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소개 ■결혼
Dvořák with his wife Anna in London, 1886
드보르작의 첫사랑은 그가 국민극장 비올라 주자였던24세 무렵 만났던요세피나 체르마코바라는 여성입니다.당시 드보르작은 아르바이트로 한 자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자매 가운데 언니였던 요세피나 체르마코바를 사랑하게 되었지요.요세피나는 실력 있는 배우였고,또 성공에 대한 의지도 아주 강했다고 합니다.그래서였을까요?그녀는 장래가 불투명한 드보르작이 아니라 부유한 보헤미안 귀족 고우니츠와 혼인을 올렸습니다.이렇게 드보르작은 고백도 못하고 첫사랑을 떠나보냈지만,그의 사랑이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습니다.이내요세피나의 동생 안나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지요.안나는 매우 상냥하고 친근감 넘치는 여인이었습니다.드보르작은 자신의 사랑을 고 백하며 그녀에게 측백나무를 건네기도 했지요.드보르작이 서른을 훌쩍넘긴1873년,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가정을 꾸렸습니다.결혼 이후 드보르작은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일을 그만두고 작곡에만 몰두했는데,안나의 헌신적인 외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875년부터1877년 사이,드보르작 부부는 세 명의 자식을 잃게 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너무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후 다시2남4녀의 자식을 얻은 그들은 다정한 가정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드보르작은 수많은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아무리 바빠도,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일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까요.시골 마을에서 자란 그는 자연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 증기기관차의 열렬한 팬 드보르작은 증기기관차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1849년 처음으로 철도가 그가 사는 마을까지 개통되었을 때,여덟 살 소년 드보르작은 힘차게 달려가는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보기 위해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철도 옆에서 기다리곤 했답니다.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기차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바빠서 기차를 보러 갈 수 없을 때면 제자에게 어떤 열차가 도착했는지,예정된 시간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시키는 둥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기차에 대한 드보르작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늘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그가 어느 날 평소와 다른 기적 소리를 듣고 철도청에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철도청에서 확인 한 결과 진짜로 그 기차에 결함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철도 사고를 예방한 드보르작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하지요.역시 음악가의 귀는 위대한 것일까요?때로 그는 진지하게“진짜 기차를 내게 준다면 이제까지 쓴 내 작품과도 바꿀 수 있는데…”라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현재 빈과 프라하에는 드보르작을 기리는 특별 열차가 운행되고 있습니다.열차 이름도 안토닌 드보르작 호입니다.기차를 사랑했던 위대한 작곡가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 것이지요.아마도 이 열차는 드보르작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 교향곡<신세계로 부터> 1884년 드보르작은 런던 필하모닉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연주 한 뒤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하여, 1891년에는 미국 뉴욕 주립음악원 교수로 임명되어 약4년 간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그곳에서 드보르작은 흑인 음악과 미국의 전통 음악을 흡수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하는데,이 시기 작곡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교향곡9번’ <신세계>입니다. 제4악장 서주부에 나오는“빰 빤 빠 빰빠 빠...” 기관차 매니어의 평생의 소원이 이렇게 음악에 반영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