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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kEOIv-P20I?si=2USr3jFqPTe_yKaF
[설교 구조]
1. 도입: 우리 삶에 찾아오는 존재론적 멀미, ‘울렁증’
o 어린이집 문 앞의 은우, 청춘과 황혼의 두려움.
o 초등학교 시절 연설대회 연단 위의 떨림.
2. 전개 1: 인생의 낯선 바다에서 만난 배멀미의 기억
o 섬 소년 시절, 아버지의 노젓는 배 위에서 겪은 생생한 배멀미.
o 멀미는 틀린 것이 아니라, 배가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3. 전개 2: 예수님이 던지신 스칸달론(걸림돌)과 새 가죽부대
o 사마리아인의 비유: 당대 종교인들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키신 예수님.
o 우리가 만든 ‘교리의 예수’를 깨뜨리고 만나는 본질: 진실과 자비.
4. 전개 3: 58세의 청춘, 닻을 내리는 거룩한 루틴
o 과천 원더파크 그늘 아래서 헬라어 문법책을 펴는 담임목사의 고백.
o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는 법: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다!”
5. 결론: 청년으로 살아갈 우리를 향한 초대
o 종교의 외피를 넘어 포용과 연대로 세상의 강도 만난 자들에게 나아가기.
o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설교안 전문 (Sermon Manuscript)
1. 도입: 우리 삶에 찾아오는 존재론적 멀미, ‘울렁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최근에 언제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거나 두려움을 느끼셨습니까?
얼마 전 저는 우리 어린이집의 은우가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엄마 손을 놓고 들어가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앙증맞은 그 뒷모습 속에 낯선 세상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과 울렁증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비단 어린아이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청춘들도, 인생의 커튼이 서서히 내려오는 황혼을 맞이한 어르신들도,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영혼의 울렁증을 겪습니다.
저에게도 평생 잊히지 않는 울렁증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6·25 기념 연설대회 주자로 뽑혀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연단 위에 섰습니다. 선생님이 써 주신 원고를 들고 섰는데,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리고 어지러운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내려왔는지 전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도전 앞에서 두려워하고 흔들리는 ‘울렁증’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2. 전개 1: 인생의 낯선 바다에서 만난 배멀미의 기억
저는 어린 시절 섬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습니다. 우리 배는 요란한 엔진도 없는, 오직 아버지의 힘으로 노를 저어 가던 작은 나무배였습니다. 마침 바다에는 잔잔한 파도가 아니라 ‘놀’이 치고 있었고, 배는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배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그 특유의 냄새와 갯비린내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속이 뒤집어지고 땅이 흔들리는 어지러움 속에 저는 아버지께 “제발 뭍에 내려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멀미를 보시며 고심하시다가, 결국 일찍 낚싯줄을 거두시고 뱃머리를 돌려 귀가하셨습니다. 그날의 생생한 배멀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몸의 세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뱃멀미는 왜 일어날까요? 몸이 틀렸거나 배가 고장 나서가 아닙니다. 단단한 콘크리트 땅을 떠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라는 새로운 세계 위로 배가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직한 반응입니다. 뭍에 가만히 묶여 있는 배는 결코 멀미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익숙했던 종교적인 안주함, 율법주의적인 편안함을 떠나 하나님의 거대한 진리의 바다로 깊이 나아가려 할 때, 우리의 영혼에는 필연적으로 어지러움증과 울렁증이 찾아옵니다. “내가 지금 잘 믿고 있는 걸까? 이 길이 맞는 걸까?” 하는 거룩한 멀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3. 전개 2: 예수님이 던지신 스칸달론(걸림돌)과 새 가죽부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당대 종교인들에게 거대한 영적 멀미를 선물하십니다. 바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평생 정죄하고 배제해야 마땅한 ‘가장 혐오스러운 배교자’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적 정통성과 율법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충격적이게도 강도 만난 자를 지나친 종교 주류들을 고발하시고, 그들이 혐오하던 사마리아인을 ‘영생을 얻을 자, 하나님의 뜻을 행한 참된 이웃’의 모델로 세우십니다.
이것은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스칸달론’, 즉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적 고정관념을 적당히 리모델링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완전히 찢으시고,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짜시는 ‘패러다임의 전복’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위험한 함정에 빠집니다. 예수님의 날것 그대로의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내가 믿기 편한 방식, 우리 교단의 전통, 내가 공부한 신학이라는 단단한 교리의 성벽을 쌓아두고 그 안에 예수를 가두어 버립니다. ‘내가 조각한 예수’를 믿으면서 그것이 정답이라며 성벽 바깥의 사람들을 정죄하고 배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을 통해 보여주신 성경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종교의 이름이나 교리의 정통성이 아니라, 바로 ‘진실과 자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에게 “네 교리가 얼마나 정확하냐”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방향은 언제나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포용과 연대, 그리고 자비였습니다.
4. 전개 3: 58세의 청춘, 닻을 내리는 거룩한 루틴
이 본질을 마주할 때 저에게도 깊은 울렁증이 찾아왔습니다. 40년 가까이 목회자로 살며 제가 만든 신학적 틀, 교회의 울타리가 곧 신앙의 전부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신앙은 학교와 같아서 언젠가는 ‘졸업’하고 진짜 세상으로 ‘입학’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작년에 10년 넘게 사역하던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 차량 기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핸들을 잡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이제야 우물 밖에서 있구나. 여기가 바로 하나님이 충만하게 활동하시는 지성소구나.”
교회 밖에서 읽는 성경은 안에서 읽을 때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스치는 사람들,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이 모두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 역할을 하는 제사장들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도 저는 과천 원더파크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39년 전 대학 시절에 보던 헬라어 문법책을 폈습니다. 58세의 나이에 다시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옮깁니다. 이것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닙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1세기 성경 저자들이 만났던 그 ‘진짜 예수’의 숨결을 원어로 대면하며 제 영혼의 닻을 단단히 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늘 아래서 저는 제 평생의 다짐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다!”
5. 결론: 청년으로 살아갈 우리를 향한 초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이란 주민등록증에 적힌 숫자가 아닙니다. 내 신앙이 낡은 교리의 요새에 갇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더 이상 타인을 향해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이미 노쇠한 것입니다. 반대로 날마다 진리 앞에 정직하게 흔들리고, 울렁증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삶, 더 훌륭한 예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을 견디며 배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청춘입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울렁증이 찾아와도, 때로는 그것이 약간 귀찮고 두려울지라도, 저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청년으로 살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교리의 성벽 뒤에 숨어 세상을 정죄하는 우리를 향해 성벽 문을 열고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종교의 외피를 다른 이름으로 가졌을지라도, 이 땅에서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만민을 구도자로 바라보며, 포용하고 연대하라고 하십니다.
거짓 위에 세워진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인생은 번성할 수 없습니다. 더 나은 인생, 진짜 하나님 나라는 ‘진실과 자비의 길’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오늘 여러분의 ‘지금’은 어떤 시간입니까? 낙심과 두려움의 자리입니까? 아닙니다. 진실과 자비로 빚어지는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예수께서 비유의 끝에 던지신 그 서슬 퍼런 명령을 가슴에 품읍시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교리에 갇힌 박제된 신앙을 깨뜨리고, 오늘 이 순간 내게 주신 삶의 바다에서 기꺼이 영적 멀미를 견디며 진실과 자비의 노를 저어 가는 참된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를 위한 묵상글
https://cafe.daum.net/Wellspring/WJjL/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