대, 이는 성인의 작역을 총괄하여 말함이라. 써 괘를 세우는 바는 효를 내는 뜻이니, 아래 문장에 또한 효를 따라 나눠서 설명하여 거듭 밝힘이라. 質은 괘체를 이르고, 時는 육위의 때를 이르고, 物은 음양의 두 물건을 이름이라. 그 일의 처음을 근원으로 하여 그 일을 마침을 요구하여 써 한 괘의 체의 바탕을 삼고, 괘에 육효의 강유가 섞임이 있음은 그 때를 따라서 그 물건을 분별함이니, 괘는 모름지기 전체를 두면서 효 또한 정해진 쓰임이 없음을 말함이라. ○운봉호씨 가로대, 괘는 정한 체가 있음이라. 그러므로 質이라하고, 효는 정해진 쓰임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時라고 하니라. ○전씨조 가로대, 육효의 서로 섞임은 오직 그 때가 같지 아니하여 그 사물 또한 다르니라. 건괘(䷀)처럼 용이라는 한 물건을 취하되 혹 잠기고(初九爻), 혹 나타나고(九二爻), 혹 뛰고(九四爻), 혹 낢(九五爻)이 같지 않은 것은 때이고, 점괘(䷴)처럼 기러기라는 한 물건을 취하되, 물가에 나아가고(初六爻), 반석에 나아가고(六二爻), 뭍에 나아가고(九三, 九五, 上九爻), 나무에 나아감(六四爻)이 같지 않은 것은 또한 때이라.
其初는 難知오 其上은 易知니 本末也라 初辭擬之하고 卒成之終하니라
그 처음은 알기 어렵고, 그 위는 알기 쉬우니 본말이라. 처음에는 말을 견주고, 끝까지 하여야 마침을 이루느니라.
[本義] 此는 言初上二爻라 ○節齋蔡氏曰初爻者는 卦之本이니 本則其質未明이라 故로 難知하고 上爻者는 卦之末이라 末則其質已著라 故로 易知라 難知則所繫之辭必擬議而後에 得易知로대 但卒其卦之辭而成其卦之終也라 ○雲峰胡氏曰此는 承上文原始要終而言也라 原其始則初爻爲本質未明이라 故로 難知하고 要其終則上爻爲末質已著라 故로 易知라 故로 初爻之辭必擬之而上爻之辭則成之矣니라
[본의] 이는 초효와 상효 두 효를 말함이라. ○진재채씨 가로대, 초효란 것은 괘의 뿌리니, 뿌리인즉 그 질이 아직 밝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알기 어렵고, 상효란 것의 괘의 끝이니, 끝인즉 그 질이 이미 나타남이라. 그러므로 알기가 쉬우니라. 알기가 어려우면 매단 바의 말을 반드시 견주고 의논한 뒤에야 얻어져 알기가 쉽되, 다만 그 괘의 말을 다 하여야 그 괘의 마침을 이루느니라. ○운봉호씨 가로대, 이는 위 문장의 시작을 근원으로 하여 마침을 요구함을 이어서 말함이라. 그 시작을 근원으로 함인즉 초효의 본질이 됨이 아직 밝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알기가 어렵고, 그 마침을 요구한즉 상효의 끝의 질됨이 이미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알기가 쉬우느라. 그러므로 초효의 말은 반드시 견주어야 상효의 말이 곧 이뤄지니라.
若夫雜物과 撰德과 辨是與非는 則非其中爻면 不備하리라
만일 무릇 물건을 섞음과 덕을 헤아림과 옳고 그름을 분별함은 그 가운데 효가 아니면 갖춰지지 않으니라.
[本義] 此는 謂卦中四爻라 ○雲峰胡氏曰此는 承上文六爻相雜而言也라 六爻는 本自相雜二三四五하고 於六爻之中又雜物撰德者는 如屯下震은 物爲雷요 德爲動이며 上坎은 物爲雲이오 德爲險이며 下互坤則雜物爲地요 撰德爲順矣며 上互艮則又雜物爲山이오 撰德爲止矣니 亦可以辨是與非而易愈精矣니라 ○容齋洪氏曰如坤坎爲師한대 而六五之爻曰長子帥師는 以正應九二而言이니 蓋指二至四爲震也라 坤艮爲謙한대 而初六之爻曰涉大川은 蓋自二而上則六二九三六四爲坎也일새니라
[본의] 이는 괘 가운데의 네 효라. ○운봉호씨 가로대, 이는 위 문장의 ‘여섯 효가 서로 섞음이라’를 이어서 말함이라. 여섯 효는 본래 스스로 이 삼 사 오효가 서로 섞였고, 여섯 효의 가운데에 또한 ‘잡물(雜物)’과 ‘선덕(撰德)’이란 것은 둔괘(䷂)처럼 아래의 진(☳)의 물건이 우레가 되고, 덕은 움직임이 되며, 위의 감(☵)은 물건이 구름이 되고, 덕은 험함이 되며, 아래 호괘의 곤(☷)인즉 잡물로 땅이 되고, 선덕은 순함이 되며, 위 호괘의 간(☶)인즉 또한 잡물로 산이 되고, 선덕은 그침이 되니, 또한 가히 써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역이 더욱 정미해지니라. ○용재홍씨 가로대, 이를테면 곤(☷) 감(☵)이 수괘(䷆)가 되는데, 육오의 효사에 “장자가 무리를 거느렸다.”고 한 것은 구이를 정응으로 하여 말했으니, 대개가 이효부터 사효까지(內互卦)가 진(☳)이 됨을 가리킴이라. 곤(☷) 간(☶)이 겸(䷎)이 되는데 초육의 효에 “대천을 건넌다.”라고 함은 대개가 이효로부터 올라가면 육이, 구삼, 육사(內互卦)가 감(☵)이 되기 때문이라.
○臨川吳氏曰內外旣有二正卦之體中四爻하고 又成二互體之卦然後에 其義愈无遺闕하니 非以此正體로 互體竝觀이면 則其義猶有不備니라 正體則二爲內卦之中이오 五爲外卦之中이며 互體則三爲內卦之中이오 四爲外卦之中이라 故로 皆謂之中爻라 ○雙湖胡氏曰是非者는 當位不當位, 中不中, 正不正也라 內外卦旣足以示人矣하니 復自互體而辨之則是是非非於是乎益可見焉이라
○임천오씨 가로대, 안과 밖에 이미 두 개의 정괘의 체 속에 네 효가 있고, 또 두 개의 호체로 괘를 이룬 연후에 그 뜻이 더욱 버려지거나 빠짐이 없으니, 이 정체로써 호체를 아울러 보지 아니한다면 그 뜻이 오히려 갖춰지지 못함이 있느니라. 정체인즉 이효가 내괘의 가운데가 되고, 오효가 외괘의 가운데가 되며, 호체인즉 삼효가 내괘의 가운데가 되고, 사효가 외괘의 가운데가 되니라. 그러므로 다 가운데 효라고 이르니라. ○쌍호호씨 가로대, 是非란 것은 ‘마땅한 자리인가 마땅하지 않은 자리인가’ ‘가운데인가 가운데가 아닌가’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이라. 내외의 괘가 이미 족히 써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다시 호체로부터 분별한다면 시시비비가 이에 더욱 잘 볼 수 있음이라.
噫라 亦要存亡吉凶인댄 則居可知矣어니와 知者 觀其彖辭하면 則思過半矣리라
아아, 존망과 길흉을 요구하건댄 가만히 있더라도 가히 알 수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가 그 단사를 본다면 생각이 반이 넘어가리라.
[本義] 彖은 統論一卦六爻之體라 ○臨川吳氏曰上文에 旣分言初上二爻及中四爻하고 此又總六爻言之라 噫는 嘆美辭라 存亡者는 陰陽之消息이오 吉凶者는 事情之得失이니 要其存亡吉凶之所歸면 則六爻之義는 居然易見可指掌而知矣니라 又謂知者能見事於未形은 雖不觀各爻之義로대 但觀卦首之彖辭면 則所思已得十分之五六矣일새라 蓋彖辭는 或論二體커나 或論主爻커나 或論卦變相易之爻하니 是以不待觀六爻라도 而已可見也라 章首第一句는 言彖이오 第二句는 總言六爻요 此一節又總言六爻하고 而復歸重於彖하니 蓋爲結語요 與章首起語에 相始終이라 下文則又更端而言中四爻也라
[본의] 彖은 한 괘 여섯 효의 체를 통괄하여 논함이라. ○임천오씨 가로대, 위 문장에 이미 초와 상 두 효와 가운데의 네 효까지를 나누어 논했고, 여기에서 또 여섯 효를 총괄하여 말함이라. 희(噫)는 탄미사라. 존망이란 것은 음양의 소식이고, 길흉이란 것은 사정의 득실이니, 그 존망과 길흉이 돌아가는 바를 요구한다면 육효의 뜻은 가만히 있더라도 쉽게 손바닥을 가리켜 보듯이 알 수 있느니라. 또 지혜로운 자는 일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했음에도 능히 본다고 이른 것은 비록 각 효의 뜻을 보지 않더라도 다만 괘 머리의 단사를 본다면 생각하는 바가 이미 10분의 5, 6을 얻기 때문이라. 대개 단사는 혹 두 체를 논하거나 혹 주효를 논하거나 혹 괘의 변함과 서로 바뀐 효를 논하니, 이로써 괘의 여섯 효를 보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미 볼 수 있음이라. 장 머리의 제1구는 단사를 말하고, 제2구는 여섯 효를 총괄하여 말하고, 이 한 구절 또한 여섯 효를 총괄하여 말하고 다시 단사로 거듭 돌아갔으니, 대개가 결어가 되고, 머릿장과 더불어 말을 일으킴에 서로 시작과 마침이라. 아래 문장인즉 또한 다시 정리하여 가운데의 네 효를 말함이라.
二與四 同功而異位하여 其善이 不同하니 二多譽코 四多懼는 近也일새니 柔之爲道 不利遠者컨마는 其要无咎는 其用柔中也일새라
二와 四가 공이 같은데 자리가 달라 그 선함이 같지 아니하니, 二는 명예가 많고, 四는 두려움이 많음은 가깝기 때문이니, 유의 도 됨이 먼 것이 이롭지 않건마는 그 요함이 허물이 없음은 그 유로 가운데 함을 썼기 때문이라.
[本義] 此以下는 論中爻라 同功은 謂皆陰位요 異位는 謂遠近不同이니 四는 近君라 故로 多懼요 柔不利遠而二多譽者는 以其柔中也라
[본의] 이 이하는 중효를 논함이라. 同功은 다 음 자리를 말하고, 異位는 원근이 같지 않음을 이르니, 四는 임금과 가까우므로 두려움이 많고, 柔는 멂이 이롭지 않은데도 二가 명예가 많은 것은 그 유로써 가운데 했기 때문이라.
三與五 同功而異位하여 三多凶코 五多功은 貴賤之等也일새니 其柔는 危코 其剛은 勝耶인저
三과 五가 공이 같은데 자리가 달라 三은 흉이 많고, 五는 공이 많음은 귀천의 등급 때문이니, 그 유는 위태롭고 그 강은 이김인가?
[本義] 三五는 同陽位而貴賤不同이라 然이나 以柔居之則危요 唯剛則能勝之니라
[본의] 삼과 오는 같은 양의 자리면서 귀천은 같지 않음이라. 그러나 유로써 거처하면 위태롭고, 오직 강이라면 능히 이기니라.
右는 第九章이라
雙湖胡氏曰此章은 專論爻畫以示人이라 首論六爻之始終이오 次論爻之初上이오 又次論中四爻하며 因及彖辭하고 末則申論中四爻를 分二四三五陰陽는고 而論以見遠近貴賤으로 安危之不同而剛柔之用亦異하니 其致意在中四爻요 而四爻之中所主는 又在二五居二體之中也라
쌍호호씨 가로대, 이 장은 오로지 효획을 논하여 써 사람들에게 보여줌이라. 처음에는 여섯 효의 시종을 논했고, 다음은 효의 초효와 상효를 논했고, 또 다음에는 가운데의 네 효를 논하여 인하여 단사까지 미치었고, 끝에서는 거듭 가운데의 네 효를 二四와 三五의 음양을 나누어 논했고, 써 원근과 귀천으로써 안위가 같지 않고, 강유의 쓰임 또한 다름을 논했으니, 그 뜻이 이른 것은 가운데의 네 효에 있고, 네 효 가운데서 주장이 되는 바는 또한 두 체의 가운데에 거처하는 二五에 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