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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울(바울)(사도행전 9:1~9)
* 본문요약
스데반 집사를 처형한 사울은 스데반 집사를 죽인 그 기세를 그대로 가지고
맹수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을 향합니다.
그러나 다메섹에 거의 이르렀을 때에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비치고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사울은 땅에 엎드러졌고, 일어났으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갑니다.
찬 양 : 204장(새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405장(새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본문해설
1.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1~2절)
1) 사울이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다마스커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낼 공문을 써달라고 청하니
이는 만일 이 도(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 여전히(1절) :
사울이 스데반 집사를 처형한 후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여전히 계속 주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살기가 등등하여(1절) : 엠프네온
‘등등하다’에 해당하는 ‘엠프네온’은 말은
‘숨을 쉬다’라는 감정이나 정서를 나타내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가 헐떡거리는 모습을 뜻합니다.
‘여전히’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와 함께 사용된 이 말은
스데반을 죽일 때부터 시작된 성도들에 대한 분노와 살의가
시간이 흘렀음에도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울이 마치 맹수처럼 달려들 기세로 다메섹을 향하였다는 것입니다.
- 다메섹(2절) :
다메섹은 고대 수리아의 수도로,
레바논 산맥의 동쪽 해발 600m 고지의 평원에 위치합니다.
중동에서 군사적·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약 242km입니다.
2.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난 사울(3~9절)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메섹(다마스커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홀연히(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서 성안으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사울과 함께 가던 사람들은 소리(그 음성)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그 음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어안이 벙벙하여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하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 땅에 엎드러져(4절) : 페손
‘엎드러져’에 해당하는 ‘페손’은 ‘떨어진다, 넘어진다’의 뜻으로
쓰러지듯 갑자기 엎드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큰 두려움에 휩싸인 즉각적인 반응이었음을 나타냅니다.
- 사울(바울) :
초대교회 문서에 의하면 바울은
대머리에 안짱다리, 자그마한 체구에 눈썹은 맞붙어 있고, 조금 큰 코를 가졌으며,
활동적인 기질을 가졌으나 몸이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 묵상 point
사울(바울)은 로마의 큰 도시 다소에서 태어나 자라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 할레의 인문학에 밝았고,
신앙에 있어서도 당시 유대인들 사회에서 큰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이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을 통달한 자로 널리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반대로 이해했는지,
또 그런 고집쟁이가 어떻게 그 고집을 꺾고 주께로 돌아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본문에서 말하는 사울은 나중에 ‘바울’이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사울과 바울은 같은 이름으로
히브리어로 읽으면 ‘사울’이고 헬라어로 읽으면 ‘바울’이 됩니다.
그가 나중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로 활동할 때에는
헬라어 발음인 ‘바울’로 불리지만,
그전에는 히브리어 발음인 ‘사울’로 불렀습니다.
1.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1절)
1)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는 사울(1~2절)
사도행전 7장 뒷부분에는 초대교회 최초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스데반 집사를 처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사울(바울)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처형을 주도했던 사울은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로 갑니다.
핍박을 피하여 다메섹으로 피신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메섹에 있는 회당으로 보내는 공문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2) 이 일은 누구의 명령도 없는 사울이 단독으로 행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이 일은 대제사장이 사울에게 명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사울에게 이 일을 부탁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사울 혼자서 스스로 자원하여 행한 일입니다.
사울은 그만큼 기독교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을 아예 박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파괴적인 열정을 가지고 사울이 다메섹으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 묵상 : 잘못된 신념, 잘못된 열정은 게으른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말고
그 신념이 바른 것인지를 늘 살피는 사람이 되십시오.
2. 예수님 앞에 엎드러진 사울
1) 예수님 앞에 엎드러진 사울(3~5절)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무려 242km나 떨어져 있는
다메섹에 거의 이르렀을 때입니다.
갑자기 아주 환한 빛이 사울을 비추더니 하늘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두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울은 그만 그 자리에 엎드러져서 하늘을 향해 외쳤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2) 사울의 혼란 : 어느 하나님이 진짜입니까?
사울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니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는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리인 줄 알았을 텐데
어찌하여 하늘을 향해 누구시냐고 물었을까요?
일반적으로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하늘에서 소리가 날 경우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옵소서”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아는 바울이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하면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스데반 집사가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긴다고 했지만
사울 역시 속으로는 조금 혼란을 느낀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물으시니
사울이 엄청난 혼란을 느꼈습니다.
지금껏 기독교인을 없애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 일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걸었는데,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누구십니까?
스데반 집사가 믿는 하나님이 맞습니까?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려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맞습니까?”
이것을 질문하기 위해 사울은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물은 것입니다.
➠ 죽음의 장벽보다 큰 신앙의 장벽
평생 간직해온 신념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신앙을 바꾸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신앙은 죽음 후의 일까지 다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믿어 온 신앙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려면
자금까지 믿은 신이 잘못되었고, 새로 받아들이려 하는 저 신(神)이
확실한 능력을 가진 신(神)이라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단하기까기 많이 주저하게 됩니다.
인간의 육신의 감각으로 신의 능력을 분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신도 믿지 않는 무신론도 그 나름대로 자기만의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가 믿었던 신앙을 바꾼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장벽을 넘어야만 하는 힘든 일입니다.
하물며 사울처럼 믿는 자들을 붙잡아 처형할 만큼
그렇게 열심히 자기의 신념과 신앙에 투철했던 자가 이런 경험을 했으니
그 혼란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늘을 향해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 묵상 : 주님이 누구신지 바로 아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며 항상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롭게 깨닫게 해 주실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그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3.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울
1)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5절)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묻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고 말씀하시고는 더 이상 다른 말씀 하시지 않고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장차 사울에게 할 일을 이를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만 말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미 사울에게는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하는 충성심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동안 사울은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 확신에 따라 믿음의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까지 하였으니
예수께서 직접 자신이 누구신지를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만 알게 해 주면
사울이 누구보다 주를 위해 일할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주여 나의 믿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사울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2) 큰 충격에 빠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는 사울(6~9절)
예수께서 자신을 밝히시자 사울은 곧 그 말씀에 복종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다메섹 도성으로 들어가려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도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성에 들어가서도 사울은 사흘 동안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잘못 믿어 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난 후부터는 오직 예수께 충성하는 사울(바울)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 사울을 봅니다.
그가 비록 처음에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는 데 앞장서기는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가 핍박했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시니
그는 어두웠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참된 사람이 되는 아픔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고 마시지도 못한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도 이런 충격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큐티를 통해 말씀으로 날마다 이런 충격을 경험하는 사람은
큰 충격을 받지 않고 날마다 변화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날마다 변화되는 삶을 게을리하면
사울처럼 엄청난 충격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으면 청소하기가 아주 힘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 충격이 두려워 그마저도 또 미루게 된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지옥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것은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영을 청소하고
내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우는 일을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주저하지 말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매일 반복하면 사울처럼 큰 충격 없이 은혜 안에 살아가게 됩니다.
* 기도제목
1. 우리의 믿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2. 혹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바르게 깨닫도록 도와주옵소서.
3. 그리고 깨닫게 되었을 때
바울처럼 즉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