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행 띄우기는 없으나 독자의 시력을 위해 임시로 띄었습니다.
국화는 다시 피는데
-고 윤월로 시인을 생각하며-
권예자
방문을 열까? 말까? 카카오대화방 <쪽빛 문장> 앞에서 망설인다. 혹여 그녀 이름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을까 두려워서다. 이 방은 ㄱ자 성을 가진 수필가 셋, 이른바 3K와 고 윤월로 선생이 함께 놀던 단체카톡방이다.
그날은 내 세 번째 시집 출간 축하로 넷이 만나서 나름 고급스러운(?) 점심을 먹고, 아기자기한 피규어가 전시된 찻집에서 오래 수다를 떨었다. 그날 찍은 사진이 많아 쉽게 나누기 위해 내가 카톡방을 만들어 사진을 올렸었다.
그런데 사진만 가져갈 줄 알았던 멤버들이 재치 있는 언어를 줄줄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쾌활한 모습이 좋아서 투표를 통해 <쪽빛 문장>이란 문패를 달고 군불을 지피기 시작한 지 3년째다.
그런데 올해 그러니까 2021년 7월 11일 21시, 8년간 이어온 투병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윤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결국 지난여름 출간한 [느티빛 옷을 입다]는 그녀의 마지막 작품집이 된 것이다.
지난해 여름, 책을 받고 왜 그런지 겁이 났었다. 표지가 마치 우리를 등지고 떠나는 시인의 모습 같아서다. 위쪽 높이 초록빛 느티나무잎들, 아래로 표지의 3/4을 차지한 하얀 여백에 멀어져가는 자그마한 뒷모습의 여인. 그녀는 느티빛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쓰고, 회색 그림자를 동반하고 있었다. 책을 받자마자 축하 전화를 걸었다.
“윤 선생 어디 가우? 그런데 표지가 왜 이렇게 슬퍼?”
“권 선생 만나러 가요.”
“나 만나러? 그럼 빨리 오세요. 우리 맛있는 것 먹읍시다.”
며칠 후 윤 시인과 3K는 둔산에서 모여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윤 시인의 시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하는 암 투병을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얘기해서 우리를 안심시켰다. 이제 암은 다 극복됐다고 여겨질 정도로…
채운(彩雲) 윤월로 시인, 글 잘 쓰고, 차분하며 사교적인 문인이었다. 젊어서부터 시와 수필을 써오던 윤 시인은 대전에선 많이 알려진 작가인데, 나는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면서, 주로 서울서 문학 활동을 했으므로 서로 알지 못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첫 수필집을 출간했을 무렵이었다. 모처럼 참석한 대전 문인협회 송년 행사가 끝나고 음식을 먹던 중, 앞자리 분홍 재킷의 여인이 말을 걸었다.
“권예자 선생님이시죠? 원종린 교수님께서 선생님 수필집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셨는데, 책을 구할 수가 없네요. 한 권 주실 수 있으세요?”
나처럼 몸집이 자그마한데 가늘고 곱기까지 한, 하얀 얼굴이 초면이어도 여러 번 만난 듯 친근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서로의 저서를 주고받으며 우리 인연은 이어졌다. 둘 다 시와 수필을 쓴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윤 시인은 대전을 대표하는 원로급 작가고, 나는 글로는 후배의 입장이었지만 나이는 오히려 많아서 편했는지 모른다.
교사로 평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소리 내어 웃고 떠들 때도 이상하게 조용해만 보이던 사람. 한번은 어느 행사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더니, 마음에 꼭 든다며 수필집 [고마운 일상]에 작가 사진으로 넣고는 “예쁜 사진 감사합니다”란 메모와 함께 수필집을 보내온 세심하고 다정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윤 시인은 젊어서부터 열심히 작품 생활을 해온 만큼 저서도 많다. 신앙 시, 투병일기를 포함 11권의 정갈한 시집과 따뜻하며 부드럽기가 잔물결 같은 4권의 수필집을 남겼다. 이제 그 작품집들이 그녀를 대신해 우리를 만날 것이다.
장례 둘째 날, 코로나19로 인해 조문이 통제되었지만,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 생전의 깊은 믿음 생활의 표현이듯 그녀는 ‘윤월로 장로님’으로 우리를 맞았다. 잘 키운 자녀들의 현재 위치를 말해주는 것처럼, 입구 건너편까지 줄줄이 늘어선 화환들이 슬프게 화려했다. 빈소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평생을 함께하신 고인의 남편께서 앞을 막아서셨다.
“모두 이렇게 건강하신데 이 사람은… 이제 없네요.”
발밑으로 툭 떨어지는 눈물이 깨끗하게 시렸다.
“곱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하늘나라에 필요하여 조금 일찍 데려가셨나 봐요.”
위로랍시고 건네는 우리들의 말에,
“그런데, 저도 이 사람이 꼭 필요하거든요. 저하고 같이할 일도 아직 많은데… ”
가슴이 뭉클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성문학회원 몇과 나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윤 시인이 마지막으로 건네주는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그녀의 명복을 빌며 자리를 떠났다.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하늘이 붉어 보이는 건 그녀의 시 <노을> 탓인지도 몰랐다. 내게는 그녀 생의 마감도 아름다운 노을이라 여겨졌으므로.
노을 / 윤월로
세월이 쌓이다 보니
구름도 위로가 된다
저녁노을, 아침노을
찬란한 꽃구름들
내 생의 마감도 누군가에게
그런 노을이기를
국화가 피는 계절이 왔다. 지난가을 윤 시인의 초대로 우리는 유림공원의 국화전시회를 거쳐 카이스트 뒷산을 오래 산책했었다. 그녀는 흰 모자 아래 능소화빛 재킷을 입고 종달새처럼 즐거워하며 우리를 안내했다. 봄에는 이곳이 벚꽃으로 뒤덮이니 보러 오라고, 가을엔 국화전시회도 꼭 다시 가서 함께 쪽빛 문장 쓰자고. 그러나 이제 시인은 가고 어여쁜 노을 아래 철모르는 국화만 줄줄이 피고 있다, 노랑, 빨강, 보라 갖가지 빛깔의 웃음을 환하게 뿌리면서….
나는 과감하게 <쪽빛 문장>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다행히 윤 시인의 이름은 아직 거기 있다. 유가족도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은 듯하다. 우리에게도 유가족에게도 이별할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한 게 틀림없다. 나는 글판을 열고 대화를 올린다.
“윤월로 시인,
거기도 국화가 피었나요?
쪽빛 문장 쓰셨으면 바로 올려주세요.” ♣
(16.4매, 21. 대전의 시인들)
지난 가을 즐겁던 날
@ 시인협회서 의뢰한 윤월로 시인 추모수필입니다.
좋은 글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시인에 관한 수필이어서 올려놓습니다.
첫댓글 이슬 맺힌 국화꽃이 떠오릅니다. 촉촉하고 향기로운 그림.
<쪽빛문장> 답장은 늘 마음으로 받고 계시지요?
영원한 사진처럼 늘 아름다운 날 되시길 빕니다.
권예자선생님께서
카페를 풍성하게 해 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늘 수고하는 조 선생님께 고마울 뿐입니다.
@권예자 권예자 선생님
늘 고맙습니다
모든 곳에서 필요한 분이라서 조금 일찍 자리를 뜨셨네요.
이렇게 카페를 빛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어머, 교수님 들어오셨네요.
관심 주셔서 고맙습니다.