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이틑날 일정을 하남시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룻새 만에 우리는 가장 빠른시간안에 최적의 효율로 빨래를 하는 법을 알아냈고, 뺄랫대가 없어도 빨래를 모두 널어놓은 방법을 익혔습니다 :) 하루만에 우리는 꽤나 장거리 여행자의 행색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틑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알아낸 또 한가지 유용한 팁이 하나 더 있다면, 자전거를 타다보면 하루에 물을 약 5리터 가량은 마시는데 그러다 보면 훨씬 효과도 오래가고 맛도 좋은 이온음료를 저절로 찾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차 가진 이온음료의 양을 늘리기 위해 음료에 물을 타먹기 시작하는데, 처음으로 제조해본 음료가 바로 이날 아침에 만들었던 비타민 워터입니다. 모텔에서 제공해준 400원짜리 오렌지쥬스를 500ml 생수와 섞으면 편의점에서 파는 2000원짜리 비타민워터와 똑같은 맛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제조원가 900원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존방식(?)을 익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페달을 밟았습니다. 전날 지나온 팔당대교를 다시 지나 남한강 자전거길을 타고 양평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째 부터 마지막 날까지 제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무어냐 하면 바로 "우와! 고개를 돌리는데 마다 진짜 너무 아름답다!!"
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의 외곽으로 빠져나오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제가 말을 밖으로 꺼내면서도 스스로 너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북한강 철교를 지나는 사진인데 철교 양 옆으로 정말 광대한 한강이 끝또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이름모를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었습니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멋진 광경들이 펼쳐진다니!!
으레 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면, 항상 자동차와 전철의 속도에서 바라보던 세상에서는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생각했던 것이상으로 훨씬훨씬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떠난다면, 그것은 아마 자연경관을 구경한다기 보다는 집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데 주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전철로 어딘가를 가려한다면, 그것은 그곳의 정취를 느끼러 간다기 보다는 약속된 일 때문에 발걸음을 옮긴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그 속도가 느리고 느릴 수록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멋진 여행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당댐을 넘어서 부터 양평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에는 유독 터널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 자전거길 군데군데 철도 레일의 흔적이 남아있고 하는 것을 보면 옛 철도가 지나던 길에 자전거 도로고 만들어 진 것 같습니다.
국수역에 도착해서 한 컷.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아직도 지하철이 닿는 곳이라니! 생각보다 서울-경기 지하철은 정말 넓은 범위의 운송수단이었음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틀을 걸러 왔는데 여기서 전철을 타면 집가지 한시간 반이라니..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태양 빛은 생각보다 많이 뜨겁고 또 따갑습니다. 그런 얄미운 햇살을 역이용해 우리는 종종 저렇게 전날 마르지 않은 빨래를 매달고 달리곤 했습니다. 이틀째 밖에 안되는 날이었지만 사진을 잘보면 허벅지 부분의 중간쪽 살의 색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선크림을 바르고도 이틀째만에 저렇게 타버렸습니다. 7일차에 완전 검둥이가 된 정도에 비하면 애교수준이지만 저 때만 해도 정말 신기해했습니다. 오히려 막 살이 타기 시작한 2,3일차에 허벅지가 이불에 닿거나 하면 따갑고 쓰렸습니다. 4일차 부터는 이제 더이상 그러지도 않았지만.
다시 또 두시간가량을 열심히 달려 우리는 양평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물을 채우고 쉬고 있는데 50대 후반정도는 되보이시는 아저씨가 오시더니 살갑게 말을 붙여 주시기에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2박3일에 걸쳐 인천부터 충주댐까지 가시는 일정이라십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만나는 사람들은(우리 셋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모두 서로에게 거리감이 없고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쉽게 말을 걸고 쉽게 친해집니다. 그리고 정말 모두 착하고 좋은사람들 뿐입니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자전거 여행'이라는 매개 혹은 핑계를 통해 모두가 서스름 없이 가까워지고 통할 수 있다는 점은 자전거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이 결코 절대 지루할 수 없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계속해서 변하는 멋진 전경들 입니다. 7일간 여행을 하면서 한시도 눈 앞이 아름답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집니다!
그러던 중 우리는 '후미개 고개'를 만납니다. 여행 중 접한 첫 장거리 경사 오르막 코스였습니다. 경사 10도의 오르막의 수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30만원도 안되는 7단짜리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오르막이 잘 표현 되지 않지만(억울해) 우리는 처음 만난 난코스였던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채워두었던 물도 바닥이 났고 이게 무슨 자전거 길이냐며 헉헉대며 올랐습니다.
그렇게 고개의 정상에 오르니 사막 중의 오아시스 처럼 말도 안되게 덩그러니 천막하나에 음료수 냉장고 하나로 좌판 쉼터를 운영하시는 나이 지긋하신 이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쉼터 의자에 아까 양평휴게소에서 만난 아저씨가 떡하니 앉아서 물을 들이키고 계시는게 아닙니까!!
우리는 서로 후미개 고개에 대한 공감을 나누며 콜라를 한잔씩 했습니다.
우리는 당시 책정된 예산이 엄청나게 빡빡했기 때문에, '콜라 한 잔씩 했다'는 것은 곧 상당히 힘이 들어 무엇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거나 혹은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심히 관대해 질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입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나이가 상당히 많이 드셨던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기력이 왕성하시고 힘이 펄펄 솟아 오르시는 모습이 대단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호탕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본인이 바로 한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문경세재길 등 대한민국에 만들어진 모든 자전거 종주 코스를 밟은 그랜드 슬램 마스터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실제로 종주 코스를 돌며 인증도장을 모두 찍으면 인증메달을 구매할 자격이 주어지거나, 인증 증서 비스무레 한것들을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모든 코스를 완주하게 되면 그랜드 슬램 마스터로 인정이 되는데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으며 장인의 기운을 한 껏 받아 갔습니다.
1시 반이 다 되어 가는데 길은 아우토반마냥 계속 쭉쭉 뻗어있고 변변찮은 식당은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가다가 드문드문 보이는 쉼터같은 곳에 들러 대충 끼니를 때우기로 했습니다. 겨우 쉼터를 하나 찾아 도착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앞뒤옆으로는 강과 산밖에 없는 곳에 운영하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라면을 한 그릇씩 시켜 먹는데 할머님이 끊임없이 어디서부터 어디 까지 가는지, 혹시 누가 다친 사람은 없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배는 든든한지 이것저것을 모두 물으시며 걱정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할머님이 그렇게 걱정해주시니까 진짜 힘이되요" 했더니 "내가 이래 너희들을 챙겨 줘야 남들도 우리 손주 잘해주지, 우리 손주 놈도 좀 더 크면 이런거 여행도 하고 해야할 텐디.." 하시더라구요, 말씀하시는 말투도 모습도 자꾸 우리 친할머니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해서 찡하기도 하고 너무 따뜻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무튼 그렇더라구요,
공기밥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시고 김치도 배추김치 열무김치 무김치 물김치 종류별로 냉장고에서 죄다 꺼내 갔다주셨어요. 여느 식당 처럼 그냥 얼마짜리 밥 시켜서 주는 음식, 반찬 먹고 가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떠날 때는 염분떨어진다고 알약모양으로 생긴 소금 캡슐도 몇알 챙겨 종이에 싸주셨습니다. 너무너무 따뜻했습니다.
밥을 먹고 나와 좀 더 속력을 내 달려 우리는 '이포보'에 도착했습니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강을 따라가다 보니 '보'를 많이 지나게 되는데 한강을 따라 있는 보는 대표적으로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 경기도 여주의 이포보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그게 이게 또 왠일입니까
아까 양평 미술관과 후미개 고개 정상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이포보에 또 앉아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또 반가워 하며 이포보를 함께 구경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코스가 많이 겹치고, 그러다 보니 잠시 쉬거나 머무르는 체크포인트가 비슷해 몇 번에 걸쳐 자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났다가 다시는 만날일 없을 것 같이 유난스런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두 시간 후에 다시 만나게 되서 민망해져버리는 그런 경우도 몇 번 있습니다 ^^;;
아저씨가 이포보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이 남북전쟁때 큰 격침지였기 때문에 많은 포탄이 떨어졌던 역사가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보 위에 있는 조형물이 포탄 모형이고 보가 전체적으로 비행기의 형상을 띄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설명을 듣고 있는데 마침 물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보의 수문이 열린다고 쩌렁쩌렁 방송이 나왔습니다. 타이밍을 잘 맞춰 온 우리는 잠시 구경을 하다 다시 페달을 밟았습니다.
달리고 달립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발견했던 신기한 사실은, 실제로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점점 벼가 익어갔고 북쪽일 수록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었습니다. 조그만 땅덩어리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니!
이포보로부터 20km가량을 달려 우리는 여주보에 도착했습니다. 이포보와 달리 여주보 안내센터, 매점, 전시관, 휴게실 등이 구비된 아주 근사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여주보 안내소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한 안내원분이 오시더니 굉장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여주보를 비롯한 '보'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아 그럼 이포보도 아까 거쳐 왔겠네요?'하시길래 '네! 포탄과 비행기 모형을 직접 보고왔어요' 하고 잘난체를 좀 하니까 갑자기 코웃음을 치시면서 '왠 포탄은 포탄 크크크, 포탄이 아니라 황새알이에요 그곳은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거든요'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우리는 순간 혼란에 휩쌓였습니다.
안내원 이모는 우리나라에 있는 보를 비롯해 4대강 사업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여주시민들의 뜻 또한 그렇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로 여주보안내센터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에 관련한 것들을 광고하고 홍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주보를 떠나 우리는 점차 강원도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강천섬이라는 곳이었던 것 같은데 강천보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정말 그림같은 곳이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만, 달리던 우리들에게는 근처 몇 km 에는 물을 구할 곳도 없고 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 꽤나 힘들었던 곳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느낀 사실은, 이렇게 아름답고 이쁘게 잘 가꾸어 둔 곳은 정말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튼, 전반적으로는 그랬습니다.
하루 종일 달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오전에 만났던 후미개 고개만큼의 코스를 또 만나던 찰나입니다. (사실 앞으로 나오는 고개들에 비하면 이 날 만난 고개들은 그냥 낮은 오르막에 불과했습니다. 4일째 부터는 어느새 이런 고개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그 날의 목적지 였던 원주시 부론면에 다다르자 이렇게 멋진 광경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강물에 비친 햇살 위로 두루미 한마리가 작은 바위 위에서 털을 다듬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잔상속에서 잊혀지질 않습니다. 역시 고진감래라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론면에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