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코스 : 상천역 - > 청평역
상천역이다. 바람이 가슴을 적신다. 경기 둘레길을 지금까지 함께 걸었던 박찬일 사장님은 림프종암 진단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고, 김헌영 총무는 바쁜 일정으로 짝 잃은 신세가 되어 상천역에 섰다.
함께하면 할수록 좋기만 한 우리 땅 걷기의 동지들과 마주하지 못하고 경기 둘레길 22코스를 걸어가려니 왠지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뿐이다. 오늘은 비록 혼자 걸어가지만, 반드시 완쾌하여 다시금 박 사장님과 동행하여 다시 걸어갈 수가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호명 호수를 향하여 걸어간다.
호명호수까지는 3.8km이고 호명산 정상까지는 7.3km이다. 보도블록을 따라 걸어가는데 한옥 가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일 때문인지 등산객은 보이지 않아 이 넓은 공간을 홀로 걷는다. 이래저래 오늘은 외롭기만 하다.
눈길을 끌었던 한옥 가옥에 이르니 ‘상천루’를 알리는 현판을 처마 밑에 걸어 놓았는데 땅바닥에는 ‘출입금지’ 네 글자가 쓰여 있다. 멀리서부터 보행자의 관심을 끌게 하고 막상 도착하니 들어갈 수 없다 하니 허탈한 마음이 일어난다.
실제 보면 별것 아닐지라도 보지 못하게 하면 왠지 보고 싶은 궁금증이 일 때
때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이곳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보니 오늘로써 2번째 두릎따러 왔기에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산기슭의 그 장대한 규모에 혹 종교단체의 건물이 아닐까 하는 소설을 쓰는 등 들어가 볼 수 없는 아쉬움을 흐르는 물소리가 깨끗이 씻어 준다. 물소리에 취하며 산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 잣나무 지대가 반가운 인사를 한다.
호명산 잣나무 숲 야영장이다. 이용 요금 평일 35,000원, 주말 45,000원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사전 에약제로 운영된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텐트를 쳐놓고 있다. 우거진 산림 속에 파묻혀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명상 속에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에 동화되어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마음의 건강을 더욱 튼튼하게 할 것이다.
좋은 줄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 때문일까?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산길을 진행할 때 또다시 잣나무 지대를 만났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잣나무, 아직은 세월의 무게를 더욱더 기다려야겠지만 산객들의 관심을 끌 만하였다.
등산로는 점점 가팔라지고 온몸에는 땀으로 벤다. 오늘은 흐린 날씨에 다소 기온도 낮은데 땀이 몸에 배고 있으니 등산로가 가파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산행하여 힘이 들기 때문일까?
푸른 빛을 분출하는 파란 세상의 적막을 발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로 깨우며 진행할 때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외롭게 산을 오르는 산객을 힘차게 응원의 함성을 올려 주고 있었다.
발을 담그며 놀 수 있거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을 수 있게 흘러내리는 물이 아닐지라도 이끼가 낀 바윗돌을 부딪치는 소리가 조금 전까지의 가슴에 쌓인 찌꺼기를 씻어 주며 상쾌한 마음을 선사하여 주는 외침 같았다.
그래도 힘이 든다.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 또 다른 응원군이 호명호수 1.54km, 호명산 4.78km를 알린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는 의미이겠지만 지쳐 있는 사람에게 1.54km는 15.4km로 느껴질 것이다.
나무다리를 건느면서 등산로는 더욱 가팔라졌고 빙빙 돌아가는 등산로가 되었다. 돌아가는 등산로는 가파른 등산로를 완만하게 해 주지만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 다소 힘들어하는데 누군가가 돌계단에 쌓여 있는 낙엽을 깨끗하게 쓸어 놓았다.
누구는 힘이 든다고 아우성인데 누군가는 다른 등산객을 위하여 계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깨끗하게 낙엽을 청소하여 놓은 것이다. 순간 새로운 힘이 솟으며 그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돌면 돌아가고 돌면 또다시 돌아가는 빙글빙글 도는 등산로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에 이르렀는데 오르막길의 최고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아스팔트가 놓인 호명호수에 이르는 자동차 도로였다.
이곳에서 호명 호수까지는 630m이고, 호명산까지는 3.87km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평지나 다름없는 아스팔트 길을 가볍게 걸어 호명 호수에 이르니 관광객들로 복잡하였다.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였는데 산상의 호수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였다. 불현듯 주역의 연못이 산 위에 있는 택산함괘가 떠오른다.
“산과 못의 기운을 통하는 상을 관찰하고서 마음을 비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니 사람이 마음을 비우면 받아들일 수가 있고, 꽉 차면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아집을 없애는 것이니 마음에 사사로운 주장이 없으면 감동함에 통하지 않음이 없다. 헤아려서 수용하고 합할 상대를 가려 받아들임은 성인이 감동함에 반드시 통하는 도가 아니다.”
능선을 따라 수려한 산세와 드넓은 호수가 아름다운 경관을 빚어내 가평 팔경의 제2경으로 꼽힌다는 호수 전체를 더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보고자 팔각정에 이르렀으나 문이 잠겨 그림 같다는 청평호반의 경관을 바라볼 수 없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호명산으로 진행할 때 곳곳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이 호수와 조화를 이루어 가평 8경의 2경임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등산로 곳곳에 피어난 야생화와 각양각색의 버섯을 관찰하는 재미도 색다르다고 하였지만, 꽃과 식물에 문외한이었기에 지나칠 수밖에 없었으니 그 무지를 누구를 탓하겠는가!
전망대에 이르러 팔각정에서 바라보지 못한 호명호수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가 있었다. 호명호수 그 자체가 한 폭의 동양화였다. 그저 산속에 흐르는 물을 막아 가두어 놓았을 뿐인데 평화스러움, 엄숙함 등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자연의 신묘함이 느껴졌다.
능선을 따라 호수 한 바퀴를 돌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장자터 고개였다. 이곳에서 호명산 정상까지는 3.3km이다. 세상에 이름이 없는 풀이 없듯이 이름이 없는 봉우리가 없을 것이다.
분명 이름은 있을 것이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에 올라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호명산으로 향했다. 바윗돌의 등산로가 되어 가는 걸음을 더디게 한다. 들쭉날쭉한 바윗돌이 제멋대로 놓여 있고 등산로 또한 가팔랐다.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다.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하게 걸어갔는데 등산로의 표지목은 호명산 2.2km를 알린다. 호명호수를 오를 때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왔지만, 이곳은 바윗돌과 가파른 오르막이 가는 길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등산은 빨리 가는데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쉬지 않고 진행하는데 묘미가 있기에 더욱 느리게 발걸음을 띠면서 능선을 타는 즐거움과 숲속의 흥취에 부푼 마음으로 거친 등산로에 동화되어 걸어간다.
벌목지대를 지나니 바윗돌의 등산로에서 흙길로 계속되었고 완만한 등산로가 되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과 같이 바윗돌의 길에서 흙길로 바뀌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돌탑을 지나서 호명산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원스럽다. 남쪽으로는 청평댐을 건너 화야산의 뾰루봉이 지척에 보이고 그 너머로 용문산이 펼쳐진다. 서북쪽으로는 깃대봉이 선명하고 축령산, 서리산 등 수동면의 산들이 이어진다. 북쪽으로는 청우산·대금산 매봉을 잇는 산줄기가 뚜렷하고 그 너머로 명지산과 화악산·국망봉 등 경기도의 고봉들이 보인다. 조종천의 물줄기와 46번 경춘가도, 경춘선 기찻길로 지나가는 기차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명산 [虎鳴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고 하였지만 흐린 날씨로 사람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하는 조망을 할 수 없음이 매우 아쉬웠다.
지리산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점점 대기권이 오염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 위에서의 조망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은 아닐까?
언제 또다시 올지 모르는 고스락에서 눈앞의 북한강조차도 볼 수 없음을 개탄하며 주위를 살펴본다. 고스락 높이 632m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등산인들이 부착한 수많은 표지기가 펄럭인다.
“ 호명산(虎鳴山)은 ‘호랑이가 우는 산’으로 옛날에는 산림이 우거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호랑이 울음소리가 많이 들렸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가평군지』에 따르면 호명산의 높이가 높지 않아 뾰루봉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 물이 청평댐에 들어서기 전에 물살이 빨라지면서 호랑이 울음소리와 같이 들렸다 하여 ‘범울이’가 되었고, ‘범울이’가 한자로 쓰여 ‘호명(虎鳴)’이 되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명산 [虎鳴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호명산때문일까? 이곳은 유독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범이 우는 굴이라는 호명굴, 범이 우는 마을의 호명리, 호명리 북쪽의 범울이계곡, 범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아갈바위봉, 아갈바위골 등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이 호랑이에 이르니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나타날 것은 착각 속에 하산한다. 청평역까지는 2.8km이다. 짤막한 거리인데 경사각이 심하여 매우 조심하여야 했다. 그런데 가파른 내리막길을 띠어서 내려가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젊은 시절 나도 한때는 저 중년 부부처럼 내려갔는데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희어지고 보니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며 천천히 더욱 천천히 내려간다.
가파르던 등산로가 완만해지며 전망대가 있었는데 청평댐은 희미하게 보였지만 앞에 솟아있을 산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고스락에 올랐다는 사실에 만족하여야만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갈 때 계단 공사를 위하여 지게에 나무계단을 지고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등산배낭을 지고 내려가는 것도 조심하며 살얼음판 걷듯 걸어가는데 이들은 수십킬로가 되는 원목을 지고 올라가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중국 노동자들이 계단 공사를 위하여 지게를 지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호명산에서 실제 지고 나르는 모습을 보니 너무 편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니 다소 우리말이 어눌하여 자세하게 관찰하니 동남아 사람들로 보였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일자리를 찾아 머나먼 이국에 와서 그것도 자국민은 하지 않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데 저 어린 나이에 이국땅에서 등산객 겨우 한 명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조국은 이들에 대한 안전을 담보로 우리나라에 파견한 것일까? 그들의 안전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까?
먹먹해진 가슴으로 호명산을 내려왔다. 밭을 지나니 조종천이 큰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구름다리 같은 눈길을 끄는 호명교를 건넜다. “호명교는 돌 징검다리를 건너 호명산을 오르던 등산객을 위해 조종천에 2018년 10월 길이 93m, 폭 2m의 인도교를 설치해 불편을 해소했고, 음악 도시 가평을 상징하는 기타 모양의 디자인으로 새로운 상징건물이 되었다.”라고 한다. 귀목 고개에서 발원한 조종천의 물길을 바라보며 잠시 걸어가다 이내 청평역에 이르렀다.
● 일 시 :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흐림
● 동 행 : 나홀로
● 동 선
- 09시55분 : 상천역
- 11시15분 : 호명호수
- 11시35분 : 팔각정
- 12시05분 : 장자터 고개
- 13시35분 : 호명산 고스락. 헬기장
- 14시25분 : 오대골, 청평역 갈림길
- 14시45분 : 청평역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1.4km
◆ 소요시간 : 4시간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