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우리 교실은 잘 있다
2020.6 향기 이영란
분꽃이 피었다
장석남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비애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 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마음에 든 날
이영란
습기를 한껏 머금은
일찍 온 여름밤
얌전하께 쑤어진
청포묵 같은 바다를
곁에 두고
걷는다.
나이가 들어도
겨우 8시 30분에 맞추어
출근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오늘 아침에도
소리 없는 눈총을 받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2시간동안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나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사회시간에 시작한
우리 고장을 소개하는 과제는
3시간 째 진척이 없고
선생이 적는 건지, 아이들이 하는 활동인지
분간이 없지만
다섯 글자를 넘기는
단어가 없는 받아쓰기를 해도
칠십점이 최고점수이고
평균점수 사오십을 받는 아이들이지만
선생이 웃어서 좋으면 좋다 말하고
공부가 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하고
배가 고프면 배 고프다고 말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라고 친절하게 말하고
나는 잘 그린 그림보다 너희들이 그린 그림이 좋다고 말하고
발음이 잘 안되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살핀 기특한 날
내가 마음에 든 날
이쯤이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 대열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좁은 교실에 식구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우리 교실 식구들을 소개하자면, K, P, J, H, K2 5명, 나, 고치를 감고 있는 누워있는 누에애벌레 2마리, 고치를 못 감은 채 연명하고 있는 부실한 애벌레 1마리, 구피 9마리, 방울토마토, 나팔꽃, 봉숭아, 한련화, 채송화, 유칼립투스, 라일락, 율마, 바질, 분꽃, 아이비, 트리안, 로즈마리, 다육이, 스킨답서스 등. 교실은 우리 반 J의 말대로 정글을 방불케 하고 있다.
2~3센티였던 누에나방애벌레가 10여센티를 훌쩍 넘겼다가 지금은 하얗게 고치를 감고 누워있다. 가작가작 갉아먹는 소리까지 들리던 어린 누에애벌레였을때부터 뽕나무잎을 공수해서 먹였다. 주말에는 집에 가져가서 잎을 먹였고 방역이 있는 날에도 나는 독한 연기를 피해서 누에집을 들고 함께 퇴근을 했다.
원래 10마리정도였던 애벌레이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건 3마리인데, 그 중 한마리는 고치를 장담하지 못한다. 지독히 낮은 생존율의 원인은 아이들의 손이었다. 자꾸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가? 뽕잎을 먹는 일, 기어다니는 일 그 모든 모습이 예뻐서 아이들은 누에를 기어코 떼어서 손바닥과 손등을 오가게 하더니 그 사달이 났다. 한 마리는 금방 죽었는데 아이들은 그걸 나에게 비밀로 했고 나머지는 비질비질거리며 누런 설사를 하면서 결국은 죽었다. 과학선생님이 키우는 누에는 무럭무럭 튼튼하게 커가는 걸 본 아이들은 모두 누에의 죽음이 저희들 손 탓임을 부인하지 못했다. 많이 속이 상했지만 아이들에게 학습효과는 확실했고 그 뒤 아무도 누에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누에는 시일이 차자 똥이 굵어지고 몸이 투명해졌다.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돌아다니더니 허연 실을 뿜어 내었다. 종이 계란판을 넣어주었더니 하얗게 스스로를 감고 누워서 꼼짝하지 않았다. 한번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도 누에의 얌전한 성격과 깔끔한 생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대로 두면 고치를 깨고 누에나방이 되어 날아가고, 끓는 물에 삶으면 명주실을 뽑고 번데기를 먹을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들과 의논할 것이다.
지난 번에 분가한 분꽃은 봉숭아에 눌려서 기를 못 펴던 삶을 마감하고 보기해도 한결 시원하게 자라고 있다. 분꽃과 봉숭아는 웬만한 촌집 마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꽃 같은 건 절대 안 키우던 우리 집에는 없었다. 남편이 일찍 죽고 자식들도 독립해 나가 오랫동안 혼자 살던 우리 동네 아주머니 집의 넓은 마당 한 귀퉁이나, 한옥마을 마당의 텃밭이나, 시인이나 문학가의 생가로 만들어진 곳의 화단에 심어진 꽃이었다. 박완서 작가님이 써 둔 산문에서는 한번 키우기 시작하면 떨어진 씨앗에서 끝도 없이 올라오는 꽃으로 그다지 귀한 꽃은 아닌가 보지만, 귀한 꽃, 덜 귀한 꽃, 귀하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그것을 나눌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식물 식구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건 방울토마토와 나팔꽃이다. 식물들도 한 곳에 심으면 얼마나 기 싸움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두 번째 사례가 방울토마토와 함께 심은 상추이다. 상추는 꼭 얻어맞은 것처럼 비루하게 자라다가 오늘은 결국 내가 상추 몇 잎을 따서 담고 결국은 뽑아버렸다(?). 방울토마토와 나팔꽃은 덩치에 걸맞게 물을 어찌나 껄떡거리며 먹는지, 하루에 꼬박꼬박 생수 2리터씩은 마셔댄다. 저번 주말에는 물을 적당히 주고 퇴근을 했더니, 월요일 아침에는 그냥 나 죽겄다하고 축 쳐저 있었다. ‘네가 엄살이 해도해도 너무하네’ 퉁을 주며 물을 가득 주었더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힘을 주며 물이 올랐다. 식물도 저마다 성질이 다르다.
꽃들도 서로 질투를 하고 왕따를 시킨다면 아마 분꽃이 대상이 될까? 저녁 무렵에 꽃잎을 여는 분꽃에게 별로 잘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중뿔나게 저녁에 피냐고 왈왈거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분꽃을 위해서 조금만 변호를 준비해 보자.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낸 이가 저녁 무렵 여는 꽃을 보고 위로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한여름 더위로 모두가 지친 저녁에 싱그럽게 피는 분꽃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