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4일 오후 2시 아르숲 생활문화센터에서 법무법인 해송 부설 인권연구소 소장이며 그림책 '좋아서 껴안았는데, 왜?'의 저자 이현혜 소장님을 모시고 성평등 강사단·시민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폭력 예방은 문화를 바꾸는 것이므로 함께 해야 하고 함께 같은 의식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지요. 대부분 가해자를 탓하지만
"네가 왜 거부 안 했어?"
"그러길래 왜 (회식) 2차에 갔어?"
"왜 술이 취하도록 마셨어?"
와 같이 피해자를 탓하는 반응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피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고 그러므로 처벌도 불가능하지요. 가해자는 그러한 행동을 했음에도 아무 제지나 처벌을 받지 않으므로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범죄는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안 돼. 싫어요. 하지 마세요."와 같은 '피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아니라 진정한 예방 교육 즉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중요합니다. 또 피해자의 치유도 중요합니다.
많은 남성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40~50년 이렇게 잘 살았다. 왜 '성인지 감수성'을 배워야 하느냐?"
답은 너무나 명료합니다.
"어느 날 행위자로 지목받을 수 있어요."
잘못인지 모르고 행위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계의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없었고 그 당시의 문화가 있었으므로 그 시대를 겪어온 분들에게 '왜 그것도 모르냐?' 나무랄 수 없습니다. 함께 배워가고 함께 바꿔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
우리 사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우리 조직이 우리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여자만 차별받는 거 아냐! 남자도 차별받아!"
맞습니다. 남성도 차별을 받지요. 핵심은 그 차별로 어떤 여성이 피해를 보는가, 어떤 남성이 피해를 보는가의 교차성입니다.
이현혜 소장님은 기존의 개념인 '경계'와 '존중'을 젠더 관점으로 해석해 '경계존중'의 개념을 만들었고, '동의'도 젠더의 관점으로 풀어냅니다.
미국책에서는 "니가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라고 가르칩니다. 누군가 나의 신체를 만질 때 말로 딱잘라 표현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감정과 기분이 들 때 "싫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거부의 표현을 못합니다.
이 상황에서 핵심은 거부의 표현이 가능할 수 있는 전제 조건 즉 '니가 싫다고 얘기하면 상대방이 들어줄 거야'입니다. 이것은 뒤바꿔 말하면 '누가 내게 싫다고 하면 나도 그만해야 한다'를 함의합니다. 이것이 '경계존중'입니다. 누군가 나의 영역을 침해할 때 거부할 수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거부하는 것까지는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NO가 수용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메시지입니다.
일례로 미국 드라마에서는 여성, 남성이 스킨십을 하다가도 여성이 "NO!"를 하면 남성은 기분은 나쁠지언정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에서(요즘은 덜하지만요)는 여성의 "NO!" 이후 장면은 여성이 울거나 두 명이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동의를 구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대답을 수용하는 것까지가 '경계존중'인 것이지요.
실제 상황에서는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까지의 교육은 위험합니다. 피해자의 저항은 가해자의 폭력성을 자극하게 된다고 합니다. 위력으로 피해자를 제압하려는 욕구가 생기고 실제로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평등 강사는
(예방교육의 이름을 단- "안 돼. 싫어요. 하지 마세요." 는 이미 상황이 벌어진 것이므로) 대처 교육
위험에 처하도록 하는 교육
힘 있는 아이(사람들)만 실행할 수 있는 교육
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경계(boundary)'는 관계교육이자 권리교육입니다. 사람, 대상마다 또 상황, 친밀도, 관계에 따라 '경계'는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해도 괜찮겠어?"라고 '동의'를 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동의'가 무엇이냐,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동의는 어떻게 구하는 것이냐가 교육에 잘 담겨있어야 합니다.
이 동의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읏으며 답하는지, 싫은데 '응'이라고 하는지, 침묵하는지.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싫다면 수용해야 하지요.
일반적 시민은 사회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구조의 문제인지 못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폭력을 당하는 사람에게 개인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위험에 처하면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폭력 위험에 처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NO'라고 했을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할 때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요. 누군가가 의견을 내고 누군가가 싫다고 했을 때는 부모의 권위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물어야 하고 그 이유가 합당할 때는 수용해야 합니다. 물론 엉뚱한 대답을 할 때는 수용이 아니라 그 대답이 어떤 면에서 엉뚱하고 실현불가능한지를 가르쳐야 하는 것도 부모의 몫입니다.
이러한 가정 내 예를 사회 조직에 옮겨와 생각해도 같습니다. 직장 교육이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계획된 시간은 2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이 너무나 금방 흘러갔고 강사님과 참여자분들의 열정으로 강의는 조금 더 이어졌습니다. 강의 시간이 짧아 중간에 생략한 내용도 많은데요, 아쉽지만 다음에 또 모실 기회가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토끼 최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