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의 세속음악
네델란드악파의 작곡기법이16세기의 보편적인 음악어법이 되었고,일반인들은그 지방의 언어로 부르는 세속음악을 선호하게 되었다. 무역으로 부유해진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세속음악이 유행하여,라우다·프로톨라·마드리살 등이 생겨나고,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라우다(Lauda:신이나 성모 또는 여러 성인(聖人)들을 찬미한 중세의 종교적 운문) 중세시대부터 불렀던 비전례적인 단성노래로 마리아를 찬양하는 기도를 노래 내용으로 하고 있다. 1530년 피렌체를 중심으로 매우 유행한 세속 노래 중 가장 많이 작곡된 장르로 처음에는 단성이였으나 이후2,3,4으로 작곡되었는데,단순한 화성으로 불렀지만 표현이매우 뛰어났다.
▲ 프로톨라(frottola) 15세기 말부터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들이 북부 이탈리아의 궁정에 나타나기 시작했다.이곳에서 활약하던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시를 낭송하면서 즉흥적인 반주를 하던 전통에서 유래한 세속노래인 프로톨라(frottola)를 만들었다.프로톨라는 통상적으로 류트나 리라 다 브라초의 반주로 불리는 솔로 노래로,마드리갈이 성행하기 전인1470년에서1530년경까지,특히 만토바·베로나·베네치아·페라라 같은 북부 이탈리아의 궁정을 중심으로 주로 귀족들이 즐기던 세속노래였다. 프로톨라는 가사의 여러 절이 제1절에 붙여진 선율을 반복하는 유절식(strophic)노래로,주로 사랑을 노래하거나 풍자적이며,대체로 문학적 가치는 거의 없는 경박한 수준의 가사를 사용했다.음악적으로는 단음적으로 되어 있는 단순한 양식의 노래로,네덜란드 샹송의 복잡한 대위적 양식과 샹송의 가사들이 전반적으로 너무 심각한 데 대한 반발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마드리갈(Madrigal)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중요한 세속노래였던 마드리갈(Madrigal)은 프로톨라가사의 경박한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마드리갈의 탄생은 당시 이탈리아의 문학적 풍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베네치아의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였던 추기경벰보(Pietro Bembo,1470~1547)가1501년 이탈리아의 시인페트라르카(1304~74)의 시집을 출판했는데,이는 당시의 시인·작곡가와 일반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벰보는 페트라르카의 시의 분석을 통해 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효과를 발견했고,그 결과 작곡가들은 시의 음악적 효과는 물론,가사의 의미를 그대로 생생하게 살린 음악을 만들고자 시도하게 되었다. 이로써 가사와 음악은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게 관련되게 되었고,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16세기의 마드리갈이었다.초기 마드리갈은 주로4성부였으나, 16세기 중반 이후에는5성부가 일반적이 되었고,때로는8성부나10성부의 곡도 있었다.마드리갈은 합창곡이라고 하기보다는 작은 그룹의 성악 앙상블을 위한 음악으로,한 성부에 한 사람씩 담당한다.물론 이후의 마드리갈들은 기악 반주가 함께 나오기도 했지만,통상적으로는 무반주로 노래되었다. 마드리갈도 프로톨라처럼 일반대중들이 즐기던 세속노래는 아니었다.주로 궁정 사교모임에서 많이 불려졌으며, 16세기 중반부터는 학술모임 같은 데에서 불려졌다. 14세기에도 마드리갈이 있었는데 리트로넬로의 후렴구가 있는 유절양식이었으나, 16세기의 마드리갈은 리트로넬라가 없는 통절양식이다. 초기 마드리갈은 전원적인 장면을 묘사하거나,사랑에 대한 페트로리카의 감상적인 시를 사용한4성부였으나 중기에는5-6성부, 10성부도 등장한다. 1530-1600년경까지2000여곡이 작곡되어17세기까지 이어진다.
*마드리갈의 발전과정 1525년에서1545년경까지를 초기, 1545년경에서1580년까지를 중기,그리고1580년경부터1620년까지를 후기로 나눈다. 초기 마드리갈 작곡가들은 거의 모두가 플랑드르 출신으로,그 중 대표적인 사람은 피렌체의 성 요한 성당의 성가대장 베르델로트(Philippe Verdelot, 1475경~1535)와 로마의 교황청 예배당에 소속되어 있던 소수 이탈리아 인의 하나였던 페스타(Costanzo Festa, 1480경~1545)이다.그리고 플랑드르 출신이면서 이탈리아에서 활약했던 아르카델트(Jacob Arcadelt, 1505경~68)와 빌레르트(Adrian Willaert, 1490경~1562)가 있다. 이들은 마드리갈을 위한 표준을 만들었는데,모방기법이 사용되기는 했지만,대체로 상성부가 주도하는4성부로 구성된 화음적인 음악으로,프로톨라의 음악양식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후기 마드리갈 대표 작곡가로는 마렌치오,제수알도,몬테베르디를 들 수 있다. -마렌치오(Luca Marenzio,1553-1599) :모테트75곡,마드리갈450곡 5성부의 마드리갈에서 대조적인 느낌을 잘 살렸고,가사그릭기도 매우 뛰어난 작곡가이다.
-제수알도(Carlo Gesualdo,1561경-1613) 반음계 사용의 절정을 이룬 작곡가이다. 베노사의 왕자였는데 음악에 대한 집념이 너무 커서 그런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하고 다른 지역으로 피했다가 다시 음악에 전념 한다. 그는 마드리갈의 감정표현을 우선시 했고,이 효과를 위해 화성, 선율 모두 반음계를 사용했다.후기 마드리갈 사용은 바그너의 반음계를 연상시킨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1567-1643) 크레모나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1590년 만토바궁 정에서 활동하다가1613년에 성마르코성당 음악감독으로 부임한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곡가였기 때문에 그의 마드리갈은 매우 중요하다.그의 마디갈로 르네상스시기와 바로크시 기의 변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마드리갈1권-3권은 르네상스적인 무반주 다성음악 앙상블이 고, 4-5권은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 작품이며, 7권은 ‘콘체르토’라는 제 목이고 기악반주를 갖는 독주 또는 2중주곡으로 바로크음악 양식을 뚜렸히게 보이고 있다. ■ 르네상스시대의 여성가수 콘서트. 16세기,클로드 드 세르미시의 샹송을 플루트와 류트 반주로 노래하는 여성 음악가들. 16세기 후반에 페라라에서는 아주 숙련된 기술의 여성 목소리를 요구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벌추오소(기교적)마드리갈이 나타났다.당시에 궁정에는 노래를 잘하는 여성들이 꽤 있었고, 1570년대에 루크레치아(Lucrezia Bendidio),이사벨라(Isabella Bendidio),그리고 레오노라(Leonora Sanvitale di Scandiano)같은 귀족 여성들로 구성된‘숙녀 앙상블(Concerto delle donne)’이 생겼다. 1577년에는 비토리아(Vittoria Cybò Bentivoglio)가‘숙녀 앙상블’에 동참했고,이 네 명의 귀부인들은 루크레치아의 사저에서 정규적으로 소수의 청중들만을 놓고 비공개 음악회를 가졌다. 1582년에‘숙녀 앙상블’은 로라페베라라(Laura Peverara, 1545경~1601),안나 과리니(Anna Guarini, 1561이후~1598),리비아(Livia d’Arco, ?~1611)같은 준전문적인 가수들로 구성되었고, 1583년에 타르퀴니아(Tarquinia Molza, 1542~1617)가 이 그룹에 합류했다.이중에서 로라페베라라는 이탈리아 전역에 널리 알려진 뛰어난 가수로,바르디(Bardi),루차스키(Luzzaschi),마렌치오(Marenzio),베르트(Wert)같은 당대 최고의 마드리갈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그녀에게 헌정하는 마드리갈들을 작곡했다. <출처:서양음악사100장면(1),pp.165-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