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오상회 2009.4.15~17
대학동기 오상산우회가 주관한 남도여행이 4월15~17일 2박3일간 있었다. 우리나라 여행중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라면 단연 남도여행이다. 아침 7시에 떠난 버스는 죽전간이휴게소에서 10명을 태우니 모두 25명이다. 이제 본격적인 봄꽃놀이 철이라 고속도로는 만차이다. 서해대교를 통해 목포를 향해 차는 달린다. 차에서 김밥을 나누어 주어 요기를 했지만 점심시간이 늦을거라며 간식으로 고인돌휴게소에서 우동,잔치국수를 선택해서 먹었다. 아침날씨는 아직 좀 쌀쌀했다. 산과 들은 온통 청녹색으로 물들여 놓은듯 하다. 흰 산벚꽃과 조팝나무도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목포로 들어서니 늦은 벚꽃과 개나리가 화려한 그림을 펼친듯하다. 유달산이 첫 목표지인다. 새로 건설된 압해대교가 장관이었다. 유달산에 올랐다.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고 대학루(待鶴樓)에서 목포시가지와 항만 섬들을 조망했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가수의 노래가락이 흘러나오고 그의 시비가 서 있었다.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박으며 노래가사를 보며 흥얼거려본다. 유선각(遊仙閣)에서 다시한번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감상했다. 82세라고 하는 노파가이드가 우리일행을 위해 바라다 보이는 고화도와 용머리바위,삼학도의 유레,목포(木浦) 지명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일행 중 경상도 목소리가 많아서인지 경상도사람들이 기마이가 좋다라는 말로 은근설쩍 팊을 유도한다. 유달산정기 표지석
待鶴樓
이난영시비
유선각
내려다 보이는 목포시내와 항구
삼학도 등 다도해
82세의 가이드 할매 남농기념관 목포에 오면 꼭 들러야한다는 남농기념관을 찾았다. 남농기념관은 한국 남종화의 거장이자 운림산방 3대주인 남농 허건 선생이 1985년5월 선대의 유물보존과 한국남화의 전통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해 설린한 미술관이다. 남농은 조선조말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의 친손자이고 미산 허형의 네째아들이다. 평생을 목포에서 보내면서 한국 화단의 중심에 서서 많은 작품과 제자를 길렀다. 이곳 미술관에는 소치 허련,미산 허형 그리고 남농 허건,임인 허림 등 3대의 작품을 중심으로 조선조 유명화가와 현대의 중견작가의 작품 300여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의제(의도인)허백련 선생의 작품도,소전 손재형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남농기념관
남농기념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남농 허건선생 동상 점심은 연포탕을 먹으러 독천식당으로 갔다. 목포항에서 제법 떨어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다. 이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언제나 많은 손님들이 붐빈다. 갈낙탕(낙지에 갈비)과 연포탕을 식성대로 맛있게 먹었다. 남도음식의 명가답게 맛은 좋았으나 한그릇에 15,000원이라-- 좀 비싸다는 평. 산낙지가 없어서는 아쉽다고 5접시를 보탰다. 연포탕,갈낙탕을 처음 먹어보는 회원들도 있어서 이 지방의 특이한 메뉴를 먹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행은 꼭 보는 여행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식도락의 즐거움이 여행의 별미이다. 배불리 접심을 먹고 해남을 향해 달린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월출산의 바위산 모습이 계속 시선을 끈다. 전라남도의 유명한 산 중에는 월출산과 곧 가게되는 두륜산, 그리고 달마산이 있다.
연포탕,갈낙탕으로 유명한 독천식당 녹우당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해남의 고산 윤선도 종택이 있는 녹우당(綠雨堂)이었다.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종가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호는 어초은(漁樵隱)1476~1543)이 연동(蓮洞)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 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해상 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하여 녹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해남 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녹우당으로 부르고들 있으나 원래는 그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이 다. 'ㅁ'자형을 이루며 안뜰을 둘러싼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행랑채가 여러 동 있고 집 뒤편 담장 너머에 삼신제단이 있으며 그 동쪽에 해남 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윤선도의 사당이 있다. 녹우당이란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 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 기념물 제 241호 )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고화첩(보물 제481호),노비문서(보물 제483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녹우당 뒤 비자숲길을 산책하고 별도의 고산유물전시관에 들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윤두서의 자화상(국보제240호)이다. 극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하도 정밀하게 그려서 한국 최고의 초상화라고도 한다. 280년 전에 붓과 먹으로 그린 그림이 라이카로 찍은 사진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자신의 눈과 수염을 그린 부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렬한 느낌을 받게 한다. 윤선도의 예술혼은 그의 증손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년)가 이어받는 다. 윤두서야말로 실제 이 집에서 거주한 주인이다. 이 집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애 대부분을 여기서 보냈다. 녹우당의 상징인 300년의 수령을 가진 은행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음 목표지인 두륜산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2003년 2월에 개통된 케이블카는 그 길이가 1,500m라고 한다. 8분가량 케이불카를 타고 해발 568m지점에서 내려 나무계단을 걸어 두륜산의 고계봉(638m)까지 올랐다.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답다. 한반도처럼 생긴 호수와 전답모습이 신기하고, 바다와 평야가 동시에 보이며 멀리 두륜봉,도솔봉,가린봉,노승봉 등이 연봉으로 줄지어 서 있다. 시계가 좋은 날에는 노화도,보길도,당사도,진도가 보이며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고--
녹우당 전체모습
녹우당
비자숲길
녹우당 전경
공재 윤두서 자화상(국보제 240호)
케이블카
한반도 지도모습
나무계단을 걸어오른다.
고계봉에서
두륜산 고봉들 다음은 두륜산 대흥사로 향했다. 벌써 6시를 가리킨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다행히 해가 늦게 져서 충분히 절구경을 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긴 진입로를 따라 걸어가는 호젓한 분위기는 일행 모두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강호동의 1박2일이란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유선관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예전 그의 남도답사기에서 소개한 집이라 모두에게 관심이 많았다. 필자는 지난 가을에도 이곳에 들렀는데 언젠가 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대흥사 경내를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일주문을 지난 마당에서 두륜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남겼다. 사진찍기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천불전과 여러 가람을 다니는 중에 저녁예불 시간이 되었다. 법고와 타종이 시작되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예불의식을 구경 할 수 있었다.
유선관
유선관 내부정원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두륜산을 배경으로한 풍경
대흥사
대흥사 대웅보전
윤장대
뿌리가 붙은 사랑나무
천불전 내부
명당자리라서- 땅끝마을 숙소는 땅끝마을의 펜션이다. 숙소에 들기전에 횟집에서 싱싱한 생선회로 회식을 가졌다. 회 맛이 너무 좋아 모두들 한마디씩 감탄을 한다. 그러니 자연 술맛도 나게 마련이다. "어민횟집"의 서빙하는 아줌마가 어찌나 화통한지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어둠이 깔린 어촌마을 승용차만 진입할 수 있는 곳에 우리의 숙소 '땅끝펜션'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등 아래 보이는 이 펜션은 손님숙소로 두개의 건물과 주인집을 포함 세동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두개동을 통째로 빌렸다. 3명~4명씩 방배치가 되었다. 마당의 정원도 아름답고 바베큐실도 있어서 편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들으니 몇몇 회원들은 여기서 양식하는 전복을 사다 바베큐실에서 술안주로 늦게까지 즐겼다고 한다.
싱싱한 회 / 푸짐한 회
땅끝팬션
숙소 A동
바베큐실
송도리해수욕장에서
아침식사는 어제 저녁 식사하던 그집인데 걸어가면서 필자와 우산,일송 셋이서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걸었다. 전복가두리와 해태양식장이 바닷가에 있었다. 바다물이 줄어드는 시간인데 낚시하는 사람들이 방파제에서 세발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숭어잡이 낚시란다. 어제밤 9시경에 큼직한 숭어 다섯마리를 잡았다고 자랑이다. 땅끝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제법 힘들었다. 전망대 앞에서 여기에 왔다는 증명사진을 남기고 전망탑 구경을 하였다. 전망대는 아침 이른 시간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땅끝전망대는 마치 돌고래가 물을 차고 솟아오르는 형상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모노레일도 입장이 안되었다. 신해남8경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8경의 명승지 이름만 소개하면 연봉녹우(蓮峰錄雨),두륜연사(頭輪煙寺),고천후조(庫千候鳥),명량노도(鳴粱努濤),우항괴룡(牛項怪龍),육단조범(陸端眺帆),달마도솔(達摩도率), 주광낙조(周光落照)인데 연봉녹우,두륜연사,육단조범,주광낙조는 이번 여행코스에 포함 되니 짧은 시간에 이 얼마나 알뜰하고 효율적인 관광인가 싶다. 보길도로 가는 배 타는 부두근처에 땅끝마을 표지석이 높다랗게 서 있었다. 바다안으로 바위 두개가 서 있다. 그 가운데로 일출광경을 보는 멋진 광경은 날씨가 흐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바위를 배경으로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9시10분경 땅끝구경을 마치고 해안도로를 타고 달린다. 해송림이 줄지어 서 있어서 보았더니 사수미 해수욕장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왼쪽에 달마산이 보이고 또 얼마를 가니 언덕받이에 어마어마하게 큰 공룡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황산면 우황리 공룡유적지인가 보다. 해남과의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강진으로 달린다.
땅끝전망대 앞에서
봉수대
땅끝탑
신해남8경의 하나인 두륜연사
땅끝모노레일
기암
바위 사이로 오르는 일출모습/펌
한반도 최남단 땅끝 표지석 다산초당 10시경 강진의 백련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백련사 들어가는 길에는 온통 동백숲이 가득하다. 이 동백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철이 조금은 지난 것 같지만 아직 붉은 동백꽃이 많이 달려 있었다. 천일각까지 가는 길은 산보길로 아주 좋았다. 야생차 군락지도 보이고-- 천일각은 이곳에서 유배온 다산 정약용이 정조대왕과 흑산도로 유배간 형님을 그리며 자주 올랐다는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워 놓았다. 천일각이란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의 줄임말이란다. 드디어 목적지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도착했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와서 10여년간 기거하며 많은 책을 쓰고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본래 초가였던 다산초당은 1936년에 무너져 없어졌는데, 1957년 해남 윤씨의 도움을 받아 정다산유적보존회가 복원하면서 지붕을 기와로 덮었다. 해남 윤씨는 다산의 외가인데 선비화가 윤두서의 손녀가 바로 다산의 어머니이다.
초당의 '다산초당(茶山草堂)'과 동암의 '보정산방(寶丁山房)'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다산초당은 추사의 글씨를 여기 저기에서 집자해서 만든 것이고, 보정산방은 추사가 다산을 위해 직접 썼다고 한다. 다산초당은 다산이 강진에 머물면서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했던 곳이며, 서암은 제자들이 머물던 곳, 동암은 다산이 초막을 짓고 거처하면서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을 집필한 곳이다. 그는 24살 연하인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스승이자 벗으로 학문을 같이 했다. 1818년, 다산은 유배생활을 마치고 이곳을 떠난다. 그 해는 바로 목민심서가 완성된 해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그를 우리는 조선 후기 실학(實學)의 대가로 기억한다. 마당에는 연꽃 피는 못과 돌맹이로 바위산을 꾸민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 있고, 다산이 초당 왼쪽 후면을 파서 만든 샘 "약천(藥泉)"이 있다. 그리고 다산이 유배가 끝나기 전 뒷 바위병풍에 직접 음각으로 새겼다는 글씨 "정석(丁石)"이 보인다. 정석은 그의 성씨인 정(丁)이 돌(石)이 되겠다는 담백하고 굳센 의지와 기백이 서려있는 듯하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다산에 관한 책을 팔고 있었다. 강진 군수를 지냈던 윤동환씨가 쓴 다산정약용과 해설 목민심서 두권을 저자가 서명을 해주며 권당 만원에 팔고 있었다. 필자도 다산에 관한 소설이나 서적은 많이 보았지만 윤씨가 쓴 책은 처음이라 한권을 샀다. 아직 점심시간은 일러서 강진 시내에 있는 김영랑 생가를 찾기로 했다.
백련사 가는길/동백숲길이다.
아직 빨간 동백꽃이 달려있다.
백련사 모습
천일각
천일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
다산초당으로 가는 숲길
다산 동암
보정산방
연지석가산
다산초당 약천과 정석
서암/다성각
저자 윤동환씨가 책에 서명을 해주고 있다. 김영랑생가 김영랑 생가는 오래전에 가 본 기억이 나지만 그 앞에 향토문화관이라는 큰 건물이 서 있어서 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향토문화관은 한국 시문학파의 거성 영랑 김윤식과 김현구 시인의 작품과 향토작가들의 주옥같은 시와 작품세게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침 아주 해박한 해설을 하는 분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영랑(김윤식)의 네째아들이라고 했다. 영랑 김윤식 선생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의 휘문의숙과 일본 아오모리(靑山)학원에 유학하였고 삼일운동 직후 6개월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학창시절 그의 대표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누구나 암송하며 애창하던 시였다. 향토문확관 뒤로 올라가는 곳에 김영랑의 생가가 있었다. 앞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그의 시비가 서 있다. 안채 사랑채 모두 초가지붕으로 깨끗이 단장되어 있고 마당에는 자주색 큰 모란이 피어 있어서 반가움이 더했다. 김영랑생가 구경을 마치고 미리 예약한 한정식 전문집인 "명동식당"으로 갔다. 전라도 한정식은 반찬 가지수가 어마어마 하다. 이 곳 명당식당도 40년 역사를 가진 남도음식명가로 소문난 집이다. 2인일 경우 6만원, 3인이상일 경우 1인당 25,000원인데 해물반찬,육류 나물류 등 반찬 가지수가 많아 상이 모자라 포갤 정도이다. 모처럼 비싼 강진의 한정식을 즐겼다.
향토문화관
영랑 김윤식선생 김영랑 생가 바깥채
빨간 모란꽃이 피기 시작한다.
연못자리는 메워졌고 백일홍나무가 서 있다.
안채
뒷산
강진의 전통한정식 명동식당에서
보성차밭 1시20분 식사를 마치고 보성에 있는 차밭으로 향했다. 워낙 소문이 많이난 탓이라 이곳 보성차밭도 인산인해이다. 휴일도 아닌데 왠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뒷산은 동백과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삼나무가 가로에 높이 서서 환영하는 것 같다. 보성차밭은 '대한다업주식회사'라는 회사 소유였다. 보성군이나 전남도에서 관리하는 줄 알았는데 개인소유란다. 완전히 관광지화 되어 있어서 입장료는 물론 시음하는데도 돈을 받았다. 기념으로 찍는 사진도 차밭을 배경으로 하니 멋이 났다. 4월20일이 곡우인데 곡우전에 따는 차가 가장 좋다는 우전차이다. 참새 혓바닥 모양이라고 해서 이름지어진 작설차 또는 세작차(細雀茶) 처럼 잎이 작고 연해야 상품이란다.세작차는 5월상순에 채취한다. 5월중순에 따는 중작(中雀)은 잎이 좀 더 자란 후 잎을 한두장 따서 만들며 색과 맛이 넉넉하다. 대작(大雀)입하차는 5월하순에 딴 찻잎으로 중작보다 더 굳은 잎을 따서 만든 거친차로 녹차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6~7월에 채취하는 엽차는 굳은 잎이 대부분으로 숭늉대신 끓여 마시는 차이다.
보성차밭에서
즐거운 표정들
차 시음회
순천갈대밭 보성 차밭관광을 마치고 다음순서인 순천 갈대밭으로 - 보성에서 순천 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노란 유채밭이 길게 늘어서 있다. 멋쟁이 허수아비 모습도 애교스럽다. 벌교를 지나간다. 벌교하면 유명한 세가지가 생각난다. 벌교주먹,꼬막,상업학교 주산실력. 이런 저런 얘기로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4시10분경 순천갈대밭에 도착하였다. 지방마다 특화된 관광상품 또는 특산물이 있듯이 순천은 연안 늪지대로 갈대숲과 철새들 관광으로 연중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순천만 갯벌은 800만평으로 연안습지를 대표하는 곳이다. 그리고 갈대숲의 면적이 70만평이니 이 둘을 합하면 870만평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이다.세계5대연안습지 순천만은 2006년1월 국내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고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순천만 갯벌과 갈대밭을 약 30분간 돌았다. 멋진 관광이었다. 유람선 선장이 신나게 설명을 해 주었다. 220여종의 철새들이 드나들며 흑두루미 400여마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갯벌에는 짱둥어,혹부리오리가, 그리고 뻘게,농게,칠게가 기어 다니고 숭어가 뛴다고. 그리고 꼬막 양식장도 있었다. 이 곳에 오는 철새는 검은머리물떼새,검은머리갈매기,외가리,붉은부리갈매기,민물도요, 청둥오리,흑두루미,마도요,노랑부리저어새,장자리물떼새,고니,홍머리오리 등으로 10월말부터 날라오기 시작하여 4월말까지 철새들의 서식처가 된다. 이곳 순천에서는 6월말까지 전봇대를 뽑고 지중선화 한다고 한다. 철새들이 전깃줄에 걸려 죽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란다.
노란 유채꽃밭을 지키는 멋쟁이 허수아비
연안습지 순천만
철새의 상징탑
유람선
갈대.청둥오리,늪
갈대밭 오늘 관광일정은 이로 모두 끝났다. 숙소는 순천의 엠베서더모텔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순천만가든)으로 모였다. 오리요리로 술안주를 삼으며 마지막 저녁을 보냈다. 모두들 즐거운 분위기이다. 서빙하는 아줌마에게 말을 붙여가며 -- 순천은 미인으로 유명한 고장이라고 한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하니- "순천에 와서 미인자랑 하지말며, 여수가서 돈자랑 말라. 그리고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아라" 그리고 보니 바로 이곳이 순천이 아니던가? 길가는 여인도 한번 더 보게 된다.
오리구이로 저녁회식
숙소
짱뚱어탕으로 아침식사를 힘좋은 친구 6명은 또 노래방까지 가서 회포를 풀었다고 하니 그 체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여행의 세가지 필수조건에 체력이 첫째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세가지 필수조건이란 즉 3력이 있어야 하는데, 체력(건강),금력(돈),여력(시간) 이 세가지가 다 맞아야 하니 그 어느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없다. 3일차 되는 17일은 아침에 비가 조금 내린 모양이고 날씨도 좀 서늘해진 기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룸메이트인 충우와 뒷 언덕길로 산보를 다녀왔다. 상쾌한 아침이다.그런데 갑자기 속이 안좋아져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누룽지만 조금 먹었다. 어제 너무 과식한 탓인가? 아침식사는 짱뚱어탕이다. 처음 먹어보는 탕이라 신기하다. 추어탕처럼 짱뚱어를 그대로 넣고 양념과 함께 뚝배기에 끓인다고 한다. 4인용탕 한그릇이 35,00원인데, 짱뚱어는 주로 벌교에서 많이 잡히는데 1마리에 천원 한다니 비싼 생선인 셈이다. 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 오늘 일정은 선암사와 송광사 두절을 찾는 사찰문화기행이다. 선암사를 구경하고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걸어서 간다. 산을 넘어가는 총 거리는 8.7KM이다. 선암사에 도착하니 9시 10분전이었다. 선암사는 호남의 명산 조계산에 자리한 한국적인 절의 옛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천년고찰로 국내 대표적인 명찰의 하나이다. 신라 법흥왕 때 아도화상이 청량산 해천사를 창건하고 신라말 도선국사가 대가람을 일으켜 선암사라 하고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동리산문의 선풍을 크게 진작하였다. 고려 선종 시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대각암에서 수도하면서 산이름을 조계산이라 하고 사원을 크게 중창하였다. 불교는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 등 26개의 종파가 있다. 가장 많은 사찰이 소속된 종파는 조계종으로 서울 조계사에 본원을 두고 있고 태고종의 본원은 바로 이곳 조계산 선암사이다. 태고종의 스님은 머리를 기르는 대처승이다. 그리고 천태종의 본원은 단양 소백산에 있는 구인사이다. 선암사에서 눈여겨 본 몇가지는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승선교(乘仙橋) 그리고 경내로 들어서는 첫문인 일주문의 아름다움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삼층석탑(통일신라시대) 과 선각국사 도선 진영도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암사를 예쁜 절로 보는 것은 규모가 작은 절의 가람배치를 아기자기하게 배치하여 예술적인 미적 느낌이 들게 하였고 600년된 매화나무가 이 절의 자랑이다. 이미 꽃은 다 져서 볼 수 없는 대신 또하나의 자랑인 왕벚꽃이 지금 한창 만개하여 선암사를 찾는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그외에 영산홍,자산홍,동백이 화려하게 피어 있어 마치 화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1년내내 꽃이 지지않는다고 한다. 산수유,수국,상사화 등과 측백나무,삼나무가 많고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종무소 앞에 길게 누운 와송(臥松)이다.
선암사 입구
유명한 승선교
강선루
하마비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대웅전 내 석가모니불
왕벚꽃이 한창이다.
꽃밭에서 선암사 경내구경을 마치고 일행은 송광사로 가는 산길을 나섰다. 평탄한 길도 있었지만 너들바위도 있고 제법 가파른 깔딱고개도 있었다. 절과 절 사이의 거리는 6.5km로 3시간 산행길이다. 주창장까지는 총 8.7km로 3시간 반이 걸린다. 산행길에는 야생화가 유별나게 눈에 많이 띄었다. 현호색,노랑꽃의 피나물,높은 산에서만 핀다는 얼레지,붓꽃 등이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미로원'이라는 야생화단지도 있었다. 우리일행을 인도하는 흰 개 한마리가 관심꺼리였다. 과연 송광사까지 같이 갈 것인가? 아니면 어디서 돌아갈 것인가-- 송광사 가는 팻말이 도중에 여럿 있지만 최고봉인 장군봉으로 가는 표지판을 보면서 정상으로 가고픈 유혹을 느끼게 한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 마지막 무대로 등장하는 곳이 이곳이란다. 조계산보리밥집에서 묵과 야채를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별미였다. 이 보리밥집은 너무나 유명한 집으로 조계산을 넘는 산행객들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달콤한 휴식처인 셈이다. 굴목재에서 한참을 쉬고 토다리를 지나 개울에서 손발을 씻으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드디어 대나무숲이 길양쪽에 늘어선 걸 보니 송광사에 도착한 모양이다.
편백나무숲길
우리를 길안내하는 개
조계산보리밥집
보리밥집의 막걸리와 묵맛을 어찌 잊으리요.
무쇠솥에 짓는 밥맛도 좋겠지요?
굴목재(해발 720m)
개울물에 발을 닦고
송광사에 도착/대나무숲길
조계총림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 불교에서는 귀하고 값진 세가지 보배 즉 불(佛),법(法),승(僧)을 삼보(三寶)라 한다. 한국불교에는 이 삼보를 상징하는 삼보사찰이 있으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인 양산통도사, 팔만대장경 경판을 모시고 있어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어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가 바로 삼보사찰인 것이다. 송광사는 보조국사의 정혜결사 근본도량으로서, 또 보조국사를 포함한 16국사를 배출한 수행도량으로서, 이를 이어 현대의 효봉,취봉,구산,일각선사등 많은 스님들의 수행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해오고 있는 대표사찰이다. 송광사는 1969년 조계총림(曹溪叢林)이 되었다. 총림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뜻한다. 조계총림이 되면서 초대방장인 구산 큰스님을 모셨고 16국사를 배출한 수행 정진의 도량으로서 승보사찰의 명성을 얻고 있다. 대사찰인 만큼 국가 문화재도 많다. 국보 제56호인 국사전은 고려 공민왕때 창건된 송광사 16국사 진영을 모시고 있다. 그외 국보 제42호인 목조삼존불감과 고려고종제서(국보제43호)도 성보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약사전과 영산전 하사당 사천왕상,경질,경패,금동 요령 등 보물도 총 19건 110점이나 된다. 송광사 3대명물은 꼭 보아야 하는 하는데 수령 800여년의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천자암에 자리하고 있어서 보지 못했다. 성보박물관 내에 있는 능견난사는 법당의 부처님전에 공양물을 올릴 때 사용하던 용기이다. 절에서 국재를 모실 때 사찰로 모여든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용기인 비사리구시도 시선을 끈다.
조계문
대웅보전
대웅보전 벽화
화려한 단청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곳
송광사 일주문 앞에서 / 경목회원들이 한자리에
송광사 입구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었다. 미리 예약한 송광사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밥맛이 좋다고 한마디씩 한다. 들깨를 풀어넣어 만든 국이 구수한 맛으로 인기를 끌었다. 동동주도 꽤나 인기였다. 배탈이 난 필자는 반만 비벼먹고 버스에 올랐다. 이틀후 경목불자모임으로 다시 이곳을 와야하니 식당명함을 받아두었다. 2박3일의 즐거웠던 여행을 뒤로 하고 2시30분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너무나 잘 짜여진 스케쥴에 알차고 보람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은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진가는 달라진다. 다음 여행때에도 보다 많은 친구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