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지분을 사살
한국정부에서는 일적들이 추천한 일본의 응견(鷹犬)으로 있는 미국사람 수지분을 외무 고문으로 쓰게 되었다. 수지분의 농간으로 한국외교 전부 매국적의 행동이다. 융희 2년 3월 23일에 수지분이 휴가를 얻어 귀국하는 길에 미국 샌프란쓰에 들러 일본의 보호정책이 선량함을 칭찬하여 신문에 게재하였다.
우리 동포들은 이것을 보고 몹시 격앙하였다. 우리 지사인 전명운 장인환 등이 옥난시 정거장에서 권총으로 수지분을 쏘아 죽였다. 전장 양인은 미국 관헌에 잡혀 한 일 개년 간 복역하고 나왔다. 이때 미국에 있는 동포들은 전력을 다하여 이를 변호하였고 이승만 경영으로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신교육을 받게 하며 우리 동포는 미국정부에 공인권을 얻어 벌금 오백 원 이하 형을 처리할 때 우리 단체에서 자유 처리하도록 되어 그 단체 안에는 일인까지도 다 굴복하게 되었다.
일영사가 저의 보호국 백성이라고 관할하려는 뜻을 보이나 절대로 받지 않고 자유로 각처에 있는 동포가 서로 연락하여 자치제도가 확실하였다. 수지분의 피살된 소문이 일본에 들림에 일본 정계는 일칭 긴장되어 대한 정책이 완급 양파로 갈라졌다. 완파는 문화적으로 회유정책을 쓰자는 파도 있고 급파는 한국을 일본에 합하자는 파도 있다. 그리하여 통감 증미황조가 갈리고 사내정의가 대신하였다.
사내는 무단가이라 조선백성들이 내외로 소요가 일어나니 이것을 무인에게 맡겨 엄격하게 누르자는 뜻이다. 사내가 오며 조선 토지를 온통 집어 삼키려고 월 27일에 소위 동양척식회사란 것을 세우고 일한 합작으로 조선 역둔토를 출자하여 조선제일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그 후에 토지를 매수하기 시작하여 삼남 일대는 그의 척식의 토지를 만들었으며 또 사법권과 감옥사무를 일적들이 주관하고 법부는 폐지하고 조선인 사상 불온 자는 모조리 검거하여 형법에 없는 고문이 심하여 왕왕 감옥에서 횡사자 속출하였다.
대한정책은 그냥 뒤서는 안 된다는 듯이 족치고 족쳐서 속박 정치가 날로 심하였다. 또 척식회사 비슷한 은행을 세워 이름을 한국은행 곧 조선은행을 세웠다. 말은 금융기관이지만 사무취급은 척식회사나 다름없다. 조선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기관이다.
이것이 다 사내가 온 뒤의 일인데 한국보호가 아니라 토벌이라는 평이 있고 미국에 있는 우리 민족은 이승만의 주장인 동지회와 안창호의 주장인 흥사단 그 외 대동보국단 등이 일어나 국내와 국외에 일본의 학정을 선전하여 그 죄악이 천하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