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 속의 마실
내 고향은 동해안의 작은 어촌이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할머니를 따라 상구네 집으로 마실을 가곤 했다. 상구네 집에 상구는 없었다. 상구는 전쟁에 나가 전사하고 없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집을 상구네 집이라고 불렀다. 상구가 없는 상구네 집에는 대신 과부가 세 사람 있었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늙은 과부가 두 사람, 서른 남짓한 상구 아내인 젊은 과부가 한 사람. 세 과부 외에 그 집에는 죽은 상구의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상구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 상점도 없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팔아 담뱃집이라고 불리기도 한 상구네 집은 저녁이면 늙은 과부의 친구들과 젊은 과부의 친구들, 상구 동생의 친구에, 담배를 사러 온 남정네들까지 어울려 늘 북적거렸다. 늙은 과부 친구들은 마루청을 중심으로, 젊은 과부와 딸 친구들은 건넛방 중심으로, 상구 동생 친구들은 멍석 깐 마당에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기저기 놀았다. 입담 좋은 남정네들이 취기를 빌려 입담을 풀어 웃기고, 노래 잘하는 아낙들은 밤하늘을 낭랑하게 울리는 노래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떠들썩한데, 달이 기울고 모깃불이 서서히 꺼져 가면, 한 사람씩 마당을 떠나는 동안 그 집 식구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잠들기 예사였다. 마당에서 놀 수 없는 겨울이면 방이 겨우 세 개뿐인 그 좁은 집에서 남녀노소 포개져 어떻게 놀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산은 이 세상의 주인이 시간이라 속삭인다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하던 사람들과
어느 산자락에 누워 있을 자신을 떠올린다
한번은 저녁밥만 드시면 호롱불 켜는 기름 값도 아깝다고 곧바로 잠을 자는 내 할아버지가 매일 어린 손자를 데리고 마실 나가 늦게 들어오는 할머니에게 심통이 났던지 몰래 상구네 집에 쳐들어가 댓돌에 놓여 있는 신발들을 몽땅 지붕 위로 던져 올려, 나중에 애와 어른들이 신발을 찾는다고 난리를 친 일이 있었다. 나는 그게 할아버지의 심통이라기보다 할아버지 식의 유머가 아니었을까, 하고 이해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도시로 나와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도 나는 방학만 되면 고향에 내려갔다. 마을의 처녀 총각들은 어른들 눈을 피해 은밀히 따로 만나는 장소가 있었고, 이웃 큰 마을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10~20리 밤길을 걸어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영화나 연극보다 정작 좋은 것은 처녀 총각들이 함께 긴 밤길을 걸어가는 그 자체였다. 그런 밤, 달빛이 내린 들과 숲의 은밀한 정경들, 신작로 저쪽으로 밀려오는 허연 파도의 포말과 물결이 부딪히는 소리들, 그리고 무엇보다 달빛에 젖어 있던 처녀들의 그윽한 눈빛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밤에는 집에 돌아와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오래 뒤척이곤 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리고 이미 그 눈빛의 임자들은 늙어서 더 이상 그윽한 눈빛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내 속에는 그 그윽한 눈빛이 지워지지 않고 살아있다. 그 눈빛은 시간이 가면서 그 처녀의 것도 아니고, 생물적인 현상도 아닌, 그러니까 그것은 독립된 어떤 것, 즉, 그윽한 느낌 자체의 어떤 것으로 변해갔다.
· 산 아래로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마실은 과거의 그 초라한 마실에 비하면 눈부시게 화려하고 풍요하다. 도심 유흥가에 자리 잡은 그 많은 카페며 술집들, 단란주점, 노래방들을 떠올려 보라. 또 자동차 문화가 대중화 된 이후 소문난 명승지의 유흥시설이나 리조트들을 떠올려 보라. 그 모든 것들이 다 마실에 목말라 있는 현대인들의 갈구를 채우기 위한 장소가 아닌가? 모임이나 행사 등에 참여해 현대적 마실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진정한 마실은 저 젊은 시절, 달빛에 젖어 은은히 빛나던 그윽한 눈빛, 혹은 그런 것의 어떤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독서는 또 하나의 마실이다. 독서를 통해 나는 동서고금의 숱한 도시로 마실간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을 만난다. 토마스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통해 베니스로 간다. 노작가 구스타프 아센바흐는 어느 날 산책길에서 막 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야성적인 한 사내를 발견하고 문득 어딘가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받는다. 베니스에 도착했지만 유쾌한 일보다 불쾌한 일이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어떤 가족을 발견한다. 어머니와 아들과 딸, 가정교사로 이루어진 그 일가 중에 특히 그는 열 살 남짓한 어린 타치오를 주목한다. 넘치는 생명감, 아름다운 외모, 무심하고 천진한 행동과 말. 아센바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점점 그 아이에게 빠져든다. 그런 자신의 주책스러운 태도에 한심함을 느끼고 호텔을 떠나 딴 곳으로 옮기지만 금방 타치오가 보고 싶어 다시 돌아온다. 아센바흐는 베니스에 콜레라가 은밀히 번지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지만 베니스를 떠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타치오 일가에게도 그들이 떠날까 봐 알려주지 않는다. 소년 일가가 콜레라가 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베니스를 떠날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자신이 콜레라에 감염된 것을 알게 된 아센바흐는 해변의 의자에 앉아 친구와 놀고 있는 타치오를 그윽이 지켜본다.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간 타치오가 친구에게 손으로 바다 저쪽을 가리키는 순간, 그 손끝을 지켜보며 아센바흐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타치오의 손끝은 무엇을 가리켰을까. 아니, 아센바흐는 그 손끝을 어떻게 이해하고 눈을 감았을까.
이렇게 해서 현실적인 내 마실의 동기가 생긴다. 박물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성큼 들어선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부산 남구 유엔로에 있는 부산박물관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모여 있다. 청동기 시대의 동모나 동검, 동과를 오래 보고 있으면 내가 그 물건을 만든 사람들과 어떤 동굴 속에 함께 앉아 있는 그림이 떠오른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먼 기억의 시대로 넘어가는 느낌도 든다. 청동기 시대의 옹관이나 금동보살입상을 보는 중에 문득 다음 마실 방향이 떠오른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부산 서구 초장동과 토성동으로 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살던 내 집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산복도로에 들어간 것 같다. 옛날 경이롭게 보았던 배집(배 모양으로 만들었다 해서)은 지금 보니 너무나 초라하다. 존 웨인이 말을 타고 악당들을 쓰러뜨리는 영화를 보았던 명성극장은 무슨 선교협회 사무실이 되었다. 어린 시절 뛰놀던 항도교회 앞에서 혹불 영감과 해덕이, 고득이를 생각했다. 좁은 옛 골목을 간신히 찾아 그 골목으로 천마산에 올랐다. 그 골목이 남아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바다 저쪽에서 마지막 황혼이 장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문득 그 황혼 뒤로 그윽한 어떤 눈길이 느껴졌다.
· 산 위로
내 일상의 마실은 주로 쇠미산(399m) 주변에서 이뤄진다. 쇠미산은 예전에는 돌밭골로 불릴 정도로 암석과 돌이 많은데, 산 정상에는 시민의 숲이라 불리는 전나무 군집지가 있고 성지곡 수원지와 백양산, 만덕 일대와 연결된다. 사직동 일대에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쇠미산에도 숱한 인간 군상이 모여든다. 늘 취해 허우적거리는 사람, 70대 노인인데 마라톤 선수처럼 짧은 트렁크를 입고 산을 달리는 사람, 모든 야구단 선수들의 족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야구광, 숲이 우거지면 숲속에 술집을 차리는 수상한 여인들, 고스톱 치는 재미로 산에 오는 고스톱광, 수족이 마비된 배우자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알뜰한 남편과 아내들, 노래 연습을 위해 일편단심 산에 오르는 음치 등등 산 아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람이 다 있다.
내게 있어 쇠미산은 시간과 존재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귀중한 스승이다. 쇠미산이 내게 준 소중한 가르침은 '자연도 긴 시간 사귀다 보면 인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쇠미산이 처음 내게 알려 준 지혜는 햇빛의 실체였다. 어느 해 겨울, 그날따라 잎 떨어진 겨울나무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햇빛이 빈 나뭇가지의 바깥에 딱 들러붙어 질기게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실제 손으로 햇빛을 만져 보았다.
쇠미산은 밤에는 산도 말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성지곡 뒷산인 불웅령에 갔다가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 산을 내려온 날이었다. 염려와는 달리 점차 눈에 익자 산길이 훤해졌다. 그런데 그때부터 산이 숨 쉬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한동안 부지런히 밤 산을 오르내렸다. 야간 산행 중 어쩌다 저쪽에서 사람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여기 사람갑니다'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러면 산은 '그래, 너는 사람이지'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밤에 정상에 올라 희끄무레한 숲을 보고 있으면 산은 정말 말이 많아지는데, 이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존재 자체를 즐기는 것뿐이라는 것. 그런 의미의 말을 속삭인다. 그러면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하던 사람들과 미래 어느 날 어느 산자락에 누워 있을 내 자신을 떠올린다.
그날도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른 날이었다. 문득 등 뒤에 이상한 시선 같은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오래전부터 방치된 폐가가 두어 채 있는데 바로 그 폐가에서 개 한 마리가 비를 맞아 털이 떡처럼 붙은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눈길이 마주치자 이놈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가만 올려다봤다. 먹을 게 있으면 당장 뭘 먹이고 싶을 만큼 헐벗은 놈이었다. 나는 내려가라고 달래 보았다. 그렇지만 그놈은 비를 덮어쓴 채 미동도 않았다. 결국 정상까지 따라왔다. 하산할 때도 함께 내려왔다. 아파트로 오는데 아파트 현관 입구까지 따라 왔다. 놈의 꼴이 너무 더러웠다. 나는 화를 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냥 올라와 버렸다. 그 다음 산으로 갈 때는 애써 그 폐가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놈은 또 따라왔다. 내려와서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거의 열흘간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그 개는 보이지 않았다. 폐가 주인이 그 개를 찾아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없어진 그때부터 그 놈은 내 속에다 자신의 비루한 모습을 깊이 심어 놓았다. 특히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놈은 개였지만 존재에 대한 간절한 그 무엇이 담긴, 아니 저 젊은 날 보았던, 그윽한 그 무엇 같은, 바로 그런 눈빛이었다.
이 복 구
소설가
◇약력=197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소설집 '불구경' 외. 부산소설가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