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보덕-익산 報德(今益山)
報德(今益山)
唐이 高句麗를 犯할 때 李勛으로서 遼東道行軍大摠管을 삼고 三年에 平壌을 외어 싸고 高句麗王藏을 잡고 그 땅를 나누어 九府와 四十二州와 百県을 두고 다시 安東 都護府를 두었더니
後에 句麗의 大兄 鏐牟岑이 무리를 거느리고 義를 起하여 藏의 外孫安舜을 세워 王을 삼았다.
三国史에 新羅 文武王 十年에 高句麗 水臨城사람 牟岑이 窮年城으로부터 行하여 西海史冶島에 이르러 高句麗 大巨 淵浄과 王子 安勝을 보고 漢城에 迎致하여 君을 삼고
小兄多式等을 보내어 告하여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이음은 天下의 公義라 오직 大国(新羅)은 寬待하심을 바라니이다.
王(文武王)이 国의 西쪽 金馬渚 (今益山)에 処케하고 安勝을 封하여 高句麗 王을 삼고 十四年에 다시 封하여 報徳 王삼고 王의 妹로서 妻하였으며 神文王 二年에 불러 蘇判을 삼고 姓을 金氏라 하다.
春草萋々金馬渚
句麗南渡有荒城
未知欲報誰家德
可惜英風劔大兄
春草가 萋한 金馬渚에
句麗가 南渡하여 荒城을 두었더라.
알지 못해라 誰家의 徳을 報코자 하는가
可惜하다.英風인 舒大兄이여.
金馬渚는 今蓋山이라.
南渡는 句麗가 平壌에 都하였다가 王藏이 敗한 後로 그 子孫이 南으로 金馬渚에 왔다 하였다.
荒城은 古城이라. 未知欲報誰家徳은 王藏의 子 安勝으로 報徳王을 삼았으니 報徳이란 뜻이 国家는 敗亡하였는데 誰家의 徳을 報하고자 하는가 함이라.
錫大兄은 牟岑이니 大兄은 句麗의 官名이라. 三国史에 高句麗 大兄 舒华岑이 国家를 興済코자 王의 外孫安舜을 立하여 王을 삼았다 하고
또 말하되 牟岑 大兄이 賤民을 収合하여 浿江을 渡하여 唐官을 殺하니 唐이 高偘과 李謹行을 命하여 安舜을 치거늘 舜이 牟岑을 殺하고 新羅에 奔하였다 하다.
- 한글
보덕(지금의 익산)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 이훈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3년 만에 평양을 포위하여 고구려왕 장을 잡았다. 그 땅을 나누어 9개 부와 42개 주, 100개 현을 두고 다시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후에 고구려의 대형 금모잠이 무리를 모아 의로움을 들어 장의 외손 안순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삼국사》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0년에 고구려 수림성 사람 모잠이 궁연성에서 출발하여 서해 사야도에 이르러 고구려 대저 원정과 왕자 안승을 만나 한양으로 모시고 와 군주로 삼았다.
그의 여동생 다식 등을 보내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잇는 것은 천하의 공의입니다. 오직 대국(신라)에서 관대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렸다.
왕(문무왕)이 나라 서쪽 금마주(지금의 익산)에 있게 하고 안승을 봉해 고구려왕으로 삼았으며, 14년에 다시 보덕왕으로 봉하고 왕의 여동생과 혼인시켰다. 신문왕 2년에 불러 소판으로 삼고 성을 김씨라 하였다.
금마주에 봄풀 푸르던데
고구려가 남쪽으로 내려와 황폐한 성을 두었구나.
누구의 덕을 갚고자 하는지 모르겠구나.
서러워라, 영웅 서대형이여!
금마주는 지금의 익산이다.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고구려가 평양에 도읍하다가 왕장이 패배한 뒤 그 자손들이 남쪽 금마주로 왔다는 뜻이다.
황폐한 성은 오래된 성곽을 말한다. "누구의 덕을 갚고자 하는지 모르겠구나"는 왕장의 아들 안승으로 보덕왕을 삼았으니, 보덕이란 뜻으로 "나라는 망했는데 누구의 덕을 갚으려 하는가?"라는 의미이다.
석대형은 모잠은 대형이며, 대느는 고구려의 관직명이다. 《삼국사》에 "고구려 대형 서화잠이 나라를 소생시키고자 왕의 외손 안순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고 했다.
또 "모잠 대형이 천민을 모아 버들강을 건너 당나라 관리를 죽였다. 당나라가 고황과 이근행을 보내 안순을 치게 하자 안순이 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