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합(試合)
『갑양군감(甲陽軍鑑)』(일본 전국시대
다케다(武田) 家의 가신인 고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가 저술한 군사학서)에,
“전투가 없을 때 武士는 서로 싸움을 걸어 대결을 벌였는데,
이것을 참합(斬合) 혹은 ‘시아이(試合)’라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리야마번(郡山蕃) 條目에는
‘타류와의 시합에서는 갑옷과 투구 등이 필요 없음
(他流與仕合 堅無用之事)’ 이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시합(試合)’이 아니라 ‘사합(仕合)’이라고 하는 글자를 사용했나보다.
이 사(仕)라는 글자는 ‘받들어 모신다’는 뜻으로,
사합(仕合)이란 신(神) 앞에서 생사를 걸고 행해졌으며,
이기는 것은 삶(生)을, 지는 것은 죽음(死)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츠라 키요시(松浦淸: 에도 중반기의 영주)는
『상정자검담(常靜子劍談)』이라는 책에서,
“검도의 본질은 실전에 존재한다. 진정한 도장(道場)이란 전쟁에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검도는 결코 실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실로 엄하고 무서운 점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정신은 시모이나바(下稻葉) 경시총감이 경비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기동대 대항시합은 한 칼 승부로 해야 한다.” 라고 발안한 것을
기초로 이후 면면히 실시하여 왔다는 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확실히 검도는 시합에서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검의 理法에 의한 인간 형성이 종국의 목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그러나 또한 검도가 승부를 무시하고서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술과(術科) 항목도 끝나가기 때문에 전체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검도비가(劍道秘歌)를 통하여 시합에 관한 얘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천 길 깊은 바다 밑 고요함을 마음에 숨기고
그 자리로 나가야 할 것이다.
이기고 싶다, 질 수 없다, 치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입니다만,
시합 전에 잡념에 얽매여 마음과 몸이 함께 피폐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끝내는 것은 자주 겪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걸고 들어가는 것이니만큼
‘타오르는 가슴의 불꽃’을 가라앉혀 주었으면 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겠지만,
조용히 수식관(數息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적을 치겠다(擊)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몸을 지켜라.
저절로 새어드는 빈천한 오두막의 달빛…
이와 같이 서늘한 심경으로 상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 시합이란 心技體가 혼연일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는 법입니다.
내리면 쌓이기 전에 털어내 버려
눈(雪)에는 꺾이지 않는 푸른 버들가지.
유연한 심기체(心技體)는 수만 가지로 변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유연함 속에서도 한 줄기의 심지(芯)와 여유라는 것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미즈 지로쵸(淸水次郞長: 막부 말기, 메이지 시대의 협객)는
진검 승부를 할 때 상대의 칼끝에 자신의 칼을 대보고 반응과 느낌이 없을 때는
칼을 거두고 도망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맛이 있는 이야기이죠,
양 칼날 끝을 서로 맞대었다면 결코 그것을 피하지 마라.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칼날이 맞부딪혀 교차된 그 아래는 지옥,
몸을 던지게 되면 그 후는 극락.
이 노래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몸을 던짐(捨身)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사람의 약점인 생사(生死)에 집착하게 되면
기(氣)가 움츠려들고, 칼의 끝은 위축되어 버립니다.
여기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힘을 모두 끝까지 한 칼에 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을 야마오카 텟슈(山岡鉄舟)는
『검법사정변(劍法邪正辯)』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검법정전의 진정한 극의자(極意者), 별도의 법은 없다.
적이 좋아하는 상황을 좇아 승리를 얻는다. 적이 좋아하는 상황이란 무엇인가.
양 칼날을 서로 맞대면 반드시 적을 치지 않으면…이라는 생각이 없을 리 없다.
그러므로 나의 몸 전부를 모아 적에게 맡기고 적이 즐겨하는 곳으로 좇아가
승리를 얻는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
그리고 승리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상대를 칠 때도 마음으로,
겨눔세를 무너뜨리지 말고 뒤를 대비한다.
이 존심(存心: 殘心)을 잊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