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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사무엘하 2장 1-11절
제 목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2]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충성하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작은 일에 자신을 희생해서 충성하는 사람은 구멍 난 댐을 막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댐을 세우는 큰 일을 맡겨도 책임감 있게 묵묵히 해 낼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반드시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세상이든 교회이든 그 안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발생한다는 것은 그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만약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희생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조직은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곳에서든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믿음으로 잘 이어져 있는 성도는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분의 뜻을 따라 행동합니다.해결할 수 없는 일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충성들이 모여서 큰 충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우리는 드러나는 곳에서 충성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작은 충성들이 모여서 영혼을 구원하는 큰 헌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큰 것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이 먼저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7절에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열고을 다스리는 권세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서 길을 떠나며 열명의 종들에게 한므나씩을 주면서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종들은 귀인의 명령대로 받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손해나는 장사를 해서 한므나를 잃으면 안 된다든지 반드시 열므나를 남겨야만 한다는 조건은 없었습니다.귀인이 내건 조건은 반드시 종들이 받은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제 돈은 주인의 손에서 떠났고 하인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제부터 장사를 하면서 어떻게 이익을 남길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순전히 종들의 몫이 된 것입니다.
종들은 각자 자기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계획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달란트가 있는지, 어떤 장사가 이문이 많이 남는지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장사를 시작했을 것입니다.귀인이 돌아왔을 때 일하는 과정에서 어떤 마음으로 행했는지 보고해야 합니다.귀인의 성품이 얼마를 남겼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귀인이 왕이 되어 돌아왔을 때 한 종은 귀인 앞에 나와서 돈을 내밀며 주의 한 므나로 열므나를 남겼다고 하면서 내 놓았습니다.또 한사람이 주의 한므나로 다섯므나를 남겼다고 내 놓자 열므나를 남긴 사람은 열고을을 다섯므나를 남긴 사람은 다섯고을을 상으로 주면서 다스릴 권세를 주었습니다.그러나 장사를 하지 않고 한므나를 수건에 싸두었다가 그대로 내어놓은 사람은 죽이고 말았습니다.그를 죽인 이유는 장사하라는 명령을 거역한 것은 왕을 멸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한므나를 받아 그대로 드렸다면 왕 입장에서 손해 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므나를 내어놓은 사람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왕이 원하는 것은 많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종들은 돈을 잃을지라도 장사를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바로 순종하는 모습을 왕에게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한 종은 장사하는 것도 귀찮고, 또 돈을 잃을까봐 두렵기도 해서 받은 돈을 그대로 드리면서 왕이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종이 순종을 하는지 거역하는지 그것을 본 것입니다.
명령하신 작은 일이 이렇게 축복이 될수도 저주가 될수도 있습니다.
교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고 있지만 자신이 판단했을 때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쉽게 생각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복을 받고 받지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날이고 믿음의 형제가 함께 예배로 영광을 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하지 않으면 주일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헌금 역시 드린 것보다 더 큰 물질을 받기를 원해서 헌금을 드린 사람과 받은 것이 감사해서 드리는 사람은 귀인의 말씀을 듣고 장사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조건없이 감사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는 한므나인 구원을 모든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구원을 가지고 어떻게 장사를 할지 여러분이 고민하셔야 합니다.
많이 남긴 종이 많은 상급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전도를 어떻게 해야만 칭찬을 받는 종이 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 구원을 받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와 계산하실 때 충성하지 않던 그의 삶을 책망하실 것입니다.한 므나를 싸 두었던 종처럼 처음부터 올바르지 않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도 헌신하지 않은 것입니다.충성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무엘하 2장을 보면 작은 일에 충성하는 다윗과 길르앗야베스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알렸던 아말렉소년은 작은 것에 욕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소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2장을 본다면 욕심을 버리고 말씀안에서 작은 일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1절에 다윗은 여호와께 유다로 올라가도 되겠느냐고 여쭈어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응답은 올라가도 좋다는 것입니다.지금 다윗이 유다로 올라가도 되겠느냐고 기도하는 것은 다윗의 신앙이 회복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무엘상 22장 5절에 선지자 갓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다윗에게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하지만 다윗은 사람을 보게 되자 이 말씀을 듣고도 사울을 피해 블레셋땅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인간의 생각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절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 불순종때문에 이스라엘과 전쟁해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권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가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은 곧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진 것이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그 분의 뜻을 전하는 말씀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유다땅으로 가도 되겠느냐고 묻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을 원하는 믿음이고, 자신의 모든 인생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자기가 결정해서 유다땅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갓선지자를 통해 유다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된 것이 없습니다.다만 다윗이 빨리 순종하지 않아서 블레셋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부인과 백성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은 것입니다.
겪지 않아도 될 전쟁과 고통과 두려움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좋은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시지만 곧바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시간을 허비하다가 그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네가 이것을 순종하면 내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그 말씀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난과 기쁨과 열매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이 다윗처럼 자신의 잘못으로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성숙한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고난인지 그 결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다윗을 괴롭히며 죽이려고 쫓아다녀도 유다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준비하신 땅입니다.
유다땅에 사울이라는 감당 못할 시험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올라갔다면 더 빨리 이스라엘왕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바늘 끝만큼 뚫려 있는 작은 구멍으로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면서도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을 합니다.내가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스스로 이루어 나가시며 명령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인간은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내 생각과 방법이 옳다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을 것입니다.
사울이 잘 훈련된 군사와 무기를 가지고 쫓아다니는 상황에서 그들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유다땅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다윗처럼 거역하지 말고 바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아내인 아히노암과 아비가일과 함께 했던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헤브론에 올라가 각 성읍에 살게 했습니다.그러자 유다사람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왕으로 삼고 섬겼습니다.나그네처럼 떠돌아다니던 다윗이 드디어 유다왕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49장 8절에 야곱이 유다에게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할 것이라고 한 말씀대로 다윗이 왕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지만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기 때문에 야곱의 축복이 850년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된 다윗은 목동으로 양을 치고 있을 때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를 찾았지만 사무엘조차 생각할 수 없는 어린 목동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었음을 알고 놀랐습니다.다윗은 이렇게 일찍 기름부음을 받고서도 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르셨지만 성숙하지 못한 그를 왕위에 앉힐 수 없어서 사울이라는 도구를 통해 연단하신 것입니다.
이제 유다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이 다윗에게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헤브론으로 올라가 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왕이 된다는 것은 사울처럼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권세를 가지고 백성을 노예로 삼아 호의호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같이 자신을 추종했던 사람들에게 성읍을 주어 안식을 누리게 하고, 그동안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을 찾아 은혜를 베풀며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4절 후반에 유다사람이 다윗에게 고하기를 사울을 장사한 사람이 길르앗 야베스사람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보고 아말렉소년은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했지만, 길르앗 야베스사람들은 그가 어떤 신앙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았든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기 때문에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주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다윗은 사자를 길르앗에 보내어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으라고 하면서 상을 내렸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다윗에게 상을 받기 위해서 사울의 시신을 거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사울에게 은혜를 입은 것을 갚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나님께서 세운 왕이기 때문에 끝까지 섬긴 것입니다.전에 암몬사람 나하스가 공격했을 때 두려운 마음에 나하스에게 살려준다고 언약을 해주면 그를 섬기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하지만 암몬 사람 나하스는 길르앗사람에게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언약을 하겠다고 모욕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이 신의 감동을 받아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며 자신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사울의 명령을 듣고 모인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이고 유다 사람이 삼만이었습니다.사울이 아니면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그 감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길르앗사람들이 사울이 죽어서 성벽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적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작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괴롭힌 사울임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고마워 상을 내린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아무리 자신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뜻을 어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공격하지 않았고 또 그가 죽자 그를 선대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사랑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사울과 왕자들을 거두어 장사 치렀다고 해도 아무도 감사를 표한다든지 칭찬하지 않습니다.하지만 묵묵히 일을 한 그들에게 왕이 상을 준 것입니다.
성도들도 상을 바라고 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을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충성이라고 하시며 준비한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상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지만, 그런 자녀들이 대견해서 상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길르앗야베스사람과 아말렉소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삶도 죽음도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구원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성도들은 지체가 됩니다.성도들은 모두 달란트에 따라서 하는 일이 다릅니다.
이처럼 교회안에서는 모두 하는 일이 달라야 하지만 반드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일만 하려고 하면 교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손이 하는 일을 발이 대신 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를 뿐이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똑같습니다.손이 얼굴을 씻겨 주었다고 해서 발이 그것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눈은 보아야만 머리가 내린 명령에 순종한 것이고, 귀는 들어야 순종한 것입니다.
모두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 움직여야만 정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손이 먼저 옷을 입혀주고 씻겨줘야만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발이 옷도 입기 전에 세수도 하기 전에 무조건 밖으로 나가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옷을 왜 입어야 하는지, 세수를 왜 먼저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순서대로 해야 합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떤 것을 먼저 해야 성도들이 힘들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지 가르쳐야 합니다.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모두가 한 므나를 받은 종들처럼 순종하는 자세로 움직여야만 교회가 단단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과거에 사울에게 작은 은혜를 입었지만 갚으려고 노력하는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암몬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네 눈을 빼면 살려주겠다고 했을 때 그를 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사울이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온 지경에 두루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을 취하여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찾기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충성한 사람들을 모두 감싸 안았습니다.사울은 다윗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미워했지만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다윗은 사울처럼 질투하지 않았고 사울에게 충성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을 더욱 신뢰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포용하므로 사울에게 드렸던 충성을 자기에게 돌려 놓는 지혜로움을 보인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충성하던 우리들을 부르시고 그 충성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사단처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질투하며 성도들의 충성을 방해하지 않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잠언 24장 17-18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렵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모든 것을 판단하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원수라 할지라도 그 역시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영혼이기 때문에 내 원수라고 여러분이 그를 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아마도 사울에게 이렇게 충성된 사자였을 것입니다.
생명을 다해 사울에게 충성하는 이 사람들을 다윗은 미워하며 버리지 않고 자기의 백성으로 만든 것입니다.저와 여러분은 모두 세상에서 사울과 같은 사단에게 충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을 모두 하나님께 돌려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추수하는 날 흐르는 땀을 식혀줄 얼음 냉수와 같은 믿음의 자녀들입니까?
하나님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 놓고 여러분을 보내실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그런 믿음의 사람이 될 때 왕이 오시는 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생각지도 못한 귀한 상급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작은 일에 충성하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