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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합당한 삶이 없으면 이름뿐인 죽은 믿음입니다. / 2023년 6월 4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요한계시록 3:1-6
우리나라는 음주운전에 대해 너무 관대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나라여서 그런지 말입니다. 음주운전 사고로 정말 안타깝게 희생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때같은 어린 자식을 잃고, 가장을 잃고, 남편을 잃고, 부모를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세종에서 한 공무원이 음주운전으로 신호대기 하던 승합차를 뒤에서 충돌하여 한 명이 사망하고 일가족 6명이 다쳤습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가족도 중학생 아들이 후유증에 시달리며 사고 이후로 집 안에 웃음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법원에서는 1년 6개월을 구형하자 이 사람은 항소를 하였습니다. 형벌이 너무 무겁다고 말입니다. 항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반성문을 제출합니다. 이 사람도 반성문을 제출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편지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음주음전으로 한 사람이 죽고 일가족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고통을 주었는데도 1년 6개월 감옥살이 하는 것이 그렇게 무거운 형벌일까요? 그 사람은 뭘 잘 못했다고 반성문과 사과문을 그렇게 많이 쓴 것일까요?
이름뿐인 반성과 형식적인 사과가 아닙니까? 그저 자신의 불리하고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것일 뿐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 중에도 이름뿐인 회개와 형식뿐인 믿음이 왜 없겠습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데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시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중에 내 믿음은 살아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죽은 믿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처녀들도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도 지금 이 시대에 교회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인 겁니다.
그런데 신랑은 어두운 밤에 오기 때문에 반드시 밝은 등불을 밝히고 있어야 하는데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이미 등불이 꺼져버린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진 빈등을 들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을 그것을 영적으로 잠을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의 등불이 꺼진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도 구원을 소망하며 천국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돌아간다고 되는 구원이 아닙니다.
기름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 기름을 태우고 어둠을 밝히는 그 밝은 빛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에서 나오는 순종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드는 것이 믿음의 등불과 빛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가 없으면 아무리 잎이 무성해도 나쁜 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죽여 버린 것입니다. 순종 이 믿음의 열매가 없으면 찍어 불에 던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와 등불과 빛이 없는 믿음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그 죽은 믿음이 네 영혼을 구원하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왜 성경은 구원을 오직 은혜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순종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까? 은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자, 받을 자격이 없는 자, 불가능한 자에게 거저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한 것이 있다면 징그럽고 역겹고 감당할 수 없는 죄만 죽어라 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그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는 교만한 자아숭배의 죄와 저주와 사망과 심판을 예수님이 다 자기 죄로 가져가셔서 나를 대신하여 치욕과 저주와 부끄러움과 심판을 받으신 것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인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회개이며 그 회개가 구원의 믿음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할 죄인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오직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회개한 그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절대로 나의 공로와 업적과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를 깨닫고 회개한 그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어떤 죄인인지, 어떤 길을 가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만날 때 일어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 회개를 통해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인생의 가치관과 방향과 삶의 목적이 변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자신을 즉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 믿음으로 가는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변화는 더디어도 결국은 십자가를 만나 회개한 그 믿음의 열매는 반드시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없으면 가짜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믿음은 진짜인지, 회개한 믿음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는 겁니다. 주님이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나도 알고 받았다고 하는 그것으로 되는 구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이 받았어도 그 은혜를 받고도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들은 은혜를 헛되이 받은 가짜들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회개한 그 믿음은 나도 주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즉 자아숭배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주님만 나를 위해 죽는 게 아니라 나도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그 주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 진짜 회개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 회개를 했느냐는 겁니다. 믿음으로 회개를 하지 않으면 증거가 있습니다. 열매 즉 순종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가 없습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이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 마음에서는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신이 편한 데로 믿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할 만한 것은 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십자가에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회개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데 교회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 하였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데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 기도, 헌금, 구제입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열심과 행위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려고 합니다. 어떻게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회개하지 않고 합의금을 주고 사과문을 매일 써서 보낸다고 그 상처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풀립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는 죽을 죄를 지었다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판사에게 엄한 벌을 내려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그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요즘 정말 흉악한 범죄들이 많은데 부모를 폭행하고 죽이는 범죄가 너무 많아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죽인 그 자식들도 하나같이 항소를 합니다. 겨우 육칠년 선고를 받아도 그 형벌이 너무 무겁다는 겁니다. 사형시켜 달라고 항소를 해야 회개한 것이 아닙니까? 이 시대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중에 정말 회개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대속과 은혜와 회개와 믿음을 말하지만 그러나 삶으로 살아내는 그 행위에는 회개에 합당한 온전한 열매와 순종과 행위는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자들을 보시고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내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내 이웃을 어떻게든 사랑해보려고 합니까? 무슨 일을 만나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구합니까? 내가 원치 않아도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는 뜻에 순종합니까? 자기 마음대로 믿는 겁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 마음과 영으로 회개하지 않고 그 지식으로 알고 있는 진리와 그 육체로 내놓은 종교적인 행위를 의지하며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과 영으로 자신의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회개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구원을 받는 그 회개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겁니다. 목사들은 성도들의 머릿수와 돈에 환장했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이 성도들 중에 구원받은 자가 얼마나 되는지, 몇 사람이나 구원 받을 것인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성도들도 만찬가지입니다. 목사가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말한 하면 그만입니다.
한 어머니가 기도원에 올라와 목사님께 아주 애절하게 묻는 겁니다. 지난달에 서른두 살 먹은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제가 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끌고 교회에 갔습니다. 우리 아들 천국에 갔겠나요? 제 소원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가서 제 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 아들 천국에 가겠나요? 이 어머니도 아들이 천국에 갔는지 못 갔는지 너무 모호한 것입니다.
정말 그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둔 그 아들을 끌고 교회에 간 것입니다. 싫다는 아들의 손을 잡고 천국에 보내려고 끌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정말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와 십자가를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도 가끔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봅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는 짜증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 귀한 시간에 그 귀한 자리에서 저런 말을 왜 할까? 겨우 저런 쓸데없는 소리를 들으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이 불쌍한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만나서 말입니다. 믿음으로 그 회개를 했느냐는 겁니다. 내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삶을 말씀으로 비춰보며 내 삶이 회개에 합당한 삶인지 아닌지 시험하고 확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내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내 인생의 소원은 죽어도 내 영혼의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 외에는 없습니까? 교회에서 정말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자기 목숨을 걸고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걸고 구원을 받기 원하는 성도들은 별로 없습니다.
천국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에 감추인 보화를 사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내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에 타락한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을 섬기던 그 죄악을 다 팔아버렸습니까? 일부분을, 어지간히 팔아버린 성도들은 많아도 단호하게 죄악을 팔아버리고 온전하게 회개하고 자기 마음과 목숨과 뜻을 전부 다 주님께 드린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온전히 믿지는 않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며 구원을 받지 못하는 넓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넓은 길에서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요즘에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천국은, 구원은, 믿음은 내 생명과 목숨을 거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내 목숨을 걸겠다는 분이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내가 그렇게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내 생명을 걸고 이 믿음의 길을 가겠다는 분이 있습니까? 회개하시겠습니까?
제가 최근에 우리는 얼마나 구원을 받았고 이 시대의 성도들을 얼마나 구원을 받는지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의 실상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에게 알려주시고 제가 그것을 말한다면 과연 회개를 할 것인가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에 대하여 말하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며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회개하지 않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그 다른 믿음 안에 갇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구원의 길인 십자가의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믿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렇게 믿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돌아가서 천국과 지옥과 심판에 대해 말한다면 믿을 것이라는 겁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게 된다면 회개할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얻은 결론은 사람들은 그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겁니다.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구원을 부정하는 사람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으로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할 것입니다. 자기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에 관하여 들을 때 말입니다.
내가 정말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였는지, 거듭났는지, 구원을 받았는지 십자가 앞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회개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회개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흰 옷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시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다는 것보다 큰 축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기회는 쏜살 같이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만날 때까지, 내가 누군지 알 때까지, 구원의 기쁨이 밀려오고, 새롭게 될 때까지, 새 삶이 나타날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의 믿음과 합당한 삶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회를 잃지 마시고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각오로 십자가를 의지하고 기도하고 회개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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