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국민학교 8회 벗님들, 한 갑자 우정-인생, 흘러가는 것
2019년 9월 10일 화요일인 바로 어제 일이다.
밤이 깊어지는 오후 8시쯤 해서,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인근의 단골집인 ‘한우등심’집을 찾았다.
아내와 함께였다.
어제 따라 우리 사무소가 감당해야 할 일이 폭주해서, 나뿐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하루 내내 시달려야 했다.
법무사 본직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내에게는 미안했다.
집안일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힘겨운 판에, 사무소 일을 맡게끔 하고 있으니, 남편인 나로서는 맡아주는 그 아내가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내의 그 시달린 하루를 위로해주려고, 집에서 좀 편히 쉬겠다는 아내를 이차저차 요차조차 핑계거리를 만들어 꼬드긴 끝에, 결국 저녁을 그 집에서 하게 된 것이다.
주인아주머니가 메뉴판을 들고 와서는 주문 받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 눈앞으로 내미는 그 메뉴판을 밀쳤다.
“메뉴판은 필요 없어요. 그저 등심 2인분 주세요. 그것도 제일 비싼 걸로요. 오늘 우리 마누라 고생 많이 했거든요. 보신 좀 시켜줘야 해요.”
내 그렇게 용감한 주문을 했다.
이왕 아내 위로해주겠다고 꼬드겨 낸 판에, 돈 아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좋아요. 저도 힘들기는 했지만, 당신은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오늘 아침 점심 다 굶었잖아요. 오늘 저녁 값은 제가 치를테니, 실컷 드시기나 하세요.”
도리어 아내가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누가 그랬듯, 부창부수(夫唱婦隨) 바로 그 현장이었다.
“두 분 분위기가 참 좋네요.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김에 따로 서비스를 드리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뒷말을 남기고 갔다.
잠시 뒤에 그 주인아주머니가 다시 왔다.
그 손에, 대접 하나가 들려있었다.
바로 배추 전 한 판을 담은 대접이었다.
그 대접을 내려놓으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이게 제가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문경 분이신 선생님 때문에 최근에 제가 추가한 메뉴입니다. 7,000원으로 가격은 매겨놨습니다만, 선생님은 특별히 예외로 늘 배추 전 한 판은 그냥 드리겠습니다.”
안동이 고향이라는 주인아주머니였다.
그렇게 고향이 이웃이라는 이유로, 석 달쯤 전으로 거슬러, 처음 그 집을 찾았을 때부터, 곧바로 깊은 인연이 됐다.
젓가락으로 배추 전 한 조각을 막 집어먹으려는 순간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우리 점촌국민학교 8회 동기동창인 황선용 친구가 걸어 온 전화였다.
“야 임마! 뭐 하냐?”
대뜸 막말이었다.
꽤나 술을 마신 것 같은, 그 취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그 취기의 막말에 정이 푹 담겨 있었다.
“야, 너, 내게 전화도 다 해주고. 고맙다.”
내 그렇게 답을 했다.
건성으로 한 답이 아니다.
진정 내 마음으로 느낀 고마움이었다.
웬만해선 서로 전화 할 일 없이, 각자 자기 인생 살아가는 각박한 지금의 세태에서, 그렇게 한 통 전화라도 걸어준다는 것이, 사람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너, 재호 알지? 박재호 말이야. 지금 나하고 소주 한 잔 하고 있어. 재호 가, 내 동생이라.”
우리 문경중학교 14회 동문으로 나와는 특별히 가까이 지내는 박재호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쩌다 둘이 만나 술 한 잔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문득 생각이 나서 그렇게 내게 전화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잖아도 내가 황선용 그 친구를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날 낮에 그 친구가 우리 점촌국민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이 SNS에서 단체로 소통하고 있는 카카오톡에 글 한 편을 게시했는데, 그 내용이 참 좋아서 읽고 또 읽고 했었기 때문이다.
‘인생, 흘러가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것
나도 저 물처럼 흘러가리
흐르다가 바위에 부딪히면
비켜서 흐르고
조약돌 만나면
밀려도 가고
언덕을 만나면
쉬었다 가리
마른 땅 만나면
적셔주고 가고
목마른 자 만나면
먹여주고 가리
갈 길이 급하다고
서둘지 않으리
놀기가 좋다고
머물지도 않으리
흐르는 저 물처럼
앞섰다고 교만하지 않고
쳐졌다고 절망하지 않으리
저 건너 나무들이 유혹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길 따라서
노래 부르며
내 길을 가리라.//
딱 내 생각이었다.
친구 스스로 우러나온 마음에서 지어낸 글인지, 아니면 어디 다른 곳에서 퍼온 것인지는 내 모른다.
알 생각도 없고, 필요도 없다.
내 마음에 쏙 담겨드는 것으로 충분했다.
내 그 글을 읽고 또 읽고 한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다.
배경 음악 때문이었다.
한 갑자 세월 전으로 거슬러 내 젊은 시절에, 영국가수인 잉글버트 험퍼딩크가 부른 ‘Wonderland By Night’라는 노래였다.
내 그 노래를 너무나 좋아해서, 영문 노랫말을 달달 외워서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부르고는 했었다.
황선용 그 친구 덕분에, 모처럼 그 노래를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인생, 흘러가는 것이라는 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