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고대국어 갑골문자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아비
庸 떳떳할 용
켜다, 혀다, 그만그만/고만고만하다, 그저, 고만, 그만
庸의 전문
庚의 갑골문
庚의 갑골문
庚의 금문 庚의 전문
左의 갑골문 左의 금문 左의 전문
右의 갑골문 右의 금문 右의 전문
庸의 전문 자형은 庚과 用의 합자입니다. 庚의 갑골문 및 금문은 丫(가장귀 아)[①]의 좌우로 일정한 단위로 재는 모양이 좌우로 대칭되게 있으며, 전문에서는 左[②]와 右[③]로 변경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로로 켜서 좌우로 똑같이 나누고 있는 모양’으로 배달말의 ‘켜다(/나무를 세로로 톱질하여 쪼개다)’를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여기서의 用은 현대국어에서는 ‘쓰다’로 발화되지만, 상고대 국어에서는 ‘켜다’에 가까운 ‘혀다’로 발화되었기에[추정] ‘켜다’로 쓰인 것입니다. 실제로 ‘혀다’는 ‘켜다’의 옛말이며, 특히나 평북지역에서는 여전히 ‘혀다’로 소리냅니다.
따라서 즉 庚과 用은 모두 ‘켜다’의 소릿값을 나타내며, 庚이 세로로 갈라서 좌우로 켜는 것이라면 用은 한 켜씩 쌓아올림을 나타냅니다. 이 두 ‘켜다’로 드러내고자 하는 뜻은 ‘비슷비슷하다’의 어감으로 ‘그만그만하다/고만고만하다’입니다. 이 ‘그만그만/고만고만’으로부터 ‘그만, 고만, 그저’ 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子婦未孝未敬 勿庸疾怨 姑敎之. 『禮記』
아들이나 며느리가 효도도 않고 공경도 않으면 미워하고 원망에 켜지/쓰지 말고 잠시 가르칠 것이다.
상기 문장의 庸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다’, 즉 用과 같은 뜻으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쓰다’의 형태상 사동형인 ‘쓰이다(/[방언] 물이나 술 따위가 자꾸 먹고 싶어지다)’의 뜻이며, 이 경우는 ‘사용(使用)하다’의 ‘쓰다’와는 의미가 사뭇 다른 것입니다. 또 ‘켜다’로도 풀이가 가능한데, 여기서의 ‘켜다’는 ‘갈증이 나서 물을 자꾸 마시다’입니다. 즉, ‘쓰다’나 ‘켜다’는 배달말에서 같은 뜻입니다. ‘켜다’는 강원, 경상, 전라, 충청, 함남, 황해 등 적지 않은 지역에서 ‘써다’로 발화되고 있습니다.
登庸(등용)은 현재 사전적으로는 登用(등용)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는 각기 다른 뜻으로 用이 일반적인 의미의 ‘쓰다’인 반면, 庸은 ‘혀다(/[옛말] 이끌다. 당기다)’로 ‘登庸’은 ‘올리고 당기다’가 됩니다.
功用(공용 ; 공을 들인 보람이나 효과)은 ‘공(功)의 효용(效用)’인 반면, 功庸(공용 ; 노력과 수고를 들여 이루어 낸 일의 결과)은 ‘공(功)이 켜지다’로 ‘공이 밝혀지다’의 뜻입니다.
予是仙人之後 累世爲王. 今地方至小, 不可分爲兩君. 造國日淺, 爲我附庸可乎. 『地理志·平壤府』
내가 바로 선인(仙人)의 후손이라, 여러 대로 왕이 되었다. 지금은 땅이 바야흐로 작아졌음에 나누어서 두 임금은 불가하다. 나라를 이룬지도 얼마 안 되니 나에게 붙은 켜가 됨이 가하겠다.
古者國有附庸, 邑有十室之邑, 不必竝合. 『世宗實錄 17年 7月 22日』
옛날에 나라에는 부용(附庸)이 있었고 읍에는 십실(十室)의 읍이 있었으므로 병합(竝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상기 두 문장의 附庸(부용)은 사전적으로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의탁해서 지내는 일/독립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附는 ‘붙다’의 뜻이며, 庸은 ‘켜(/포개어진 물건의 하나하나의 층)’를 나타내어, 附庸은 ‘붙은 켜’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로부터 행정단위 중 ‘정상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크기[붙은 켜]’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太祖割達濟時之量, 仁厚好生之德, 出於天性, 勳庸燀赫, 愈益謙恭. 『太祖實錄 總序 70』
태조의 활달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도량, 인후(仁厚)한 호생(好生)의 덕은 천성(天性)에서 나왔으므로, 공훈(功勳)이 그저 튀고 빛났지만, 더욱더 겸손하고 공손하였다.
상기 문장에서 勳庸을 현재의 국역(國譯)에는 ‘크게 빛났으나’라고 의역도 오역도 아닌 문맥 맞추기 식의 풀이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庸이 실제 뜻하는 바는 ‘그저(/변함없이/어쨌든지 무조건)’입니다.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禮記』
군자는 알맞고 그저 그만하며, 소인은 알맞게 그저 그만함을 뒤집는다. 군자의 중용이야 군자로서 시의(時宜)에 적중(的中)하며, 소인의 중용이야 소인으로서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상기 中庸(중용)은 사전적으로는 ‘(1)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2)재능이 보통임. 또는 그런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으며, 한(漢)나라 이후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 없이 많은 현학들이 구구절절한 뜻들로 풀이하여 이른바 ‘중용학(中庸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 이르러 있습니다.
하지만 ‘글자’라는 것이 생겨날 때, 아예 처음부터 심오하고 광대무변한 철학을 문자에 담아 시각화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문자도 없는 사람들이 암호를 먼저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문자란 어디까지나 사람들 입말의 소릿값을 담아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中庸에서 中은 ‘맞다’의 뜻입니다, 다음의 ‘時中[시중 ; 시의에 적중함]’의 中에서 그 쓰임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庸은 ‘그저’의 뜻으로 ‘변함없이 이제까지’를 나타냅니다. 庸의 배달말 ‘그저’가 가지는 다양한 뜻 중에서 中으로 그 한 가지를 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대다수의 성어(成語)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여 상기의 문장의 中庸에서 中 자를 빼고 써도 같은 뜻이 됩니다.
중국인들에게 이 中庸(중용)에 대한 뜻풀이가 구구절절한 것은 ‘고대배달말’을 자기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며, 한국에서 中庸(중용)의 뜻풀이가 구구절절한 것은 ‘고대국어(古代國語)’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알맞게 그저’라는 그저 그만한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알맞게 그저 그만하다’에 무슨 심오하고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말일 뿐입니다.
현대국어에서 ‘그저 그만하다’는 관용구로 ‘그만저만하다’는 뜻도 있으며, ‘더 말할 나위 없이 좋다[/그저 그만이다]’의 뜻도 있습니다. ‘中庸’이 나타내는 두 가지 뜻과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凡庸(범용 ;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함 ; 범범하고 그저 그만하다), 庸工(용공 ; 재주나 기술이 변변하지 못한 장인 ; 그저 그만한 품), 庸君(용군 ; 어리석고 변변하지 못한 임금 ; 그저 그만한 임금), 庸劣(용렬 ;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 ; 그저 그만하고 못나다), 庸常(용상 ; 중요하게 여길 만하지 아니하고 예사롭다 ; 그저 그만하고 늘 있다), 庸言(용언 ; 일상에서 쓰는 말 ; 그저 그만한 말), 庸品(용품 ; 품질이 낮은 물건 ; 그저 그만한 물품) 등등의 성어들에서 庸이 ‘그저 그만하다’의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庸敬在兄 斯須之敬在鄕人. 『孟子』
그저(/변함없이 이제까지) 공경은 형에게 있으며, 잠깐의 공경은 향인(鄕人)에게 있다.
大叔使其除徒執用以立 而無庸毁 曰子産過女 而問何故不毁 乃曰不忍廟也 諾將毁矣. 『左氏傳』
대숙(大叔)이 그 섬돌의 무리들로 하여금 켜를 잡고서는 서 있게 하며 그저(/어쨌든지 무조건) 헐어냄이 없도록 하며 ‘자산(子産)이 너희들을 지나가며 무슨 이유로 헐지 않는가를 묻는다면 사당이라 차마 못한다고 하고는 허락해 주신다면 장치 헐겠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庶尹允諧 帝庸作歌. 『尙書』
여러 장관들이 진실로 화합하자 임금은 그저(/특별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상기 문장들에 사용된 庸을 기존의 문법에서는 ‘항상, 늘, 즉시, 어찌, 아마도’등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고대배달말에 대한 중국어식의 풀이를 현대국어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뜻하는 바는 ‘그저’입니다.
庸의 본 소릿값은 ‘켜/혀’입니다. 현대국어에서 ‘그저’는 ‘켜/혀’와 완전히 분화된 소릿값을 나타내지만, 북한말에서 ‘그저’는 [크저/커저]로 발화됩니다. 이 두 음절(音節)의 합음(合音)이 ‘켜’입니다.
傭 품팔 용
사람의 켜, 품 팔다, 키이다
傭의 전문
傭의 전문 자형은 人과 庸의 합자이며, 庸의 ‘켜(/포개어진 물건의 하나하나의 층)’에서 구분자 人으로 ‘(/한)사람의 켜[일정한 단위]’라는 것에서 ‘품(/윗옷의 겨드랑이 밑의 가슴과 등을 두르는 부분의 넓이)’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 ‘품’에서 동음이의어 ‘품(/삯을 받고 하는 일)’로 다시 人으로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의 뜻을 나타냅니다.
雇用(고용)은 ‘삯을 주고 사람을 부림’의 뜻이며, 雇傭(고용)은 ‘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해 줌’의 뜻으로 분화되어 사용됩니다. 또 私用(사용)은 ‘사사로이 씀’의 뜻이며, 私傭(사용)은 ‘사사로운 고용[품 팔다]’의 뜻입니다. 常用(상용)은 ‘늘 쓰다’의 뜻이며, 常傭(상용)은 ‘항상 고용되다[품 팔다]’의 뜻입니다.
傭兵(용병 ; 지원한 사람에게 봉급을 주어 병력에 복무하게 함), 日傭(일용 ; 날삯을 받고 파는 품), 傭員(용원 ; 관청에서 임시로 채용한 사람) 등의 성어에서 傭은 사전적으로 ‘임시로, 일시적으로’로 정의되어 있는데, 이는 傭에 직접 그런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날)품팔이’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昊天不傭 降此鞠訩, 昊天不惠 降此大戾. 『詩經』
하늘이 키이지 않아, 이 짜이고 궁한 흉을 내리는가! 하늘이 은혜롭지 않아 이 크게 어그러짐을 내리는가!
상기 구절의 傭은 기존에는 ‘고르다, 공정(公正)하다’ 등으로 풀이합니다. 설문(說文)에 傭 자를 ‘均也 直也[고르고 곧은 것이다]’라고 설명한 것에 따른 것으로, 이는 庸의 ‘켜다’에서 ‘켜’, 즉 ‘낱낱의 일정한 덩이’에 대한 중국어식 풀이에 지나지 않으며, 傭이 실제 뜻하는 바는 ‘켜’에서 ‘키이다(/[북한어]마음에 들거나 내키다)’입니다.
心平愉, 則色不及傭而可以養目, 聲不及傭而可以養耳, 『荀子』
마음이 평화롭고 즐거우면 곧 색이 키임에 미치지 않더라도 눈에 길러낼 수 있으며, 소리가 키임에 미치지 않더라도 귀에 길러낼 수 있다.
상기 문장의 傭을 사전적으로는 ‘쓰다[書], 짓다[作]’나, 혹은 庸으로 보아, ‘보통’ 등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키이다’입니다.
慵 게으를 용
마음을 켜다/개다, 게으르다
慵의 전문
慵의 전문 자형은 心과 庸의 합자이며, 庸이 ‘켜다(/팔다리나 네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펴다)’로 쓰여, ‘마음을 켜다’에서 ‘게으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慵惰(용타 ; 버릇이 없고 게으름), 慵懶(용라 ; 버릇이 없고 게으름), 疎慵(소용 ; 느리고 게으르다) 등에서 慵이 ‘게으르다’의 뜻입니다.
慵吏南陽府使蔡申保黜之. 『성종실록 15년 5월 3일』
게으른 관리 남양(南陽) 부사(府使) 채신보(蔡申保)를 적발하여 쫓아낸 것이다.
상기 문장의 慵吏는 ‘게으른 관리’의 뜻입니다.
墉 담 용
켜켜로 쌓은 벽체
墉의 갑골문(鄘과 통용, 郭과 동자)
墉의 전문
墉의 갑골문은 郭이 가차된 것입니다. (1), (2), (3) 자형은 高를 아래위로 선대칭 시킨 형태이며, (4) 자형은 상하좌우로 선대칭 시킨 모양입니다. 高는 배달말의 ‘괴다(/의식이나 잔칫상에 쓰는 음식이나 장작, 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의 소릿값을 나타내는데, 이 ‘굄’이 ‘켜켜로(/여러 켜를 이루어) 쌓다’와 의미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墉의 전문 자형은 土와 庸의 합자인데, 土는 배달말의 ‘돋다/솟다’의 소릿값을 나타내어, 庸의 ‘켜’와 더하여, ‘켜를 돋우어 올리다’로 ‘담’을 만드는 방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鄘 나라이름 용
켜가 진 들녘
鄘의 금문 鄘의 전문
鄘의 금문 자형은 墉의 갑골문 자형 (1), (2), (3), 즉 郭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전문 자형은 庸과 邑의 합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갑골문과 금문이 ‘켜켜로 쌓다’와 ‘나라이름’의 중의 성을 전문의 邑으로 구분시키고 있으며, 庸의 ‘켜’에서 지형이 ‘켜가 진 땅’, 즉 ‘계단식 지형’이 많은 지역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鏞 쇠북 용
켜가 진 종
鏞의 전문
鏞의 전문 자형은 金과 庸의 합자이며, 金으로 그 재질을 나타내고 庸의 ‘켜’로 그 종의 모양을 형용하고 있습니다.
종은 일반적으로 주물로 제작되는데,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큰 종을 도자기 만들 때처럼 쇠를 켜켜이 쌓아서 물레에 돌려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외부의 문양이나 전체적인 형태가 ‘켜가 진 모양’이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鱅 전어 용
켜가 진 물고기
鱅의 전문
鱅의 전문 자형은 魚와 庸의 합자이며, 庸의 ‘켜’에서 ‘켜가 진 물고기’로, 전어(錢魚)의 배 쪽은 밝고 등 부분은 짙은 색으로 확연히 구분되며, 몸 전체에 켜켜로 난 줄무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동식물 명칭이나 지명 등과 같은 고유명사의 경우에는 원래의 소릿값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대 국어에서의 ‘전어(錢魚)’에 보이는 ‘錢(돈 전)’은 전광어, 전갱이, 전이 등과 같은 우리말의 소릿값에 가까운 한자음을 붙였거나, 전어를 강원도 및 일부지역에서는 ‘새(/쇠)갈치’라고도 하는데, 여기서의 ‘새(/쇠)’를 錢(돈 전)에 붙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 키(/몸의 길이)와 키(/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의 어원(語源)은 ‘켜다’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담용이 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