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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마 6:9)
지난 주일부터 주기도문에 대한 뜻을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주기도문의 첫마디가 되는「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문구에 대한 뜻을 생각하였습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먼저 하나님께 대한 것을 간구(懇求)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기도문을 보면 먼저 하나님께 대한 간구가 세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도 첫째 되는 간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아침 이 기도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이스라엘 시대의 이름에 대한 관념은 오늘날 우리의 이름에 대한 관념과는 좀 다릅니다. 현대 우리 한국에 있어서는 아름의 뜻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인가를 지적하는 데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또 보통 부르기 좋으면 좋은 이름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의 이름은 흔히 세 글자로 되는데, 처음 글자가 성이요 다음 두 글자가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 두 글자 중에서도 실상 하나는 항렬입니다. 가령 한 경직이라는 제 이름을 보면 직(職)자는 항렬입니다. 제 사촌 육촌들이 모두 직 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제 이름은 경(景)자 하나 뿐입니다. 이렇게 저는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제 아버지께서 이런 이름을 주실 때에 특별히 뜻을 생각하고 주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리기가 좋은 것이니까 그렇게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흔히 이름 석자를 쓰는데 성을 마지막에 쓰는 것이 우리와는 다르고 가운데 이름자는 보통 어머니의 성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이름은 하나로서 제일 처음에 있습니다. 이것은「크리스천 네임」이라 해서 성경에 잇는 이름을 흔히 씁니다. 요한 이니 야곱이니 마리아니 이렇게 씁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서도 옛날에는 이름을 지을 때 뜻을 많이 생각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여자에게는 이름을 주지 않았고 어렸을 적에 아명이라고 해서 아이들의 이름을 주었는데 그 때에 흔히 뜻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가령 어떠한 애들은 확실이 라고 불렀단 말입니다. 또 계집애가 나면 흔히「작은 머리」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얘기를 낳았는데 딸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곱단 이 라고 지었습니다. 예쁘다고 곱단 이 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 후 얘기를 또 낳았는데 또 딸을 낳았습니다. 이번엔 이름을 무던 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딸을 낳으니 이번에는 얘기 이름을 서운 이라고 지었습니다. 좀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또 얘기를 낳았는데 역시 딸이었습니다. 그만 이번에는 이름을 밉단 이라고 지었습니다. 여러 모매(母妹)님 가운데 혹 넷째 딸로 나신 분이 계신다면 용서하시고 들으십시오. 꼭 다 미운 것은 아닙니다. 하여간 이와 비슷하게 옛날 유대 사람들도 이름을 지을 때에 특별히 그 뜻을 생각하면서 지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본래 성이 없었습니다. 항렬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나오는 이름을 보면 시몬이면 시몬, 야곱이면 야곱이라고 했지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하나 밖에 없었지만 그 이름은 그 사람의 성질과 그 사람의 생활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가령 에서라는 이름을 볼 것 같으면「붉다」라는 뜻입니다. 붉은 털이 있다는 뜻이거나 혹은 붉은 팥죽을 먹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야곱은「밀쳐내고 대신 들어앉은 자」란 뜻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해서 이긴 투사에는 이스라엘 즉, 승리자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아브람이란 이름은「아버지」란 뜻인데 나중에 아주 유명해진 후에는 아브라함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큰 아버지 즉 할아버지란 뜻입니다. 여호수아는「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옛날 유대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과 생활 전체의 대표가 그 이름이었습니다.
같은 관념을 가지고 생각할 것 같으면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 신성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편 10절을 보면『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 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의 이름을 안다고 하는 말은 단순히 우리가 아무개의 이름을 안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지 아는 사람은 그를 의지한다고 하는 뜻입니다. 시편 20:7절을 보면『혹은 병거(兵車)를 의지하고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이런 글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의 권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6절에 보면 예수 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그저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 신가를 분명하게 나타내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생각한 것입니다.
레위기 24:16절을 볼 것 같으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이라는 모세의 율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셋째 계명을 다 기억하실 줄 압니다.『여호와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의 거룩이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의 뜻을 계속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 거룩이란 말은 본래 히브리말로 카돗이란 말의 번역인데 이 뜻은 무엇을 벤다는 말입니다. 칼로 무엇을 벤다는 뜻입니다. 베면 둘로 갈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구별, 즉 성별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한 것은 많은 백성 가운데서 갈라내어 하나님이 백성을 삼았다는 뜻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라고 한 것은 많은 나라 가운데서 갈라내어서 하나님께 속한 나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예배하는 집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집 가운데서 특별히 갈라내어 하나님께 바쳤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직분 가운데 목사의 직분을 특별히 성직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직분 가운데서 특별히 갈라내어 하나님께 속한 직분을 맡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갈라내어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하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적이고 세상 적인 것에서 성별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성, 하나님의 존엄성, 하나님의 초월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초월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6장을 볼 것 같으면 이사야가 본 환상 가운데 스랍들이『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거룩하다고 하는 말에는 성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별이라고 하는 말에는 윤리적 의미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성별과 무악과 흠이 없는 의와 사랑의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진 선 미의 총체를 거룩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온전하신 우리의 아버지올시다. 하니 님께서는 이런 의미에서『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성결하고 의로우니 너희도 성결하고 의 로우라는 뜻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 24편에 보면『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 누군 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정결하며 뜻을 허탄(虛誕)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거룩하다는 말은 윤리적 의미에서 씌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별 되신 하나님이요, 인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윤리적 의미에서 온전하신 성품을 가진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면「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하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이미 거룩합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더 거룩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달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성경의 번역대로 읽는 것이 더 분명합니다. 그 이름이 거룩 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다시 말하면 인간 사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 히 여김을 받게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존경과 경외와 찬송이 이 땅에서도 다시 말해서 인간의 역사적 과정에서도 실현되게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물론 거룩하지만 이 땅 위에서 반드시 거룩 히 여김을 받는 것은 아닌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 히 여김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어떤 것이 요구됩니까?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절 말씀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시는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
현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을 믿지 무신론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거룩한 이름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는 여러분은 다 잘 아십니다. 성경을 읽어 볼 것 같으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문구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존재는 자명(自明)의 이치인 까닭입니다. 스스로 분명한 이치입니다. 또 이 성경을 쓴 이들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해서 스스로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수학을 공부해보면, 특히 기하를 공부한 사람들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공리(公理) 혼은 정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무엇인고 하니 증명할 필요 없이 스스로 분명한 이치라는 말입니다. 가령, 두 점 사이에 가장 가까운 거리는 직선이다―라는 공리는 증명할 필요 없이 자명의 이치입니다. 가령, 두 평행선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공리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자명의 이치라고 해서 정리 곧 공리라고 합니다.
성경에 볼 것 같으면 하나님의 존재는 정리입니다.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명한 얘기를 여러분도 다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조그마한 회중시계를 얻었습니다. 이 분은 시계란 말을 전에 듣지는 못하고 시계를 보지도 못한 분입니다. 길가에서 얻은 시계를 보니 둥글게 되어 있는데 그 속엔 글자가 적혀 있고 분침과 초침이 있어서 하나는 천천히 돌아가고 하나는 빨리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은 시계를 가만히 드려다 보다가 이것이 어떻게 생겼을까―하고 말하지 않고 이것을 누가 만들었을까―하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렇게 질서가 있고 조직이 된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니고 반드시 만든 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보면 시계와도 비슷합니다. 아침에는 동편에서 해가 떠서 점점 공중을 지나 저녁이 되면 서편으로 해가 집니다. 다음날 아침에 보면 그 해가 동편에서 또 올라옵니다. 그리고 다시 서편으로 집니다. 뱅뱅 돌아갑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고 춘하추동 사시절이 뱅뱅 돕니다. 꼭 시계와도 같습니다. 이렇게 질서가 있고 조직이 있는 것은 만드신 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명의 이치올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가 분명한 것을 인간들이 부인하는 것은 큰 죄악인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입니다. 사람이 악하므로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생활을 보면 패괴 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겠습니까. 거룩하게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죄에 묻히고 무지에 묻힌 사람들에게 자명의 이치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을 알려 주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를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둘째로 신을 믿기는 하지만 신을 잘못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신을 바로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월 성신 산천 초목 등 자연의 대상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놓고 신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천황을 신으로 믿었습니다. 물질 우주와 창조주 하나님을 구별할 줄 모르는 범신론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소위 자연신론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만들기는 하였으나 자연 법칙에 맡겨 놓고 전혀 관계하지 않는 다고 하는 그릇된 사상을 가진 자도 많이 있습니다. 요사이 신학자들 가운데는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사신론(死神論)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도 혹 있는 거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길이요 질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바로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깨달아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잇는 것입니다.
요리문답 제四 문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거기에 보면『하나님은 무엇이요?』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성서적 견지에서 해답해 놓은 대답을 읽을 때 들어보세요.『하나님은 신이 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이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니라.』
우리가 숭배하는 하나님 아버지는 이와 같은 신이올시다. 하나님을 바로 믿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종종 모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는『너희들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면서 또한『내가 너희에게 분부하여 준 것을 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옳은 종교 사상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아주 중요한 거입니다. 우리 주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바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옳아야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에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거룩한 무리라고 합니다. 그 말은 거룩 히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도의 생활은 성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을 이 땅 위에서 거룩 히 여김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2:6-7절을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 위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들어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결된 백성들이었습니다. 택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고 음란을 행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힘을 입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형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二장 二十四절을 들어보세요.『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에게 모독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백성으로서 그 생활이 추하고 아름답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모독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엔 이런 일들이 없습니까?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별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조심하지 아니하고 실수하여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일은 없습니까? 깊이 자성할 문제입니다. 기억합시다.
안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모독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렇다고 하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저런 것을 한다고 해서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기독교의 논리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三장 二절에는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기록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편지가 되는 믿는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보고 그리스도를 판단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생활이 하나님을 모르고 주를 모르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르게 아릴 수 있도록 대변합니까? 우리는 어떠한 편지 구실을 합니까? 스스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일거 일동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성결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희생과 봉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화평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주는데 사랑으로 살 줄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유명한 시릴 이란 목사가 주기도문에 관한 설교를 할 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 자체가 본래 거룩하시다. 기도의 뜻은 본래 거룩치 못해서 거룩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할 때에 우리 자신이 거룩해지고 우리가 거룩한 일을 할 때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는 까닭이다.』
옛날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사이프리안 목사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이 기도의 뜻은 그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하여지게 하여 달라는 뜻입니다.』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 행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항상 여러 가지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할 기도는『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제일 자랑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여 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