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뀜은 우리집 우물물에서 부터 시작된다.
김외순
벌써 결혼한지도 30년이 넘었다. 산다는 것이 어떨 때는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지도 오래건만 요즈음은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 칠 때가 있다.
올해는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다. 몇 년전만 해도 30도를 넘겼네 어쩌네 하던 여름 온도가 급기야는 36도가 기본인 날 들의 연속이었다. 덥다 더워를 연발 하면서도 대책 없는 더위에 물속으로 풍덩, 계곡으로 쪼르륵. 몸속의 화기만 살짝 빠질 뿐 더위에 우리몸은 무기력을 호소하곤 한다.
7월 마지막 주, 물놀이를 다녀왔다. 신나게 놀고 빨래감은 한 가득 . 월요일 아침, 그 많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렸다. 쏴아아 물 받는 경쾌한 소리가 참 좋다. 조금 후 삐삐삑 세탁기가 멈추어 버렸다. 다시 가서 돌려보아도 움직이지 못하고 '나 지금 너무 아파요' 울고 있는 세탁기. 할 수 없이 세탁기 안에 빨래를 끄집어 냈다. 와! 세탁기도 힘들었겠구나. 진짜 많은 빨래감이 물까지 먹어 꺼내는 것도 힘이 든다. 에이에스에 전화를 걸었다. 통돌이 바닥에 있는 부속이 망가졌는데 모델이 오래 되어서 수리하는데 20 만원이 든단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마음은 빨리 가서 세탁기를 데려 오고 싶지만 오늘 빨래부터 처리해야 하지 않는가? 우물로 가져갔다.' 더위는 극성인데 이게 뭐람' 투덜거리면서 우물물을 한 바가지 퍼 올렸다 . '와! 시원하다' 한 바가지 퍼 올릴 때마다 시원함이 더해져 흐르는 땀방울도 기분 좋게 한다. 그렇게 빨래를 하면서 몸속에 있는 더위도 한꺼풀 벗겨내고 있다보니, 어느새 세탁기란 존재도 잊은 채 나의 아침 일과를 즐기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처서가 지났다. 이젠 그 무덥던 더위가 살짝꿍 비켜지고 있다. 낮에 더위는 애교로 봐 주고, 저녁 내내 돌아가던 에어컨 소리도 잠잠해지고, 나의 첫 일과인 빨래를 들고 우물로 갔다. 어제 퍼 올렸던 우물물은 차갑다는 생각이 든다. 그 차가운 물에 애벌빨래를 해 두고, 텃밭에서 고추, 가지, 호박을 따서 아침 된장국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우물물로 왔다. 한 바가지 퍼 올린 우물물은 따뜻하다.
아! 계절이 바뀌었구나. 어느새 가을인 가보다. 계절의 바뀜은 우리 집 우물물에서 시작하는 모양이다. 따뜻한 우물에 비눗로 빨래를 시작하면서 지난 한 달을 생각해 본다. 비가 와서 하루라도 빨지 않으면 빨래통이 가득 차 버렸던 나 껍데기들. 그 껍데기를 닦으면서 나의 내면의 아픔도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구나. 최근 그냥 웃어 넘겨도 되는 일에 마음을 크게 다쳤다. 나는 왜 웃지 못하고 배신이라 생각할까?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나는 그 그룹에서 제거하고 싶은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서로 맞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힘들 바에는 어느 한 쪽이 나가는 게 맞다. 단지 그 사람이 나라는 게 싫을 뿐이다.
우물물의 따뜻함이 나를 감싼다. 그래 계절이 바뀌 듯 내 마음도 서서히 상처가 치유되겠지.
오늘 하루도 따뜻함을 가슴에 안고 아침 일과를 시작한다.
(2023. 8. 26일 아침에)
나무도 귀가 있다
김외순
작년(2022년) 8월부터 집 짓기에 들어갔다. 11월 중순경에 집이 완성되고 나무를 좋아하는 남편은 파 놓은 구덩이마다 심을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뒤꼍에는 소나무를 심기로 하고, 문 앞에는 금목서를 심고, 가운데는 은목서를 심기로 최종 결정을 했다. 은목서는 동네 언니네에서 흔쾌히 한 나무 가져다 심으라고 해서 감사히 잘 파와서 심었다. 다음에는 소나무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봤지만, 마음에 들면 부르는 값이 터무니가 없고 그런다고 아는 지인이 가져가라고 하는 것은 또 눈에 차지가 않았다. 할 수없이 동네에서 그나마 좀 키워놓은 관리가 되지 않는 소나무를 조금 돈을 지불하고 가져오기로 하였다. 10년은 넘었다고 하는데 제법 밑둥이 퉁겁다. 남편은 하루 종일 소나무와 씨름을 했다. 파고 또 파고. 더위에 지쳐 보여 맥주도 한잔하면서.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좀 파주고, 옆에 있던 언니들은 안주 삼아 너무 많이 팠네, 좀 적게 파라등 훈수를 두고 있었다. 마지막 뚝 하고 분리가 되었다. 가지고 와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그냥 두고 오늘은 철수하기로 했다.
다음 날 , 남편이 포크레인 하는 친구를 불렀다. 포크레인으로 떠서 집으로 들고 왔는데, 이번에는 주차장에 걸려서 제 자리를 들어가지 못하고 주차장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포크레인 친구는 다시 지게차를 가지고 와서 밀어 제 자리에 앉혔다.
어찌어찌 제자리에 두었는데 밑둥이 너무 커서 그만큼 구덩이를 또 파야 하는 상황.
지칠때로 지쳐버린 남편과 남편 친구.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래 조금만 파서 꼬리만 넣어 보라고 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데" 남편은 대책 없다는 듯한숨을 푹 쉬면서도 자기가 가져오자고 한 것이라 더 이상 말이 없다. 나는 "밑둥만 흙에 닿아 있으면 땅심을 받을 것이고, 제만 앉아도 원체 크게 떴으니 그냥 둬도 살겠그만. 그 다음에 테두리를 벽돌로 싸고 흙으로 채우면 되지" 그렇게 소나무는 자리를 잡았다. 그 다음 날부터 남편은 소나무 전지 동영상을 보면서 배우기 시작하더니 소나무는 점점 멋진 작품이 되어갔다. 마지막 한 구덩이는 금목서를 심자고 했는데 1월에는 금목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운동 갔다 오면서 본 금송을 심자고 해서 한 그루 사서 와서 심었다. 금송은 대문자리 앞에서 잘 크고 있었다. 다들 상록수들이라 겨울을 기대하며 잘 크기를 고대하였다. 동네 어른들도 다니면서 나무를 잘 심었다고 이쁘다고들 하고 나 역시 뿌듯했다.
4월쯤 동네 어른이 지나가다 내가 보이니까 한 말씀 하신다
"저 금송 온야에서 가져 왔제?"
"네. 떡집 뒤쪽에 나무공장 뒤에서요"
"그게 나가 심은거라 알제"
"그래요. 또 언제 이런것도 심으러 다녔대요?"
"긍깨 그게 나무주인이 죽었어"
"네?"
"올래는 주고 성이 주인인디 성은 죽고 동생이 안 팔아 묵는가. 긍깨 저건 죽은 나무지"
기분이 얹찮은데 그냥 보냈다. 며칠 후 금송은 힘이 없다. 물을 줘도 시들한 기미가 보이더니 음지식물이 무더운 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나무잎이 누런 색으로 변하더니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아직은 그 자리에 있지만 조만간 다른 나무로 교체 해야 할 상황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 눈치라는 것을 보는데 나무에 생명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이 죽었다는 말에 귀가 있는 나무는 자기도 주인을 따라 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