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에스프레소 한잔
질문 하나를 품고 떠난 길은
낯선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추었고
아이들의 웃음과 여성들의 침묵은
내가 알던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위험은 뉴스 속에 남아 있었고
그 땅이 먼저 내어 준 것은
등을 보이지 않으려던 걸음과
마당으로 옮겨 간 잠자리였다.
어느새 두려움은 존중이 되고
어느새 낯섦은 관계가 되어
그들의 환대를 삶으로 증명하는
한 사람을 가까이 바라보게 되었다.
마지막 밤 타일 바닥에 앉아
빨래를 하다 잠이 든 사이
들려온 소리는 끝이 아닌
또 다른 길 앞에 나를 세워 두었다.
그 소리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소리를 따라 걷기 시작한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 관계는 소리를 낳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해 열네 시간을 날아온 끝에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펼쳐진 하늘 아래에서 바라본 카불 공항은 생각보다 작고 단순했다.
들판 한가운데 놓인 공항은 사방으로 막힘없이 열려 있었지만, 정작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내 마음은 출구를 찾지 못한 듯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상상으로만 그려 온 곳에 정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나지 않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뉴스 속에서만 존재하던 아프가니스탄이 어느새 내가 곧 발을 딛게 될 현실이 되어 있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먼지 섞인 바람이 먼저 밀려왔고, 낯선 말소리와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눈빛이 그제야 이곳이 아프가니스탄임을 실감하게 했다.
인천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에는 '정말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 말은 '정말 와 버렸구나' 하는 고백으로 바뀌어 있었다.
군대 PX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Who are you."라는 질문을 품었던 사람이, 그 질문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나의 질문이 어디로 이어질지 알지 못한 채 걸어왔는데, 그 길의 끝에서 나는 낯선 나라의 흙먼지를 밟고 있었다.
어쩌면 그 먼 길을 건너온 이유도 하나였다.
오래 품어 온 물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질문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나는 직접 보고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호기심이라기보다 무모함에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나는 그런 나를 말리기보다 응원하고 싶었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던 나의 첫 해외여행지가 아프가니스탄이 될 줄은 나조차 몰랐지만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먼지와 바람 서로에게 아직 낯설었던 사람들의 눈빛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선명한 첫인상으로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도착장으로 나오자, 화면 속에서만 보던 이성재 선생님이 서 있었다.
위험하다고 떠나는 땅에 남아 아이들과 공을 차던 사람.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사람.
수없이 상상했던 그 만남이 현실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지만, 마음속의 영웅으로 키워 온 탓인지 막상 마주한 그는 놀랄 만큼 수수했다.
햇빛에 바랜 셔츠를 입고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먼저 내 손을 잡아 주는 그의 눈빛에는 따뜻함이, 몸에는 오래 밴 다정함이 있었다.
하지만 더 가까이서 바라본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만 남지 않았다.
거친 땅을 견뎌 온 사람의 단단함, 햇빛과 먼지에 그을린 피부, 사람을 지극히 바라보는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남은 것은 그 부드러움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은 어떤 야생성이었다.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차에 올라 서로의 얼굴을 신기해하며 웃었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은 뒤 오후에는 축구팀 아이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낯선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수줍게 인사를 건넸고,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우린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뛰기 시작하자 어느새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어색함도 사라져 있었다.
이성재 선생님의 지도 아래 우리는 운동장을 누비며 웃음과 함성을 쏟아 냈고, 그 소리가 운동장 가득 번져 나가는 동안 무엇보다 눈을 떼기 어려웠던 것은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었다.
뉴스 속 아프가니스탄은 두려움과 전쟁의 이미지로 가득했지만, 눈앞의 아이들은 내가 만나 본 아이들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 만큼 아름다웠다.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두려움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마음이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아이들의 웃음이었다.
그런데 운동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거리에는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은 물론 표정조차 볼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웃음이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처럼 느껴졌다면, 거리에서 마주한 부르카 속 여성들의 모습은 마치 이 땅의 얼굴까지 감추고 있는 듯한 침묵으로 다가왔다.
운동장에서는 웃음이 흙먼지처럼 흩날리고 있었는데, 거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으로 걸어가는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아이들과 얼굴을 감춘 채 걷는 여성들이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하나의 땅 안에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마주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떄의 나는 그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아프가니스탄보다 알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이 오랜 역사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한 시대의 깨어진 모습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좁고 얇았던 나의 시야도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좁은 시야에 갇혀 있던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선생님은 그런 나의 시선을 밖으로 돌려 주듯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 온 한국인들과 현지 친구들의 집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하셨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길을 따라 선생님과 함께 여러 사람의 집을 찾았다.
그 길을 따라가며 나는 이 낯선 땅에 먼저 와 지역 사람들과 친구로 살아가며 위험 속에서도 떠나지 않은 한국인들과, 오랜 시간 선생
님의 삶 곁에 머물러 온 현지인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했다.
현지 가정에 초대되어 차를 마시고 함께 식사를 하며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시간은 참 좋았다.
거리에서는 부르카로 얼굴을 감춘 채 말없이 스쳐 지나가던 여성들이 집 안에서는 전혀 다른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아 주었다.
천 너머로는 알 수 없었던 맑은 눈동자와 수줍은 웃음이 표정 속에 드러났고, 가족을 챙기는 따뜻한 손길을 바라보며 나는 그제야 거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땅의 얼굴을 만나고 있었다.
가면을 벗은 듯한 그들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는 내내 기쁨과 울림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나는 한참 동안 그 마음을 삼켜야 했다.
집 안에서는 그렇게 환하게 웃는 그 미소를 알고 난 뒤,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다시 그 환한 얼굴을 감춰야 한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무겁게 남았다.
그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 가며, 그제야 나는 사람들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직접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성재 선생님과 함께 현지인들의 집을 방문하고, 차를 마시고 식사를 나누며 그들의 일상 가까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집에서 낯선 나를 멀찍이 바라보며 수줍어하던 아이를 만났다.
집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카펫이 깔린 바닥에 앉자, 그 아이가 넓은 그릇과 물 항아리를 가져왔다.
아이는 내가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따라 주고 작은 수건을 건네주었다.
잠시 뒤에는 어른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내어 주었고,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다시 그릇과 물 항아리를 들고 와 손을 씻게 했다.
더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릇을 들고 나가는 순간에도 등을 보이지 않으려 뒷걸음질로 문밖까지 물러서는 모습은 내게 낯설면서도 충격을 받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도 특별한 손님도 아니었지만, 가족 모두가 한결같은 예로 나를 대했다.
처음 경험하는 환대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고, 감사와 부담 사이에서 애매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뉴스가 내게 보여 준 것은 이 땅의 한 풍경일 뿐 사람들의 집 안에서, 식탁 앞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진짜 아프가니스탄을 만나기 시작했다.
의식처럼 정갈하고, 한 사람을 향한 존중이 일상의 예절로 몸에 배어 있는 그들의 손님맞이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 담소를 나눈 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긴 수염의 어르신은 하얀 이불을 정성껏 펴 주시며 말씀하셨다.
“여기 누우세요.”
내가 잠자리에 눕자 이번에는 또 다른 하얀 이불을 가져와 내 몸 위에 덮어 주셨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무슨 이런 친절이 다 있을까…’ 싶을 만큼 민망한 감사가 밀려왔는데, 더 놀라운 것은 어르신이 방을 나가지 않고 문가에 그대로 서 계신 것이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어르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그대로 계셨다.
결국 조심스레 여쭈었다.
“어르신, 왜 안 주무시고 그러고 계세요?”
어르신이 미소 지으며 대답하셨다.
“손님이 편히 잠든 걸 보고 나가는 게 우리나라 문화예요.”
나는 그가 왜 모두가 떠나려는 이곳에 남아 아이들에게 축구를 왜 가르치는지 이해해 보고 싶어 이곳에 왔지만, 그를 섬기는 사람들의 손길과 손님을 대하는 환대 곁에 머물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이유를 묻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볼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이곳에서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쌓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아무 말 없이 많은 생각을 품은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은 다음 날 아침에 찾아왔다.
화장실에 가려고 마당으로 나가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어르신과 가족들이 마당 한편 흙바닥 위에서 잠을 자고 계신 것이 아닌가.
손님에게 방을 내어주고, 정작 자신들은 밖에서 밤을 보낸 것이었다.
그들의 문화 안에 담긴 마음.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뒷걸음질쳤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방으로 돌아와 한동안 벽에 기대어 있었다.
어쩌면 환대란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의 한 자리를 조용히 비워주는 일인지도 몰랐다.
이성재 선생님이 왜 이곳에 남았는지 여전히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다만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머문 나조차 이런 마음을 받았는데, 오랜 시간을 이들과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떨까.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떠나는 일이, 어쩌면 남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어느새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하루 전, 마지막 일정으로 카불에서 남서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칸다하르를 찾았다.
그곳에서 ‘한나호’ 선장이신 백부장 선생님 댁에 초대받아 저녁을 함께했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져서였을까.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그동안 이 땅에서 보고 들었으면서도 미처 말이 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어떻게 이곳에서 숨어 지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 가까이에 머물다 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잠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이성재 선생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단순한 문화라기보다, 그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예요."
"자신들이 위험해지는 상황이라 해도 손님으로 들어온 사람을 쉽게 내어줄 수 없었던 거죠.
손님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
자신의 집에 들어온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
그건 그들에게 오래전부터 몸에 밴 삶의 방식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2주 동안 보았던 장면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졌다.
빈 라덴 때문에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침묵, 손을 씻겨 주던 물 항아리, 등을 보이지 않으려 뒷걸음질치던 걸음, 손님이 잠들 때까지 문가에 서 있던 어르신, 그리고 방을 내어주고 마당에서 잠을 자던 가족들.
직접 그 땅에 발을 딛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들의 고요한 의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유익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며, 오랫동안 지켜 온 삶의 가치를 쉽게 내어 주지 않는 사람들의 고요한 강인함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선생님은, 말없이 그들을 닮은 듯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젠 이 땅이 더 이상 내게 낯선 곳이 아니에요.
이 문화가 내 것이 되었으니, 위험하다고 해서 그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말없이 눈물이 흘렀고, 결국 한마디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진짜 멋있는 삶이네요...”
그날 밤 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진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한 사람을 통해 '관계'의 뜻을 배웠다.
진짜 관계란, 상대가 가진 진짜 가치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지켜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게 선생님과 마지막 밤을 보낸 뒤 혼자 밖으로 나온 나는, 오래도록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었고, 그 별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마치 별 하나를 가슴속에 조용히 심어 두는 일처럼 특별했다.
별들을 바라보는데 무어라 말할 수 없고,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처음 겪어 보는 울림이 가슴을 채웠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떠날 준비를 하며 짐을 정리하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손 편지를 쓴 뒤, 내일 입을 옷을 빨래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
타일 바닥에 앉아 빨래를 하다 보니, 아마 쌓인 피로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모든 것을 소진한 채,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잠 속에서 나는 하나의 꿈을 꾸었다.
너무 선명하고 생생해서, 가슴이 떨릴 정도로 놀라 결국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서남아시아의 어느 땅에 서 있었다.
세 언어가 오가는 현장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건축을 하고 있었다.
우르두어를 쓰는 이들은 자재를 나르고, 힌디어를 쓰는 이들은 그 자재로 벽을 세우고 있었다.
영어를 쓰는 이들은 설계 도면을 들고 위치를 잡아 현장 바닥에 선을 그어 내는 먹줄을 튕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 한가운데 서서 함께 건축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때 하나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라.”
“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라.”
“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라.”
단 세 번뿐이었지만, 그 소리는 내 마음속에서 수백 번의 메아리처럼 번져 갔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고, 공항으로 떠나기 전까지 화장실에 혼자 앉아 그 소리를 조용히 되뇌었다.
“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라...... 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라......”
처음에는 마음속 중얼거림에 가까웠지만, 그 문장은 어느새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지는 약속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사람인데, 어떻게 다음 세대를 준비하라는 걸까.'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다.
준비된 것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죽음의 문턱에서 찾아왔던 “Who are you?”라는 질문은 내 안에서 자라 타인을 향한 작은 관심이 되었고, 마음이 열리자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고 계신 이들이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라는 사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그 삶을 살아 내는 한 사람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결심했고, 처음으로 국제선을 타고 한국을 떠나 낯선 땅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서 나는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문화를 끝까지 지켜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나도 그런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부족함을 깊이 인정하면서도 처음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작은 꿈의 씨앗을 품게 되었다.
그 한 줄의 소리가 내 삶 전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관계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 같다.
그 관계에서 먼저 들려온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귀보다 먼저 닿는 그 마음의 소리야말로 사람과 사람을 가장 깊고 단단하게 이어 주는 힘임을 배웠고,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가고 싶었다.
관계는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게 하고, 같은 말도 관계 안에서 마음으로 들리는 순간 전혀 다른 소리가 된다.
손을 씻겨 주던 물 항아리도, 손님이 잠들 때까지 문 앞을 지키던 기다림도, 방을 내어주고 마당에서 밤을 보내던 가족들의 침묵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별을 따라 걷던 동방박사들이 마침내 아기 예수를 만났듯이 그 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먼 길 끝, 아프가니스탄의 좁은 화장실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이것이 너를 향한 계획이야.”라는 대답처럼 들렸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한마디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낯선 도시들, 아직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삶으로 나를 데려갈 줄은 모른 채, 나는 그저 들은 만큼 걸었고 한 걸음이 다음 한 걸음으로 이어지며 그렇게 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길 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