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장동건-고소영의 결혼식이 세기의 결혼식으로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결혼식에는 너무나 많은 동료 연예인이 참석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만한 사람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이병헌, 정우성, 김남길 , 설경구, 안성기, 전인화, 안성기, 신승훈, 김민종, 이덕화, 임하룡, 박중훈, 오만석, 공형진, 현빈, 주진모, 김수로, 한재석, 안재욱, 차태현, 정준호, 송승헌, 소지섭, 이선균, 차승원, 김희애, 이정현, 가수 비, 손지창-오연수부부, 김승우-김남주부부, 권상우-손태영부부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특별히 이 기사에는 여배우들의 패션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결혼식에 참석한 여배우 신민아, 이혜영, 김남주, 김민희, 하지원, 김희애, 손태영, 고준희 등의 패션이 기사거리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이 결혼식에서는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사회를 맡았고, 결혼식 주례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께서 수고하셨다고 합니다.
축가는 가수 신승훈씨가 불렀고 양가 친지와 연예인 등 약 500명이 참석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세기의 결혼식인 만큼 국내외 많은 분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이름난 하객들이 참석하는 것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큰 잔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잔치가 어떤 잔치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젖을 떼는 날에 잔치를 했다는 것으로 보아 시기적으로 두 돌쯤 되는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낳은 아들이 커서 이제 젖을 떼는 것을 기념하며 많은 손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잔치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큰 잔치를 베풀어주실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잔치에 대해 요한계시록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 19:7~9절을 찾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입니다.9절 상반절까지만 읽겠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
나중에 우리는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아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의식을 어린 양의 혼인잔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잔치에는 우리 하나님의 초청, 우리 예수님의 청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잔치를 베푸시면서 항상 합당한 사람을 초청하십니다. 마치 결혼예식에 청첩장을 보내어 올 만한 사람을 초대하는 것처럼 우리가 천국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초청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의 젖뗀 기념일을 맞이하여 큰 잔치를 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잔치에도 분명 초대받은 사람과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며 우리가 잔치에 초대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 살펴보고 하나님의 잔치에 합당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가 자라야 합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젖을 떼고 밥을 먹일 수 있을 만큼 큰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을 키워보신 분은 3살,4살이 되어 말썽을 피우기 시작하면 이런 아이들을 괜히 낳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분은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앞에서 심한 말을 하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게 그럼 아이가 자라지 않고 계속 젖을 먹는 아이로 평생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모든 부모들은 그래도 아이들은 자라야된다고 말을 합니다.
아이들은 젖먹을 때가 있고 기어다니며 밥을 먹기 시작할 때가 있고 걸어다니며 간식까지 챙겨 먹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옹알이할 때가 있고 보이는 글자마다 무슨 글자인지 물어볼 때가 있고 스스로 글자를 읽을 때가 있고 글자를 쓰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핏줄이나 특별한 인종적인 혜택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어떤 의지 노력이 아니엇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일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 3장을 펴보십시오. 요한일서 3장 1절입니다.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서로 형제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면 우리를 몰라서 형제가 될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 예수님을 믿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이제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땅의 아버지... 이 땅의 부모의 소망은 아이가 바르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입니다. 간혹 부모님들중에 자녀들이 출세했으면 좋겠고 돈많이 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항상 1등만 하는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계시지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자녀들이 자라나지 않고 성장을 멈춘다면 그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의 제일의 관심사는 자녀들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여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의 영원한 부모가 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라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안에서 자라고 영혼과 육체가 은혜가운데 자라나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가 자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대가 절실하게 표현된 구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점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지식이 자라나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동의 삶이 되기까지 우리가 자라나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적으로는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철저하게 고행을 하고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철저하게 고행하고 수행을 한다고 해서 예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또한 사람이었고 그는 해탈을 해도 사람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와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예수님이 신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게 수행을 한다고 해도 인간이 신이 될 수 없기에 예수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되기까지 자라라는 말이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가 예수가 되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을 모방하며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수준까지 우리가 자라야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는 하나님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태어나 하나님안에서 자라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한 삶을 산 사람이 하나님의 천국잔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자라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만족하며 하나님의 귀여운 아기라는 것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세상에서도 나이가 들면 커가는 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성장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아기처럼 생활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한다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한 지 시간이 흘렀고 믿음을 가진 지 꽤 시간이 지났으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해합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야할 저와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고 믿음안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올바른 신앙가운데 성장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둘째로, 우리가 놀림을 당해서 안 되고 하나님의 자녀를 놀려서는 안 됩니다.
9절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라서 젖을 뗀 것을 보며 너무 기뻐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잔치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이삭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고 이삭을 위해 축복해주어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축하를 받아야할 대상이 놀림을 당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복형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린 것이었습니다.
이 놀림이 어떤 놀림이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귀여워서 꼬추를 만졌다든지....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 줬다 뺐었다하는 장난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말로 ‘멍청이’ ‘바보’ ‘심술꾸러기’등의 말을 하면서 놀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놀림에 사라는 무척 놀랐고 놀리는 것을 아브라함에 알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브라함도 이 일로 인해 마음이 언짢았던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11절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둘 다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상속자로 주신 아들은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모든 것을 주고 이삭을 세우시지만 그래도 자신의 실수로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도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자기 집에서 그대로 지내면서 어느 정도의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자인 이스마엘이 적자인 이삭을 놀리는 것을 알게되고는 아들간의 관계가 이대로 두어서는 큰 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근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은 저주를 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놀림을 받으면 안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본인이 놀림을 받고 저주를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놀림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분개해하시며 저주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창세기 12장을 펴보십시오. 12장 3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자녀는 복을 빌어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축복의 메시지를 항상 말하고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욕된 말을 하고 욕된 말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믿음의 형제, 육신의 형제들간에 화를 내는 사람, 욕된 말을 하는 사람에게 대해 너무나 과격한 어조로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펴보십시오.
5장 2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형제에 대해서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화를 내는 자체가 바로 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형제에 대해 라가라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법적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가라는 단어는 헬라어 rJakav (rhaka) 이고 영어로 번역하면 Fool입니다. 아람어로는 레카- aq;yrE 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인의 대표적인 욕설 중의 하나입니다. 그 뜻은 우리 말 ‘돌대가리’와 유사한 뜻입니다. 머리가 텅 빈,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런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심한 멸시를 나타내는 욕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형제들이든 아니면 영적으로 형제된 하나님의 사람들이든 화를 내거나 돌대가리라는 말을 하거나 미련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는 사람은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서로를 관대하게 대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항상 은혜가운데 살도록 도와주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저주하는 사람까지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을 펴보십시오. 누가복음 6장 27절입니다.
27절, 2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눅 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은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피해를 보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노골적으로 미워한다고 할지라도 선하게 대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골적인 저주의 말을 해도 오히려 축복의 말을 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했던 대통령에 대한 투표를 하면 꼭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이 링컨대통령에게 막말을 쏟아붓는 정적이 있었습니다. 정치에 입문할때부터 대통령이 될 때까지 온갖 욕설이란 욕설은 다 쏟아붓고 반대를 위한 반대의 의견을 내어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스탠튼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링컨을 향해 인신 공격을 서슴치않았던 스탠튼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여러분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스프링필드에 가면 원조 고릴라를 볼 수 있거든요"
스프링필드는 링컨의 고향이고 얼굴을 뒤덮은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조롱한 말이었습니다. 이후 대통령으로 당선된 링컨은 그를 국방장관에 임명했습니다.
참모들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각하, 몇 년 전 그 일을 잊으셨습니까? 스탠튼이 무례한 행동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니지요?"
참모들이 일제히 임명 반대를 하고 나서자 링컨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수백 번 무시당해도 좋아요. 다만 그 사람이 국방 장관이 되어 우리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임무 수행을 잘 하기만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소? 더욱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국정을 잘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 내 편을 만드는 것이요. 안 그렇소?"
참모진들은 링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며 스탠튼도 있는 힘을 다하여 링컨을 도와 나라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적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고 장관으로 임명한 것 때문에 내가 잃은 것이 있다면 政敵뿐입니다“ 라고.......
링컨은 이 사람뿐 아니라 그의 내각에 대통령선거전에서 경쟁 상대였던 상대당의 인물들까지도 끌어들였습니다.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인물이면 민주당 출신이라도 기꺼이 기용했고 심지어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1864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민주당의 앤드루 존슨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할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온갖 욕설과 저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멸시와 욕설을 해서도 안되지만 멸시와 욕설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축복과 평안을 선포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또한 이 땅을 살아가며 항상 축복을 선포하며 평안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품안에 있어야 합니다. 쫓겨나서는 안됩니다.
10절입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의 잔치날은 모두에게 기쁜 날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잔치에서 쫓김을 당하고 아브라함의 상속의 대상에서 이름이 삭제된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아브라함의 호적에 전혀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하고 음악이 흐르고 춤을 추며 모두들 즐거움이 가득한 이 시간, 이스마엘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게 될 말씀, 오늘 읽지 않은 14절을 보십시오.
21장 1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결국 잔치 다음 날 아침 하갈과 이스마엘은 쫓겨나서 광야에서 방황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미 이스마엘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아브라함이 이런 결단을 할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차마 잔치날이기 때문에 그 날 당장 어떤 처분은 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쫓겨나게 될 것을 예상하였을 것입니다.
쫓겨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쫓겨난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집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종으로라도 있으면 뭔가 아브라함의 신세를 지고 아브라함의 은혜를 입게 될 것이지만 이제 쫓겨나서 다른 곳에서 지내게 되면 어떠한 대우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잔치에 참석하려면 잔치를 여는 사람의 눈에 들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식에 사람을 초대하려고 해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는데도 억지로 초대하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결혼식에 와서 결혼식 분위기를 망칠 것 같은 사람에게 초대장을 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 들어가려면 잔치에 초대받기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자격이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2장 27절을 찾아보십시오.
요한일서 2장 27절, 2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27~28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기름부으심은 바로 우리 성령님의 세례, 성령세례를 말씀합니다. 성령세례란 우리마음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임하고 우리 주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것이 믿겨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로 이 성령세례가 우리를 하나님의 잔치,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는 이런 믿음으로 예수님안에만 있으면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재림시에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천국에서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할 하나님의 자녀이십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닌 성령님께서 내 속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겨지도록 만드셨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간뿐 아니라 항상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내가 예수님안에 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머무른다면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앞에 나와 용서를 빌고 어떻게든 하나님에게서 쫓겨나지 않으려고노력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침을 당하면 지옥이요 쫓겨나지 않으면 천국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수많은 잔치에 참여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집 결혼잔치, 어느 집돌잔치, 어느 집 회갑연... 하지만 우리가 진짜 참여해야할 잔치가 있습니다.
이 땅의 잔치들은 다 끝이 나면 방명록에 이름 올려놓고 그 잔치에 얼굴 한 번 내밀었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저 하늘나라 천국잔치는 영원한 잔치입니다. 한 번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들어가면 영원히 즐거움과 안식을 누리며 복된 시간을 보내는 잔치입니다. 반대로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불에서 아파하며 슬퍼하며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하나님안에 온전히 거하며 바른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로를 축복하며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삶으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