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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노래
이진순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시무식을 시작으로 관공서는 바쁘기만 하다.
시작이란 긴장을 하게 한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출발선 앞에 목표를 향하여 뛸 자세를 갖추고 초조해 하듯이 앞으로 전개될 무한한 꿈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음으로 기대가 큰 까닭이 아닐까
새 달력에 하나둘 동그라미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모임을 알리는 문자나 전화, 우편물을 받으면 달력에 표시를 해둔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일과를 정하는 것은 물론 한 달의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첫 번째 외출을 동사무소로 향했다. 새해 인사를 서로 나누웠다. 동사무소엔 동 발전을 이끌 단체장 선출로 어수선하다.
주민자치 위원장 선출과정을 지켜보며 실망스러웠다. 매끄럽지 않은 회의 진행도 문제였지만 아직도 고정 관념은 단체장은 남성이 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양성 평등시대를 부르짖지만 아직도 여성들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했다.
애향심이 도를 넘어 혹여 라도 앉을자리 설자리 구분 못하고 경고 망동하여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해 본다. 불편한 심기를 다독이며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자존심이 좀 구겨졌다 한들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다면 후회 할 일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았다.
시작이란 신선하다. 특히 강서2동 주민들은 테크노단지 조성사업으로 우뚝우뚝 세워지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청주시에서 가장 작은 동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수많은 사연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교통이 불편해서 미래의 꿈나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하여 도회지로 떠난 자식들이 하나 둘 돌아와 터를 잡으며 효도를 하겠다고 고향을 찾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인고의 세월을 넘고 넘어 오랜 기다림 끝에 펼쳐지는 테크노 단지의 모습을 바라보니 신비스럽기 까지 하다. 강서 2동에 신도시가 형성 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전개될 2차 테크노 단지 조성 발표를 듣고 주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갑론을박으로 분위기는 살벌하기 까지 하다.
농업을 천직으로 살아온 실버 세대들의 고달픈 삶의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노후를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살기 좋은 강서 2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새 시장께 거는 기대가 크다. 슬기롭고 현명한 시정이 펼쳐져 그동안 음지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는 양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실 것을 두손 모아 빌어 본다.
서서히 하나둘 관공서가 새로 지어지고 학교와 병원과 목욕탕이 우리 마을에 생길 것이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리던 시설들인가.
상가의 간판이 나붙고 공인 중개사 간판이 보인다. 도회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 자고나면 변해 가는 주변이 신기하기만 하다. LG로가 생겨 오창과 세종시를 비롯하여 외곽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이어지고 청주의 중심지로 면모을 갖추워 가고 있다.
무심천 산책로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고 있는 시민들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경쾌하기만 하다. 주말이면 하늘 높이 울긋불긋 떠다니는 행글라이더를 바라보며 무한한 가능성을 꿈꾼다. 드넓은 문암 생태공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희망의 속삭임으로 들린다.
까치 내 벌판에 흰 눈이 내리고 있다. 한편의 동화 마을을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 마음은 무심천 내를 따라 날아가고 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충남 당진 백석 올미 마을로 생활개선 회원들과 체험교육을 떠났다. 학습 단체인 우리들은 언제나 새로운 볼거리에 마음이 붕붕 떠 폭염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2시간 반 동안 우리들은 시원한 관광버스 에어콘에 몸을 맡기고 통합으로 서먹했던 회원들과 정을 쌓는다.
백석 올미 마을 가는 길은 다듬어지지 않은 산골이었다. 논두렁길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 구불거렸다. 도착한 백석 올미 마을은 정갈한 모습이다. 당진의 생활개선 회원들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안내하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마을 어르신들이 주가 되어 부녀회장과 통장, 노인회에서 마을 공동 사업으로 시작한 한과 마을이 되기까지의 설명을 듣는다.
매실한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오늘이 있기까지 불협화음으로 몸살을 겪은 이야기는 실감이 났다.
젊은이들은 모두 자녀 교육문제와 직장을 따라 도회지로 나가고 노인들이 땅을 지키고 살고 있는 실정은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부녀회원이 노인이고 노인회원이 부녀회원인 것은 우리 마을과 닮았다.
마을 회관 겸 경로당으로 쓰는 곳은 어디나 화투나 치며 허송세월만 보내는 것이 공통점이다. 화투 놀이만 할 것이 아니라 “부가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한과를 만들어 팔아 보면 어떨까” 라고 하는 노인이 있었다. 흘러가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부녀회장은 마을 회의 안건으로 삼았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대목이었다.
부녀회장은 노인회장과 뜻을 모았고 처음에는 몇몇 노인들이 시작한 사업이 부녀회원과 노인회 심지어는 마을 통장까지 팔 걷어 부치고 힘을 합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관인 농업기술센터에서 기술과 자금 지원을 해줘서 저장고를 짓고 공장과 전시장을 만들게 된 경로를 설명을 들었다.
6차 산업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경로를 들으며 내 작은 가슴에 파문이 일기 시작 했다. 어느 곳이나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이처럼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마을에서 생산된 찹쌀이라든가 모든 농산물을 시중가격보다 후하게 값을 쳐서 수매를 하고 저장고에 보관하며 일 년 내내 한과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자녀들은 홍보대사가 되어 인터넷이라든가 직장에 어머니들이 만드신 한과 판매에 도움을 주기 까지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인터넷 광고를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시장으로 백화점으로 심지어는 외국에까지 수출 상품이 될 수 잇도록 홍보를 돕다보니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례담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미 마을 노인회원 33명은 다 월급을쟁이가 되었다. 최하의 월급이 120만원 능력제로 자녀들이나 친척들이 팔아주는 수당을 지급하다 보니 월 300만원을 타는 분도 있단다.
전국 농업기술센터에 홍보를 해준 덕분에 농촌 체험마을로 소문이 나서 견학을 오는 단체가 많아진 덕에 부녀회원들의 일자리로 관광 온 분들의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갈수 있는 식당까지 경영 하고 있다고 했다. 부녀회 기금이 늘어나게 되니 일석이조의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가믐에 콩 나듯 다니던 버스가 자주 다니게 되니 마을이 발전 되었으며 도시에서 시골 귀농 하는 가족이 생기다 보니 땅값이 올라가는 일거양득의 농촌 마을로 거듭 성장 하고 있는 올미마을이 되었다.
이제노인들은 일자리와 집을 자손들에게 대물림 해주고 실버타운을 짓겠다고 봉급의 몇프로를 저축하고 있다고 한다. 간호사와 의사를 고용해서 이 세상 소풍을 멋지게 웰 –다잉 할 계획까지 자손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립 하겠다는 이야기는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강의를 듣고 체험장과 전시장을 돌아보았다. 전시장에는 만물 상회가 따로 없었다. 그곳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들이 진열 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실버타운 자금에 보태라고 이것 저것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무공해 먹거리로 직접 농사지어 만들어 주는 음식 또한 집 밥과 다름없었다. 회원들은 모두가 애국자가 된 듯 마을로 돌아가 이 소식을 전하리라 다짐이라도 한 듯 뿌듯한 체험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난 농업기술센터는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의 재능기부를 하기 위하여 농업기술 센터에 왔었다. 회원으로 활동하다 향토 음식 연구 회장을 맡으며 무언가를 연구 한다는 희망으로 가득하다.
향토음식연구, 사찰음식, 아동요리, 발효식품, 닥종이 인형 만들기. 천연염색, 원예치료, 정원 사 교육등 다양한 교육을 접할 수 있었고 자격증을 열 개나 딸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오늘 이 여행을 마치고 난 마을마다 전도사가 되어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정부에서 계절마다 난방비와 온방비, 운영비 까지 지원을 해주며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주고 있다.
거동이 불편 하다면 편히 쉬어야겠지만 무언가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사업이 없을까 뜻을 모은 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이곳 노인들처럼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용돈이라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 창출을 하느라 바쁘다.
관광버스는 집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회원들의 상기된 모습은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 쌀 .맛있는 한 그릇
충북 14개 시 군 향토 음식 연구회 회원들이 체험 교육을 다녀왔다. 단양 A 회장을 중심으로 우리 고장의 향토음식을 찾아 연구 개발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활동하는 단체이다. 쌀 소비 촉진운동에 목표를 정하고 앞장을 섰다.
시민들과 함께 보고 실천 할 예쁜 요리책을 33명의 요리사들이 직접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들게 되었다. 레시피를 짜고 만들어 보며 연구를 해서 “우리 쌀. 맛있는 한 그릇”이란 책을 폐냈다.
이번에는 직접 사업을 해서 성공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현장을 보려고 체험 교육을 가는 길이다. 교육 체험코스는 충남의 한지를 직접 닥나무를 키워 만드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부부는 우리들을 버스 앞까지 나와 맞아준다. 회색 천을 누빈 개량 한복을 입은 주인이 스님을 닮아서 절에 온 것인가 하는 착각을 하게 했다. 언덕위에 있는 체험장을 들어섰다. 벽에 붙어 있는 한지의 그림이 어린 시절 만화책에서 본 그림처럼 느껴졌다. 작은 규모의 작업장은 195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체험장 대표는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충남 서산 인지면 무학재 1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림을 그리는 각시와 한지 공예를 즐기는 신랑이 살고 있었다. 여름 내내 산과들에 꽃과 닥나무를 기르는 재미로 산다고 말했다. 산과들이 휴식을 취하는 한겨울 닥나무로 한지를 만든다는 부부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신비스럽게 보였다.
각시는 어린 날부터 꿈이 있었다고 했다. 신랑을 만난 동기부터 목표를 달성하기 까지 고향을 지키며 이렇게 살고 있는 데는 무한한 꿈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아주 추운 날 임에도 공예가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한지 만드는 작업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한지를 만들 수 있는 닥나무의 역할과 점도를 유지시켜 주며 풀의 역할을 하는 황촉규식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만도 큰 소득이었다.
우리는 신랑각시의 안내로 한지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베이지색 꽃을 피우는 황촉규는 뿌리를 풀 대신 사용하는 풀로 겁질을 벗겨 삶으면 끈적끈적하게 점액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조물주께서는 우리들 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셨는지 그 신비스러움에 놀랐다.
한지를 만드는 작업은 예로부터 농한기에 했다고 한다. 여름내 키운 닥나무를 겨울에 채취하여 껍질을 벗겨 방망이로 두두려 외피를 벗겨낸 다음 삶아서 한지를 만들었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깃들어야 한지는 탄생된다는 것을 배웠다.
각시는 한지 공예로 예쁜 그릇 만들기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뿐 아니라 황촉규 씨앗을 가져가 꽃밭에 심으라며 나누워 주었다. 황촉규는 접시꽃으로 (히비스커스)차로 마시기도 한다.
콩 요리로 맛집을 운영하는 곳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자리를 옮겼다. 콩 요리 집 입구 신발장위에 콩깍지가 콩 요리 집임을 말하고 있었다. 거창한 간판도 없이 말뚝에 소박한 밥집이란 안내판을 꽃아 놓고 첩첩 산중에서 살림집을 겸하여 운영하는 듯 보였다.
부부가 운영하는데 메뉴를 설명하는 안주인의 말씨에서 겸손함과 진실성이 보였다. 따듯한 콩 전을 중심으로 조개 넣고 두부전골이 밥상위에서 보글거리고 꿇고 야채 사라다, 장아찌 특히 냉이 된장 찌가 맛있었다. 말 그대로 소박한 밥상이었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콘도로 안내 되었다. 7-8명이 쉴 방은 넓었다. 우리는 여장을 풀고 대충 세안을 한 다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큰 방으로 모였다. 1년 동안의 경과보고를 시군별로 발표했다. 도운영비 정산 보고를 듣고 검토를 했다.
권 과장의 말씀을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달려온 과정에 대한 치하와 앞으로 전개할 목표에 대해 방향 제시를 해주셨다. 여성 리더 자로 야무지고가치관이 뚜렷한 분이었다. 열정 넘치는 기가 전달되어 마음 안에 촛불이 켜지듯 가슴이 콩닥 거리며 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목표가 그려졌다.
똑 부러지게 어영부영 임기동안 시간이나 때우는 회장은 물러가라 회원들에게 무엇을 도와 줄 것인가 임기 동안 무엇을 하나라도 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과장은 확실하게 심어 주셨다.
숙연한 분위기였다. 본받을 만한 과장님을 모셨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우리들은 부푼 꿈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참으로 좋은 인연의 만남은 허가 받은 외출을 하얗게 지새우게 했다.
청주 향교
이진순
대숲이 우겨진 숲 사이로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른다. 바라만 보아도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청주 향교에서 벌써 3년째 1인 1책 펴내기 수업을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는 분들에게 인생을 배운다.
청주 향교에서 펼쳐지는 유교 대학은 역사 공부를 하듯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자의 사상과 맹자, 순자 사서삼경을 배우고 성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유생들은 한여름 폭양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어쩌면 어르신들의 배움의 전당이 이처럼 신선하고 멋진지 근동의 선비들은 청주 향교에 다 모여 계신 듯싶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자식들 뒷바라지로 청춘을 다 보내고 노구의 몸으로 허기진 배움을 채워 보고자 모이신 어르신들로 보였다. 서예 교실엔 화기(和氣)필방(筆房) 묵향이 가득한 방안에 화기가 넘치고 넘친다.
자신을 가꾸는 모습을 본보기로 삼고 싶다. 살아온 지난날들을 성찰 해보며 순간순간을 알차게 보내시려는 1책 글쓰기 교실 또한 뒤질 새라 80노인들이 글을 쓰시고자 애를 쓰신다. 향교에서 만난 인연은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교직에서 정년을 하고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 병증의 악화로 요양원으로 보낸 분이 있다. 울적한 마음 달랠 길 없어 향교 글쓰기 교실을 찾아 와보니 누님 같은 어르신들이 모여 글공부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하신다. 살아온 삶을 자서전을 쓰듯 써 책을 두 권이나 만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의 아낙으로 아이들을 다 시집장가 보내고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그리운 세월”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신분이 있는가 하면 학교 문전에 들어갔다 나왔을 뿐, 전쟁의 소용돌이 속의 야생초처럼 살아온 분이 있다. 순탄치 못한 모진 삶의 이야기를 묻어 두기엔 억울하다고 했다. 책을 꼭 내고 싶다고 찾아온 분이 있었다. 어쩌면 뉴스를 듣다가 시한수를 일기 쓰듯 적어 놓고, 아픈 마음을 낙서하듯 써놓은 일기장이 하나하나 주옥같은 작품으로 변신을 하여 “민들레 같은 삶”이란 책을 엮었다.
가난에 찌든 환경에 순응하며 살다 보니 얼굴에 살아온 삶이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책 한권 속에 응어리진 마을을 다 풀어 놓은 것이 힐링이 되었던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변했다. 취미로 불었던 하모니커는 노인의 장끼가 되었다. 활기찬 모습을 보며 지도 강사로서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날 명성이 자자했던 분도 세월을 이길 수 없어 지팡이에 의지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향교 가까이 산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노부부는 어쩌면 그렇게도 멋지시던지 부인이 하고 싶다는 일에 흔쾌히 보호자가 되어 인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첫날 글쓰기 교실에 오셨을 때 “그날”이란 주제로 글을 써보라 권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내 인생 80년이란 책을 만들게 되었다. 그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살 어름 판을 걷는 것 같았다. 저러다 미끄러지면 어쩌나 쓰러지시면 안 되는데, 조바심하며 한주도 빠짐없이 동참하셨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몸부림치시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고운 마음, 병마와 싸우며 인내하는 의지력, 함께 한 시간들이 보석처럼 빛이 난다.
남아 사상으로 불이익을 당하며 자란 것도 한이 되는데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4딸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 가장을 원망하며 살아온 여인도 있었다. 딸아이들을 모두 성장시켜 대학 교수도 만들고 짝 찾아 둥지를 틀어 다 떠나보내고 민화작가로 활동하는 여인이다. 자신이 그린 작품으로 표지를 만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른다. 노후를 멋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책을 펼쳐냈다.
청주시에서 “직지 숲을 거닐다”란 주제로 세계 축제가 10월에 열린다. 그동안 1인 1책 사업은 많은 시민들에게 작가의 길을 열어 주었고, 크고 작은 삶의 트라우마를 치유 하는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배움의 전당이 있지만 청주 향교에서는 한 낯에도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봄비
이진순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충북의 향토음식 연구회원들이 보은의 온제향기란 맛 집에서 모이는 날이다. 진달래와 조팝꽃이 피어있는 꼬불거리는 길을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갔다. 잘 지은 집도 안보이고 산골마을 수수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산속으로 들어가니 온제 향기 가는 길이란 안내문구가 보였다.
솟을 대문위에 솟대가 서있는 온제 향기는 헌집을 리모델링한 목제로 지은 집이었다. 오밀조밀 발효실과 조리실을 만들고 이층에 마루방을 만들어 식당을 운영할 생각을 했는지 아이디어가 기발함을 느낀다.
온제 향기는 산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병풍이 쳐있고 주변의 과수원이며 논두렁 풍경이 이색적이다. 여름이면 초원속의 집이 되어 아름다울 것 같았다.
빗길도 마다하지 않고 옥천에서 단양까지 속속 33명의 회원들이 모여 들었다. 효소를 한 병씩 들고 와인과 식초 체험 교육을 받기 위해서다. 온제 향기 대표는 발효 식품 중에 술을 잘 빗는 우리 회원이다.
식탁에 소꿉놀이 하듯이 앙증맞은 작은 잔과 접시가 놓여있고 야생초를 수반에 수경 재배 하듯 키웠다. 손잡이가 달린 작은 병에 와인과 맑은 술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에 마주앉은 회원들은 유년의 소꿉놀이하던 추억이 솔솔 피어난다고 입을 모았다. 직접 그릇도 만들어 구워 온 것 같았다. 여느 식당과 차별화된 풍경이다.
체험 교육이 시작 되었다. 발효실을 구경하고 우리를 위하여 3일전부터 멥쌀를 씻어 담가두고, 쌀뜨물을 받아 끓여 두었다가 밥물을 부어 밥을 짓는다고 했다. 지은 밥에 누룩을 넣어 오래 치대면 밥알이 뭉그러지는데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면포로 봉한 다음 따뜻한 아랫목에 하루를 모셔두면 뽀글거리며 마치 풀이 끓듯이 푸불썩 대며 공기방울을 쏘아 올리며 발효를 시작하는 효모가 된다고 한다. 면포를 벗기니 항아리안의 효모는 정말 크고 작은 공기방울이 모여 뽀글거리며 살고 있었다. 순간 코를 스치는 향은 어린 시절 술 지건이를 연상시켰다.
발효 특허 전문가답게 이런저런 연구를 하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이야기부터 오늘이 있기까지의 체험담은 요리사들을 공감하게 했다. 이 효모로 술과 식초, 빵등 발효 식품을 연구 하여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먹거리를 개발 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당도의 부릿지를 측정하고 효소와 물, 효모를 넣어 다시 발효 시켜서 와인을 만들고 식초을 빗는 과정은 신비스러웠다. 발효를 시키는 데는 온도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너도나도 시연을 보며 한 병씩 만들었다. 이제 지금 만든 이 효소가 와인으로 변신을 하게 된다니 신기하다. 내손으로 만든 술을 식탁에 올릴 것을 생각하니 뿌듯함을 느낀다.
창밖에 봄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리는 와인과 매실주를 따르며 건배를 했다. 우리는 잘 먹고 지내고 있는가, 난 지금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가, 난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난 남을 얼마만큼 배려하고 있는가, 효모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하루였다.
매일같이 얼큰한 고춧가루와 고추장 새콤달콤한 맛에 길 드려진 입맛을 천연의 배와 잣 들깨가루로 고소한맛을 낸 맛집 대표의 정성에 반하고 말았다.
봄비는 여전히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차분하게 돌아오는 길 내내 동무처럼 따라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