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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령리 푸른 바다 그리고 아, 그 쓰레기 -
오늘로 제주도에 온 지 5일째다. 새벽 4시 기상하여 체조, 세면 후 아침 시간에 기행문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오늘부터는 숙소 1층 로비에서 식빵으로 만든 토스트를 먹지 않고 제대로 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일행들이 먹은 게 소화가 안 되고 힘들다고 한다. 사실 아침을 별로 많이 안 먹는 편인 나는 어려움이 적지만 일행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한다.(또 숙소의 식빵이나 잼은 품질이 별로 안 좋은 편이기는 하다.)
그리고 여관 생활을 하다 보니 불편한 것이 좀 있다. 침대 위 그 선홍색 붉은 이불이나 침대 시트는 통 바꾸는 것 같지 않고, 싸구려 모텔방의 비릿한 비린내가 내 몸속에 파고 들어 스물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아침 8시에 숙소에서 나와서 버스 터미널 옆의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다. 터미널 옆의 ‘오라 정식 식당’에 들어가니 손님들이 두세 팀이 있다. 그런데 벽에 온통 낙서가 되어 있고 선객(先客)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 공연히 음식도 불결해 보이고 식욕이 싹 가신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잠자리도, 먹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제 집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징조이리라.
오늘의 올레는 14코스다. 원래는 저지 마을회관에서 한림항 비양도 도선장까지 약 19㎞ 정도의 거리인데 우리는 거꾸로 출발지를 한림항으로 정하고 저지마을로 남행하기로 한다. 8시45분, 한림행 서일주 702번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50분쯤 걸려 9시35분 한림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우리가 남행하는 14코스 트레킹 여정은 한림항 비양도 선착장-옹포포구-협재포구-협재해수욕장-금능해수욕장-해녀콩서식지-월령포구–선인장밭-무명천변-굴렁진숲길-저지마을회관인데, 전반부는 비양도를 반원을 긋듯이 바닷길을 지나 둘러가다가 후반부는 내륙으로 쭉 들어가 전형적인 제주의 농촌 풍경을 느낄 수 있는 밭길과 무성한 숲길을 볼 수 있는
올레 코스다.
올레 출발점인 비양도선착장을 찾다가, 화물선착장을 비양도선착장으로 잘못 알고 10여 분 남쪽으로 알바하다 다시 14코스 출발지인 선착장에 도착하여 확인 증명사진을 찍는다. 9시55분 남쪽의 저지 마을회관을 향해 오늘의 일정을 힘차게 시작한다.
< 한림항 비양도 여객 터미널 앞의 올레 출발점 >
한림항 가운데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비양도가 떠 있다. 비양도는 내일 가기로 하고 오늘은 비양도를 중심으로 반원 그리듯 올레길을 걸어 나간다. 바다 물빛이 청옥색을 띠고 찰랑거리고 있어 눈에 정겹다. 어선 화물선 선착장을 지나 새롭게 포장된 보도를 가다보니, 정말이지 웬 개똥들이 여기저기 여러 무더기씩 보도 위에 널브러져 있다. 우리가 트레킹을 진행하는 1킬로 정도의 거리에 수십 군데에 걸쳐 너무 많은 개똥이 치워지지 않은 채로 방치되고 밟힌 채 짓이겨져 있다. 누가 좀 치우지 역겹다. 치워주세요오∼ 역겨워요!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개똥길이라 이름을 지었다.
< 옹포포구를 지나며 >
개똥길을 지나 옹포포구에 이르러 바다를 바라보니 비양도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옆모습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양도는 해안선 둘레 3.5km의 타원형 섬으로 고려 시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은 100여 명 남짓 산다는데 비양도에 가려면 한림항에서 비양도행 도항선을 타야 한다. 실제로 한림항에서 5km, 협재에서는 1.5km에 불과한 거리지만 여객선은 하루 세 차례뿐이란다. 말하자면 비양도는 섬 속의 섬, 낙도인 셈이다. 하긴 작은 섬에 사람이 많으면 오염이 되고, 적으면 청정 자연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저 멀리 해안가에 등대가 보인다. 사람들은 바닷가 등대에 대해 다소 낭만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막상 가 보면 시설물과 바다뿐이지만 그래도 단조로운 해안가에서 길을 알려주는 큰 이정표가 되고 있다.
협재 등대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길에는 행상 트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발열내의를 판다고 확성기로 노인들을 호객하고 있다. 우리가 마을길을 뱅글뱅글 돌아 나왔을 때에도 여전히 아무도 물건을 사러 찾지 않는데 행상 혼자서 정말 열심히 호객을 하고 있다.
10시55분. 한림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되어 협재 등대에 도착한다. 등대에서 인증샷을 하고 기지개를 한 뒤 바다를 향해 심호흡을 한다. 여기서도 청옥색의 바다 위에 그 모습만 조금 바뀐 채 비양도가 떠 있다.
11시20분. 협재 포구를 지나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협재 해수욕장 위에는 모래 유실 방지용 부착포를 백사장 위에 덮어 놓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맞서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이 안타깝다. 그래도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비롯한 사람들이 많다. 화장실이 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찾는데 고생하다가 올레 표시를 잃어버렸다. 이리저리 묻고 한참 찾다가 그냥 큰 길로 진행하기로 한다.
< 협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
올레를 하다 보면 흔히 겪는 일로, 길가를 지나는데 갑자기 개들이 짖거나 달려들면 참으로 난감하다. 같이 싸울 수도 없고 쩌업. 이번에도 길가의 개들이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林山을 보자 아주 사납게 물려고 달려든다. 다행히 묶여 있어 괜찮았지만 일행은 상당히 놀란다.
큰 길로 조금 걷다가 아무래도 이 코스가 아닌 것 같아 휴양팬션 뒤쪽의 해변으로 나가보니 올레 표시가 있다. 올레 코스는 협재 해수욕장에서 그냥 금능 해수욕장까지 해변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이 협재해수욕장에서 금능 해수욕장 사이에는 야자수 같은 열대수가 상당히 많이 식재되어 있어 남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중문 지역 이외에서 이렇게 열대수가 많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더구나 해변가의 조용한 지역에 바다풍경과 어울러져 있어 분위기 Good이다!!
< 금능해수욕장 가는 길의 야자수 조경 >
금능 해수욕장은 협재 해수욕장과 약간 떨어져 있을 뿐 분위기나 구조가 그냥 대동소이하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비양도는 뒷모습을 조금 바꾸어 떠 있다. 마치 11코스가 전반에는 산방산을 돌고 가듯, 14코스 전반은 비양도를 앞에 두고 반원을 도는 것 같다.
금능 해수욕장을 지나고 금능 포구를 지나 일성콘도 옆을 지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의 ‘쓰레기 해변’ 올레가 등장한다. 마땅히 길을 내기 어려워서 그렇겠지만, 일성콘도에서 제도수산 옆을 지나 월령리 해녀콩서식지로 올라서기까지의 해변은 차마 말하기가 역겨운 쓰레기 구간이다. 해변 청소를 하든지 올레 코스를 바꾸든지 해야 한다.
제주 올레가 각종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나 이에 대한 대책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 관리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올레코스 훼손 문제와 함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질적인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기 마련이다. 쓰레기 피해의 대상에서 제주도 올레나 해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로 인한 일차적인 피해자는 제주도의 주민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피해자는 관광객이나 여행자, 올레꾼들일 수도 있다. 모처럼 제주도의 좋은 해변 풍광을 보러 왔다가 오염된 현장에서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경우에는 제주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갈 것이다.
< 일성콘도와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해변 >
제주 해변의 쓰레기를 이야기하면 지역 주민이나 택시기사 같은 분들은 모두 다 관광객의 몰지각한 쓰레기 투기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제주도의 해변 쓰레기는 주로 바다에서 유입되는 스티로폼, 플라스틱, 선박에서 흘린 각종 부양물 등이 해양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해변 쓰레기의 상당 부분은 주변 주민의 생활쓰레기들이다. 관광객들, 올레꾼, 해수욕을 위해 찾아온 여행객 그리고 갯바위 낚시꾼들이 흘려 놓고 간 캔, 술병, 컵라면, 과자봉지, 담배꽁초, 물병 등이 대표적인 해변 쓰레기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쓰레기들을 들여다보면 부엌에서 쓰는 생활용품, 고무장갑, 플라스틱 집기, 의자, 생활가구 등이 훨씬 많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14코스의 ‘제도수산 양식장’과 접하고 있는 주변 해변을 가 보라. 그곳에 있는 쓰레기 대부분이 양식장에서 내다버린 쓰레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관광객이 거기까지 그런 공산품 폐기물을 들고 가서 버릴 사람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뜻이겠지만 그 지저분한 쓰레기장에 올레표시를 달아 놓고 그리로 지나가라는 측이나, 이 쓰레기는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라 올레꾼이 버린 것이요 하고 치우지 않고 버티는 측이나, 그러거나 말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모르쇠로 시치미를 떼고 있는 측이나 다 딱하게 보인다.
길만 뚫어 놓을 것이 아니라, 코스 개발을 천천히 하더라도 관리에 더 철저를 기해 탐방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주를 찾았다가 올레를 걷고 싶어 올레길로 들어섰다가 쓰레기 때문에 발길을 돌려 나오고 싶은 경우가 없지 않다.
물론 올레꾼들에 대한 계도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올레꾼의 쓰레기 투기도 자제해야 하지만 올레 자연 보호와 함께 올레표시 훼손도 문제가 된다고 한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표식을 훼손하거나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한다. 특히 땅에 박아둔 간세를 거꾸로 돌려 놓거나 올레길을 여행한 기념으로 리본을 풀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외부인들의 이목을 끄는 좋은 환경이 준비되어 있으나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전하고 널리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제주의 환경과 올레를 지키는 지름길일 수 있다. 갑자기 웬 훈계조…? 쩌업.
하여튼 그 문제의 쓰레기 해변을 지나 선인장이 여기저기 자생하고 있는 월령리 해안길로 접어들어 해녀콩 자생지에 이른다. ‘해녀콩 자생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으니 해녀콩이 자라는 곳인가 보다 하고 알지 겨울이라 해녀콩이 자라는 모습이나 꽃을 볼 수 없다. 안내판에 의하면 제주도 동쪽인 구좌읍에 있는 토끼섬이 그 자생지라고 하는데, 이렇게 14코스 같은 서쪽 바닷가에서도 자란다고 한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연한 분홍색이며 종자 콩은 목초용으로 쓰이고 가축의 먹이로도 쓰인단다. 현재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희귀 야생식물로 분류되어 보호되고 있다.
이처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해녀콩은 열매에 독성이 있어, 해녀들이 임신 중절을 위해 삶아서 먹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제주의 많은 해녀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로지 물질 하나로 삶을 지탱하는데,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는 배가 부른 상태로 물질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기에 약한 독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콩을 낙태를 위해 약으로 먹기도 했다 한다. 그러다가 설상가상으로 과다복용해 사망하기도 하고 기형아를 출산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해서 그에 얽힌 일화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 한다. 그러고 보면 해녀콩은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제주 해녀의 삶을 닮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녀콩 자생지를 지나니, 엄청나게 큰 전력 발전용 풍차가 보인다. 이 근처를 신재생 에너지 시범 단지로 지정하고 제주의 바닷바람을 이용하여 전력 생산을 하는 모양이다. 큰 풍차 너머에 있는 작은 등대에 이른다. 등대로 나가는 주변은 용암이 흘러와 바닷물과 부딪친 검은 색 용암석으로 되어 있는 천연 방파제다. 이곳 주민들은 여기를 '월령코지´라 부르는데, 검은 현무암에 에메랄드빛 바다와 산책로가 어우러지며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이곳의 바다 빛깔이 유난히 고운 이유로는 제주도에서도 우도의 서빈 백사장과 월령리 앞바다 두 곳에만 있는 바로 ‘산호모래’가 있는 해변이기 때문이란다.
< 월령코지와 풍력발전기 >
< 월령코지 용암 방파제의 멋진 해변 >
여기 14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국내 유일의 월령리 자생 선인장 군락지라는 것이다. 문주란, 파초 일엽 등과 더불어 제주의 3대 외래식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손바닥 선인장´이다. 집에서 키우던 것이 퍼졌다고도 하고, 구로시오 난류를 타고 남방에서 흘러들어 월령리 해안가에 정착했다고도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선안장의 정식 명칭은 부채선인장이다. 생긴 모양새가 꼭 손바닥 같다고 해서 주민들은 손바닥 선인장이라 부른다. 하지만 뭍사람들에겐 거친 땅에서도 오래 산다는 뜻의 백년초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단다.
이처럼 월령리의 해안과 마을 안의 돌들이 쌓여 있는 곳에서 자생하는 선인장은 집의 경계인 돌담에 심어서 뱀이나 쥐의 침입을 방지하기도 한단다. 또 요즈음은 선인장을 밭에 심어서 많이 재배하고 있기도 한다. 우리가 마을을 지나는 동안 할머니나 아낙들이 선인장 열매를 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월령 마을의 돌담은 제주에서도 유일하게 용암 원석을 그대로 쌓아 만든 돌담길이 남아 있는 곳이기로 유명하다. 쌓아 놓은 돌멩이 사이로 어긋지게 구멍이 나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도 하지만, 정작으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이곳에 자생하는 손바닥 선인장으로 장식을 두른 마을 안 돌담길은 자연스럽고 정겹다.
< 선인장 자생지의 백년초 >
이 손바닥 선인장은 비료와 농약을 싫어하는 '자생 무독 식물´이다. 또한 선인장은 예로부터 열매를 약재로 이용하고 있는데, 주로 소담제나 해열제 등의 민간약으로 쓰여 왔고 인체에 해가 없어 그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영양 성분도 풍부해 비타민C는 알로에보다 5배가 넘고, 노화 억제와 항암 효과가 있는 페놀 성분도 함유돼 있는 장수 식품이라 한다.
푸른 바다와 새까만 화산석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그리고 그 제주 바다의 아름다운 어울림 속에 진한 보랏빛 열매를 보듬고 있는 야생 선인장들의 모습은 남국적이면서도 아름답다.
12시가 지나면서 출출하기도 하지만 혹시 남은 길에 음식점이 없어서 점심을 굶을까 걱정이다. 지나가는 올레꾼에게 물어보니 뒤편에 식당이 있다고 한다. 안심이다. 조금 가니 나무데크가 놓인 주변에 선인장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 조망대에 이르자 선인장국수 식당이 보인다. 12시40분에 선인장국수식당에 들어서니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제법 사람들이 많다.
선인장 국수 식당에서는 혹시 선인장을 식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국수만 파는가 하는 궁금증도 있지만 그냥 전형적인 제주도 음식점이다. 그 이유는 돼지 두루치기가 주 메뉴이고 국밥, ‘국’이 있기 때문이다. 국은 언젠가는 꼭 먹어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제주 전통음식이다. 국은 제주지방에서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불린 모자반을 넣어 만든 국인데 모자반을 제주에서는 ‘’이라 하고 이 을 넣고 끓인 국이라서 ‘국’이라 한다.
돼지 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 낸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면 느끼함이 줄어들고 독특한 맛이 우러나는데, 혼례와 상례 등 제주의 집안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만들었던 행사 전용 음식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돼지를 잡아 알뜰하게 나눠먹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만든 나눔의 의미가 큰 음식이다.
주문한 7천원짜리 국이 나오자 주인 아주망이 국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뜨거울 때 양념을 넣어 먹는 것이 최고란다. 국에 소주 한잔을 곁들여 맛있게 먹으면서 트레킹의 피로를 풀고 13시15분에 다시 출발한다. 이제 큰 길을 만나니, 해안가를 벗어나 월령교 다리를 건너 내륙(?)으로 향한다. 이곳 월령리 사무소 쪽도 선인장 재배하는 밭이 많다. 지나가는 길 옆 밭에서는 주로 노인네들이 선인장 열매를 따고 있다.
이제부터는 한 시간 이상 무명천변 산책길을 왔다갔다 하며 올레를 진행한다. 해안가보다는 비교적 단조롭다. 14시10분, 무명천변 쉼터에서 쉰다. 무명천변을 벗어나 굴렁진 숲길을 지나고 오시헌록농로를 지나는 구간에서 15분 정도 알바를 한다. 대충 이 길로 갈 것이다 하고 으레 짐작을 하여 올레 표시를 제대로 보지 않아 생긴 일이다. 사실 이 구간은 거리를 길게 늘여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지, 바로 옆으로 가면 금방 닿을 곳을 이리저리 구불구불 길을 꼬아 거리를 늘린 흔적이 역력하다.
올레를 걸으면서 그러면 안 되는데, 스물스물 화가 나기 시작하고, 아까 ‘개똥길‘과 ’쓰레기 해안길‘의 불쾌함이 올레길에 대한 불평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올레길에는 한가로움과 자연스러움, 편안한 힐링이 필요한 것이지 이렇게 작위적으로 킬로 수나 늘리는 것이 무어냐 하며 투덜댄다.
이제 길은 큰 신작로를 만나고 다시 건너서 저지 오름 쪽으로 올레 표시가 붙었다. 저지고망숲길로 가는 건가, 14-1코스의 저지오름으로 가는 것인가 헷갈린다. 여기서 아까처럼 알바를 하면 안 되지, 14-1코스의 저지오름으로 가는 올레코스일지도 몰라 의심을 하며 올레 표시를 따라가지 않고 큰 길을 따라 저쪽으로 뻔히 보이는 저지마을쪽으로 걷는다.
< 굴렁진숲길을 지나며 >
16시10분. 저지 보건 진료소를 지나 드디어 저지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오늘 올레의 마지막 종점이다. 올레 종점에서 인증샷을 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모슬포행 버스를 기다린다. 저녁 무렵이라 좀 으스스하다. 모슬포쪽으로 가는 버스는 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는다. 마을 회관에는 커피를 파는지 커피를 볶는 커피향이 구수하게 사람을 당긴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냄새만 살짝 공짜로 맡고 그냥 온다.
< 멋진 도회풍 감각의 저지리 마을회관 >
버스를 기다려도 시간이 늦어 맞지 않는다고 宋山이 택시를 부르자고 한다. 택시를 부르니 10여 분 있다가 도착한다. 제주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자고 하니 한경면 고산 우체국 앞에 내려준다. 처음에는 2만원을 달라 했지만 중간에 2천원을 할인해 준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착한 택시기사라고 마음 속으로 고마워 했다. 사실 요금을 깎아주지 않은 것에 비하면 착한 편이지만 제주시로 가는 702번 버스를 타려면 용당리 사무소로 가는 것이 더 짧은 거리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야말로 핸들 잡은 운전사 마음대로인 것이다.
어떻든 16시50분에 제주 가는 702번 버스를 타고 18시20분에야 제주 버스 터미널 에 도착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19시40분 숙소 도착. 오늘 올레 14코스를 무사히 마치고 일과 종료!!
어휴, 우린 그야말로 발바닥 닳도록 나흘 동안 80㎞를 걸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