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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전골의 참맛.
트레킹 카페를 운영하면서 철칙중 하나는 가성비높은 향토음식점을 찾아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지참하지 않으니 먼 길을 버스로 이동해 다시 3~4시간을 땀흘리며 걷다보면 당연히
밥 때를 늦치게 된다. 허기가 지면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수 밖에 없을 터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먹을 수 있는 메뉴라면 굳이 향토음식을 찾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트레킹을 떠날때마다 식당을 정하는것도 가벼운 일은 아니다.
사석에서 문경 대야산 인근 선유동천길을 간다고 했더니 모대학교수가 한 곳을 추천해주었다.
오로지 버섯요리만 전문으로 하는 가은읍 '토박이식당'이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검색해보았다. 식당의 촌스럽고 허름한 외관을 보고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미각이 발달한 친분있는 교수의 추천을 믿고 예약을 했다.
10km의 숲과 계곡을 걸은 뒤 오후 2시쯤 식당에 들어서니 왼쪽편 주방은 오픈돼있고 홀은 작지만
깔끔한 분위기에 제법 손님들도 많았다.
코로나19 이전같으면 마힐로 회원들 외에만 손님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맛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집의 간판메뉴는 자연산버섯모듬전골, 송이버섯전골, 능이버섯전골이었다.
우리는 능이버섯전골을 예약했다.
싸리, 느타리, 표고, 목이, 흰목이 버섯을 푸짐하게 담은 냄비위에는 능이버섯이 주인공처럼 얹혀 있었다.
비주얼부터 먹음직했다.
전골이 끓기전에 반찬으로 나온 멸치조림, 더덕무침, 나물무침, 두부부침개, 장아찌를 맛보았다.
흔히 먹을 수 있는 평이한 반찬이지만 주인장 고유의 요리법이 느껴진다.
메인요리인 전골이 끓자 국물맛을 본 식생활문화 전문가인 둘레올레는 얼굴이 환해지며 매우 흡족해 했다.
버섯고유의 맛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담백하다고 했다.
일류세프에게 맛의 비결을 물어보면 대답은 대개 비슷하다. "좋은재료를 사용해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집이 그렇다. 묵묵이 음식을 나르던 칠순이 넘은듯한 사장님에게 "맛있다"고 한마디했다.
사장님은 투박한 사투리로 "버섯이 제철인 가을에 오면 버섯전골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연부인은 친구들과 함께 다시 이집을 방문하겠노라고 했다.
*시골간이역의 추억.
점심식사후 버스가 출발하기전까지 30분 여유가 있었다. 친구와 함께 가은읍내 구경에 나섯다.
과거에 은성탄광이 가동할때인 1990년대 중반엔 인구가 2만2천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4천명대로 급감했다. 호시절이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활기를 잃은것은 아니다.
탄광마을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만큼 대로변은 밝고 깨끗했다.
지척에 대야산이 있고 폐선이 된 레일은 '레일바이크' 시설을 조성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관광지가 됐다.
한적한 시골에 식당이 많은 이유다.
읍내 끝자락에 그림엽서에 나올법한 시골역이 보였다.
손님이 줄어 기차가 끊긴 한적한 시골간이역을 배경으로 한 일본영화 '철도원'을 연상시키는
아담한 종착역이다. 해방이후에 건축된 박공지붕형태의 목조역사는 지붕을 민트색으로 칠하고 세로로
창이 길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문경 은성탄광이 전성기에는 은성역이었으나 1959년 가은역이 됐다.
하지만 가은선이 폐쇄되면서 폐역이 됐고 이후 문경시가 가은선을 매입하면서 역사도 문경시 소유가 됐다.
자석처럼 이끌려 가은역 문을 열었다. 기념관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내부는 시골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련된 카페로 변신해 있었다.
티켓끊는 창구앞은 미니전시관을 만들었고 벽에는 검은색 철도원 정복과 모자가 걸려있었다.
수많은 이별과 재회의 추억을 간직한 대합실은 홀로 꾸며놓아 멀리서 온 가족·연인들로 붐볐다.
역무원 사무실은 차를 끓이고 빵을 만드는 주방시설을 갖춰놓았다.
철로쪽을 바라보니 지금은 폐선이 된 철로옆에는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었다.
철길 건너편에는 고즈넉한 들판을 배경으로 수령이 수백년된 미루나무 두그루가 가은역의 과거와 현재를 지켜보고 있었다.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키 큰 바리스타에게 어떻게 가은역을 임대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바리스타는 "3년전 가은역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 공모사업에 당선돼 시의 지원을
받아 카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뉴는 커피류도 있었지만 사과밀크티, 사과팥빙수, 오미자에이드, 오미자차등이 빼꼭하게 적혀있었다.
역시 문경은 사과와 오미자의 고장이었다.
기차도 끊기고 기적소리도 사라졌지만 카페 가은역은 시골간이역의 낭만과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