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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하늘 앞에 선포한 말씀
2010.05.23 (일) 한국 전남 여수 청해가든
요전에 읽었던 부분의 다음을 읽어요. 이거 1권에서부터 20권까지는 기성교인들을 구해주기 위한 말씀들입니다. 성경 신구약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사와 인류역사의 관계 그리고 예수가 책임을 못 했던 그 사명이 역사과정에 어떻게 실증적으로 열매로 맺혔고 결과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총체적인 비판 위에서 결론지어 가지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때의 섭리관에 대한 중요한 골자를 전부 다 얘기해 놓은 것입니다.
그때 예언한 것들이 지금 이뤄집니다. 그때 말씀한 것들이 선생님이 이때에 와서 결실할 것들로서 다 가인 아벨과 같은 관계로 돼 있습니다. 그게 무섭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저 말씀을 들으면, 내가 한 말이지만 어떻겠어요? 내가 핍박받고 외로울 때 전 세계가 반대하던 가운데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얘기했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때에 그냥 그대로 되는 겁니다. 날짜와 말씀의 내용이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으로 일치되는데 섭리관에 통일된 그 내용에 내 자신이 갈 것을 밝혔습니다. 그때에 한 말이 수확될 수 있는 때를 맞이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놀라운 것입니다. 내 자신이 그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도망을 다니고, 홀로 누구든지 만나기를 꺼려하면서 내가 가야 할 미래의 사실을 얘기했는데 지금에 와서 거둬지는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내 자신이 두렵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참, 말씀이란 것이 무섭다.’ 이겁니다.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남아져 있기 때문에 눈이 있으니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귀로 듣고 손발을 움직여야 됩니다. 이해를 못 해줬지만, 그때에 반대한 무리들이 밝히 알아 가지고 자연굴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내용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선포한 얘기입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제7권 ‘인생길을 가는 우리’라는 제목의 말씀을 훈독; ……사탄의 근원부터 모든 것을 해명하여 ‘이러이러한 죄상이 있으니 천상의 처벌이 있기를 바라오’ 하면, ‘오냐’ 하고 대하시는 예수와 거기에 판단을 내리시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다면 무서울 것이 무엇이겠어요?)
여기의 사람들 중에서 진짜의 사람은 몇 명이에요? 문 총재가 저런 세계에서 헤엄을 쳤는데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공중에 떠도는 구름더미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바람이 어디로 불 것인지 알고 ‘내가 갈 수 있는 데로 바람아, 불어다오. 이렇게 해다오!’ 해야 됩니다. 그런 말들이 다 계시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해석도 선생님이 하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말을 생각하노?’ 할 거예요. 뒷면과 앞면으로 얼룩덜룩한 것을 가려 가지고 이것이 내가 필요하고, 얼룩덜룩한 것은 그만두고 하얀 것만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얼룩덜룩한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내 마음은 하야니 하얀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얀 눈을 다 좋아하고, 하얀 옷을 다 좋아하고, 하얀 마음을 다 좋아하지요?
사탄의 핏줄을 받아서 하나님 원수의 깃발을 꽂고 외치고 있는 그늘 아래 사는 내 자신을 망각하게 되면, 영원한 사망의 나라가 지배해 버리고 맙니다. 살 수 있는 가망도 없고, 흔적도 없어진다 그겁니다. 엄청난 말들을 다 가려가면서 얘기하는 것을 볼 때 ‘이야, 저렇게 하다가 어느 코에 걸려 가지고 말 못하는 문 총재가 되나 보자!’ 하고 들어 보니까 똑똑히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 나중에 높은 산정에 홀로 설 수 있는 그 자리를 점령하고 ‘나만 남았나이다, 나는 독생자다.’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필요한 말입니다. 암만 기도하고, 암만 들어도 그 자리에 가보기 전에는 상관을 맺을 수 없습니다. 구름을 타려면 구름세계의 위에 가야지 아래에서 천만년 기다려야 타볼 수 있는 구름은 영원히 없는데, 일생에 한 점도 없는 것을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은 멸망의 도가니에서 지글지글 끓다가 불덩이가 되어서 죽습니다.
근원을 놓치면 본향 땅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려
누가 저런 말을 했느냐? 50년 전에 핍박받고 도망을 다니던 레버런 문이 저런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을 붙들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나를 붙들기에 바빴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신이 갈 수 있는 고개를 지켜줄 수 있는 주인이 없으면 고개를 못 넘습니다. 나 혼자 못 넘어갑니다.
거기에서 내 활동이 빛나게 되면, 반드시 빛을 중심삼고 반사시키는 거울이 있어 가지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 가지고, 그 주인의 빛이 어디로 비치느냐 해서 방향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하루에 열 번을 변하더라도 그 방향에 일치돼야 하는데, 그 근원을 놓쳐버린 사람은 진리의 본향 땅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한 말이에요?
여러분이 편안히 앉아 가지고 ‘좋은 말도 했구만! 저 사람이 누구야?’ 할 수 있어요? 내가 읽고 ‘저 사람이 누구냐?’ 해서 알아보니 문선명이다 이겁니다. 문선명이라는 사람은 90세의 생애를 지내 가지고 라스베이거스 악당의 세계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춤추면서 환희의 마음으로 자연히 녹여버리고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본질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들어와서 지배할 수 있는 대신자를 찾지 못하면, 승리의 패권은 불가능하다, 지옥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아주 망해라 그겁니다. 침을 뱉어버리는 것입니다. 놀음놀이가 심상치 않습니다. 저런 것을 알아서 뭘 할래요? 선생님이 알았으니까 고개를 넘어온 거예요. 91세의 할아버지가 돼 가지고 여수⋅순천에 와서 ‘이 사람들아, 깨라!’ 하는 겁니다.
나케무아! 통일교회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지 않고 나케무아라는 좋은 말을 씁니다. 나를 캐서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나만이 남습니다. 그다음에는 답할 것이 없습니다. 나케무아를 거꾸로 하면 뭐예요?「아무케나입니다.」왜 아무케나예요? ‘나라 국(國)’ 자의 여기는 ‘혹 혹(或)’ 자를 썼습니다. 무슨 나라가 그래요?
아무케나! 약자로 쓰면 ‘임금 왕(王)’ 자를 쓰는 사람도 있고, ‘구슬 옥(玉)’ 자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케나! 나를 캐서 무아의 경지에 가면, 대한민국이 나라의 전통을 캐서 잊어버릴 수 있는 나라를 찾겠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할 거예요, 나케무아라고 할 거예요?
나케무아는 나를 캐서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말도 됩니다. 그 해설을 동서남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가서 쇠고랑을 차게 될 때 나케무아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두고 보자, 내가 나갈 때는 너희 나라와 세계에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이거였습니다.
절대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기둥을 맞춰야
선생님은 곡절의 사연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여기를 보게 되면, 핏줄이 안 보입니다. 병원에 가게 되면, 제일 싫은 것이 혈액검사를 하는 겁니다. 나는 혈액검사를 하기가 힘듭니다. 보라구요. 핏줄이 안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양반입니다. 여자가 보들보들한데, 왕은 여자보다도 더 보들보들합니다. 선생님의 손을 보면 예쁩니다. 이렇게 되면 흉하지만, 이렇게 하면 예쁘다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시계인데 납작해요? 불란서에서 내가 만든 공장에서 만든 것인데, 거기에서 7백 가지 이상의 특허를 갖고 있는 사나이가 나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참아버님께서 ‘아벨유엔의 정착과 천일국의 완성은 한국’이라는 제목의 강연문 일부분을 훈독하심; 한민족은 예로부터 하나님을 조상들 중 최고 최상의 조상으로 숭앙하며 살아온 천손민족입니다. 오직 한 분이신 만인의 조상, 그 분을 한 분님, 즉 하나님이라 불러 주인(밤과 낮의 창조주)으로 모셔왔고…….)
밤의 하나님과 낮의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 안팎의 주인을 모릅니다. 나는 안팎의 주인을 분별하기 때문에 밤과 낮의 창조주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밤의 창조주를 몰라요. 하나님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영계에 가도 하나님을 못 보는 것입니다. 원리말씀에 영계에 가도 하나님을 못 본다고 했지요?「예.」그걸 밝힌 것입니다. (훈독 계속; 만인의 조상, 그분을 한 분님, 즉 하나님이라 불러 주인(밤과 낮의 창조주)으로 모셔왔고…….)
한 분의 하나님을 알았고, 한 분의 몸뚱이가 되는 실체를 창조한 하나님도 한 분의 주인 가운데 포괄해서 모신 것입니다. 거기에 정성을 들인 민족은 효자 충신 열녀들의 민족이 됩니다. 입산수도해 가지고 40일 금식이나 120일 금식을 하면서 밤을 낮 삼아 가지고 도를 깨친 사람 아니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훈독 계속; 한민족은 예로부터 하나님을 조상들 중 최고 최상의 조상으로 숭앙하며…….)
하나님을 모신 것뿐만 아니라 심부름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노릇도 하고, 어머니의 노릇도 하고, 아들딸의 노릇도 했습니다. 4대의 사명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훈독 계속; 살아온 천손민족입니다. 오직 한 분이신 만인의 조상, 그분을 한 분님, 즉 하나님이라 불러 주인(밤과 낮의 창조주)으로 모셔왔고…….)
밤과 낮의 창조주, 밤의 주인과 낮의 주인이신 창조주가 다르다 이겁니다. 이걸 누가 해석할 거예요? 65억 인류가 해설할 수 없습니다. 그건 문 총재가 가르쳐줘야 됩니다. 제멋대로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훈독 계속; 따라서 모든 수의 근원도 하나, 둘로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 돼요? 절대자는 맨 꼭대기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말하는데 사랑의 주인도 되고, 생명의 주인도 되고, 심판의 주인도 될 수 있어요? 그 한 분의 하나님에게 어떻게 상대를 갖다가 맞춰주느냐? 한 분의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의 내적인 설명법 앞에 가중적인 설명법은 무엇이냐? ‘절대⋅유일⋅불변⋅영원!’ 해봐요.「절대⋅유일⋅불변⋅영원!」
절대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기둥을 맞춰야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서려면, 세 기둥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 사람은 3면을 봅니다. 뒤는 못 봐요. 뒤를 어떻게 볼 거예요? 얼굴이 앞을 바라보고, 귀나 모든 것들이 앞을 보게 돼 있지 뒤를 보게 안 돼 있습니다. 뒤를 어떻게 보느냐 그겁니다.
하나님의 앞에는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의 세 시대가 필요합니다. 초부득삼(初不得三), 첫 번째를 가지고는 모릅니다. 세 번을 갖다 붙여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초부득삼이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 편에서 세 자리를 찾아야만 동서남북이 하나님의 앞에 나타난다 그겁니다.
동서남북인데, 북에서 어디로 가야 돼요? 내가 이렇게 서 있을 때는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이 됩니다. 그러면 문명의 발전은 어때요? 해는 동에서 떠 가지고 서쪽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남쪽이 중심입니다. 적도의 중심인 남쪽에 가 가지고 북쪽으로 찾아가야 됩니다. 문화발전의 총론을 말하면 동양과 서양인데 동양은 영적으로 사상적이고, 서양은 몸적으로 물질적입니다. 물질문명의 세계가 정신문명의 세계를 따릅니다. 정신문명의 세계가 먼저 생겨나야 되느냐, 물질문명의 세계가 먼저 생겨나야 되느냐?
해를 중심삼고 동서라고 합니다. 햇빛의 특성이 뭐냐 하면 틈만 있으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물과 공기처럼 흘러야 됩니다. 틈이 있으면, 햇빛이 어떻게 해요? 지구성의 꼭대기에서부터 밑창까지 틈만 있게 되면, 햇빛이 쭉 비칩니다. 그걸 생각해 봤어요? 여기에 물이 떨어지면, 그 물을 통해서 저쪽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냐 하면 갔다가 돌아와야 할 것을 모릅니다. 살긴 살지만 돌아갈 것을 몰라요. 그래, 한국말로는 영계에 가는 것을 돌아간다고 합니다. 놀라운 계시입니다. 일본말 가운데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은 근원을 찾아다는 것입니다.
정신력으로 살아났다
선생님이 감옥에 많이 갔어도 죽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고문을 받으러 들어가기 전에 눈을 감고 혀를 깨물면, 피가 소로록 나와야 됩니다. 피가 나올 때 어디로 나오느냐? 소변 같은 것도 힘을 주면, 핏빛의 오줌이 나옵니다. 구멍을 뚫어야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하더라도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기 때문에 내 몸뚱이가 깨지지 않습니다. 보자기에 구멍을 뚫었으니 보자기의 나머지에는 상처가 안 나는 겁니다.
선생님의 몸뚱이가 80퍼센트는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신력으로 살아났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밥도 한 숟갈이나 두 숟갈밖에 안 되던 것을 절반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나는 절반만을 먹고 살았습니다. 공기라든지 자연의 모든 것을 먹은 것입니다. 자연에도 생명이 있으니 그걸 받아먹었어요.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운동법이 많습니다. 여기서부터 이렇게 해서 ‘우욱’ 하면, ‘두루루룩’ 소리가 납니다. 발을 이렇게 뻗치면서 궁둥이로 버티면 뼈에 연관된 운동을 해 가지고 불뚝불뚝 나옵니다. 숨을 쉬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90세가 됐지만 사다리에 올라가 딛기 시작하면, 거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철봉을 했기 때문에 손으로 잡고 힘을 주면 내려가고 올라가다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걸음이 빠릅니다. 많이 개발했습니다. 선생님의 발이 예쁘지요?「예.」발이 예뻐요. 손도 예쁘고 말이에요. 요걸 딱 붙이면 샌드위치와 같습니다. 이것이 커야 빠르거든요. 평족을 가진 사람은 군대에 못 갑니다. 원거리를 못 걸어요. 선생님이 태어나기를 잘 태어났습니다. 골상학적으로 보면 선생님의 골상을 닮은 사람이 내적으로 보나, 외적으로 보나 없다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요. 병원에 가보지 않았습니다. 병은 내가 다 치료하거든요. 아프면 말입니다.
오늘은 몇 마리를 잡을래?「어제 스물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오늘은 더 많이 잡아야 되겠습니다.」나는 비가 와서 다섯 마리를 걸려고 했는데 네 마리밖에 못 잡았어.「그래도 사이즈가 큰 것을 잡았습니다.」사이즈가 큰 것을 걸면 ‘야야야……!’ 하다가 틀림없이 놓치는데, 그건 내가 전문가입니다. 고기가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놓으면 저 밑창으로 내려갑니다. 뒤 꼭대기를 잡아채니까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야, 이것들 봐라! 그리 들어가지 말고 공중으로 올라와라!’ 해서 대가리가 걸리면 쫙 해서 안 놓아줍니다. 이것만 잡아채면 줄을 그냥 해 가지고 안 늦추는 것입니다. 딱 잡아 가지고 조정할 줄 압니다. 얼마가 들어갔으니 숨이 차 가지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니 딱, 하면 후루룩 감습니다.
이걸 몇 번만 하고, 그다음에는 대가리를 들게 하면 공중에 나와 가지고 자꾸 끌려 올라가지 내려갈 수 없습니다. 몇 번을 했다가 실패했으니까 말이에요. 그래 가지고 내가 올리게 되면, 자꾸 올라가서 눈을 감고 ‘아이고, 나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하는 겁니다. 밝은 수면에 나오는 것이 무서우니까 눈 감고 있어요. 살랑살랑해 가지고 끌 때 잡아채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해서 뱃전에 오게 되면, 큰 고기도 꽁지로부터 들어가니만큼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싹 들어가게 된다면, 대가리하고 꽁지를 뒤바꿔 가지고 이렇게 해놓으면 암만 큰 놈이라도 ‘냠냠, 맛있다. 내 배가 부르니까 놀고 팔자타령하며 살 수 있다. 아주, 좋다!’ 그럽니다.
‘좋다(조타)’는 새를 타고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말이 다 그렇게 술어와 예술적인 내용으로 복합적인 내용을 그리면서 돼 있습니다. 단순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문 총재를 이해 못 합니다. 하나님의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알아요? 그 하나님을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서 마음을 맞춰줘 가지고 합격한 문 총재의 외교술이라든가 능란한 것은 천 년을 지내면서 연구해도 못 따라옵니다.
같이 살면 가르쳐줄 것들이 많아
나 소질이 많습니다. 씨름할 때 발가락으로 거는데, 옛날에는 이 발가락이 닿아서 이렇게 됐습니다. 지금도 여기에다 이렇게 딱 걸면, 이걸 딱 이렇게 해놓으면 못 펴요. 걸어놓고 씨름할 때 여기에 힘이 빠져 가지고, 여기에 맞춰도 안됩니다. 여기에 딱 해놓고, 여기에 있는 힘을 중심삼고 한 발자국을 돌아서면 저 사람의 꼭대기가 땅에 먼저 닿아서 머리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내가 씨름선수였습니다.
내 양말이 어디로 갔나? 이것도 이렇게 할 때는 보라고요. 배워두라는 거예요. 이렇게 딱 신게 되면 발을 여기의 ‘십(十)’ 자에 맞추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해놓고, 여기서 이걸 잡아당깁니다. 이걸 이렇게 해놓고 한 번에 다 합니다. 넥타이도 그래요. 그러니 같이 살면 가르쳐줄 것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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