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단풍나무에 내리는 눈
공원에서 제일 키 작은 나무
하지만 눈 내리면 제일 반겨하는
공작단풍나무가 붉은 잎을 흔들며 함박눈을 맞고 있다.
눈을 이며 점점 펑퍼짐해지는 우듬지 옆에
우두커니 서서
나무 밑동에 삥 둘려진 벌거숭이 땅을 본다.
저 아늑한 곳을 내려다본다.
공원 산책로에는 발걸음들이 총총히 사라지고
나는 우산도 없이 모자 하나와 어깻죽지로
퍼붓는 눈을 맞는다.
속 깊은 잎들이 스륵스륵 눈 스치는 소리로
나를 불러 말한다.
청승맞게 왜 그러고 서있느냐고,
어여 집으로 돌아가라고.
엎드려뻗쳐
모두 주먹을 쥐고 엎드려뻗쳣!
지금부터 푸샵을 30회 실시한다
몇 회?
30회!
반절도 못 채우고 덜푸덕 두 팔이 꺾였다
맨땅에 이마를 찧을 때
찌르르
신병의 두 눈에 흐르던 번갯불
눈물 섞인 번갯불
신병훈련소에서
엎드려뻗쳐를 한다는 것은
조국의 하늘을 등에 여 본다는 것이었다
이기종
2014년 월간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2019년 계간<문예연구> 신인문학상
영상 컨텐츠 『박이도 시인을 찾아서』(광선, 2014)
시집 『건빵에 난 두 구멍』(천년의시작, 2022)
첫댓글 오늘 같이 추운 날 보니 평화공원(역촌역)에 서 있는 단풍나무가
유난히 핏빛으로 더 붉어보이네요.
변함없이 찾아주는 시인이 있어 추운계절도 따사롭게 느껴져요 .
이곳에도 곧 첫눈이 올 것 같습니다.
따뜻한 난로가 그리워집니다. 내내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