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지각의 균열, 관조 미학의 현현
권대근
차가운 밤하늘에 작은 별똥별 하나가 빛을 태우다 홀연히 사라진다. 어린 자식을 품고 거친 황무지에 한 줌 거름으로 희생만 하시다 별이 되신 내 어머니 도미꼬다.(배영우의 <도미꼬> 중에서)
그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함께 아파한 요산 김정한도 만났다. 이제 작가를 꿈꾸는 내 마음에 작은 씨앗이 하나 떨어져 비에 젖은 요산뜰 잔디처럼 푸르게 자랄 것이다.(최인정의 <사람의 갈 길> 중에서)
수필을 관조의 문학이라고 할 때 배영우 씨의 수필 <해부의 진실>, 최인정의 수필 <말의 온도> 등은 조금도 그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두 분은 수필을 잘 배운 것 같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면 모든 것이 재미있는 수필의 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소재에서 얻는 경이와 충격만으로 수필이 되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볼’ 시視의 차원이 아니라 ‘볼’ 견見의 차원으로 나아가서 종국에는 ‘볼’ 관觀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수필의 출발점이 제재이고 결승점이 그것의 의미화이기 때문이다. 주제의식을 제재와 연결시켜 내는 것이 수필의 문예화에 중요한데, 지금까지 배영우 씨와 최인정 씨는 이런 일을 잘 해내었다. 레이더에 들어온 물상, 즉 오래된 선풍기를 우화적 기법으로 의인화해서 무정물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배영우 씨의 의미화 작업은 일상 지각의 균열을 거쳐 옹골찬 미학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가 보내온 수필 <해부의 진실> 외에도 사모의 정을 수필로 쓴 <도미꼬> 등은 하나같이 관조 미학의 토대 위에서 빛나는 문학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배영우 씨 세 편 중 눈에 띄는 작품 한 편의 문학적 성취를 점검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한일이 해부에 들어간다. 날개를 보호하는 갑옷부터 벗겨야 한다. 어디서부터 단추를 풀어야 할지 찬찬히 살펴본다. 이 녀석은 위와 아래 두 개의 단추로 채워졌다. 벗기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반항이라도 하면 곤란하다. 단추를 풀고 송곳을 찔러 조금씩 벌려나가니 갑옷이 톡 떨어진다. 날개가 보인다. 고정나사를 풀고 심장과 연결된 팔랑개비를 떼어낸다. 장기가 하나씩 떨어져 나오는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렬하여 옆에 둔다. 봉합 할 때 헷갈리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뒤쪽 철갑마저 벗겨내니 덩그러니 목과 머리만 남았다. 생김새가 마치 ET다.
- 배영우 <해부의 진실> 중에서
배영우 씨의 눈은 확실히 남다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보아야 할 것을 찾아 조리개를 맞추는 데 남다른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믿음직한 도전은 수필의 문학성을 바로 세우려는 작업의 하나로 볼 때, 이 수필은 충분히 신인상 당선작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본다. 당선작 <해부의 진실>이 문학적 성취가 있다고 보는 이유는, 작가가 우화적 기법을 써서, 해학과 기지 등의 조미료를 식재료와 잘 버물러 익숙하지 않은 낯섬을 보여준 까닭이며, 그 내용이 바이오필리아를 구축하면서 인간적인 감동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고 비유를 써서 우화적으로, 다시 말해 사물을 인간의 신체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효과를 내었다고 하겠다. 만일 우의적으로 함축하지 않고 배씨가 선풍기를 수리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사물과 인간 사이의 사건으로 다루었다면, 전이나 변용의 미학은 사라지고 예술적 감동이나 아름다움은 감소했을 것이다. 이에 <해부의 진실>은, 비교적 구성이 탄탄한 작품임을 인정하여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수필은 관조의 문학이다. 수필의 참신한 맛은 관조라는 작가의 개성적 묘사에서 우러난다. 체험의 나열화로 얻는 일상적인 느낌보다는 제재의 의미화를 통한 미적 형상화가 주는 참신함이 더 수필적 감흥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의 특성도 자조보다도 관조에 초점을 맞출 때 더 문학적 향취를 거둘 수 있다. 본 것, 느낀 것만으로 기록되는 단순한 체험의 배열이 아니라 경험을 넘어 본질적 가치를 찾고, 그 의미를 되물림과 반성적 성찰대 위에서 탐색하는 것이라는 데서 최인정 수필의 의의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결국 수필을 쓴다는 것은 어떤 대상으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인 것이다. 관조하는 작가의 주관에 의해서 제재의 소성이 교감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될 때 비로소 문학성이 수필에 담기는 법이다. 자신만의 렌즈로 걸러진 당선작 <말의 온도> 외 요산 선생의 문학정신을 그린 <사람의 갈 길>과 같은 이런 수필은 문학보다 더 깊은 철학적 사유 위에서 인간 세계의 다양한 이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어 독자의 관심을 충분히 끈다고 하겠다.
경북 예천군에 가면 ‘언총(言塚)’이 있다. 말(馬)의 무덤이 아니라, 말(言)무덤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알려준 방법이 신박하다. 싸움의 발단이 된 거짓말, 상스러운 말,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 등을 사발에 모아 구덩이에 묻으라고 했다. 이것이 말(言)무덤이다. 말 무덤에 묻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서일까 다툼이 줄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들의 가슴에 묻으면서 상처 주고 살아온 건 아닌지. 말에도 온도가 있다면 따스한 말은 한여름의 태양처럼 뜨거워도 좋다. 뜨거운 말이 상대에게로 가서 상대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의 온도는 몇 도쯤이나 될까.
최인정 <말의 온도> 중에서
작가는 늘상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아 존재하고자 한다. 작가와 일상인은 표면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작가는 생활이 바쁘고 주어지는 시간의 공백 속에서 느끼는 무료함을 자신의 지각을 갱신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다. 이 작품은 언어생활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녹여 놓은 것이기에 독자의 공감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최인정 수필에서 나타나는 의식상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자기만의 설득적 논리를 확보하려는 데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는 점이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의 온도는 몇 도쯤이나 될까.’라며 자신을 성찰하는 최씨의 최대 장점은 공감언어를 잘 쓰는 것이고, 그런 습관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러받았다고 하는 고백 또한 은혜의 미학이 되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녀는 긍정과 공감언어의 중요성을 일상을 통해 느끼면서 삶의 공간에 즐비한 말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인정 씨가 모두에 언급된 것처럼 <사람의 갈 길>을 가면서 ‘문인의 갈 길’을 제대로 걷는다면, 좋은 수필가로 인정받는 것은 시간문제라 본다. 자신이 받은 부모님의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다소곳한 인간적 면모와 함께 긍정의 언어로 소통하면서 현실을 이겨나가려는 최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종심사 권대근(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